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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22
[예언] ㅡ 세계경제 전망
올해의 경제 키워드가 불안이라면, 내년은 불안과 부분 공포가 교차하다가, 내후년엔 완전 공포가 되리라는 것.
2. 2022
[루나 사태와 가상화폐 전망]
가상화폐에 관한 것..!!
루나 사태에 이어 튀어나오는 말이 "가상화폐 시장 붕괴하나"였다. 루나의 시가 총액이 50조원이었다고 하니 충격이 컸을 것.
그동안 개념 정립조차 못해, 가상자산, 암호화폐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다가, 이젠 가상화폐란 기본 명칭을 얻은 셈이다.
루나의 99% 폭락 사태의 원인은, 달러 연동 때문에 일어난 일로, 미국의 금리 인상과 달러의 화폐가치 상승 때문이라고 한다.
이로부터 역추론을 해 보면, 달러 가치가 오르면 가상화폐는 가치가 떨어지고, 반대로 달러가치가 폭락하면 가상화폐는 폭등하리라는 거다.
그런데 문제는 가상화폐를 담보해 줄 자산이 없기 태문에 불안한 것인데, 금이나 석유 같은 자산의 뒷받침 없이는 가상화폐는 교환이나 지불 수단으로서의 화폐 기능을 갖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단기적으로는, 달러 가치의 평가를 지렛대로 오르내리는 유령 화폐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금이나 석유 등을 대신하는 담보권만 획득하면 가상화폐 시장은 급격히 발전하리라 본다.
그러면 장차 가상화폐의 담보로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정부(국가)가 될 것이다.
달러에 대한 신용 불안은 계속될 것이기에, 가상화폐 시장은 없어지지 않는다. 달러의 지배력은 80%에서 71%로, 그리고 다시 58%로 계속 하락의 경향을 보이는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은 디지털 시장으로 점점 빠르게 이행되고 확대되고, 화폐 시장도 이에 발맞춰 움직이기 때문이다.
오늘은 여기까지~
3. 2022
[범주의 세계 : 세계와 나]
세계의 이해, 나 자신의 이해..!!
뭐 논문 쓰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편하게 얘기할께.
철학에 보면, 존재론과 인식론이 있어. 존재론은 세계에 관한 설명이고, 인식론은 나에 대한 설명이지.
세계는 연속성을 띄는데 반해, 우리의 인식(앎)은 단절과 분절해서 이해하지. 즉, 끊어서 생각한다는 거야. 그래서 세계와, 그 세계에 대해서 내가 아는 것과 일치한다는 게 결코 쉽지가 않지. 그래서 진리 혹은 진실을 향한 노력들이 눈물날 정도로 애처럽잔아.
세계를 한꺼번에 통째로 전체로 모두 다 알고 이해한다는 건 완전 불가능해. 최고로 발전된 인공지능한테도 불가능하지.
우리 인식은, 연속되는 세계를 불연속으로 끊어서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걸 '범주적 사고'라고 보면 돼. 즉, 카테고리(항아리)에 담아두어서 생각한다는 거지. 이걸 '개념 있는 사고'이라고도 하는 거지. '무개념'과는 대비되는.
마침 오늘 5.18이니 전두환을 잠깐 얘기해보자구. 굥이 걸핏하면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을 자주 쓰는데, 얼마나 공허하게 들려? 전두환도 "국민을 위해서~"라고 자주 말했거든.
하지만 전두환은 국민을 향해 총을 쐈거든. 국민은 이에 대항해서 싸웠고, 이를 우린 "5.18 광주 민주항쟁"이라고 개념 정립을 했지.
여기서 우리는 다시 생각해. 과연 "국민을 위해서~"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무엇을 어떻게"라는 내용이 없으면, 아무런 뜻도 담기지 않은 무의미한 발언인거지. 이걸 칸트는 "내용 없는 사상은 공허하다"고 한 거잔아. 즉, 항아리만 있고, 물은 없는거야.
