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因緣
<제11편 살붙이들>
③전쟁과 운명-15
“대학을 나오고, 당 여성동맹에서 활동하신 분이라고 들었어요.”
천복은 그녀가 알아차릴 수 있게 최영숙을 말하였다.
“맞아요. 우리 시누이가...”
그녀는 그의 말에 맞는다고 하였다.
“그분에 대해 아신 대로 얘기 좀 해주세요?”
천복의 요구에 그녀는 예사롭게 입을 여는 거였다.
“대학시절부터 정치서클에서 활동했더랬는데, 여성동맹에 들어가서도 누구보다도 앞장서 인민을 사랑한다면서 매우 열정적이었어요.”
그녀의 입에서 비록 최영숙의 짧은 평이었지만, 그 말이 마치 청산유수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랬었군요!”
천복은 경산이 말한 대로라는 걸 알아차리었다.
“내가 시집올 때, 시뉘는 대학재학중이었죠. 이념에 명철하였고, 조직부 활동에 철저했었어요.”
그녀는 최영숙의 외면뿐 아니라, 내면까지도 잘 알고 있는 거 같았다.
“그때 그 분은 과년이었다던데요?”
그는 알고자하는 데로 화제를 돌리고 있었다.
“그랬었죠. 시집으론 손아래시뉘지만, 나이는 나보다 세 살이나 위이었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동맹에서 활동하다보니깐, 혼인이 늦어졌던 거죠.”
“그때 당시 그 분이 이성관곈 없었나요?”
천복이 묻자, 그녀는 문득 어깨에서 힘을 빼는 듯이 보이었다. 아니,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엄마!”
그때 밖에서 성희가 쪽머리를 부르고 있었다.
“잠깐요. 그래, 나간다.”
그녀가 미닫이를 밀치고, 나가는 거였다.
천복은 그녀가 밖으로 나아가자, 이내 눈을 살포시 감고 있었다.
‘우리 아버진, 이 세상 어디에 계실까?’
언제인가, 그는 명훈을 데리고, 안뜸 뒷동산에 올라 석양으로 기우는 해를 바라보며, 이렇게 한탄한 적이 있었다.
‘난, 아부지 얼굴두 몰러. 성아! 어린 자식얼 뗘놓구, 워디루 도망친 거여?’
명훈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른다면서 원망조로 볼먹은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것도 그러할 것이 아버지가 세상을 뜬 줄을 안다면, 명훈이 그렇게 말하지는 아니하였을 거였다. 그러나 경산이나 천복은 아버지가 전란 중에 어디로 떠났는지 모른다니까, 그의 어린 마음에는 아버지가 가족을 떼어놓고, 어디로인가, 도망친 줄만 알고, 원망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천복은 판단하였다.
그러나 자식을 버리고 도망치는 어머니는 있을지라도, 아버지는 없다는 게 천복의 지론이었다. 자식에게 사랑은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라고, 그는 늘 생각하였기에 정읍댁을 구레나룻과 만나게 한 까닭이기도 하였다.
하기에 상황에 따라서는 자식을 버리고, 도망치는 어머니는 있을는지 모르나, 자식을 버리고 도망칠 아버지는 없다는 거였다.
‘아버지가 도망치다니?’
천복은 그때 명훈의 뺨이라도 갈기고 싶었던 거였다. 그러나 아버지에 푸념을 먼저 내놓은 실책도, 있다싶었던 거였다.
‘그럼, 왜 우린 아부지가 없어?’
‘아버지가 설마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생각해봐라! 명훈아! 아버지가 우릴 떼놓고, 어딜 도망갔겠어? 어머니는 혹시 자식을 떼놓고, 도망갈 수 있어. 박씨 만나면, 박씨네 여자, 김씨를 만나면, 김씨네 여자 아냐? 그러나 아버지는 우릴 두고, 절대로 도망칠 순 없어. 더구나 할머니도 계신데...흑!’
그때 천복은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명훈의 앞에서 혼자서 울음을 터뜨리었던 거였다.
쇳물처럼 달아오른 붉은 태양이 검게 그림자진 서녘 산등성이로 지고 있었으니, 하루해가 또 무의미하게 지고, 있었던 거였다.
밥상이 들어오고 있었다.
수영은 밥을 짓던 성희와 부엌에서 함께 있었는지, 밥상과 함께 방으로 들어오는 거였다.
쪽머리는 격하였던 감정을 억누르려는지, 술병과 술잔을 따로 들고 들어오는 거였다.
“아빠!”
수영은 붙임성이 있고, 안살귀가 있는 아이라서 방으로 들어오자, 천복에게 아빠라면서 달리어들더니, 그의 무릎위에 사뿐히 앉는 거였다.
천복은 수영을 껴안고서 볼을 맞대고, 비비는 거였다.
아이의 체내에 흐르는 섬세한 핏줄에도, 분명히 그의 피가 흐를 거였다.
첫댓글 아버지와 어머니의 차이가 그런 데도 있었나 봅니다
그럼요.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지요.
부는 종적이라 빗기지 않으나 모는 횡적이라 빗깁니다.
여자가 가정을 지킨다는 건 충직한 여자가 아니고는 할
수 없지요. 남자가 지켜야할 가정을 여자가 지키는 거죠.
하기에 남편의 상황이 불리하면 여자는 옆을 기웃거리죠.
자식이 없는 여자는 볼 것 없이 달아납니다. 해서 천복은
정읍댁을 달아나지 않게 하기 위해 구레나룻을 선택했죠.
우리가 상식적인 것보다 어려운 게 여자죠. 자식 없으면
믿을 수 없는 게 여자입니다. 언제 어디로 튈른지 개구리 같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