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을
크리스마스 때 녹초가 될 때까지 고생한 피라누님과
이번에 멋지게 밴드를 정식 창단한 해바라기아픔님,
그리고 그 날도 카페를 등대처럼 비추어주신 휴프논크라운 영감님께 헌사합니다.
염장글이면서도, 슬프면서도, 감격이 있는, 한 편의 크리스마스 실화드라마.
자 그럼 감각적 글쓰기 시작해 볼까요?
(글쓰기 연습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일기도 자주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편하게 읽어주세요.)
(또 장문이라 죄송합니다만.. 어차피 몇 몇 분만 읽으셔도 저는 행복하니까요 ^^)
(그나저나 오늘 밤도 집안이 X판 이군요 ㅠ.ㅠ... 불굴을 다시 걸어봅니다 ^^)
.
12월 24일. 새벽 6시. 이젠 거의 자동적으로 일어납니다. 출근 준비를 하고, 음악을 한 곡 듣습니다.
그리고 일하는 가게에서 정오까지 언제나처럼 근무합니다. 하하. 에이스 프리터라고 자부합니다.
크리스마스 캐롤이 유독 라디오에서 많이 흘러나오더군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일을 했습니다.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유명한 곡이 흘러나오니까, 정말 크리스마스가 제대로 실감나더군요.
크리스마스 관련 상품은 거의 팔지 못해서 사장님에게 미안하긴 했지만,
뭐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요. 중요한 건...
.
여하튼, 정오가 되었습니다. 정오에 출근하는 88년생 아가씨와 몇 십분 동안 수다 떨다가...
일을 인수인계 해 준뒤에,
오랜 친구인 그녀를 만나러 드디어 가게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설레이지도 않았고 들뜨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기대심리를 줄이고자, 냉정해 지려고 많이 노력했습니다.
또한 최대한 건강하면서도 이기적인 모습이 되도록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제가 가진 단점인 일종의 "착한 사람처럼 보이기 위한 컴플렉스"를 극복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부산 중심가인 서면 이라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녀와 같이 로맨틱 홀리데이 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중간에 구글 이 잠깐 나왔는데... 과연 인터넷의 위력은 일상을 정말 바꿀 수도 있는걸까?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는 개인적으로 너무 재밌게 보았습니다.
세상에 지독하게 썩어있는 나쁜 놈은 별로 없을꺼 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저마다 상처를 가지고, 또 저마다 한계를 가지고, 그렇게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이 인생.
결국 삶은 자신의 몫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웃음.
.
영화를 마치고, 홈더하기 (Home+) 에서 쇼핑을 언제나 처럼 했습니다.
그녀의 일주일 생필품 이것 저것을 사고, 저는 개인적으로 작은 귀걸이 하나도 선물 하였습니다.
확실히 선물이라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고보면 산다는 것 자체도 어쩌면 선물 인지도 모릅니다.
아무리 막되먹은 세상, 썩어빠진 것들 봐야 하는 인생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이 현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어쩌면 귀한 선물 인지도 모릅니다 ^^
.
영화를 정말 좋아하는, 취미가 영화보기인 그녀에게
한 마디 건넸습니다.
여기 전단에 플스2 있는데, 이거 사줄까?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플스2 의 각종 기능들 (특히 DVD 플레이어 기능) 을 설명해 주었지요.
예쁘게 화장한, 그리고 커다란 두 눈을 반짝이면서 정말? 이라고 묻는 그녀.
비록 친구이지만, 그리고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예쁜건 사실입니다.
아마 귀엽다고 소문난 사랑스러운 피라누님만큼... 매력적인 아가씨 니까요.
.
사실은 홈더하기에서 플스2 특별행사를 한다는 것을, 해바라기아픔님의 글에서 읽었었습니다.
신품이 무려 139,000 원 이라는 충격적인 가격. 이상할 정도로 싸서 의심이 되는 가격.
뭐, 어쨌든 한정수량이고, 일부점포에만 있다고 고지되어 있어서 그런지...
홈더하기 서면점에는 행사상품이 없었습니다. 189,000 원짜리 신품만 몇 개 있더군요. (안습 ㅠ_ㅠ)
갖고 싶었던 것을 못 가지게 되어서 일까?