얘기가 지루해질까봐 속도를 좀 높여볼께~
고대, 중세, 근대, 현대, 이렇게 세계를 커다랗게 시간별로 끊어서 생각하지? 이게 범주적 사고야.
누가 집 보러 왔어. 싱크대, 화장실, 안방 건너방, 베란다 다 보여줬는데, 다 보고는 "집은 어딨어요?"라고 물어본다면 좀 이상하지? 이걸 논리학에서 범주착오(카테고리 미스테이크)의 오류라고 불러.
더 빨리~
대기업의 경영 목표가 중소기업이 되려는 것이라면 믿겠어? 선진국에서 후진국을 목표로 하는 정부가 들어선다면 이해가 돼? 그건 진짜 아닌거잔아~
대기업에선, 총무과 인사과 영업부 등 세세하게 조직이 짜여져서 역할 분담이 확실해지. 역시 범주적 사고와 조직 구성이 이루어지지.
근데 중소기업에선, 대충 구분해서 일을 해. 어떨 땐 부장이 경리 일도 인사 문제도 영업도 심지어는 청소와 커피 타기도 모두 다 하지. 마치 만능 플레이어처럼. 그리고 그게 용인되고 상시로 일어나.
대기업에선 각자 맡은 일만 하지, 다른 부서 일은 간섭하지 않고, 스스로도 자제하고 회피하지.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업무분장이 범주적으로 확실한 거야.
대기업을 선진국으로, 중소기업을 후진국으로 대체해서 생각해보자구.
선진국에서 일을 후진국에서처럼 하면 안 되잔아. 그래서 삼권분립도 하고 견제와 균형 원리가 작동하지.
그런데 굥과 한동훈을 봐바. 하는 짓들이 진짜 후지잔아~ 아주 후진국형이잔아~ 범주와 경계를 구분짓지도 않고 이리저리 넘나들면서 무소불위로 행동해. Gs 꼴리는대로.
미국이 욕먹었던 걸 생각해봐. 거의 사문화되었던 수퍼301조를 들고나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세계를 겁박했잔아. 이런 게 바로 후진국형 깡패짓이지.
굥과 한동훈이도 그런 셈이야. 다 끝난 성남fc 수사를 또 한다잔아~ 캐비닛 정치로, 과거와 헌재를 뒤섞어서 범주적 사고를 무너뜨리는 거지. 여기서의 범주적 사고는 우리의 '상식'이 되는 거고.
유사성 문제에서도 그래. 구조나 진행 절차에서 유사성을 보이면, 그리고 그 결과가 범죄나 부도덕성으로 예견된다면 일단 회피해서 그 유사성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이 당연하잔아~
그런데 한동훈의 딸이 했던 스펙쌓기 일들은 작년과 올해 아이비리그의 하나인 유펜에 입학한 사촌 언니들과 유사한 구조로 유사한 과정을 밟았는데, 한동훈은 청문회에서 "뭐가 문제냐" "입시에 아직 사용하지 않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답변했는데, 결국 우리의 범주적 사고 인식을 개똥으로 보는 거잔아~
식탁만 있잔아~ 장만 봐온 거잔아~ 가스 켜고 냄비만 올린 거잔아~ 물만 끓인 거잔아~ 뱃속으로 아직 들어간 건 아니잔아~ 내 딸 뱃속으로 들어간 걸 난 모르잔아~ 아직 똥으로 안 나왔잔아~ 냄새가 안 나잔아~
이런 식으로 계속 꼬리 자르기로 일관하는 한동훈의 태도와 사고 형태를 우린 그냥 봐주고 넘어갈 수 없는 거잔아~
끊어서 생각한다는 것은, 변명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이해를 좀 더 쉽게 하기 위해서고, 좀 더 선진국형 사고 방식으로 나아가려는 거 아니겠어?
그걸 다시 뒤로 후진시키려는 사람들, 특히 한동훈과 그의 딸을 대표로 해서 반드시 끌어내려야 한다고 나는 생각해.
4. 2022
의지의 자유..!!
