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대통령 사법연수원시절 사진입니다. 양복에 뿔테안경낀 명문대출신들 사이에서 싸구려잠바에 동대문표운동화 신고 맨 앞에서 당당히 앉아 계신분입니다.
하지만 어느분께서 이야기 합니다 "대한민국에서 양복입은 사람들 틈에 잠바입은 사람이 비집고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하 아래는 인터넷에서 본글들입니다.
퇴임 후. 집한채 지을 돈이 없어서 자신의 후원 기업인에게 돈을 빌린 것이 온세상 메스컴에 부패의 화신으로 둔갑하여 기사화 되었습니다.
이래서 언론이 무서운겁니다. 검증할 수단이 별로 없는 국민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어버립니다. 재임중 많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때 얼마나 힘이 빠졌을까요. 그 때 언론도, 국민도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국민은 언론으로부터 왜곡된 정보만을 들었던 허수아비에 불과했습니다. 저 또한 그 바보같았던 국민 중에 한 사람입니다.
대통령에게 잘못이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질책을 받아야 하고, 잘한 일이 있다면 칭찬을 받아야 마땅 합니다. 살아 생전,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고 훗날 역사가 나를 평가해 줄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가셨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느낄 점은 우매한 국민이 되어, 같은 과오를 다시는 범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노무현이 한 게 뭔데? 노무현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어" 위와 같은 조.중.동 등 언론 플레이로 브레인 워시(brain wash) 당한 분들을 위해 준비 했습니다



- 경제 성장률 5%를 달성한 최초의 대통령 ,
- 신용불량자 600만명 시대에 개인회생제도를 통해 임기 8개월만에 100만명을 회생시킨 최초의 대통령 ,
- 공약 이행률 45%를 달성한 최초의 대통령 ,
- 국가신용도 fitch사의 전망도를 A+를 달성한 최초의 대통령 ,
- 수출 51개월 연속흑자를 기록하며 500억불 수준에서 3200억불을 달성한 최초의 대통령
- 소비자 물가 상승률 평균 3.0%를 달성한 최초의 대통령 ,
- 부도업체수를 20000개 에서 2000개 수준으로 급락 시킨 최초의 대통령 ,
- 국가정보화 및 인터넷 보급 수준을 세계 1위 수준으로 발전 시킨 최초의 대통령 ,
- 연구 개발비 예산이 6조원 수준이던 것을 24조원수준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문화기반시설 800개소에 불과하던 것을 1600개소로 확충시킨 최초의 대통령 ,
- 종합주가지수 800대에서 1400대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국내전체제조업체 현금보유비중을 6%대 에서 10%로 끌어올린 최초의 대통령 ,
- 수출 600억대 수준을 3200억불 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암환자 건강보험 보장률을 40%대에서 70%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외환위기로 어러운 국민들을 위해 외환보유액 500억불 수준에서 3200억불을 달성한 최초의 대통령 ,
- 주택 보급률을 60%대 에서 105%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육아지원예산을 1000억원 에서 10000억원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남북 인적왕래수를 16000명에서 10만명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복지지출추이를 17%에서 27% 이상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국제특허출원 건수를 2900건에서 4600건으로 격상시킨 최초의 대통령 ,
- 대한강국 2020 계획을 새워 전투력은 1.8향상시키고 , 인원은 50만명 수준으로 줄여 모 병제를 확립 하려던 최초의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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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엘리자베스 여왕이 직접 권양숙여사에게 애도의 뜻을 담은 메시지를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그래도 왜 엘리자베스여왕이 아직까지 애도의 뜻을 보내지않고 있나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2004년쯤에 엘리자베스 여왕이 한국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노무현대통령님을 초대했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마도 정말 드물것입니다. 언론에서 한줄기사꺼리정도로 일부러 아주 짧막하게 보도했기 때문이죠.
영국 왕실에서는 1년에 한번꼴로 귀빈 초대를 하는데 관습적, 의무적으로 초대를 하는게 아니라 정말 마땅이 초대를 받아야 할 사람만 초대를 받는답니다. 참고로 부시대통령은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단 한번도 초대를 받은적이 없죠.
한국언론에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이 왜 노무현대통령님을 초대했는지 그 정확한 이유는 말하지 않았고, 단지 그냥 방문 한다는 내용이 전부였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노무현대통령님을 초대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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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 英국빈방문 57시간50분 - 지상최고의 예우 - 기사입력 2004-12-03 10:50
(기사 하나 있더군요. 이렇게 기쁘고 큰 소식을 언론에선 몇 마디 말 제대로 없이 넘어가고...참.대단합니다.)
버킹엄궁서 연미복 차림으로 여왕과 `작별인사'
(런던=연합뉴스) 조복래 고형규기자 =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3일 저녁(한국 시간 3일새벽) 런던시내 길드홀에서 마이클 새버리 런던시장 주최로 양국관계자 7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만찬 참석을 끝으로 사흘간의 영국 국빈방문을 마무리했다.