생각보다 많이, 그녀는 아쉬워 했습니다. 평소에 아마도 DVD 플레이어가 갖고 싶었나 봅니다.
그렇겠지요... 그녀는 혼자 사는데 DVD 플레이어가 생기면,
아마 쉬는 날에 심심할 때, 집 앞 대여점에서 보고 싶은 최신 영화를 볼 수 있으니까요.
(최근에는 영화관에서 막을 내리면, 얼마 안 되어서 DVD로 출시되더군요.)
아쉬움을 가만히 달래는 아이같은 그녀의 모습에, 적잖게 큰 충격을 먹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고가의 플스를 함부로 살 수야 없으니까요. 돈도 없었고...
.
저녁으로 초밥을 먹고, 떡볶이도 먹고, 그렇게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 늦게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특별하지는 않았지만, 근사했던 스물다섯의 이브 밤이었습니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허씨한테만 못해줘서 미안해, 왠지 매번 잘해줄 수 없게 되더라...'
그렇겠지요. 참 많이도 싸우고, 상처주고, 철 없던 시절엔 때론 해선 안 될 말도 오갔으니...
이미 서로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더 많은 친구.
그렇게 싸워도, 어려운 일 있으면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는 그런 사이니까요.
.
노는 것도 피곤한 일인 것 같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정리하고 자리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습니다.
그리고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6시에 일어나 한 바탕 무거운 눈꺼풀과 씨름한 뒤,
그제서야 일어나 조용한 거리를 가르면서 또 출근길을 서두릅니다.
일 마치고 교회에 꼭 가야지 했는데, 이번에는 그녀가 맛있는 거 먹고 싶다고 사달라고 합니다.
평소에 거의 그런 일이 없는 터라서, 의아해 하다가 저녁 약속을 또 잡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봤더니 라디오스타 라는 영화에서 국밥 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게 떠올라서 국밥이 먹고 싶다는 것이었지요. 국밥이야 저도 마니아 라서, 이런 경우 대만족 입니다.
.
일을 마치고, 슬슬 외출할 준비를 하니까 오후 2시.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가끔 한 번씩 망상에 잠깁니다 ^^)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으니 바로 플레이스테이션 2 행사상품.
싸긴 싸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 번 구해볼까? 라는 생각이 든 게, 2시 10 분 경. 저녁까지는 시간도 있겠다 싶어서,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않고, 인근 홈더하기로 달려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우선 제일 가까운, 버스타면 10분 거리인 동래점 (부산 온천장역) 을 들렀습니다.
새로 생긴 홈더하기라서 깨끗하기도 하고, 사람도 많고, 북적북적 분위기에 캐롤까지...
단숨에 달려가서 플스 매장을 발견했습니다! 담당자가 아가씨더군요.
열심히 연습중인 스킬, 아가씨에게 친근하게 말 걸기 를 발동. 이것저것 물어봤습니다.
아쉽게도 해당 행사상품은 워낙 수량이 적은데다가,
재고처리 상품이라서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그리고선 당당히 7만번 신품(약 19만원)을 권하는 그 아가씨. 소프트 2개를 덤으로 준다고 했지만...
웃으면서 거부하고, 아쉬운 마음을 뒤로한 채, 홈더하기를 나왔습니다.
.
자, 포기할 것인가... 미쳐볼 것인가...
내가 변하긴 변했나 봅니다. 한 번 해볼 수 있는데까지 뛰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계는 오후 3시를 향해가고 있더군요.
바로 다른 버스로 환승해서, 홈더하기 연산점이라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114 연락스킬이 강하더군요.
덕분에 발품 찾아서 찾아갔건만... OTL...
거기는 매장 자체가 작더군요. 당연히 해당상품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ㅠ_ㅠ...
.
잠시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에 잠겨 보았습니다.
어차피 이제 행사상품 수량이 없을 것이라는 건 누가봐도 뻔한 사실.
