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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 이야기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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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나갔다가 돌아온 탕자 이야기 (잃은 양, 잃은 드라크마),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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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15:11~24
부 르 심:이사야40:29~31
교 독 문:27번, 시편 51편
찬 송:79(40), 254(186),278(336),276(334)
기 도:1)아버지여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2)회개의 영이 임하소서
3)겸손으로 섬기는 은헤가 되게 하옵소서
4)아버지의 집에 영원토록 거하게 하옵소서
5)반국가 세력 척결하게 하옵소서
누가복음 15장에는 예수께서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 번째는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두 번째는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입니다.
세 번째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둘째 아들의 이야기와 첫째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왔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원망하여 말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눅15:2)”
1.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나와 함께 즐기자
1> 잃은 양을 되찾는 비유
예수께서 말씀하신 잃은 양의 비유입니다.
어는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를 잃었습니다.
아흔 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양을 찾도록 찾아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잃었던 양 한 마리를 찾았습니다.
또 찾은즉 집으로 와서 말하였습니다.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하리라(누가복음15:5)”
예수께서 잃은 양을 찾은 비유를 말씀하시고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이 없는 의인 아흔 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누가복음15:7)“
2>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누가복음15:8~10)
어느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었습니다.
여자가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도록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또 찾은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였습니다.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았노라 하리라(눅15:8)”
예수님이 어떤 여인이 잃은 드라크마를 되찾는
비유로 말씀하심은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눅15:10)”
3>되찾은 둘째 아들 탕자의 비유
예수께서 되찾은 아들의 비유 이야기를 잃은 양의 비유와 되찾은
드라크마의 비유보다 더 길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둘째가 아버지의 재산 중에 자기의 분깃을 얻어 먼 나라로 갔습니다.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였습니다.
다 없이 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탕자가 비로서 궁핍하였습니다.
그 나라 백성 중 하나에게 붙여 사니 들로 나가 주인의 돼지를 치는 것이었습니다.
탕자가 돼지 먹는 죄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나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탕자가 스스로 돌이켜 말하였습니다.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눅15:17)”
탕자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일어났습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 멀리 걸어오는 탕자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 갔습니다.
탕자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습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모하겠나이다 하나
(눅15:21)”
아버지는 아들의 말하는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아들의 손에는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발에 신을 신기고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 하더라(눅15:24)”
예수께서 세 가지의 비유의 말씀하시는 하나의 공통점으로 말하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함께 즐기자”입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은 되찾은 기쁨으로 함께 즐기는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 가까이 나아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것입니다. 잃었던 것을 되찾는
거듭남의 즐거움을 가지는 것이라 믿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원망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과 서기간들에게 죄인하나가 회개하는 것을 도무지 볼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인 하나가 회개하는 거듭남이 되어
예수님과 함께 즐거원하는 잔치가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스스로 돌이키는 탕자의 일어남
오늘 읽은 어떤 사람의 둘째 아들 탕자 이야기에서 탕자의 허랑방탕에서
어떻게 스스로 돌이키어 일어나 돌이키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깨달아 알게 하십니다.
1>둘째 아들 탕자가 아버지 집을 떠나다
둘째 아들은 스스로 결정하여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 둘째가 아비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비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눠주었더니(눅15:13)”
아버지에게 재산 중에 자기에게 돌아올 분깃을
얻은 아버지 집에서 가만히 있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후 몇일이 못되어 둘째 아들 탕자가 재물을 다 모아가지고 먼 나라로 갔습니다.
먼 나라란 아버지 집을 떠나 허랑방탕하여 재산을 허비하는 나라입니다.
나라에는 아버지의 집인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이라 부르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는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요14:1~2)“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시는 목적은
아버지 집에 영원토록 거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14:3)”
정욕을 따라 사는 세상 나라가 있습니다.
세상 나라만 있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지 못하면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승천하시어
다시 재림하실 것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천년왕국의 왕노릇하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노롯 하리라(계20:6)”
사랑하는 여러분, 먼 나라인 세상을 사랑하는 자에게 오는 결과는
다 없이한 후 그 나라에 크게 훙년이 들어 비로서 궁핍한 것이었습니다.
