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쇼의 책을 지기 몇 분께 선물한 적이 있다. 지난 금요일, 그 분들과 함께 북한산 둘레길을 걸었다. 이런 저런 얘기 중에 수필가이신 한 분이 내가 선물한 오쇼의 책에서 필을 받으셔서 작품 한 편을 쓰셨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날, 메일로 작품을 보내오셨다.
웃음, 마침내 나를 얻다
최 석 희
강원도 작은 어촌에 사는 친구가 내게 꼭 내려오라고 전화가 왔다. 중학교 때의 50년 지기지우(知己之友)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마을에서 만선제(滿船祭)가 열렸다. 출항을 앞둔 선원들의 무사귀환과 마을의 운수대통을 위한 것이다. 원색의 삼각 깃발들이 앞마당 위에서 펄럭거린다. 큰상에는 입 벌린 돼지머리와 각종 먹거리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다.
바다가 가까이 보였다. 그날 나는 만선제를 아주 관심있게 구경했다. 그 이유는 나도 바닷가에서 자란 어부의 손녀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할아버지는 날 매우 귀여워 해주셨다. 나에게 있어 바다는 할아버지이고, 할아버지는 바다이셨다. 날 이만큼 키워 준 것은 바다이기 때문이다.
만선제의 의식(儀式)이 낯설기도 했지만, 마을사람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모습에서 간절함이 역력했다. 마을의 어르신들이 큰절을 올리고, 이어서 선주(船主)가 금일봉을 돼지 입속에 끼워 넣으며 또 한번 큰 절을 올렸다. 선주는 친구의 남편이 아닌가. 오늘 처음 안 사실이다.
풍악이 울리자, 옛날 고을의 원님들이 쓰던 챙 넓은 검은 모자를 쓴 무당이 주문을 외우며 천천히 춤을 추기 시작했다. 위풍당당한 자세였다. 얼마 후 장구, 퉁소와 북, 징, 꽹과리 등의 꽹그랑 꽹꽹깽 요란한 소리가 나더니 신이 방금 내린 듯 무당이 춤에 몰입되어, 춤추는 무녀는 녹아서 사라진 듯 오직 춤만 남았다.
잠시 후 선주댁에서 푸짐한 상을 차려 마을 사람들을 대접했다. 바닷바람에 그을린 선원들은 감로(甘露)의 맛에 취한 듯, 그동안 쌓인 회포와 만담, 노래와 춤이 어우러져 좌중은 완전히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 풍어와 안전을 위하여 건배를 들며 크게 웃었다.
춤, 노래, 웃음 중에서 웃음이 가장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왜냐하면 웃음은 따로 배울 필요도 없고, 소질이나 훈련도 필요없는 자연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웃음을 통해 발산되는 긍정의 힘이 선원들을 만선의 꿈을 안고 더 넓은 바다로 나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만선제는 축제다. 웃음 없는 축제는 축제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만선제에서 바다의 신에게 다가가는 길은 웃음이 그 다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간절한 소원을 풀어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웃음이 그 다리가 되어야 한다는 발상은 얼마나 지혜로운가.
“활짝 웃어라. 그대가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마음껏 웃으면, 사람들은 그대가 발작을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발작이 아니라 발전이다!”라고 말한 어느 철학자의 말이 떠올랐다.
그날 밤 친구와 나는 밤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웠다. 한여름 햇볕에 반짝거리는 장독대 위의 항아리들, 그 속에서 익어가는 간장, 된장, 고추장 냄새 앞에서 난 가끔 허기를 느끼곤 했다. 그때 맛있는 된장찌개를 끓여 주셨던 친구 어머님의 자상한 모습, 늘 반갑게 맞아 주셨던 따뜻한 손, 아버지를 여의고 힘들 때 날 웃기려고 억지춤과 우스갯소리로 마음을 달래주던 친구의 고마움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울 엄니, 널 무척 좋아하셔. 네 이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신다. 만선제도 너한테 전화하라고 해서 연락한 거야. 우리 건강하게 오래 살자. 고생 끝, 행복시작이야. 넌 지금 활짝 웃을 때야.”