게다가 애시당초 낚시용 행사 (초저가 상품은 겨우 1개 정도 한정해 놔두고, 다른 상품 권유하는 방식)
임이 뻔히 보이는데, 더 이상의 삽질도 소용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내 판단이냐 or 내 행동이냐
현실적 계산을 잠시 그만두었습니다. 미친 사람이 되기로 작정했습니다.
오직 발 하나. 그것만 믿어보기로 했습니다.
어떤 책에 나오지만... 발이야 말로 제 2의 심장이고 하지 않습니까~
.
그리고선 한 번도 찾아가본 적 없는 홈더하기 사직점을 향해서 무작정 버스를 탔습니다.
물론, 일일이 모든 점포에 전화로 물어볼 수 있었겠죠?
그리고 실제로 전화상으로 몇 군데 물어봤습니다만,
그 행사 자체를 정확히 알고, 그것을 전담하고 있는 담당자와 통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워낙 홈더하기가 크다 보니, 한정수량에 대해 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란 쉽지 않았던거죠.
여하튼 사람들에 도움에 힘입어서 (길을 물으면 대부분 잘 가르쳐 주시더라구요 ^^)
부산 사직점 홈더하기에 도착하였습니다. 또 다시 플스매장으로 뛰었습니다. 열심히~ 열심히~
.
헉헉... 왜 이렇게 숨이 차던지... 나름대로 제가 기대가 컸나 봅니다. 사직점은 꽤 컸으니까요.
게다가 눈에 확 보이는 그 행사상품의 진열모습 (일명 아이토이 패키지)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그래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담당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해 본 결론은... 안습이었습니다.
품.절.
애시당초 물량이 재고처리용이라서, 처음부터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_-;
(다루는 매장도 극히 한정되어 있을 것이라는 현실적 답변은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망할 홈플러스 감히 플스로 낚시를 했던거냐! 139,000원이 웬말이냐!!!)
재고처리용이라 함은 - 창고에서 먼지가 쌓여가는 오래된 신품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그 담당자도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지금 플스 소프트 증정 행사도 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7만번 구입하면 소프트를 더 준다면서, 7만번 깨끗한 것 (19만원 ㅠㅠ)을 권유하더군요.
역시 거부.
홈더하기를 나오면서, 이번에는 상당히 속상했었습니다.
발품 팔아가면서, 한 번도 와본적 없는 여기까지 어렵게 왔는데, 역시 예상대로 없다니...
그리고 대놓고 물어봤습니다. 인근에 부산에서 가장 큰 매장이 어디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부산 가야점.
또 다시 드는 생각.
슬슬 저녁 약속 시간도 다 되어가고, 거기가도 행사 플스는 없을 확률이 극히 높은데...
내가 영화 속 주인공도 아닐테고, 가서 또 허탕쳐서 아쉬움만 커질 텐데... 라는 현실적 판단.
그런데 왜 였을까요. 오후 5시가 넘어가는 그 무렵. 저는 가야점으로 뛰고 있었습니다. (웃음)
.
차라리 내 눈으로 끝까지 확인하고 난 후에, 포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산에서 가장 큰 매장 중에 한 개인 홈더하기 가야 점에도 없다면,
부산 어디에도 물량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택한 곳이 가야점.
물론 약속 조금 늦을 건 이미 각오 했지요.
지하철을 두 번이나 갈아탄 끝에, 드디어 가야 지하철역에서 내렸습니다.
새로 생긴 3호선 지하철은 정말 좋더군요. 부산도 참 발전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하.
지나가는 아가씨에게, 홈플러스 가야점이 어디에요 라고 웃으면서 물었더니...
'헉. 여기보이는 대로를 따라 쭈~~~욱 걸어가셔야 해요. 제법 멀어요. 10분 넘게 가셔야 할 걸요.'
감사를 표하고, 바로 뛰었습니다 -_-!
사실은 무엇보다 더 이상 늦었다간 절대 안 될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친구라고 해도 그녀도 여자인데, 시간 약속을 함부로 깨면 엄청 싫어하니까요.
철 든 이후로는 어떻게든 모든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고, 말도 조심해서 하는 편입니다. 웃음.
.
뛰고, 또 뛰어도 나오지 않는 홈더하기.
저 앞에 보이는 것은 동의대 지하철역. 순간 드는 생각.
