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공양을 올리는 마음가짐
범부가 세간의 삶을 살아가는데는 두 가지 복이 매우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과 인연 맺는 인복, 물질이 풍부해지는 재복입니다. 전자는 마음의 생존에 도움을 주고, 후자는 육신의 생존에 도움을 주니 인복과 재복을 적절히 지니고 있다면 일단 삶 속에서 생존에 대한 걱정은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나아가 인복과 재복이 충분하다면 선남자선여인의 조건을 갖추고 삶의 여유를 즐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경전 속에는 지극히 복이 없는 이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법구경 이야기> 속 마하둑까따의 경우입니다. 일명 극빈자라고 불리는 이 사람에게 한 장자가 부처님께 공양 올리기를 권선했습니다. 그는 부처님께 이런 법문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재가신도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만 공양 올리는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공양 올리라고 권하는 것이 무슨 복이 되겠는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만 공양 올리고 다른 사람에게 권하지 않으면 미래생에 재복은 있을지언정 인복이 없다."
평상시 인간관계 때문에 큰 고통을 겪던 그는 드디어 인복의 비밀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미 백만장자 시크릿인 재복의 비밀은 알고 누리고 있었기에 그의 기쁨은 하늘과 땅을 뒤덮을 것 같았습니다. 지혜로운 이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배웠으면 곧 바로 실천하는 것이죠. 그래서 극빈자에게 권선을 시도한 것인데, 이런 답변을 들었습니다.
"아이고 어르신, 스님들께 공양 올리고 공덕을 짓는 것은 부자들이나 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전 오늘 먹을 음식도 없는 신세인데 어떻게 공양을 올립니까?"
이 말을 들은 장자는 극빈자에게 매우 중요한 재복의 비밀을 말해줍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당신이 지금 이렇게 가난한 이유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공양을 올린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나와 같은 부자들은 공양 올린 공덕의 씨앗으로 이런 부를 누리는 것이네. 앞으로 계속 그렇게 살 것인가? 아니면 삶을 바꿀 것인가?"
극빈자는 용기를 냈습니다. 그 순간 삶이 한 번 변화했습니다. 정신은 더 이상 극빈자가 아니게 된 것입니다. 더불어 하루를 열심히 일하여 받은 품삯으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뒤 하루 아침에 그 나라의 재정관이 되었다고 하니, 의식의 변화를 현실이 따라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인도 전역에 회자되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현우경>에는 '빈자일등'으로 알려진 또 다른 극빈자의 일화가 등장합니다. 난타라고 하는 극빈자 신세의 여인이 삶을 바꾸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그녀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기쁜 얼굴로 승단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에게 등과 꽃, 음식과 옷감을 준비하기 위해 바쁘게 뛰어다니는 사람들의 그 마음이 너무나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고심했습니다.
'내가 하루 종일 동냥을 하면 한 끼 식사를 먹을 수 있는데, 이를 포기하고 나도 등 공양을 올리면 어떨까?'
그녀는 동냥을 하는 내내 고민을 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쁨을 자신도 단 한 번이라도 체험하고 싶었기에 결국 용기내서 결단을 내립니다. 오늘 하루 굶더라도 등을 태울 수 있는 기름을 사자고 결정을 한 것입니다. 극심한 허기가 찾아왔지만 그녀는 기름을 사는 순간 마음이 충만해졌습니다. 육체를 섬기는 삶을 벗어나 처음으로 공양 공덕을 지을 수 있다는 환희심이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그녀는 부처님이 걸어오시기로 예정된 길로 향했습니다. 그녀는 순번이 늦었기에 길 끝 가장자리에 등 공양을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너무나도 기뻤습니다. 그녀의 등에는 아주 잠깐 타오를 수 있는 작은 양의 기름과 큰 환희심이 담겼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작지만 매우 아름다운 불꽃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녀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온 마을을 밝게 빛내던 모든 등불이 꺼졌는데, 난타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작디 작은 이 등불은 시간이 지날수록 밝게 빛날 뿐,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이 일을 이상하게 여기자 아난 존자가 부처님께 질문을 했습니다.
