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가는 길/조영찬
이른 새벽을 여는 차 안에서 마음 설레며 달려가려는 곳은
경북 영주에 자리한 부석사와 주위의 명소들을 구경하고 싶어서이다
남서울 요금소를 통과해서 영동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다 보면
남원주 부근 만종 분기점에서 중앙 고속도로로 가던 길을 바꾸어 또다시
쏜살같이 달리는 길가에 가슴에 내려앉는 가을 단풍이 춤추는 모습이
마음을 지그시 누른다
가을에 취해 생각 없이 가는 길따라 온갖 가을의 군상들이
마음을 아프게 할 새도 없이 서영주 IC를 빠져나오게 되고
들뜬 마음으로 영주를 향해 달려가는 설렘 위로 십여 리에 걸쳐있는
노란 햇병아리 같은 은행나무들이 쏟아내는 가을의 흔적들이
아스팔트 위에 나뒹구는 모습이 아름답기도 했지만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왜일까? 하는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즐비하게 늘어선 빨간 사과밭의 탐스러운 붉은열매가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많은 시간의 흐름 뒤로 제 모습을 보이는 부석사가
눈으로 들어왔다
경내에 들어서니 책에서나 읽었던 귀중한 문화재들이 가득하고
가장 오래되었다는 무량수전의 목조건물을 지으셨다는 의상대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아 가슴이 아려옴을 느낀다
사찰에서 바라다보이는 만산홍엽으로 치장한 소백산 자락이 들뜬 눈을
더욱 크게 뜨도록 종용하고 있었다
병산서원
부석사를 둘러보고 다시 발길은 안동으로 향한다
차로 삼사십 분을 달리다 보니 낙동강 구비 도는 하회마을에 다다르고
먼저 발길이 가는 곳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유학자, 영의정까지 지내신
유성용이 수학하신 병산서원으로 향하고 있었다
유성룡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신동으로 평가받았으며
이황의 문하생으로 학문 탐구를 하였고 청렴하고 정직한 성품으로
탁월한 군사지식을 겸비하여 조선의 전세를 역전 시키는 주역으로
이순신과는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 친분이 두터웠으며
후견인 역할을 하기 위해 국보 제 132호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한다
병산서원으로 가는 길은 비포장도로로 차 한 대가 가까스로 비켜 갈 만큼
협소한 도로였으며 옛 그대로의 운치를 살리려고
포장을 하지 않았다 하니 자연 그대로의 모습에 매료당할 수밖에없다고 생각을 하며
병산서원에 들어서서 입교당에 앉아 있노라니 발아랜 낙동강이 흐르고
병풍을 둘러놓은 것 같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가을 산의 풍광이 눈앞을 어지럽게 한다
하회마을
병산서원을 뒤로한 채 마지막으로 들렸던 곳이 바로 하회마을
; 류씨가의 발상지이며 낙동강 물을 안고 돌아가는 맷돌 같은 지형 속에 자리한
아름답고 순수한 옛날의 기억들을 되살려 놓은 곳
엘리자베스 2세와 전 조지부시 대통령이 들렸던 곳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우리 나라에도 이만큼 아름답고
세상에 알리고 싶은 곳이 많다는 생각에 자부심을 가져본다
이렇게
기나긴 여정의 막이 내리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던 길에
땅거미 내리는 저녁노을이 아름답게 느껴졌던 건
여행을 즐겁게 마무리할 수 있었던 뿌듯한 마음에서 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