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성모 마리아
포르투갈의 파티마에서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매 13일 6회에 걸쳐 발현(發顯) 한 성모를 말한다.
뒤에 가르멜회 수녀가 되어 이 발현에 대해 저술한 루시아(Lucia dos Santos,1907∼2005) 와
그녀의 사촌남매 자신타(Jacinta Marto, 1910∼1920)와 프란치스코(Francisco Marto, 1908∼1919) 등
세 목동들만이 성모를 직접 보고 그 말씀을 들었다.(단, 프란치스코는 듣지 못했다).
사람들의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발현 횟수가 거듭됨에 따라 군중의 수는 획기적으로 늘어났으며, 성모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겠다고 약속한 10월에는 태양이 지상에 수직으로 떨어지며 회전하고 갖가지 빛을 발하는 `태양의 기적’을 7만명의 군중이 목격하였다.
파티마의 성모는 세 어린이들을 통해 속죄, 로사리오 기도를 자주 바칠 것,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도와 고행을 바칠 것, 성직자를 위해 기도할 것, 세계 모든 사람이 성모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할 것, 그리고 매달 첫 토요일에 속죄의 영성체를 할 것 등을 당부하였으며 이 대가로 많은 영혼이 구원되고 더 끔찍한 세계 전쟁을 피할 수 있으며 러시아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가져다 줄 것임을 약속하엿다.
1930년에 포르투갈의 주교들은 파티마의 성모발현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였으며, 1942년 교황 비오 12세는 성모의 요청대로 러시아에 대해 특히 언급하면서 세상을 성모의 티없는 성심께 봉헌하였다.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은 발현 50주년 기념에 개인적으로 파티마를 찾아 순례하였다.
(가톨릭대사전에서)
파티마의 성모(포르투칼)
파티마의 어린이들에게 동정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것은 세계 제1차 세계 대전 중인 1917년 여름이었다.
레이리아 교구의 작은 마을 주민들은 대개가 가난한 사람들이고,
또 소농이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들과 가축들을 돌보아야만 했다.
성모님의 발현을 목격한 어린이들도 양치는 일을 맡고 있었다.
루치아 도스 산토스는 10세였고, 그녀의 나이어린 사촌 동생 프란치스꼬와 히야친타가 곧 그들이다.
그들은 루치아의 책임 아래 양을 쳤는데, 자주는 아니지만 들판에서 무릎을 꿇고 로사리오 기도를 즐겨 바쳤다고 한다.
1916년 여름에는 한 천사가 몇 차례 발현하여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1917년 5월 13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정오경, 한줄기 밝은 빛이 아이들을 비추었는데,
그들은 코바 다 이리아의 나무 위에서 찬란한 모습의 어떤 부인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이 첫 발현 때, 그 부인은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그리고 전쟁의 종식을 위해 기도하라고 이르시면서,
매달 13일에 다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그 후, 발현은 6월 13일과 7월 13일에도 일어났다.
네 번째 발현일인 8월 13일에는 어린이들이 지방 당국으로부터 방해를 받고
코바 다이리아로 가지 못했으나 19일에 그 부인을 만났다.
9월 13일, 부인은 전쟁이 끝나도록 로사리오를 바치라고 이르셨다.
끝으로 10월 13일, 그 "부인"은 당신을 "로사리오의 모후"라고 알려 주시고, 기도하고 보속하라고 다시금 이르셨다.
그날, 놀라운 천상적인 현상이 일어났다.
태양이 빙빙 돌면서 하늘에서 떨어져 땅에 쳐박히는 듯한 놀라운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린이들은 첫 발현날인 5월 13일처럼 일찍이 그 곳을 향하였다.
약 3만 명의 대군중들이 어린이 주변에 몰려 있다가 신비로운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어린이들이 코바 다 이리아에서 본 환시를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1930년 10월 13일이다.
레이리아의 주교는 오랜동안 조사 검토한 뒤에 코바 다 이리아에서 로사리오의 성모 공경을 허가했던 것이다.
발현 얼마 뒤에 두 어린이는 선종하였다.
발현은 보았으나 말씀은 듣지 못했던 프란치스코는 1919년 4월 4일에 선종했고,
동생 히야친타는 1920년 2월 20일에 하느님 품에 안겼으며, 유일한 생존자인 루치아는 수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