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더 크고 높고 알 수 없는 것 ●지은이_김석영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1. 12. 25
●전체페이지_288쪽 ●ISBN 979-11-91914-11-5 03810/신국판변형(150×220)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6,000원
소리 없이 깊은 숨결을 고르며 쌓아 올린 성소(聖所)의 글
김석영 작가의 두 번째 산문집 『더 크고 높고 알 수 없는 것』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산문집은 작가가 2017년부터 대전작가회의 사무국장을 맡아 전국의 작가들과 교류하며 깨달은 것이나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다양한 소회를 한데 묶은 것이다.
1부는 우리 땅 곳곳의 숨겨진 아픔을 드러낸다. 제주 4 ‧ 3, 대전, 여수, 순천, 대구, 거창, 다시 대전 산내 골령골에 이르기까지 제노사이드(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의 현장을 돌아보고 아픔을 토로한다.
“4·3과 동학은 형제다.” 짧으면서도 동학의 발원지인 지역의 특색과 민중항쟁의 역사성을 함축하고 있어 가슴을 파고드는 문구다. 우리 대전작가회의 문구는 정덕재 시인이 제안한 “4·3과 대전 골령골 민간인 학살을 함께 기억합니다.”였다.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1~3차에 걸쳐 대전형무소 재소자 등 7천 명이 참혹하게 처형되었다. 그중에 수백 명은 여순 사건과 제주 4·3 사건으로 수형된 사람들이었다. 4·3 관련자 수천 명이 아무런 재판의 기록도 없이 불법군사재판을 받아 전국으로 흩어졌고 대부분 끝내 역사 속으로 실종되어 버렸다. 한참을 서서 배너 문구들을 읽노라니 주책없이 또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역사, 다시 우릴 부른다면」 부분
이 밖에도 우리 땅 곳곳의 제노사이드를 찾아가는 순력기(巡歷記)와 「사(死)대강의 추억」에서 만나는 분노의 언어와 「녹슨 물고기」의 팽목항 세월호 삼백네 개의 넋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언어는 세상을 통곡하고 아픔을 뜨겁게 끌어안는다.
2부는 가까이에서 언제나 보듬고 챙겨주고 다독여주는 오랜 벗들과 선후배, 사랑하는 가족, 떠나간 영혼들을 위한 글이다.
그 언제였던가. 열한 살배기 민서가 조막손으로 오물조물 차려온 술상을 받고 속으로 얼마나 울었던지. 이제 열여덟 살 꽃다운 아가씨로 훌쩍 자란 민서가 유투브까지 보고 나름 이것저것 궁리해서 보란 듯이 차려낸 음식을 보니 다시 또 울지 않을 수 없다.
―「어진달, 풍수지탄, 효」 부분
나이 차이가 한참 나는 우리 집 아이들을 형과 오빠로서 늘 살갑게 대해준 것도 장조카였다. 아내를 떠나보내던 날, 장례를 치르는 내내 홀로 빈소를 한시도 떠나지 않고 묵묵히 작은어머니인 아내 곁을 지켜주었던 것도 장조카였다. 빈소를 찾아온 이마다 그 모습을 보고 누구냐고 묻고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어찌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조카」 부분
김서령(1956~2018) 선생의 담벼락에는 선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로 가득하다.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그녀와 나눈 몇 번의 필담으로도 그녀는 나를 깊이 사로잡았다.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지만 그녀의 다정다감한 목소리와 웃음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남들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름다움이 대개 그러했을 것이다. 그녀 또한 이 세상의 불의와 부정과 혼탁함을 못 견뎌 했을 것이다. 안으로 깊은 상흔을 입으면서도 그럴수록 더 맑아지고 단아해지고 더 아름다워져 갔을 것이다.
―「김서령」 부분
작가는 “먼저 떠나간 이들의 넋과 구천을 떠돌고 있을 모든 원혼과 그들을 천형처럼 그리워하며 살아갈 이들의 삶을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나아가“교감을 선물해주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허투루 살지”않겠다고 다짐한다.
3부는 한국문학 안에서 특히 지역문학이 어떤 자리매김을 해야 하는지, 한국문학의 여러 현안이 시대정신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지역과 지역 간의 협력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한지 등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지난 주말에 그곳 책방에서 대전작가회의 ‘맥락과비평’ 문학연구회의 제20회 문학심포지엄이 열렸다. 많은 ‘나무’들이 그곳에 모여 ‘로컬리티와 비평’이란 주제를 내걸고 대전지역의 문학이 선 자리와 가야 할 길에 대한 치열한 토론과 모색을 하였다. 대전지역의 특성에 맞는 문학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고, 대전지역에 사는 작가가 하는 게 곧 지역의 문학이 아닌가란 의견도 나왔다. 문학의 시대적 소명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지역의 언어에 천착하고 지역의 현안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제언도 있었다. 토론은 뜨겁고 은혜로웠다. 이 또한 언어의 나무들이 모여 울창한 지혜의 숲을 이룬 듯했다. 신영복 선생의 말씀이 절로 떠올라 내내 귓가에 맴돌았다. “나무가 나무에게 말했다. 우리 더불어 숲이 되어 지키자.”
