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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9월1일 목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수도회] 복음이 되어 사람을 낚는 영혼의 어부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1코린 3,18-23
† 복음 루카 5,1-11
◈ 오늘의 묵상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리는 어부들인 시몬과
그의 동료 야고보와 요한은 어느 날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며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몸과 마음이 다 녹초가 되어 실망과 허탈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하고 가르쳐 주십니다.
시몬은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던집니다. 시몬은 좌절감에 빠지지 않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시몬은 자신의
동료인 야고보와 요한의 도움을 받아야 할 정도로, 그물이 찢어질
만큼, 배가 가라앉을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 것입니다.
그 순간, 시몬은 무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적인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기술이나 능력을 초월한 어떤 힘에 사로잡혀 두려워하게
됩니다. 모세는 불타는 떨기 속에 계신 하느님을 만나고 두려워 얼굴을
가렸습니다(탈출 3,1-6 참조). 신적인 체험을 한 인간은 하느님을
외면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이 싫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거룩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기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신적인 체험을 한 갈릴래아의 어부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육적이고 인간적인 것에서, 영적이고
신적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체험하는 기적은 무엇입니까?
(김준철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의 부르심은 내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려옵니다.
2016년 다해 9월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제1독서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1서 말씀입니다. 3,18-23
복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1
‘부르심’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가톨릭 신자들은 주로
‘성소’라고 말하면서 주님의 부르심을 생각합니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내적 지식과 성찰이라고
말하지요. 아무튼 이 둘 다 모두 나의 내면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면의 소리와 요구에 대한 응답은 바로 내가
선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따라 드러날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어떤 성찰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응답을 할 수가 있을까요?
즉, 아무런 생각 없이 그냥 응답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히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성찰은 상당히 낯설다고 합니다.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보기에 너무 바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예전에는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대부분 스마트폰만을 들여다보고 있지요. 또 게임을 하거나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문자를 주고받습니다. 어떤 의문사항이 있으면 함께
생각하고 토론하기보다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간단하게 해결을
하려고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을 보는 데에도 상당히
많은 시간을 소비합니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정보는 넘쳐나지만
사고능력은 오히려 퇴화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과연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가 있을까요? 만약
듣는다 해도 깨닫지 못할 것입니다. 마치 무엇인가 집중하고 있을 때,
옆에서 누가 큰 소리로 말하고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러나 내 사고능력과 정신세계의 성장을 위한다면 내면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과 베드로의 만남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예수님의 놀라운 힘을 목격하게 되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자, 어마어마하게 많은 물고기를 낚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체험하면서 많은 생각했을 것입니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형편없고 부족하다는 생각에 감히 주님을 어떻게
대면할 수 있을까 싶었겠지요. 그래서 두려움에 차서 죄 많은
사람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었기
때문에, 주님께 대한 두려움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떨까요? 종종 고해성사를 주다보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을 많이
뵙습니다.
“저 죄 없어요.”
아무런 성찰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는 것이지요.
깊은 성찰을 하고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는 베드로를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라고
부르십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런 성찰 없이는 도저히
주님의 부르심도 들을 수 없고 그래서 따를 수도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은 내 내면의 목소리를 통해서 들려옵니다.
자존감이란 그런 거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부족하고 결핍되고
미치지 못하는 것까지 모두 받아들인 후에도 여전히 스스로에 대한
신뢰를 굳건하게 유지하는 거(김어준).
어제 미사를 갔던 부천 소명여고의 소성당.
장사 비결(‘좋은생각’ 중에서)
우노 다카시는 손대는 가게마다 성공시켜 일본 요식업의 전설로
불린다. 그는 늘 주위를 관찰해 아이디어를 얻었다. 하루는 지인의
초밥 가게에 갔는데, 주문받은 주인이 요리사에게 “김은 바삭하게
구워 줘!”라고 소리쳤다. 사실 초밥용 김을 바삭하게 굽는 건 당연한
일이었지만 일부러 한 번 더 당부한 것이다. 자연스레 손님의 기대가
높아져 만족감이 올라갔다. 어떻게 서비스해야 하는지 배운 계기였다.
그런가 하면 “인적 드문 곳에 가게를 열어라.”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목이 안 좋은 곳에 장사를 시작하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가게의 성공 여부는 재미있는 발상과 좋은 서비스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인적이 드문 곳에 가게를 내야 위기감에서 아이디어가 나오고, 어렵게
찾아온 손님의 소중함을 알아 더 나은 서비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메뉴를 개발할 때도 기발했다. 예를 들면 미국 신발 사이즈
US10(약 28센티)만큼 크다는 ‘US10 돈가스’ 메뉴를 만들어 손님
뇌리에 각인시켰다. 한 술집은 출입문을 아래쪽 반만 열어 놓게 했다.
가게에 들어오려면 무릎을 굽히고 고개 숙여야 했다. 모든 손님이
평등하기 때문에 누구든 고개를 숙이고 들어와야 한다는 뜻이었다.
출입문은 평등의 상징물로 젊은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났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성공의 비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다른
생각이 어디서 나올까요? 성찰의 시간이 성공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까?