반지성은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로 밀어붙이려 한다. 그럼으로써 상대의 지성마저도 반지성으로 몰아붙인다.
합리적 판단은 균형을 이룬(rational) 판단이며, 객관적 판단은 사실로 뒷받침되는 실체적 판단이다.
그러면 의지로서 판단을 내린다면 어떤 판단이 될까?
우선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충동적이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맹목적이라 했으며, 니체는 의지가 권력 욕구라고 했다.
지성대 지성이면, 상대는 반지성이 되어야 내가 우위에 설 수 있고, 의지 대 의지라면, 상대 의지는 충동적이고 맹목적이 되어야 내 의지가 힘의 우위에 서게 된다.
하지만 극단의 대립과 실제 대결에선, 의지와 반지성의 대립구도가 된다.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
머저리 굥을 두고서 철학적 사색을 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아무튼 굥을 부추겨서 권력의지를 갖게 하는 조종자가 있을 것 같기에, 일단 정리는 해 둔다.
의지의 자유가 되려면 일관성을 갖추어야 한다. 그래서 칸트는 자유를 자율이라고 했다. G 꼴리는대로 누리는 방종이 아니란 거다. 보편법칙이 있고 그 밑엔 준칙도 있다. 마치 헌법 밑에 법률이 있듯이.
그러나 굥에게서 일관성이란 걸 여러분은 혹시 보신 적 있나? 나는 못 봤다. 내가 본 건, 누군가에게 조종당하는 허접한 의지와 폭력성, 그리고 책임지는 회피가 아니라 비겁한 회피와 변명에 무책임까지도 보았다.
굥이 어따 대고 반지성 운운하는지 가소롭기 짝이 없다. 사실, 의지라고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다. 그저 욕망과 질투의 감정 쓰레기로 밖에 달리 보이지 않는다.
5. 2022
《시》
누군가 밤을 훔쳐가 버릴까봐
밤을 꼬박 지키는 그댈 위해서
나는 같이 긴 밤을 또 새야 해
아침이면 아무일 없었단 듯이
같이 웃고 함께 수다를 떨지만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는 공허
무우밭 배추밭 사이를 거닐며
별빛들이 쏟아내리는 걸 보며
밤깊은 하늘에 배를 띄우려해
밤하늘에 배를 띄워 / kjm
6. 2022
반지성주의란..!!
지성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사고 능력을 가리킨다.
사고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감각, 지각, 오성, 이성의 넷이다.
감각은 순간적인데, 이걸 지속적으로 만드는 게 지각이다.
지각은 수용적 태도만을 보이는데, 오성과 이성이 이걸 적극적으로 구성하려고 한다.
오성은 개념을 구성하고, 이성은 추론을 구성한다.
이런 사고 능력은 합리적, 객관적으로 전개된다.
그런데, 합리화 능력과 객관화 능력과 대치되는 게 감정과 의지다.
이성보다는 의지를 더 따를 때 '주의주의'라 부른다.
의지를 따르려는 주의주의에 대립되는 게, 지성을 따르려는 주지주의다.
따라서 '반지성주의'라고 하는 것은, 주의주의와 일맥상통하고, '반지성주의'를 '반주지주의'라고도 부르는 이유다.
의지는 신념으로 직결된다.
지성이 추구하는 '앎'과, 의지가 추구하는 믿음 사이에서, 사람들은 선동과 포퓰리즘에 흔들리게 된다.
"앎이 먼저냐, 믿음이 먼저냐" 하는 중세 말기의 기독교적 신앙 논쟁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또 재현되는 느낌이다.
어쩌면 1950년의 매카시즘이란 악의적 정치 포퓰리즘의 재등장을 예고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냥 굥이 전날 밤 마신 술이 덜 깨서 즉흥적으로 내뱉은 헛소리이길 바랄 뿐~
7. 2021
[5.18의 기억]
5.18은, 누구에게는 "아픔"이고, 누구에게는 "민주"고, 또 누구에게는 미얀마에서처럼 "희망"입니다.