―「지금, 우리에게 지역문학이란 무엇인가」 부분
누구나 ‘지역문학이 살아야 한국문학이 산다’고 말은 하나 그 길이 무엇인지 온전히 꿰뚫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애당초 어떤 한 가지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는 자신의 소명대로 지역문학에 대한 의견을 외친다.
또 작가는 “최근 문학계에서 제기되는 ‘유역(流域)문학론’만 해도 그렇다. 유역문학론은 문학이 지역에 뿌리를 내려야 하지만 지역이란 틀 안에 강박되어서도 안 되듯 유역문학이란 이름에 스스로를 강박해서도 안 된다는 삼중의 과제를 갖고 있다”고 술회한다.
모두가 유역문학(流域文學)이란 낯설고 새로운 존재가 우리 앞에 등장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다. 이름값이란 말이 있지만 이름만 번듯하다고 속 알맹이까지 실하다는 보장은 없다는 말도 있다. 문학의 오랜 숙제이자 병폐의 문제도 여전하다. 글은 그럴 듯해도 글 쓰는 시인과 작가가, 그의 삶이 그만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형편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론은 번질해도 그를 뒷받침하는 소출이 시원치 않은 게 또 얼마인가. 낡은 문학판을 바꾸자고 하면서 스스로 그 못지않게 낡은 문학판을 내밀어서야 되겠는가. 이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없다는 뜻이다.
―「지역(地域), 로컬, 유역(流域) 문학을 넘어서」 부분
작가의 글은 꾸밈이 없고 소박하면서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강하게 맞서는 결기의 완전함도 갖추고 있다. 자상한 아버지였다가 역사의 상흔을 보듬고 치욕의 날들을 바로잡고자 할 때는 단호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모두의 온전한 삶을 소중히 여기면서, 진실과 함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꾼다. 고통과 통곡마저 끌어안고 어루만지면서, 상처와 아픔을 딛고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생(生)의 의지가 빼곡하게 담긴 이 책은 그래서 더욱 믿음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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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작가의 말·04
제1부 더 크고, 높고, 알 수 없는 것
2018년, 제노사이드 순력기(巡歷記)·12
4·3·32
그 역사, 다시 우릴 부른다면·33
박경리, 통영, 백석과 법정·46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48
공공어린이재활병원·50
사(死)대강의 추억·52
기억, 사(死)대강, 오래된 미래·54
죽음에 대한 단상·56
사이비, 라플라스의 악마, 운명·58
벌거벗은 임금님과 작가정신·60
신동엽 시인과 영세중립국·63
제2부 프란치스코, 갈매나무, 진실
녹슨 물고기·74
어진달, 풍수지탄, 효·77
아버지 노릇하기·86
장조카·88
꽃구경·90
친구 생각·92
어른이날·94
베이지색 아빠·95
단오(端午)·98
남도 행초(南道 行抄)·100
유월·108
하서복중(夏暑伏中)·110
칠석(七夕)·113
통영에서 띄우는 편지·114
신발을 든 여인·117
우반동 반계서당(愚磻洞 磻溪書堂)·119
추풍낙엽 1·121
추풍낙엽 2·123
오소리감투·126
시월애(十月愛)·127
11월, 바람의 언덕, 박환·129
자유실천위원회·132
졸업·135
지리산웰빙귀농학교·137
인생유감(人生有感)·138
공부란 무엇인가·140
김서령·145
밥꽃, 지다·150
최인훈, 만남, 길에 관한 명상·153
국수(國手)·157
글쓰기 연금술·159
죽음에 대한 예의·161
출사표(出師表) 1·163
출사표(出師表) 2·165
입사표(入師表)·167
정선, 비단안개, 소월·169
단상(斷想)들·173
고담한론(古談閑論) 3제·178
겨울 단상·181
세한재(歲寒齋) 단상·188
생일, 프란치스코, 갈매나무·193
송영주(送迎酒)·198
납월매(臘月梅)·199
김광석, 장주지몽, 매트릭스·201
발렌타인 데이·203
산수유 타령·206
백신의 맛·209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1·210
제3부 지역(地域), 로컬, 유역(流域) 문학을 넘어서
더불어 숲을 꿈꾸며·214
지금, 우리에게 지역문학이란 무엇인가·216
지역(地域), 로컬, 유역(流域) 문학을 넘어서·218
김수영과 신동엽·220
시처럼 아름다운 시인(詩人) 시보다 아름다운 시민(詩民)·222
원주, 박경리 문학의 산실(産室)을 찾아서·224
미당, 님의 침묵, 만해·226
말당(末堂) 서정주·228
삶의 문학, 김숨, 작가정신·231
광주, 40년, 인연·233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239
자연에 깃드는 시간의 자리·243
금강 유역(流域)에 핀 환한 꽃·249
빈집의 주인으로 사는 법·252
걸어다니는 구도(求道)의 별·256
여래의 눈으로 참혹한 세상을 굽어보는 법·260
구도(求道)의 길을 걷는 순례자들에게 바치는 헌시(獻詩)·269
■ 작가의 말
더 크고, 높고, 알 수 없는 것
무엇인가 알 수 없는 것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온갖 곳을 다니게 하고, 온갖 사람을 만나게 하고, 온갖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돌아와 글을 쓰게 하고, 이렇듯 한 권의 책으로 만들게까지 했다. 그 존재를 알 수 없기에 두렵기도 하고 피하고도 싶었으나 그것이 내 뜻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흔연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고 마음이 편해졌다. 몸은 고달팠으나 정신은 명민해지고 넋은 맑아지는 듯했다.