노 대통령이 영국에 머문 57시간 50분은 한마디로 영국 왕실의 오랜 전통과 문 화, 화려함이 조화를 이룬 `지상최고의 의전'이었다.
특히 이날 만찬은 일부 참석자들이 흰색 가발, 지휘봉 등 소위 `중세 룩(look)'을 선보임으로써 공식 환영식과 국빈만찬에 이어 다시 한번 영국 전통의 의전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만찬 참석자는 영국측만 600여명에 달했고, 영국의 내로라하는 고관대작들도 거의 얼굴을 선보였다.
흰색 가발을 한 런던시 소속 한 법관은 환영사에서 "각하와 수행원들을 유서깊은 길드홀에서 모셔서 영광"이라며 "양국간 실질협력 가속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권여사와 에딘버러공
하얀색 나비 넥타이에 연미복을 입은 노 대통령은 답사를 통해 "런던이 발전시켜온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는 전세계의 보편적 질서로 자리잡았고, 이는 인류의 삶을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화답했다.
이어 새버리 런던시장은 만찬사에서 "벽화는 한국의 단청(丹靑)에 미치지 못하는 줄 알지만 저희는 이 홀과 여기에 담긴 역사를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며 길드홀의 `역사'를 내세우고 양국간 협력 증진에 대한 기대감을 비쳤다.
그는 특히 "제 세대의 영국인들에게는 한국하면 아직도 한국전쟁의 흑백사진이떠오른다. 춥디 추운 날씨, 극심한 생활고 등이죠"라며 "그런데 겨우 50년이 지난 오늘 각하는 아시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 대열에 들어선 나라의 대통령"이라고 한국의 고속성장과 사회적 발전상을 높이 평가했다.
만찬을 주관한 새버리 런던시장은 `로드 메이어'(Lord Mayor)로 불리며, 런던시 내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에 이어 의전 서열 2위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만찬장인 길드홀은 런던시 정부의 본부로서 연회장이 있는 건 물은 1411년부터 1430년 사이에 건축됐으며 중세 상공업 발달로 형성된 길드에 연원 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영 정상 공동 기자회견
이 관계자는 "런던시측은 국빈을 위한 이같은 만찬을 연간 2차례로 제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앞서 노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총리는 정상회담후 발표한 공동성명을 통해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인 이번 국빈방문은 120여년에 걸쳐 공고하게 성숙한 양국관계의 표상"이라고 말했다.
공동성명은 또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케임브리지 대학간 연구협력을 위한 양해각서 등 양국간 과학기술 협력 강화에 대해 평가했다. 블레어 총리는 특히 정상회담후 노 대통령과 함께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경제 협력을 한단계 격상시켰다"며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부각시켰다.
한편 노 대통령은 길드홀 만찬 참석직전 버킹엄궁내 숙소 거실인 `18세기룸'에 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내외와 `작별인사'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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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자주 쓰는 표현 중에 '노무현스럽다'는 말이 있다. '노무현스러움'은 바로 결벽증의 다른 말이다. 노 전 대통령은 이 결벽증 때문에 종종 일반인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극단적 선택'을 해 왔다. 스스로 설정한 원칙과 가치에 어긋나는 일이 일어났을 땐 참을 수 없어할 뿐 아니라, 자기가 가진 것에 대해서도 별로 연연해하거나 집착하지 않는 스타일이 '노무현 방식'이었다.
2003년 10월 10일. 당시 노 대통령이 예고 없이 청와대 춘추관 프레스룸을 찾았다. "오늘 예정에 없이 이렇게 특별히 자리를 마련한 것은 최도술씨 문제에 대한 제 입장을 국민에게 설명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최도술씨는 20년 가까이 저를 보좌해 왔고… 그의 행위에 대해서 제가 (몰라도)모른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수사가 끝나면 그 결과가 무엇이든 간에 국민의 불신에 대해서 재신임을 묻겠습니다…."
대한민국은 그때도 큰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다는 게 중론이었다. 재신임이란 말도 생소했지만 "누가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측근이 돈을 받은 문제로 일국의 대통령이 자기 직을 거는 게 타당하냐"는 비판이 많았다.