아픔을 치유하려 하고, 민주를 회복하려 하고, 희망을 찾으려 한다면, 절대 5.18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2019년 2월, 국회에서는,
이종명은, 5.18의 아픔을 가리켜 "폭동"이라고 말합니다.
김순례는, 5.18 항쟁의 유족들을 향해서 "괴물"이라 말합니다.
그리고 김진태는, 다음날 광주로 갑니다. 망언을 넘어 망동에 가까운 명백한 조롱입니다. 자신에 대한 테러를 유발시켜,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광주시민들에 2차 가해를 저지르면서 정치적 효과를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곤 "5.18 유공자 명단을 밝히라"고 또 다시 주장합니다.
많은 논란이 일자, 여기에 다시 미친년 나경원이 등장합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 존재할 수 있다." 라고 하면서 말이죠.
2019년 4월,
정진석은 세월호의 기억이 징글징글하다고 합니다.
일제 식민지에서의 35년 항거의 기억도, 5.18 민주 항거에 대한 기억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기억도 역시 징글징글할 것입니다.
그리곤 아무런 반성도 사과도 없이, "이젠 잊고 미래로 가자."고 합니다.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됩니다.
김종인처럼 일시적으로 사과하는 척 하고,
다시 또 주호영처럼 뒤집고...
ㆍ
그렇게 5.18은 영원히 아픔으로 남아 있게 됩니다.
8. 2020
[잘못된 인식의 만연]
가난한 사람들을 가리켜 "사회에 전혀 기여함이 없이 턱없이 요구만 많다"고 하거나, "세금은 우리가 다 내는데 우리가 낸 세금으로 '기본소득'을 왜 주느냐"고 말하는 사람들은 크게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사회에 기여하기는 커녕 오히려 사회에 커다란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사회 분열에 앞장서고 편법과 불법을 동원해서 이익들을 선취하여 홀로 점유하면서 먹다남은 과자부스러기를 던져주듯 푼돈을 던져주면서 갑질을 일삼기에 말이다.
이들의 시선으로 봤을 때, 5.18 광주 항쟁이나 세월호 사건, n번방 텔레그램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철저하게 가해자의 편을 두둔하지 절대로 피해자의 입장에 서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피해자들로부터는 뜯어먹을 건더기가 전혀 없고 그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사회적 약자들을 마치 '기생충'의 존재처럼 대하곤 하다가 코로나19를 맞아서도 그런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 한다. 그들에겐 단지 거북한 존재, 불편한 존재일 뿐이다. 축구선수 호나우도가 코로나19의 대유행에 섬을 하나 사서 자신의 가족들끼리 그 섬으로 도피했다는 것이 이를 여실히 증명한다.
우리가 우리 몸 안에 기생충을 지닌 채 살아가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면, 역시나 우리는 코로나19와도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도 재인식해야만 한다. 박멸과 퇴치, 존재의 말살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여기는 삐뚤어지고 잘못된 인식에서는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도 우리의 희망으로부터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트럼프와 같이 삐뚤어진 심성으로는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 신종 바이러스와 같은 질병에 대한 인식과 기후 위기, 환경 재앙에 대한 인식이 근본부터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해결책 역시 없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19와의 본 게임을 제쳐두고 무역전쟁과 무력전쟁으로 확장해서 전개하려는 구상을 하려 한다면 그것은 상황의 타개가 아니라 상황의 도피가 된다.
그릇된 인식과 잘못된 판단이 불러올 커다란 재앙들은 대개가 가진자들의 오만과 편견에서 비롯되어왔다. 공존과 상생과 협력을 무색케 하고 평화의 연대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는 언제나 역사의 심판을 받았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세기가 대영제국의 최전성기였다면, 20세기는 미국의 최전성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21세기다. 21세기의 역사는 아직 쓰여지지 않았다. 제발 오판이 없었으면 한다.
9. 2019
[이번엔...]
끝까지 지지하며 지켜줘야지~
세 번만 지켜내면 조선일보도 사라질거야!
https://naver.me/GgN9vEMJ
K / 2026.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