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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수원교구 오늘의 말씀, 왕곡성당 카페, 마리아사랑넷, 빠다킹신부와 새벽을 열며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살레시오회
이웃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한 영성가께서 지극히 간단하지만 심오한 한 마디를 건네주셨는데, 한 문장의 말씀이지만, 그 말씀이 제 마음에 꽂혀 오래도록 묵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말씀은 이것입니다.
“이웃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십시오!”
이웃, 특히 가까운 이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이 때로 얼마나 꼬였는지,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편향적인 시선인지 깊이 반성합니다.
동시에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도 너무 지나칠 정도로 혹독하거나 엄격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관대하거나, 중심을 잡지 못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힘든 부분이 나 자신과 이웃을 바라보는 균형잡힌 시선인 것 같습니다.
때로 나 자신이란 존재 제가 봐도 신기하고 흥미롭습니다. 제 속에 뭐가 그리 내가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때로 태평양보다 더 넓은 마음의 내가 있는가 하면, 때로 송곳 하나 들어갈 수 없을 정도의 속 좁은 내가 있습니다. 때로 시속 500킬로의 테제베같이 성급한 성격의 내가 있는가 하면, 때로 나무늘보보다 더 느긋한 내가 있습니다.
비단결보다 더 고운 너그러운 천사 같은 내가 있는가 하면, 눈빛이며 얼굴이 무섭고 기괴한 사탄 같은 내가 있습니다. 오늘 비록 내가 천사로 산다 할지라도, 내일 사탄으로 돌변할지 모르는 변화무쌍한 우리네 삶입니다. 참으로 종잡을 수 없는 나입니다.
오늘도 제 안에 들어있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곰곰이 헤아려 볼 일입니다. 이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왕이면 선한 것들, 가치있는 것들, 주님께서 기뻐하실 것들로 가득 채워나가야겠습니다.
내면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부패할 것들, 역한 냄새 풀풀 풍겨, 나 자신을 더럽히는 것들, 주변 사람들 괴롭힐 것들은 자꾸 비워내야겠습니다. 그것은 오늘 예수님께서도 언급하신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마르 7,20-23)
정녕 인간을 오염시키고 부패시키고 타락시켜 추하게 만드는 것은 외적, 물질적인 것이 아닙니다. 옷 좀 떨어졌다고 그 사람이 더러운 사람이겠습니까? 몸에 흙탕물이 좀 튀었다고 그 사람이 지저분한 사람이겠습니까? 샤워 한 며칠 안 한 사람을 두고 타락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인간을 오염시키고 타락시키는 것은 인간의 내면, 인간의 영혼과 관련된 것, 다시 말해서 죄입니다. 그 죄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 예수님께서 잘 나열하신 것입니다.
당시 오류와 편협된 사고에 빠진 바리사이들은 깨끗함과 더러움의 기준을 사물의 외적인 상태에 두었습니다. 그 사람의 내면이 어떠하든, 그 사람 영혼의 상태가 어떠하든, 그 사람이 맺고 있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떠하든 개의치 않았습니다.
오로지 그의 몸 상태가 청결한가 아닌가가 관건이었습니다. 율법의 세칙에 따라 그가 손을 씻어야 할 때 손을 씻었는지, 발을 씻어야 할 때 발을 씻었는지, 그것만 뚫어지게 쳐다 봤습니다.
정녕 깨끗한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참으로 깨끗한 사람은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전삼용 요셉 신부님, 조원동주교좌 주임신부님
사람과 나라를 건강하게 지키는 힘: 자비로운 독재자의 유무
현재 세계에서 가장 약진하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요? 많은 곳에서 이 나라가 지금 망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미래의 먹거리인 A.I., 로봇, 전기 자동차, 드론 등에서 가장 약진하는 나라는 뭐니 뭐니 해도 중국입니다. 중국의 약진은 무서운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반도체나 핸드폰, 자동차, 가전제품, 선박 등으로 중국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중국이 거의 추격했고 한국이 아직 선두를 잡지 못한 중요한 부분에서는 이미 중국이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현재 누가 봐도 주춤하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어디 있을까요? 역사를 보면 나라가 망하는 것은 대부분 정치 때문입니다. 외세의 침략이나 자연재해 등을 말하지만, 정치가 안정되어 있다면 그런 어려움들은 다 극복될 수 있습니다.
중국은 현재 반 독재국가라 할 정도로 심지어 종교의 자유까지도 제한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중국은 선교가 금지되어 있고 아직도 감옥에 갇혀있는 지하교회 주교와 신부들이 많습니다. 또한 미국이 워낙 견제를 많이 해서 무엇이든 발전해서는 안 되는 상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중국의 지휘체계는 하나입니다. 인도도 비슷한 인구를 지니고 있지만, 중국만큼 약진하지는 못합니다. 통일된 지휘체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조선시대 때 여기에 맞고 저기에 맞게 된 이유는 바로 당파싸움 때문입니다. 특별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세력 때문에 많은 인재들이 죽거나 숙청당하였습니다. 여기에 천주교 신자들이 많았습니다.
