하나님은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나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존재는 없고,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질서와 체계를 잘 아는 존재는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의 주관자시기에 우리의 모든 상황과 과거와 미래, 그리고 앞으로의 일들도 다 아십니다. 1절부터 4절까지 이러한 하나님의 앎에 대해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알다”라는 단어의 대부분은 히브리어로 “야다”(יָדַע)라는 단어에서 나온 단어로 지식적으로 그 정보만 아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서 아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3절에 나오는 “익히 아시오니”에서의 “알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의 “사칸”(סָכַן)에서 나온 단어인 “히스카느타”(הִסְכַּֽנְתָּה)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옆에서 함께하고 있기에 모든 습관과 태도와 성격 등의 모든 것을 익숙하게 안다는 의미의 단어로 영어 단어로는 “acquaint”라는 단어로 번역됩니다. 친밀해서 익숙하다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시기에 우리를 잘 아시고, 우리를 언제나 지켜보시며 돌보시며 함께하시기에 우리를 너무 익숙하게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감싸주시고, 주님의 손을 내게 얹어 함께하십니다(5절). 내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에게서 피할 수 없으며, 어디에서든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7절~10절). 8절에 나오는 스올(Sheol)은 히브리어로 “쉐올”(שְׁאוֹל)인데, 희망이 없는 깊은 곳을 의미하며, 무덤으로도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한글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음부”(陰府)라고 번역했는데, 음부(陰府)는 저승이란 말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을 피할 수는 없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리고 9절의 새벽 날개라는 말은 새벽에 비취는 햇빛처럼 빠르게 멀리 간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피조물인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렇게 어디에서나 함께하신다는 것은 제약(制約)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있든지 나를 인도하시고 붙드셔서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10절). 캄캄한 흑암이 나를 덮어 막막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그 흑암과 같은 상황 속에서도 나를 지켜주시고, 돌봐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11절, 12절).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나와 함께하시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래서 이 시를 고백하는 다윗은 6절에서 “이 깨달음이 내게는 너무 놀랍고 너무 높아서, 내가 감히 측량할 수조차 없습니다”(새번역)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우리를 너무 잘 아시고, 어디에 있든지 항상 함께하셔서 우리를 돌보시고 지키시며 이끄시는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놀라운 축복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나를 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저 많이 아시는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신뢰하는 것만큼 우리의 인생을 복되게 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오늘도 전지전능(全知全能)하시고,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