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초가 꿈꾸는 들판에서
소종숙
자연 속에 온종일 파묻혀 있었다. 도심이지만 인적이 없는 야생초가 꿈꾸는 들판에서 청정한 공기를 마시며 여백을 누렸다. 하늘과 땅. 햇빛. 공기.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 풀 냄새. 자그마한 풀꽃들이 우주의 기운을 가득 담고 곁으로 다가왔다.
겨울의 악몽에 시달리던 대자연이 잠에서 깨어나 3월이라는 옷을 벗고 안정을 찾아 4월이면 온갖 식물이 개화를 한다. 되풀이하는 말은 싫어해도 자연으로부터 오는 계절은 되풀이로 찾아와도 반갑고 만남의 순간에 변화가 일어난다. 산, 들, 강변, 길가 울타리에도 꽃들이 지천이다. 라일락꽃이 향기를 토해내고, 옆집농장에도 노란유채꽃이 만발하여 벌나비를 유혹한다. 4월은 잔인한 달이 아니라 서정抒情이 꿈틀거리는 달이다. 어린소녀가 쪼그리고 않아 네잎클로버를 찾는 행운의 숫자의 달이기도하다.
코로나19 때문에 사회적 거리두기 운동에 동참하느라 밖에 나가지 못하고 홀로 지내야 되는 때에 농원이라도 올 수 있어서 고맙다. 깊은 산중처럼 들판이 참 조용하다. 마음이 평온하다. 우리 집 농원에도 복사꽃이 핑크빛 꽃망울을 터트리며 만면에 웃음을 띄고 있다. 사과나무 꽃도 입술을 반쯤 열었다. 이제 작물을 심고 씨를 뿌려야할 시기다. 지난 주말에는 아들과 손자가 함께 잡초도 제거하고 땅을 기경하여 곱게 다듬는 일을 도왔다. 자연보호헌장에는 '사람이 자연 속에서 태어나 자연의 혜택을 누리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는 구절이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종일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철길 언덕이 청라언덕으로 변했다. 풀잎에 함초롬이 맺혀있는 이슬이 옥구슬보다 곱다. 참새들이 그곳을 오르내리며 내 곁에서 속살대고, 이름 모를 새들도 찾아온다. 어쩌면 내 모습을 닮은 듯싶은 참새가 좋다. 참새는 봄여름이 되면 숲으로 들어가 벌레들을 잡아주어 숲을 푸르게 하고, 가을에는 들녘에서 농부들을 좀 귀찮게 하지만 멀리 날지 못하여 사람 곁을 맴도는 게 가엾다.
언덕위로 하루면 ktx가 몇 차례 지나간다. 종일 농원에 있어도 무심코 들리던 소리가 석양 무렵이면 보금자리로 돌아갈 때를 알려주는 듯 열차 소리가 크게 들린다. 나도 모르게 열차를 바라 본다. 사람들이 차창밖으로 들녘을 내다보는 모습이 보인다. 스쳐가는 서로를 바라보면서 웬지 모를 나그네의 향수鄕愁와 여정을 느끼게 한다.
종일 자연 속에 묻혀 내 감정을 쏟아내며 농원에서 하루해를 맞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은 체 해가 기울어 간다. 나의 어떤 모습도 나무라거나 탓하지 않고 다 받아주는 자연! 흙은 사랑과 미움에 얽힌 속앓이를 치료해주는 처방전이다.
하루의 소임을 다한 봄 햇살이 언덕에 피어난 풀잎들을 쓰다듬으며 뉘엿뉘엿 저물어 가고, 나는 손에 묻은 흙을 털고 흙과 작별 인사를 나누어야 할 시간이다. 누구나 좋은 기분을 전해 주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어 하듯, 흙과 소통하며 야생초가 꿈꾸는 들판에서 지낸 하루를 돌아보면서 주섬주섬 귀가 차비를 서두른다.
(2020. 4.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