"부처님 저 가난한 여인의 작은 등불은 왜 꺼지질 않는 것입니까? 이미 기름이 다 소진되었는데 왜 점점 더 밝게 타오르는 것입니까?"
이유가 무엇일까요? 송덕사 법당에는 유독 초꽃이 잘 피어납니다. 사실 송덕사에서만이 아니라 일산 행복한 절에서도, 무량사에서도, 자등명선원에서도 유독 초꽃이 잘 피어났습니다. 그렇다고 언제나 항상 초꽃이 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궁금함을 품고 오랫 동안 관찰한 결과 몇 가지 유의미한 조건을 찾아냈습니다.
첫째, 공양을 올린 이의 마음이 청정한 경우입니다. 아무런 욕심 없이 무심으로 부처님 전을 장엄하기 위해 공양을 올리신 경우 초꽃이 잘 피더군요. 둘째, 발원이 간절한 경우입니다. 특히 이 발원이 성취되는 경우에 초꽃이 잘 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원성취가 이루어질지의 여부를 판단하는 지표 중 하나로 아름답게 피어난 초꽃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가난한 여인의 불꽃이 꺼지지 않았던 이유도 두 가지입니다. 첫째, 그 마음이 청정했습니다. 그녀는 바라는바가 없었습니다. 그저 생애 단 한 번이라도 부처님 걸어가시는 길을 밝혀드리고 싶었습니다. 한 티끌의 탐욕도 없는 이 마음 뿐이었고, 이에 더해 기쁨과 환희심만이 더해졌습니다.
둘째, 그 작은 양의 기름은 그녀에게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루치 생존의 음식을 포기하고 자신의 전부를 공양 올린 것입니다. 이 공양의 가치는 부자들이 공양 올린 화려한 등불과 비교조차 될 수 없습니다. 부자들이 아무리 아름답게 장엄된 공양을 올리더라도 그들이 가진 것의 만분의 일에 해당될까요? 십만분의 일에 해당될까요? 여기에 소유물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는 포기의 미덕이 얼마나 포함되었을까요? 그녀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공양 올렸습니다. 그것도 환희심을 품은 채 바라는 것 없이.
어떤가요? 가난한 여인의 등불이 꺼지지 않았던 기현상이 이해되시나요? 오히려 점점 더 강하게 타올랐던 이유는 아름다운 초꽃이 피는 것과 같은 이유였을 것입니다. 가난한 여인의 위대한 등불 공양이 그녀의 삶을 아름답게 바꿀 것이라는 지표가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 아름다운 등 공양 공덕으로 수기를 받습니다. 30겁 뒤에 성불할 것임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더불어 그 남은 삶 동안에는 항상 수승한 재복을 누리며 선남자선여인으로 수행을 이어갔을 것입니다. 더불어 이 모든 재물을 지푸라기 버리듯 보시하고 전문 수행자가 되어 수행에 전념했을 것입니다. 결국 중생을 구하는 성불의 길을 걷는 보살이 되었을 것입니다.
한국 불교에서 1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 연등 공양을 올리는 전통은 발보리심과 연관성이 깊습니다. 모두가 보살로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보리심의 시작은 다름 아니라 스스로의 인색한 마음을 뛰어넘는 보시바라밀에서 시작됩니다. 마찬가지로 성불의 길의 완성 역시 중생을 구하는 마음의 완성인 보시바라밀의 완성과 함께 합니다. 보리심 수행의 시작과 끝은 바로 이 보시의 마음입니다.
연등 공양을 올릴 때는 이 난타 여인의 마음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원하는 것이 없다면 무심함 속에 환희심을 품고 공양을 올립니다. 원하는 것이 있다면 간절한 마음으로 기쁘게 공양을 올립니다. 어떤 경우에서든 부처님 계시는 법당에 꽃비를 뿌리는 장엄의 마음으로 기꺼이 발보리심 하는 마음으로 공양을 올립니다. 매일 발보리심을 해야 하지만, 만약 삶의 고난에 빠져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적어도 1년에 한 번 부처님 오신 날에는 내 마음에도 이렇듯 부처님이 오실 수 있도록 보리심을 발해야 합니다. 이 인연이 축적된다면 우리 모두 경전 속 주인공이 되어 부처님께 수기를 받는 순간이 다가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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