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회의 이종찬은 아직도 정부에 대한 아니 자신을 아버지로 존경해 마지않았던 윤석열에 대한 분을 삭이지 못했는지 정부를 향해 계속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문제는 지금까지도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1919년 을 건국으로 보아야 한다는 이론과 1948년의 건국을 주장하는 이론이 맞서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많은 학자와 지식인들이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의 건국으로 보아야 맞는다는 논리적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데에도 1919년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광복회의 이종찬을 비롯하여 내 노라 하는 대한민국의 지도층 인사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정부의 집권당에 몸을 담고 있는 조경태 나 유승민이나 대구시장을 하고 있는 홍준표 등은 이종찬의 궤변에 동조하며 고비 때마다 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보는 건국은 1948년 8월 15일 이승만이 선포한 건국이 당연하다고 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정부의 공식 기구와 함께 모든 국민이 함께 참여해서 이루어 낸 건국의 날이었으니까. 말이다.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는데 왜. 3년이나 늦은 뒤에 건국을 선포를 했나. 하고 의아해하는 국민들도 있는 것은 1945년 일본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일본이 통치하던 시스템을 미군정이 정리하는 데에만 3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이다.
1945년과 1948년 건국을 사이에 두고 물론 일본의 청산 문제도 있었지만 3년 동안 남한 내에 공산당들의 잔당들이 남아 북한과 연대해서 통일을 획책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승만의 노력과 물론 미군정이 뒤에서 버티고는 있었지만 공산당들의 저항이 만만치가 않았섰다.
3년 동안 공산당들의 준동에 남한 내의 무고한 국민들이 희생이 되기도 했지만 당시 공산당들의 준동은 미군정과 이승만이 세우려는 건국 정권에 많은 타격을 입히기도 했다.
소련 스탈린은 당시 삼팔선을 경계로 대한민국의 절반을 차지하고도 남한까지 통일을 이루려고 북한 김일성을 내세워 모든 작전을 뒤에서 지휘하고 있었다.
소련 스탈린의 사주를 받는 김일성의 통일 작전은 미 군정과 이승만을 필두로 모든 국민이 합심하여 남한 내에서 암약하던 공산당들을 전부 몰아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이 1948년 8월 15일 태어나게 된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에서 풍요로운 자유를 만끽하며 잘 살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북한 공산당의 사상과 이념을 버리지 못하고 이율배반적 행위도 부족하여 아무것도 모르는 청소년들을 쇠뇌하여 선동의 앞장에 세워 80년 100년 된 일들을 끄집어내어 분란을 부추기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지금까지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이념에 동조하지 않으면 반미다 친일이다. 뉴라이트다 하면서 근 시대적 자기 합리적 망상에 사로잡혀있는 사람들. 이모두는 정부의 교육 부재에서 오는 현상이기도 하다 교육이 들쑥날쑥 한 교육도 문제가 있고 계속 일관된 교육이 필요한데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 정책이 바뀌는 것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80년 100년 된 일들을 끄집어내어 비효율적 논쟁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여러 분야의 학자와 지식인들이 참여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여 정부의 확고한 비전을 제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힘을 모아 세계로 나아가는 담대한 대한민국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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Джеймс Ласт--Одинокий пастух. Лучше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