그 활달한 목소리는 옛날 중학교 시절의 그녀와 똑같다.
“그런데 넌 잘 웃지 않아. 항상 나만 웃으니 재미가 없어. 이제 같이 웃자.”
“나도 이제는 너처럼 잘 웃을 거야.”
아침 일찍, 친구는 건어물, 건나물, 오징어젓, 명란젓을 바리바리 싸서 비닐봉투에 넣고, 보자기에 싸고, 또 작은 상자에 빈틈없이 넣은 뒤 단단히 묶어 삼중포장을 해서 버스 정거장까지 남편과 함께 나왔다. 후한 대접과 기억에 남는 만선제까지 보게 되어 뭐라 말할 수 없는 감동과 고마움을 안고 돌아오게 되었다.
“또 올 거지. 연락 자주해. 어머니가 널 기다리셔.”
친구가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한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친구에게 다가가서 그녀를 안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여기까지 와서 그냥 이렇게 가다니. 어머님을 찾아뵈어야 했었는데…. 그냥 가다니.”
사람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상경해서 꼭 연락드릴 것을 다짐했다.
“괜찮아. 내가 일부러 아무 말 안 했어. 어머니 계신 곳은 여기서 아주 멀어. 시간이 없었어. 오늘의 내가 있는 건 다 네 덕분이야. 우리 식구 다 널 고마워하고 있어. 특히 어머니는….”
크게 도와주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잊지 않고, 고마워하다니 난 쑥스럽다. 중학교 3학년 때 영어 선생님께서 우리 반이 꼴등이라고 화를 내시며 학생들 점수를 모두 불러 주셨다. 그때 내 짝이던 친구의 얼굴은 굳어져 있었다. 친구는 다음 날 학교에 오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친구네 집에 갔더니, 친구는 얼굴이 많이 부어 있었다. 영어가 든 날은 학교에 가기도 싫다고 하면서 어찌나 서럽게 흐느껴 울던지 그 충격을 잊을 수 없다. 나도 눈물이 나서 함께 울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친구의 영어를 한 학기 동안 도와주고, 숙제도 함께 하며 우정을 쌓았다. 친구는 G교육대학을 졸업하고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것이 전부였는데….
그때 “빨리 타세요. 떠납니다.” 버스기사가 재촉을 한다. 친구의 남편에게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차에 오르자 친구가 두 손을 흔들며 웃고 있었다. 친구 옆에 그녀의 남편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그들은 마치 밀레의 <만종> 속의 부부처럼 소박하고 따뜻했다.
훈훈한 웃음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친구내외가 보기 좋았다. 샘이 깊은 물이 멀리 흐르듯, 50년 우리의 우정도 끝없이 흐를 것이다.
한계령을 넘으며 지금 나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자문해 보았다. 남은 세월 웃음과 포용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한다. 내가 눈물 흘릴 때조차, 그 눈물 속에는 웃음이 들어 있어야 된다. 계속 진지하려고 깊은 내면만 들여다본다면, 웃음은 시들어져 뒤로 밀려날 것이다. 웃음은 사람의 에너지를 내면의 원천에서부터 표면으로 끌어낸다. 그 에너지가 시작되면 그림자처럼 웃음이 뒤따른다. 웃음이야말로 성장의 원천이며 무심으로 돌아가는 문(門) 중 하나이다. 웃을 수 있다면 사랑할 수 있고, 포용할 수 있다. 아름다운 노후로 살아가려면 넉넉한 웃음, 포용의 힘으로 자신의 허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내가 이번에 얻은 작은 깨달음이다.
“웃을 때는 세상이 함께 웃어주지만, 울 때는 혼자 울어야 한다.” 나는 이 격언을 이렇게 바꾸었다.
“웃으면 세상과 함께 웃지만, 울면 그대 홀로 잠든다.”
첫댓글 동방님 가슴이 따스해지네요 소중한글나누어주셔서감사합니다 올려주신책들도틈틈히잘읽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웃음과울음은어쩌면한곳에서시작하는건아닐까생각해봅니다 법성원융무이상 모지스바하_()
동방님...반가워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