위로부터 임하는 아버지의 집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여
거하는 영원한 내 아버지의 집 천국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리라
(요한1서2:15~17)“
2> 스스로 돌이켜 일어나는 탕자의 결단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다 허비하다가 비로서 궁핍하니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우를 채우고자 하나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궁핍하면 오히려 오히려 주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탕자는 스스로 자기를 돌아보는 회심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궁핍한 탕자는 아버지 집의 양식이 풍족함을 그리움으로 바라보며 탄식하였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15:17)”
사랑하는 여러분,비로서 자신의 처지를 바로 알고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의 집을 바라보는 탄식의 회개가 중요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여 바라보는 것은 허랑방탕입니다. 허비입니다.
그 나라 백성 중에 붙여 사는 학대를 받는 것입니다.
세상이 주는 것으로 배를 채울 수 없는 것은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도 나아질 게 없는 탄식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깨달아 하나님 아버지를 바라보는
탄식하여 부르짖음이 되어야 할 줄을 믿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이 고역이었습니다.
어제도 고역이고 오늘도 고역이고 내일도 고역이었습니다.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 탄식하여 부르짖어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게 하시는 도우심이라 믿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여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출2:23~24)“
사랑하는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여 구하여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찾는 쉴만한 물가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문을 두더리어 열리는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니 일어나 결단하는 의지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쥐엄 열매라도 배를 채우고자 하여도 주는 자가 없는 절망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집을 생각하여 바라볼 때
드디어 일어나 결단하는 의지를 가지는 절대희망이 되는 것임을 믿습니다.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눅15:18~19)”
탕자는 아버지께“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는
섬기는 종의 모습을 보일려고 합니다.
먼 나라로 갈 때에는 아버지 집을 멀리 떠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 집으로 돌이키어 돌아가는 것은 이제 아들이 아닌 품군으로
종의 모습이 되어 충성된 일꾼이 되고자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마가복음의 핵심은 예수님의 모습이 섬기는 종의 모습입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은 탕자의 겸손은 결단은
“나를 품군의 하나로 보소서”함으로 자기가 높아질려고 하지 않고
섬김으로 아버지 집에 거하고 싶어하는 탕자의 마음이었습니다.
섬기는 종의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 앉으사 열 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아무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사람의 끝이 되며 뭇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막9:35)“
3,둘째 아들 탕자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
1> 돌아오는 탕자에게 달려가는 아버지 놀라운 행동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15:20)”
탕자가 아버지께로 돌아간다는 것은 회개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랫동안 먼 나라로 간 탕자가 돌아올때까지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은 집 나간 탕자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입니다.
집을 나갔으니까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탕자는 아버지가 자기를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습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이키어 가는 것은 아들이라 일컬음이 아닌
품군의 하나로 보게 되기를 바라보고 일어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았는데 탕자에게 달려갔습니다.
둘째 탕자의 모습은 초라하였습니다.
흉년이 든 먼 나라는 배를 채우고자 하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 주는 자가 없었습니다.
둘째 탕자는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때에는 비쩍 말랐고 더럽고 냄새나는 옷을 입었습니다.
배는 고프고 병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냄새 나고 더러운 옷을 입은
둘째 탕자에게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의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낮아짐의 겸손이 되십시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시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니라(요한1서 4:15)”
2> 아버지 집 안에 거하는 것은 품군이 아닌 아버지의 아들이다
탕자가 아버지에게 회개하여 거듭난 겸손으로 말하였습니다.
“아들이 가로되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하나(눅16:20)”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아들은 옛사람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새 사람의 모습으로 자신이 어떤 죄를 지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다”는 고백입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은 아들에게 네 뜻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새 사람이 된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할 것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게 하실 것입니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 탕자에게 손에 가락지를 끼웠다는 것은
다시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서 지위가 회복되었다는 의미입니다.
발에 신을 신기었다는 것은 종의 신분이 아닌 자유로운 아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에 종은 신을 신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 잔치를 열었습니다.
아버지의 말은 “우리가 함께 즐기자‘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탕자를 내 아들이라 하면서 즐겁게 환영하였습니다.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저희가 즐거워 하더라(눅15:24)”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 함께 즐기는 천국의 기쁨이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쌍문동 산소망교회 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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