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도 선수 동규
한국 사회에서 예체능으로 자리 잡으려면 둘 중 하나는 확실해야 한다는 인식이 일반적입니다.
하나는 본인의 실력과 능력이 탁월한 경우이며 다른 하나는 집안에서 지원이 든든해야 한다는 인식입니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같은 초등학교를 재학중인 아이들로 교회학교가 한때는 10여명에 달할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도촌 초등학교를 다니던 아이 중에 학교에서 집중 육성하는 체육 종목인 역도를 하던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가정 형편으로 어린나이에도 관내의 이모 댁에서 거주하며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또한 아이는 어려운 환경임에도 도내의 각종 역도대회에서 여러차례 수상을 할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교회학교 예배도 참 열심히 참석했었습니다. 당시 남자 아이가 혼자여서 성탄 발표회시에도 몸 찬양을 하는 또래 여자아이들을 어설프지만 열심히 따라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춘천의 체육중학교로 스카웃 되어 갔고, 드문드문 연락이 되면서 점점 기억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그렇게 약 6년의 시간이 흘렀던 10월의 첫날! 딸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춘천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주일 오후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저 동규에요.”라며 시작된 전화 통화의 주인공은 변성기를 지나가는 완연한 성인 남자의 목소리였습니다.
근황을 묻자, 현재는 고3이며 체육 특기생으로 충북 지방에 소재한 한 대학에 내년도에 입학 예정이라 했습니다.
나아가 아이는 간만에 교회를 왔더니, 저희가 부재중이어서 가지고 온 음료를 놓고 가겠노라고 했습니다.
아이와 통화를 마치고 몇 시간후 교회를 복귀했더니 동규가 놓고 간 비타 500 한 박스와 메모지가 있었습니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목사님
제가 양구를 오랜만에 와서 보고 싶어서 찾아왔는데 안 계셔서 저의 작은 마음이라도 두고 갑니다. 중략.
교회를 처음 온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6년이 지나고 제가 곧 성인이 됩니다.^^“ 라는 메모를 보면서 만감이 교차합니다.
동시에 초등학교 재학시 아이와 그 가정을 위하려고 노력했던 일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춘천에서 외롭고 고된 기숙사 생활을 잘 이겨낸 동규는 이후에도 입상 소식을 종종 들려주었고, 도촌리 마을 입구에도 전국대회에서 메달을 수상한 동규의 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지난 7월 제 50회 시도학생 역도 경기대회 용상 163kg에서 금메달을 수상한 사진을 보내 왔습니다.
동규의 말에 의하면 지방 대학교를 택한 이유는 졸업후 진로를 선택함에 유리할 것이며, 또 재학중이라도 실업팀으로 입단할 길이 있다고 합니다.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도 자신의 길을 열심히 개척해 나가는 동규의 모습과 열정이 대견하기도 하면서, 어린 시절인 6년 전을 추억하며 찾아준 마음이 고마웠습니다.
지금껏 노력해왔던 것처럼 힘든 운동선수로서의 길을 묵묵하고도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내 가는 동규가 되길 응원하며 기도하렵니다.
또한 최악의 여건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인생을 개척해 가려는 동규의 내일을 위하여 여러분들의 관심과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시편37:23-24)
여러분 한명 한명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