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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이사오 사사키의 전국투어 콘서트 <WITH YOU>가 막을 올렸다. 은발의 노부부부터 어린 아이까지 객석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이사오 사사키가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뉴에이지 피아니스트라는 것을 실감케 했다. 한국 팬들에게 받은 사랑을 음악으로 보답한다는 콘서트의 취지에 맞게 ‘반달’ ‘과수원길’ 등 익숙한 동요들이 레퍼토리에 포함되어 있었다. 이사오 사사키가 서툰 한국말로 곡명을 소개할 때마다 잔물결 같은 웃음이 일었다.
구혜선이 작곡한 곡을 이사오 사사키가 연주하다
이사오 사사키의 연주가 끝나고, 꾸미지 않은 옷차림에 갈색 머리를 하나로 묶은 구혜선이 무대로 걸어 나왔다. 관객들은 구혜선이 이사오 사사키와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노래를 청해 듣는, 이를테면 토크쇼의 한 토막 같은 것을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구혜선이 첼리스트와 걸어 나오자, 이사오 사사키는 그저 사람 좋은 웃음을 띠고는 서둘러 무대 뒤로 들어가 버렸다.
구혜선이 “저만 혼자 두고 들어가 버리시네요”라고 수줍게 웃더니, 이내 또박또박 말하기 시작했다. 방금 들은 곡이 자신이 작곡한 곡이라는 것, 이번에 자신과 첼리스트가 함께 연주할 곡 역시 이사오 사사키와 함께 작곡한 자작곡이라는 것. 그리고 연주가 시작됐다. 친구들과 부모 앞에서 처음으로 피아노 연주회를 여는 소녀처럼, 구혜선의 등과 손가락은 긴장한 듯도 보였지만 깨끗하고 소박한 연주였다.
함께 연주하는 ‘옹달샘’과 ‘젓가락 행진곡’
연주가 끝나고, 다시 이사오 사사키가 걸어 나왔다. “이사오 사사키 씨와 함께 이런 큰 무대에 서게 되어 영광이고 또 죄송스럽다”던 구혜선은 그러나 이사오 사사키와 함께 있을 때 편안해 보였다.
무대에 의자가 하나 더 놓이고, 구혜선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에는 저희 둘이서 ‘젓가락 연주곡’을 연주하겠습니다.” 이사오 사사키가 구혜선에게 뭐라고 속삭이자 구혜선은 “이미 말해버렸어요”라며 쑥스럽게 웃었다. 아마 비밀이었던 모양이다. 이윽고 둘이 나란히 앉자, 연주하는 동안 마이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몰라 쩔쩔매던 구혜선이 이사오 사사키와 함께 나란히 앉아 마이크를 바닥에 내려두자 이사오 사사키가 다시 일어나 마이크를 피아노 위에 올려 주었다.
그리고 ‘옹달샘’과 ‘젓가락 행진곡’을 함께 연주하는 동안에도 둘은 시종일관 사이 좋은 스승과 제자 같았다.
구혜선과 이사오 사사키의 인연
구혜선과 이사오 사사키의 만남은 구혜선의 적극적인 러브콜로 이루어졌다. 최근 단편 영화 연출, 소설 출간, 전시회 개최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선보인 구혜선은 시간이 될 때마다 습작을 해오며 뉴에이지 음반 제작을 기획해왔고 어느 정도 작업이 진행되자 평소 동경해오던 이사오 사사키에게 자신의 자작곡 데모를 보냈다. 데모를 들은 이사오 사사키는 그 열정과 재능을 높이 평가해 구혜선의 은사가 되어주기로 했다. 그리하여 구혜선의 첫 번째 앨범에 참여하고, 구혜선의 음반제작발표회에도 특별게스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다른 감성을 지니며 자신만의 활동 영역을 만들어 왔지만, 피아노에 대한 감성과 열정이 공통분모가 되어 하나로 합쳐지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인과 공감하는 이사오 사사키의 음악
이외에도 구혜선의 앨범에 참여했던 거미의 노래, 첼로, 바이올린, 해금 등의 협주로 더욱 풍성했던 이번 공연은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레퍼토리 역시 한국의 유명한 동요들과 ‘Sky Walker’ 등의 대표곡, 그리고 한국 팬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만남’과 故 이수현 군에게 바치는 ‘Eyes For You’ 등 한국과 한국 팬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했다. 신선함이나 열정적인 연주를 기대하기보다는 저녁 시간을 편안하고 기분 좋게 보내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할 만하다. 이번 전국투어는 서울 공연을 시작으로 고양, 성남, 대구, 부산 등에서 진행된다. 김지현 기자 ㅣ 사진 TVi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