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이니 정초니 설은 역시 음력이지 우리 세대에서 어울리지 않는다.
신정을 쇠어야 할지 구정을 쇠어야 할지 어정쩡하기도 하고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과도기 세시풍속에 미아인가 보다, 우리는.
해서 어디 마땅히 갈 곳도 없고, 하지만 짜투리 황금 시간이라 버리기도 아까워 정릉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날씨는 정말 춥네. 볼을 에는 듯하다.
흥천사로 들러 이쪽 굴다리를 통과해서 정릉으로 들어가기로 작정한다.
흥천사에 들어서니 오가는 사람도 없고 늙다리들이 간혹 보이고 연애질하는 젊은 아이들이 더러 보인다.
추운 날씨 때문에 너무 썰렁하다.
허허 ,
이렇게 추운 날씨에 방구석에 들어 앉아 있지.....무슨.......
하지만 내복을 한겹 더 껴입었고 털벙거지를 깁숙히 눌러 썼기 때문에 이런 추위 쯤.
뭐여 ! 이 날씨에 또 요상한 설날에 ! 남들은 나다니지도 않는 때에 정릉 골짜기에 들어오고.
용천지랄 떠는 거지.
사진기를 보따리에서 꺼내어 목에 걸고, 고리를 한번더 멜빵에 걸었다. 일명 완전군장.
남들이사 이런 내 꼴라지를 보고 용천지랄 떨고 자빠졌네 손가락질 하겠지만
지랄이고 나발이고 나는 제일 좋다.
추워도 더워도 내 최고의 행복한 순간인 것이다.
흥천사는 참 많이 변했네. 먹고 살기 바빠서 못 와봤더니 딴 세상같이 변했다.
자세히 들여다 봐야 옛모습이 보이네. 그래 저쪽 절 마루가 60년대 후반에 여름날 친구들과 놀러와서 자빠져 쉬던 곳이구나.
지금은 흙벽을 발라 막아져 있고 그 위에 탱화가 그려져 있네.
그 넘어 정릉에 들어거니 나 혼자만 덜렁.
릉에 올라 봤더니 봉분 양쪽으로 범 두마리(호석),양 두마리(양석), 앞쪽으로 말 두마리(마석), 문인석, 망주석,
혼유석, 장명등은 유달리 컸다. 왕비의 릉이어서 일까.
말 범 양은 무슨 뜻으로 봉분 양쪽으로 놓았는지..... 봉분을 지키는 신으로서 있는지도 모르지.
권세라든가 생명이라든가 세월이 지나니 참 허무하구나. 저렇게 말없이 누워만 있으니.
정릉의 주인인 신덕왕후는 이성계의 부인이다. 이성계가 장군이었을 당시 사냥길에 목이 말라 우물가에 물 얻어먹으러 갔을 때
한 처녀가 물을 한 바가지 떠 주면서 그 샘물 위에 버들잎을 뜯어넣어 준 일화로 유명하다.
후일 그 마음이 예뻐 왕후가 되고 방석 방간 두 아들을 얻었고 방간이 세자로 책봉되게 했지만 방원에 의하여 세자 방간도
죽임을 당한다.
태조 이성계는 그토록 어여삐 여겼던 신덕왕후를 정릉에다 묻고 그 영혼을 위로하기 위하여 흥천사란 절을 지었다.
후일 왕위에서 물러난 태조 이성계는 틈만 나면 이 흥천사를 찾아와 영혼을 위로했다 한다.
생명도 하늘을 찌르는 권세도 죽으니 아무 것도 아니네요. 한 줌의 흙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네요.
살아 있는 사람들의 허상에 불과하네요. 아무 것도 아니네요.
ㅡ `15. 01. 01. 정릉에서
첫댓글 좋은 작품과 좋은 글과 좋은 기분~
에잉~!
하나가 걸린다 <용천 지랄?>
잘나가다가 ~~~맴매~팍~!!!
글 다 읽어 봐.
댓글 단 시간 보니까. 내 글도 다 안읽었네.
ㅋ
ㅎㅎ 잘 하셨쓔.. 집 안에 있어봐야 살만 쪄유.
옛길님이 찍으니 솔방울 하나도 훌륭한 작품이되네.
나 알아주는 사람 최고 !
작품도 멋지고
옛길 글이 넘 멋져부려
마음속에 뭣이 자리잡았길네
그속을 들여다보고 잡은걸
캬 ~
고맙고
역사 공부 더 하고 가네~~
고마워. ㅎ
이성계의 이야기 귀한 사진 감사해요
너무 추우면 카메라 가지고 다니기가 쉽지 않을텐데
그 열정 대단합니다~~~~
열정보다 재미 있으이께네. ^^
지랄 자빠졌다고
ㅎㅎ
동계훈련 많이 하면 건강에 좋아유
불 지펴봐유
알았시유. ^^
용천지랄...
내 살다 살다 요런말은 처음여...
참말로 요상시런...옛길이
작품좋오타
그렇게 숨은뜻이,,
없어 !
그냥 씨불거리는 거야.
내는 지랄용천한다고 하는데...ㅋㅋㅋ
커피는 고맙고. 한 잔 해야지.
그런데 옛날 다방식으로 계란 노린자도 하나 넣어도고. 염치가 좀 없네.
우리 마누라 시골 처가집 가서 아직 밥도 못먹었다.
지랄용천이나 용천지랄이나 거기서 거기.
역시 같은 갱상도라 아는구만.
히히히
사진 작가에 역사 선생님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