미친듯이 지하철 1 정거장의 거리를 뛰어왔구나. 홈더하기는 어디있는거야! ㅠ_ㅠ
또 길을 물은 결과, 좀 더 직진하면 나온다고 하더군요.
아니 홈더하기 가야점은 왜 가야역 근처에 없고, 동래점은 왜 동래역 근처에 없는 건지...
정말 제대로 낚인 기분. 평소에 제목으로 낚시를 하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더군요. 하하.
.
간신히 도착한 가야점. 정말 크긴 크더군요. 제가 본 홈더하기 중에 가장 큰 규모였습니다.
당연히 사람도 많고, 다른 홈더하기와 달리 고가구매고객 특별 행사도 추가로 몇 개 하고 있었고요.
급한 마음에 또 뛰었습니다 ㅠ_ㅠ 다리도 아프고, 땀도 나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하고...
도착한 플스, 엑박, PSP 전용매장. 확실히 규모 자체가 크더군요. 직원도 무려 3명이나 되고...
그러나 역시나...
찾던 제품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O.T.L. ... 허리가 끊어지는 이 암울한 느낌.
바쁜 담당자에게 여유를 가지고 물어보았습니다. 혹시... 행사제품이 남은게 있나요? 라고...
사실은 어쩌면 빨리 없다고 확인 받고, 따뜻한 국밥이 먹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나한테 도움 하나 안 되는 짓을, 크리스마스에 미친듯이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처량해 보였습니다.
'없어도 괜찮아, 열심히 오늘 하루 보냈어' 라고 스스로를 자위하고 달랠 그 무렵.
그 담당자가 여기저기 알아보더니,
' 지금 딱 1 개 남아 있습니다. '
라고 이야기 하더군요.
순간 귀를 의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잠시 심장이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사실 올해 초, 3달 동안 월급을 조금씩 모아서
큰 맘 먹고, 플스 2 풀셋과 각종 소프트까지 구했을 때도,
심장이 뛰지 않았습니다. 그 때는 그냥 사놓고 열심히 하자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중한 누군가에게, 기억에 남을, 특별한 선물을 근사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 간절함이 어쩌면 이루어 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그 순간은...
정말로 심장이 쿵쾅 쿵쾅 뛰었습니다.
어릴 때 부터 소심하고, 소극적인 저였지만... 확실히 사람은 변하는 가 봅니다.
나도 놀랄만큼 무서울 정도의 적극성이, 결국 기적을 이루어 내었습니다.
.
그리고 담당 직원이 행사상품을 들고 왔습니다.
149,500 원 (PS2 5만번 아쿠아, 메모리카드, 아쿠아 패드, 카메라, 아이토이 글루브 셋트)
5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남은 제품이라고 하더군요.
그 순간 갑자기 다가온 대반전.
팀장이 달려왔습니다.
' 그 제품은 팔면 안 되~~~ 이미 예약되어 있어~~~ 이거 하나 남은 거라서 제발 팔면 안 되~~~ '
팀장은 저에게 정중히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도 서비스 업계에서 1년 가까이 일했습니다.
팀장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저는 한 발 물러서 버렸습니다.
.
호사다마 라고 했습니다. 좋은 일에는 항상 마가 낀다고.
그리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나의 기적도 여기까지 라고...
내가 양보하고, 다음 기회에 그녀에게 플스를 사주면 되겠지 라고 생각했습니다.
내년 생일이나, 내년 크리스마스나, 언젠가 그녀에게 큰 선물을 할 수 있겠지 라고 위로했습니다.
예약한 손님에게 물품을 파는 것은 기본적인 상업의 예의라고 평소부터 생각해 왔던 저는,
깨끗하게 마음을 접었습니다.
다만 그 예약한 손님이 곧 오니까, 그 손님과 이야기를 해서,
혹시 있을 가능성에 (비록 1% 일지라도)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혹시 그 손님이 제게 양보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10 분 간을 기다렸을 무렵...
창고로 갔던 팀장이 급하게 또 달려왔습니다.
' 찾았어! 창고에 행사물품 1 개가 더 있더라.