봄날에 만난 늙은 매화나무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위안이 되었다. 제주도 마라도의 벼랑 끝에서 자그마한 성당 포르치운 쿨라를 만나고 돌아와 내 마음에 심은 갈매나무가 힘이 되어주었다. 어디 그뿐이랴. 내 가까이에서 부족한 나를 언제나 보듬고 챙겨주고 다독여주는 오랜 벗들과 선후배들과 사랑하는 가족이 있어 쓸쓸하지 않았다. 멀리서나마 나를 알아주고 응원하는 또 다른 벗들이 있다는 것도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이만하면 된 것 아닌가.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래도 나무의 몸을 베어 글을 쓰고 한 권의 책을 엮는 일은 떨리고 가슴 벅차고 어깨가 절로 무거워지는 일이다. 글을 잘 쓰는 일보다 잘 사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매번 느끼게 된다. 글이 좋다는 것보다 사람이 좋다는 말이 훨씬 마음에 와닿는다. 내 글을 읽어주고 나라는 사람을 떠올리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교감을 선물해주는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허투루 살지 않아야겠다.
몇 해 전 제주도 김녕 해변에서 보았던 눈부시게 맑은 햇살과 푸르디푸른 가을 하늘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돌아와 쓴 시의 한 구절을 주문처럼 읊는다. 먼저 떠나간 이들의 넋과 구천을 떠돌고 있을 모든 원혼과 그들을 천형처럼 그리워하며 살아갈 이들의 삶을 위해. 부디 모두들 평안하기를.
가을빛이여 두루두루 비치어
어기야차 온 세상을 오래오래 살리시라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은 ‘시와에세이’의 양문규 시인 형님과 여러분, 추천사의 번거로움을 흔쾌히 허락해준 내 소중한 글벗 윤임수, 이종암 시인 그리고 평산 형님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나머지는 언제나 그랬듯이 모두 하늘의 뜻에 맡기련다.
2021년 대설 무렵
악양 필경재(筆耕齊)에서
초벽 김석영
■ 표4(약평)
김석영은 순진하고 순전하다. 혼돈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답지 않게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수하며,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강하게 맞서는 결기의 완전함도 갖추고 있다. 막걸리 한 잔을 들면서 활짝 웃을 때는 어린아이보다도 천진해 보이지만, 역사의 상흔을 보듬고 치욕의 날들을 바로잡고자 할 때는 단호한 모습으로 다가선다. 모두의 온전한 삶을 소중히 여기면서, 진실과 함께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 고통과 통곡마저 끌어안고 어루만지면서, 상처와 아픔을 딛고 새롭게 나아가고자 하는 생(生)의 의지가 빼곡하게 담긴 이 책을 통해서 “더 크고, 높은” 날들로 우리가 기꺼이 함께 갈 수 있음을 믿는다. 나는,_윤임수(시인)
김석영의 산문집 『더 크고 높고 알 수 없는 것』은 운문(시)과 산문(비평)을 드나드는 문(門), 즉 ‘오래’의 모양이다. 우리들 앞에 펼쳐놓는 김석영 언어의 길은 시의 무늬도 비평의 무늬도 모두 아우르고 있고, 또 푸른 생명의 빛이 언제나 넘실대는 살림의 길이다. 남한 땅 곳곳의 제노사이드를 찾아가는 순력기(巡歷記)와 「사(死)대강의 추억」에서 만나는 분노의 언어와 「녹슨 물고기」의 팽목항 세월호 삼백네 개의 넋을 이야기하는 통곡의 언어는 세상을 끌어안는 김석영 뜨거운 언어의 품 그 자체다. 김석영은 세상에 펼쳐진 길 위에서 끊임없이 앞과 뒤를 동시에 나아가며 만나는 것들과 부단한 대화를 하면서 언어의 문(門)을 우리 앞에 열어놓는다. 그 깊고 넓은 사유의 문(門)에 들어서는 복(福), 독자여 누리소서._이종암(시인)
백석의 시를 읽으면 “내장이 쏴~ 해진다.”고 말하는 김석영이 다소곳이 들여 미는 유현하고 담박한 글집 『더 크고 높고 알 수 없는 것』은 그가 소리 없이 깊은 숨결을 고르며 쌓아 올린 성소(聖所)의 다른 이름이다. 작가가 오래도록 명찰해온 것을 두루 펼쳐 보이는 이 융숭한 스펙트럼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무와 의식의 고양을 감득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_평산 신기용(음악칼럼니스트)
■ 김석영
충남 당진에서 태어나, 충남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 철학과에서 공부를 했다. 2015년 『작가마당』으로 등단. 산문집 『참혹한 아름다움』이 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대전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