한 번 뒤처지면 추월하는 것은 배로 어렵습니다. 그렇게 신식 무기로 장착한 일본과 청나라 등을 상대하기는 언제나 역부족이 되어 결국엔 나라까지 반토막이 나게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도 항상 이렇게 된 것의 핑계를 외부에 둡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자신을 더럽히는 모든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안에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내부에 적이 있으면 그 사람 내부에서는 분열이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내부가 분열된 것은 그것이 사람이든, 나라든 무너뜨리기 너무 쉽습니다.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깨끗함을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자비로운 독재자’를 두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완전했던 왕이라고 하면 세종대왕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참으로 자비로웠습니다. 백성들이 읽고 쓸 수 있도록 한글까지 만들었습니다. 동시에 독재자였습니다. 세금을 많이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자비로웠기에 백성들의 사랑을 받았고, 그 덕분으로 독재를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때 나라가 깨끗하고 건강하고 발전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도 자비로운 독재자가 필요합니다. 지금 뒤로 밀렸다가는 예전의 약했던 나라의 모습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자비로운 독재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현재 서울 연세에이스내과의 이장욱 원장은 제가 첫 보좌를 할 때 성당에서 특별히 아주 열심한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인터넷이 막 대중화될 때부터 ‘평화의 오아시스’란 홈페이지를 만들어 복음화에도 힘썼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그렇게 열심한 신앙인은 아니었습니다. 의대에 다니면서도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매일 술을 마시고 길거리에서 자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의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좌절하고 있을 때 성령 기도에 심취해 있던 어떤 교수님의 인도로 짧은 성령 피정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강의도 재미없고 방언도 되지 않았습니다. 실망과 실망의 연속 끝에 마지막 미사를 할 때였습니다. 이때 안수기도가 있었습니다.
그는 손이 뜨거워지고 등에서도 이상한 기운을 느꼈습니다. ‘이게 뭐지?’ 싶을 때 환시로 누군가의 손바닥이 자신의 얼굴 앞에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손엔 구멍이 뚫려있었는데, 뚫려있었다기보다는 손바닥에서 손목까지 찢어져 있었습니다. 조금 뒤에는 가시관을 쓴 그 손 주인공의 얼굴도 어렴풋이나마 보였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어깨에 손을 얹고 안수기도했고, 마치 두부를 칼로 자르듯 이런 생각이 가슴을 채웠습니다. ‘아, 저렇게 고통받고 한 사람이 바로 나구나!’
그때는 물론이요, 그 이후도 성당에 갈 때마다 눈물바다였습니다. 그냥 눈물이 흘렀습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인물들의 대부분이 비슷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렇게 변한 것으로도 저는 그 체험이 주님께서 주신 체험일 수밖에 없다고 확신합니다.
이제 그 손바닥의 주인공은 안젤로에게 독재자가 됩니다. 한 번은 성지순례 중에 젊은이들 기도 모임을 만들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사명을 받습니다. 그렇게 어디를 가나 기도 모임을 만듭니다. 지금도 병원에서 오후 3시에 묵주기도 모임을 매일 한다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제 마음이 갈라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독재자가 자비롭게 그 사람 안에서 나쁜 것이 자신을 오염시키지 않게 막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바로 ‘뜻’인데 내 안에 있었던 무자비한 독재자를 자비로운 독재자가 발로 밟은 것입니다.
세종대왕은 당시 성균관 유생들에 의해서 ‘독재자’로 판단 받았음을 알고 있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세종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든 백성이 반대하더라도 밀고 나갔습니다. 그 힘은 백성 대부분은 그래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힘입니다.
우리나라를 생각할 때 이러한 자비로운 독재자가 빨리 나타나서 많이 갈라져 있는 우리나라를 하나의 뜻 안에 모았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종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지만, 또한 비전이 명확하여 나라 전체가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한 때인 것입니다. 모든 문제는 자신 안에 있고 오직 자신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자신과 우리나라를 위해서도 기도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조욱현 토마스 신부님, 왕곡 주임신부님
복음: 마르 7,14-23: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예수님은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15절) 하시며 금기 식품은 없다고 하신다. 예수님께서는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고 하시면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배 속으로 들어가서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라고 하셨다(마태 15,11.17 참조). 주님께서는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19절) 밝히셨다. 그런데 레위 11장에 보면 부정한 음식물의 종류가 나오고 있다. 그것은 유다인들의 전통에서 신앙처럼 지켜오는 먹지 말아야 할 음식 중에 대표적인 것이 돼지고기가 있다. 2마카 6장에서는 안티오쿠스 에페파네스는 유대교를 근절시키려고 유다인들로 하여금 돼지고기를 먹게 하였고, 그것을 안 먹는 유다인들은 왕명을 거스른 죄로 수백 명이 죽임을 당했다는 역사적인 사건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런 유다인들에게 그 말씀은 그들에게는 깜짝 놀랄 말이었다. 즉 그들은 부정한 음식을 먹음으로써 사람이 부정하게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지내왔고 죽어가면서도 지켜온 그들의 율법을 무시하는 듯한 예수님의 말씀이 그들을 당황하게 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본뜻은 무엇인가? 물건, 음식이란 그 어떤 것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측면에서 볼 때 부정한 것이다, 깨끗한 것이다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부정한 음식을 먹지 않는데 믿음의 본질이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마음이라는 창고 안에 무엇을 쌓아 놓고 있으며, 그 안에서 무엇을 내어놓으며 살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악한 생각들이란 마귀가 나에게 불어넣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마귀는 우리의 나쁜 생각에 힘을 보태고 부추길 수는 있지만 그러한 생각들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그것은 내 마음 안에서 일어나며 이러한 생각이 일어날 때, 마귀가 그것을 정당화시키고 그렇게 행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따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느냐에 믿음의 근본 의미가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물건이나 음식이 아니라 사람 자신에서 나오는 생각과 행위이다. 바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라는 말씀이다. 이 주님의 말씀대로 우리는 언제나 하느님과 이웃을 향하여 살아갈 수 있는 우리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 주임신부님
폴 마이어(Paul Meyer) 박사는 물고기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어항 한가운데 유리 칸막이를 치고, 한쪽 칸에는 붕어를, 다른 칸에는 붕어를 잡아먹는 메기를 두었습니다. 메기는 붕어를 보고 달려오다가 유리에 부딪히고 또 부딪쳤습니다. 이렇게 수없이 실패를 경험합니다.