이것도 밀봉 재고인데, 그 때 박스 옆면이 일부 훼손되어서 못 팔았던 건데... 찾았어 찾았어 '
어차피 재고. 어차피 이거나 저거나 먼지 쌓인 창고에 있던 제품.
박스 옆면에 종이가 약간 벗겨져 있더라구요.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 가격에 이 제품을 다시는 구하지 못할 것임을...
그리고 크리스마스에 15만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풀셋 밀봉을 구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함을...
.
구매 의사를 밝혔습니다. 그 자리에서 도장을 찍었습니다. 아주 깨끗히 박스를 직원이 닦아주더군요.
그리고 물품을 직접 들고 계산대까지 정중하게 안내해 주더군요. 서비스에 감동 받고...
마지막 남은 단 1 개의 아쿠아 아이토이 패키지를 구한 것에 감동 받고... (비록 박스 옆면이 긁혔지만!)
잠시 동안, 영화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졌습니다. 진짜로요. (웃음)
이 글을 볼 리 없겠지만, 삼성 홈플러스 가야점 플스 매장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사실은 알고 있었습니다. 제품에 문제 없다는 것을. 박스 따위 장식일 뿐이라고.
아시잖아요. 지옹그의 다리 따위 장식이라는 것. 중요한 건 안의 내용입니다.
.
홈더하기를 나오니까, 밖은 이미 컴컴. 큰일났습니다. 시간은 없습니다. 저녁 7시가 넘었습니다.
바로 전화를 걸고, 택시를 타고, 그녀를 만나러 갔습니다.
정장에 코트를 걸치고, 한 손에는 분홍색 아이토이 플투 패키지를 들고,
그녀에게 첫 마디를 건넸습니다. 늦어서 미안하다. 라는 그 말.
그리고. ' 선물 사왔어 ' 라는 두 번째 말.
.
단 한 마디의 화도 내지 않고, 그녀는 놀라면서 ' 그게 뭐냐 ' 라고 묻더군요.
생색을 안 내야 멋진 사람인데, 저는 그리 멋진 사람은 못 되나 봅니다.
플스 패키지인데, 몇 군데 뛰어다녀서 운 좋게 겨우 구해왔지. 자 받아~ 라고 장황하게 -_-;;;
크리스마스 저녁. 행복함에 젖어 있는 그녀의 모습은 아마 평생의 추억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날 구두신고 오지게 뛰어다녀서 나중에 발이 퉁퉁 부었던 그것도 추억이 되겠지요.
.
그 날은 국밥이 끝내주게 맛있었습니다. 배가 많이 고팠던, 기다리다 지쳤던 그녀도 참 잘 먹더군요.
그리고 그녀의 집에 플투짱 설치하러 갔습니다.
아쿠아 5만번... 내가 샀지만, 그녀가 참 부럽더군요. 제껀 7만번인데... 확실히 그녀의 플스가 이뻐요!
TV에 연결해서 설치하고,
기본적 사용법 및 DVD를 재생 하는 법과 자막 맞추는 법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그리고선.
아이토이 그루브를 했습니다 -_-;
.
아무런 썸띵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친구일 뿐이라는 것을.
내가 오랜 시간 그녀를 좋아해왔고, 그녀도 오랜시간 저를 한 인간으로써 많이 챙겨주었었고...
제가 옛날보다 성숙해 질 수 있었던 것도, 그녀의 덕분이었으니까요.
사람을 이해하는 법,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그녀를 통해서 많이 배워왔으니까요.
그나저나, 역시 음악을 즐겨듣는 그녀... 몇 번 해보더니 아이토이 정말 잘하더군요 -_-;
저도 약간 해보았는데, 몸이 뻣뻣해서 망신만 샀습니다 ㅠ_ㅠ...
모처럼 세상의 쓰라림을 잊고, 행복하게 크리스마스를 보낼 수 있었던 두 사람이었습니다.
.
해피 엔딩 일까요...
저는 여기서 막을 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헤어지고 집에 오니까 자정 무렵. 역시나 곧바로 잠이 들어서,
26일 오늘은 새벽부터 일어나서 오후까지 연장근무를 하고, 또 집에서 크게 싸우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무려 2시간 동안 기억을 더듬어서 추억을 되살려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
그리고...