아예 코너에 몰린 노 전 대통령이 정국을 돌파하기 위해 '노림수'를 쓴 것이란 해석까지 나올 정도였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과 오래 생활한 측근들의 주장과 해석은 한결같았다. 당시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측근이 받은 불법적인 돈조차도 괴로워하는 게 노무현 대통령의 결벽증이고, 그게 바로 노무현"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대통령직에 대해 재신임을 묻기 전에도 민주당 대선 후보직이나 국회의원직을 내던진 적이 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전 의원은 과거 이런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대선(2002년) 당시 여름을 지나면서 지지율이 추락하자 나를 부르더니 '정몽준 의원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었다. 내가 '밖에서 생각하는 것보다는 괜찮은 사람인 것 같다'고 하자 '후보를 그에게 사퇴할 테니 정 의원 쪽에 다리를 놔 달라'고 했다. 지지율 하락으로 당원들에게 미안한 나머지 후보직을 내놓으려 한 것이다."
정 의원과 노 전 대통령이 단일화하기 오래전의 일화다. 당시 정 의원 쪽이 거절해 후보 사퇴가 이뤄지진 않았으나 노 전 대통령의 스타일을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강한 결벽증에다 자신이 가진 모든 걸 던지는 정치를 해온 노 전 대통령이기에 최근의 국면에선 더욱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측근들은 전한다.
얼마 전까지 봉하마을에서 노 전 대통령을 자주 면담했던 한 인사의 설명이다. "경위야 어찌 됐건 지난 5개월간 일어난 일들은 60 평생 지향해 왔던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소신이나 걸어온 길과는 배치된 것이었다. 구속이 되건 불구속이 되건 매번 재판에 출두하면서 자신뿐 아니라 가족·지지자들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걸 노 전 대통령이 견뎌나갈 수 있었겠느냐."
그는 "대통령에게 살아서 지킬 명예가 더 뭐가 남아 있었겠느냐"며 "잘했다 못했다 할 상황은 아니지만, 가장 '노무현스러움'을 보여준 가슴 아픈 장면"이라고 침통해했다.
한 전직 청와대 비서관 출신도 "'그런 거 가지고 자살하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노 전 대통령을 잘 모르는 얘기"라며 "노 대통령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이 재판 진행 과정에서 고통받는 걸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으론 '투사'의 이미지가 강했지만 가까이서 보필한 측근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해 "성품이 여리고 약한 편"이란 말을 자주 해 왔다.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대선 광고의 컨셉트가 '노무현의 눈물'이었듯, 실제로 그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자주 목격되곤 했다.
노사모 지지자들을 만났을 때나 대선 승리 후 386 측근들이 "우리들의 영원한 도구가 돼 달라"는 편지를 읽었을 때 외부인들에게 눈물을 보였다.
유서에서도 노 전 대통령이 안고 있던 감정의 일단이 표출됐지만,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들어 부쩍 주변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토로하는 일이 잦아졌다.
경희대병원 김종우(정신과)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이 단순히 수사에 대한 압박감 때문에 자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며 "권력의 정점에 섰던 성공한 정치인으로서의 책임감과 자기존중감의 상실이 그를 자살로 몰고 간 원인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공개된 그의 글에서도 이런 분위기가 엿보인다.
"그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변변히 한 일도 없는데 다시 검찰에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강금원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면목 없는 사람 노무현"(지난 4월 17일, 강금원 회장과의 인연에 대한 글 중)
4월 22일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인 '사람 사는 세상'에 올린 글에는 그가 느끼고 있는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좌절감이 어우러져 있다.
"형님 이야기가 나올 때는 '설마' 했습니다. 500만 불, 100만 불 얘기가 나왔을 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전직 대통령의 명예도 도덕적 신뢰도 바닥이 나버렸습니다. '아내가 한 일이다, 나는 몰랐다' 이 말이 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 뿐이라는 사실을 전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국민의 실망을 조금이라도 줄여드리고 싶었습니다. '사실'이라도 지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검찰과 언론의 추측과 단정에 반박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상문 비서관이 '공금 횡령'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친구(정 전 비서관)가 저를 위해 한 일입니다. 제가 무슨 변명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상 더 노무현은 여러분이 추구하는 가치의 상징이 될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미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수렁에 함께 빠져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은 저를 버리셔야 합니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사람 사는 세상'을 폐쇄했다. 한 달여가 지난 뒤엔 스스로 '사람 사는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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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젠 그만 울려고 했는데 또 윗 사진 대통령님 사진보면서 눈물이 쏟아져 글이 안 보입니다.가슴 찢어집니다
인간에 대한 학대가운데서 가장 나쁜것은 마음을 헐뜯는 것이다... 짐작이 갑니다.
전 요즘 도대체 신이 안납니다. 꼭 등불을 잃어버린것만 같아서요...
정치판이라 하지말고 정치의 장이라 부릅시다. 그 정치의 장에서 눈과 귀를 떼지 맙시다. 정치의 장에서 멀어지는 만큼 정치의 장을 고수하고 있는 자들의 세상으로 만들어주는 꼴이 됩니다. 그래서 착한 시민보다는 현명한 민중이 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국민이 되어야 합니다. 용감하고 배짱 좋은 인간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래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본가들과 싸울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아~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