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누리’의 여운
탄천/이종학
“싸구려, 싸구려! 지금 막 공장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와이셔츠 본전치기로 팝아치웁니다. 어서들 와 보세요!”
“이 와이셔츠 에누리 없이 꼭 받을 값이 얼마요?”
“손님, 에누리라뇨? 정말 본전에 판나니까 그러시네.”
“좋소. 오백 원만 에누리합시다.”
“그렇게 많은 에누리는 안 됩니다요.”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대화 한 도막이다.
에누리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앞에서와 같이 상황에 따라 두 가지 뜻으로 쓰인다. 파는 이가 받을 값보다 더 얹어서 부른다는 뜻으로 쓰이는 경우와 사는 이가 값을 깎는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사실 우리 민족은 오랜 풍습의 하나로 에누리와 더불어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에누리 없는 장사가 어디 있어.”라든가 “에누리하는 맛으로 장터에 간다.”라는 말 속에는 바로 우리 민족의 도타운 정서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서로 간에 지나친 이득을 염두에 두었다거나 무작정 헐값으로 내려치기보다는 밀고 당기는 애틋한 실랑이 사이에서 오히려 싱그러운 인간관계를 맺고 있다. 처음부터 에누리해 줄 마음으로 물건값을 먹이고 한편으로 에누리해 주려니 하고 물건 값을 깎는다. 그러다 보니 물건을 거래하고 나면 피차간 밑져 판 것 같고 남보다 많이 주고 산 것 같은 섭섭함이 있기 마련이지만 서로 간에 양보했다는 훈훈함에 입가에 웃음이 담기고 만다. 바로 양심을 가지고 거래 성립의 기본원리를 피차간 지켰다고 자부한다. 지금과 같이 싼 게 비지떡 같은 불량품의 눈속임이나 바가지 씌우는 비상도의적인 폭리행위는 거의 보기 힘들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덤’이란 말을 지나칠 수가 없다. 장사꾼은 손님이 좀 억울하게 여기는 눈치가 보이면 덤이라는 선심을 보이고, 그럴 형편이 안 되면 덕담이라도 건넨다.. 손님은 덤을 얻은 재수를 기뻐하고 덕담을 들어 흐뭇해한다. 어디 그뿐인가. 손님은 너무 지나치게 에누리했다 싶으면 거스름돈을 잊어버린 양 돌아서 가기도 한다. 이렇게 애매한 듯한 거래는 아주 만족하게 이루어진다. 그래서 덤과 거스름돈은 바로 정표(情表)라지 않는가. 에누리를 통한 흥정의 설왕설래는 처음부터 각본에 있는 대사처럼 여겨지고 만다.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를 거래라고 보기 때문이다. ‘단골’이 생기는 소위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단골가게, 단골손님은 믿음과 정리 위에서 꽃피는 우리 민족의 오랜 풍속도가 아니겠는가.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내가 이민 왔을 때 캐나다 생활을 원만히 하려면 여러 가지 유의할 점이 많은데 그중의 하나가 상품의 정찰제를 꼭 지켜야 한다는 충고를 받은 바가 있다. 그래야 문화인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에누리’ 풍속에 젖어 살아온 우리들의 행태가 선진국에 와서도 불쑥 튀어나올까 봐 염려스러웠던 모양이다. 87년도 말이니까 한국에서도 정찰제와 원천징수제를 의무화할 때였다. 그러나 이런 제도들이 제대로 먹혀들어가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정찰제가 잘 지켜진다는 것은 거래 조건이 오픈된 상태를 말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시장경제가 원만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오래지 않아 정찰제에 의심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편의점과 대형 상점의 가격이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다. 걸핏하면 세일기간을 설정해서 가격의 변동을 유도하고 식당에서도 영업시간에 따라 가격을 제멋대로 바꾸곤 한다.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은 가격 대부분이 예를 들어 $15.99처럼 꼬리 가격을 붙이는 관행이다. 완벽하게 원가 계산을 해서 끝의 몇 센트까지도 제품가격을 책정했음인지 잘 모르긴 하지만 나의 안목으로는 석연치가 않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다. 예를 들어 설렁탕 한 그릇에 5,000원이지 4,567원이라는 차림표는 없다. 하긴 “닭 한 마리에 만 원이요!” 하기보다는 “닭 두 마리에 이만 원이요!” 하는 구매심리를 자극하는 호가는 있어도 “닭 한 마리에 구천구백 구십 구 전이요!” 한다면 정신이상자 취급 밭기 십상이다.
영어에도 값을 더 부른다는 에누리의 뜻으로 Lowes price, Overcharge라는 말이 있다. 또한, 물건 값을 깎는 에누리의 뜻으로 Second price, Reduction, Discound 같은 여러 말이 있다. Premium(덤)이라는 말까지 있다. 지금은 사장된 고어가 되어 버렸는지 모르지만, 이 나라에서도 에누리를 통한 정다운 인간적인 상거래가 이루어졌음을 부인할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관계를 거래라고 본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매우 어려운 시장(市場)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뜻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은 소유의 욕심으로 익숙한 아귀다툼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이 생존경쟁의 원칙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한 인간본능적 욕구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파멸이 오기 마련이다.
에누리가 폭리나 위선, 위장으로 포장되거나, 또한 에누리가 가격 파괴나 인격 폄훼로까지 타락하였을 때 상품 거래와 인간 상호관계는 완전히 종말을 고하고 만다.
사회는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에누리와 에누리로 맞물려 돌아가야 한다. 서로 나오고 들어간 사이가 알맞게 맞물려 돌아감으로써 성능을 제대로 발휘한다. 남이 모자라고 넘치는 데가 있으면 나에게도 부족하고 만족한 데가 있다. 남의 모자란 부분을 나의 만족한 부분으로 채우고 나의 부족한 부분은 남의 넘치는 부분으로 보진해서 비로소 능동적인 회전을 이룬다.
파는 자의 에누리와 사는 자의 에누리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거니 받거니 살아 움직여야 한다. (*)
첫댓글 " 사람들의 관계를 거래라고 본다. 그리고 인간관계는 매우 어려운 시장(市場)이라고 말하는 사람의 뜻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람은 소유의 욕심으로 익숙한 아귀다툼 속에서 살고 있다. 그것이 생존경쟁의 원칙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허락한 인간본능적 욕구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되면 필연적으로 파멸이 오기 마련이다."
깊은 생각을 하게하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선생님 감사 합니다.
선생님 글 잘 읽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 하세요.
파는 자의 에누리와 사는 자의 에누리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영원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주거니 받거니 살아 움직여야 한다. (*) 정감이 가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