그리고...
이 선물을 끝으로, 더 이상 그녀에게 잘해주지도 다가가지도 않으려고 합니다.
그녀가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게 기도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그저 곁에서 좋은 친구로 남고자 합니다.
저 역시 내년부터 그녀가 아닌, 여러 아가씨들 만나보고 좀 더 많은 경험을 해보고자 합니다.
인연 이라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만약에 인연이 닿는다면, 언젠가 그녀와 결혼식을 올릴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만약 이라고 생각합니다.
.
내가 먼저 나서서, 관계를 망가뜨리는 만행을 결코 더 이상 저질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릴 때는, 그렇게 나부터 생각하는 못난 태도로 참 많이 상처를 주고, 또 되돌려 받았습니다.
지금에서야, 그런 어리숙한 태도가 얼마나 위험하고 무서운 것인지 철저하게 알고 있습니다.
' 배려 ' 는 그래서 어려운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믿고, 그녀에게 앞으로 축복을 빌고, 다가서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에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 라고 생각합니다.
.
너무도 감사하고 특별했던, 24일 25일 이틀간의 소중한 이야기.
여행이기도 하고, 또 다시 생각해보면 드라마 같기도 한... 그런 멋진 이틀이었습니다.
.
어릴 때 부터, 해보기도 전에 먼저 판단해 버리는 나쁜 습관을,
이제서야 훌훌 털어버리고, 직접 맞부딪히고 깨져버릴 자신이 이제는 있습니다.
앞으로의 또 한 해와, 또 앞으로의 인생은 얼마나 재밌고 즐거운 일이 많을까요?
아주 힘든 일도 많겠죠? 때로는 슬픈 일도 겪겠죠?
.
하지만 때로는 아주 행복한 하루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게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런 날 이었습니다. 평생에 다시 오지 못할...
.
꽃은 저마다 피는 시기가 다릅니다. 봄에 피는 예쁜 꽃들도 있는가 하면...
뒤늦게 가을에 피는 국화도 있고, 심지어 겨울에 피는 매화도 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처음부터 멋지게 피어난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뒤늦게 심지어 30대 40대가 되어서야 멋지게 피는 인생들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비야씨의 말씀에서 발췌한 이 꽃 이야기를 끝으로 글을 마칩니다.
10년 전, 걷지도 못했고, 학교도 때려친 15살의 고집불통 울보였던 제가.
근사한 정장을 입고, 이 두 다리로 부산 곳곳을 뛰어다니면서, 행복한 크리스마스를 만들 수 있었던 것.
인생이란 결국 기적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드는 깊은 밤입니다.
건강하세요. 장문의 글. 소설같은 실화를 읽어주신 소중한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자칭 에이스 프리터 허지수군
P.S. 글이 예정보다 길어져서, 쓰는 도중에 읽으신 분이 계셨고, 덕분에 조회수가 뻥튀기 되어버렸네요. 진심으로 양해를 구합니다 ^^
첫댓글 자제를 하고싶었지만...이노무 호기심이 ㅠㅠ 뒷내용 너무 궁금해요. 무슨 연재소설 읽는기분이랄까?^^;
사람이 살면서 사람과 마주쳐나가는게 인연이라고 하죠... 붉은 색 실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이 아닐지라도 관계에 있어서 정성이 담뿍 담겨 있을때... 인연의 실은 빨갛게 변해간다고 해요... 그런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시북님 화이팅!!!!!
시북님.. 혹시.. 작가..ㅡ,.ㅡ? 왠지 이야기를 스므스 하게 끌고 나가심이.. 문장력이 상당히 좋으시군요..
또!!!!!!!!! 장문이야!!!!!OTL또 Pass(무책임;;)
시북님은 정말... 로맨티스트시군요. 영화로 각색해도 될 만큼 멋진 이야기입니다...
정말 감동적인 드라마같은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내셨군요! 좋아하는 분께 좋은 선물 드릴 수 있었던 것 축하드립니다*^^*
역시 시북님은 로맨티스트 였군요....호오....저한테도 플2 선물 좀....(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