이제 어항의 유리 칸막이를 뺍니다. 메기는 붕어를 보고 달려오다가 유리 칸막이가 있는 위치에 오면 싹 돌아서고 맙니다. 유리 칸막이가 없어서 마음껏 붕어를 잡아먹을 기회를 얻었지만 돌아서는 것입니다. 반복적인 실패 경험 때문에, ‘나는 안 돼. 붕어를 잡을 수 없어.’라는 부정적인 사고가 자리 잡은 것입니다.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경험으로 인해 뛰어넘지 못하는 것, 자기 한계라면서 단정 지어 버리는 것, 얕은 지식에 갇혀서 새롭게 도전하지 못하는 것 등등, 임의로 선을 긋고 선 밖으로 나가기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러한 고정관념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분이고, 불가능이 없으신 분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나 자기 안에서 활동하시는 주님을 믿지 못합니다. 자기 경험의 틀, 즉 인간적이고 세속적인 틀에 갇혀 있는 것입니다. 이로써 주님과 진정으로 가까워질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에게서 나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사람 안으로 들어오는 외적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람 자체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늘 외적인 것이 문제인 것처럼 생각하고 판단합니다. 다른 사람이 문제이고, 지금의 환경이 문제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 모든 여건을 만드는 주님께도 큰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나를 먼저 바라볼 수 있어야 했습니다. 특히 주님과 함께하는 나를 바라봐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하는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쉽게 포기하지도 않습니다. 나약하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예수님 말씀처럼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죄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님과 더욱 함께해야만 합니다. 그래야 포기하고 좌절하지 않게 됩니다.
우리 마음에 주님의 자리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의 손길을 통해서 힘차고 기쁘게 지금을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내가 무슨 말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대방이 무슨 말을 들었느냐가 중요하다(피터 드러커).
※김혜선 아녜스 - 출처 : 바오로딸콘텐츠, 묵상-말씀이 시가 되어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창세2,17)
하느님만이 선하시므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 뿐 이시네.
우리가
우리의 생각대로
남을 판단하거나 비난한다면
그것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일이며
금령(禁令)을 어긴
불순명의 죄를 짓는 일이라네.
※김경진베드로 신부님 - 의정부교구 한마음청소년수련원(출처 : 묵상글 단톡방)
영신 수련은 내 마음을 보게 합니다.
식별하는 능력을 키워
나를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시하게 합니다.
내면을 바라보며
예수님과의 관계를 성찰하지 않으면
우리는 내적 성숙이나
영적 성장을 향해 가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영신 수련이 필요한 겁니다.
언제나 귀 기울여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들은 것을
식별하는 은총을 청해야 합니다.
그래야 완전하게 하느님의 뜻을 찾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내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들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됩니다.
※한상우 바오로 신부님 - 구속주회
※이병우 루카 신부님 - 마산교구 합천성당 주임신부님
복음말씀
제1독서
<주 하느님께서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돌보게 하셨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2,4ㄴ-9.15-17
5 땅에는 아직 들의 덤불이 하나도 없고, 아직 들풀 한 포기도 돋아나지 않았다.
주 하느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흙을 일굴 사람도 아직 없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다.
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8 주 하느님께서는 동쪽에 있는 에덴에 동산 하나를 꾸미시어,
당신께서 빚으신 사람을 거기에 두셨다.
9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
15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
16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17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7,14-23
그때에 14 예수님께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15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16)
17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18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19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
20 또 이어서 말씀하셨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 그것이 사람을 더럽힌다.
21 안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쁜 생각들, 불륜, 도둑질, 살인,
22 간음, 탐욕, 악의, 사기, 방탕, 시기, 중상, 교만, 어리석음이 나온다.
23 이런 악한 것들이 모두 안에서 나와 사람을 더럽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