다음달 결혼하는 교구청 직원. 그 옆은 교구청의 김현수 신부님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복음이 되어 사람을 낚는 영혼의 어부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9월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루카 5,1-11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루카 5,10)
The call of Simon the fisherman
복음이 되어 사람을 낚는 영혼의 어부
루카가 전하는 제자들의 소명 사화는 마르코나 마태오복음과는 다른
신학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갈릴래아 전도를 시작하시면서
곧바로 부르시는 것이 아니라,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고 많은 고기를
잡도록 해주심으로써 사랑의 체험, 당신과의 깊은 인격적 만남을
배려하신 뒤 부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숫가에서 그물을 씻고 있는 어부들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어 뭍에서 조금 떨어져 군중들을 가르치십니다(5,3).
부르심의 첫 단계는 말씀의 선포입니다. 고기 잡는 일상에 몰두해
있는 그들의 마음과 귀를 당신께로 향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자신과
일로부터 떠나도록 준비시키신 것입니다.
시몬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5,5)
그는 자신의 오랜 경험에 따라 온힘을 다했으나 허탕을 친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와 어둠과 실망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들은 더
많은 고기를 잡으려고 물고기를 향하여 그물을 던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밤은 하느님과 무관한 자기만의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5,4) 하고 말씀하십니다. '깊은 데’는 피상적이고 현세적인
욕구 충족의 영역이나 자기중심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존재의 뿌리요
생각지 못했던 거룩한 내면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시고, 참 나를 만날
수 있는 곳이지요. 따라서 그곳은 두려움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물은 고기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향해, 그리고 복음이 되어 세상을
향해 던져야 했던 셈입니다.
우리는 혹시 하느님을 향한 내 영혼의 갈망과 주님 안에서의 삶의
변화가 아닌 세상의 현상과 흐름을 좇기 위해 그물늘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깊은 데’가 아닌 ‘얕은 데’에서 소중한 것을 찾으리라 믿으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깊은 데로 그물을 내리라는 예수님의 초대는
나를 변모시켜주시려는 사랑의 개입입니다.
시몬이 예수님을 스승님이라 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립니다.
그는 이미 세상의 소리, 생계유지,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겠다는
의지에서 떠나 저 깊은 데서 들은 주님의 음성을 순순히 따릅니다.
하느님을 만나 뵙는 영혼의 심연으로 마음과 눈길이 옮아감으로써
그는 이미 주님의 사람이 되었던 것이지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른 그들은 그물이 찢어지고 배 두 척이 가라앉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습니다(5,6-7).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으로 가득
찬 영혼은 그렇게 한없는 풍요를 체험합니다. 거기 함께 있던 이들은
몹시 놀라고(5,9-10), 주님의 사랑의 그물에 잡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5,8) 하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5,10-11). ‘깊은 데’에는 고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따른 베드로는 사랑을 체험하고
하느님께로 눈길을 돌려 복음이 됨으로써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
것이지요.
우리 모두 겉도는 세상의 현상과 현세적 욕망을 버리고, 하느님께서
기다리시는 내 영혼 저 깊은 곳에 주님 사랑의 그물을 던지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참 나를 알아차리고, 주님의 뜻을 올바로 실행하는 복음이
되어, 그 복음의 그물로 사람을 낚고 세상을 밝히는 ‘영혼의 어부’가
되도록 힘썼으면 합니다. 이것이 복음선포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9월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1코린 3, 21.23)
여러분 이 세상 모든 것 다 여러분의 것이랍니다.
마음껏 다 누리세요.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들 맛있는 음식들 모든 지식들
할 수 있는 한 다 가지세요.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살 자연의 온갖 선물들도 다 즐기십시오.
다 여러분의 것이랍니다.
멋진 음악과 예술과 건축 스포츠와 오락 다 누리십시오.
이 모든 것들이 다 여러분의 것이고 여러분을 위한 것이니까요.
다만 한 가지만 꼭 기억하세요.
그런데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걸.
그분이 십자가와 자신의 피로 여러분을 다 사셨으니까요.
여러분은 더 이상 여러분의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분은 또 그분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것이었지요.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주인이신 하느냄의 뜻대로 사셨답니다.
오늘 하느님이 주신 모든 선믈들을 만끽하시고 마음껏 즐거워하십시오.
여러분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여러분에게 주시는
선물들이기에 감사하며 그분이 기뻐하시도록 쓰시기만 하면 됩니다.
9월의 첫날 가을의 시작을 기쁨과 감사로 시작하시길 축원합니다.
- 프란치스코회 성심원 원장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 11)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9월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루카 5, 11)
가을은 순교자들처럼 뜨거운 여정을 거쳤습니다.
사람의 여정은 믿음의 여정입니다.
믿음의 시작은 버림이며 버림의 열매는
주님과의 항구한 믿음의 관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렸기에 모든 것을 맡길 수 있었습니다.
맡겨야 할 것은 언제나 우리의 모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이끄시는 예수님의 따뜻한 마음을 진심으로
만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살면살수록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는
우리존재임을 매순간 깨닫게됩니다.
매순간마다 주님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오늘도
주님의 것이 되어갑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순교자들처럼 가장 강력한
실천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보다 더 행복한 행위는 없기 때문입니다.
전혀 다른 삶이 우리를 위해 준비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은 가장 깊은 데서 이루어지는 우리의
가장 절실한 내적인 봉헌입니다.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를 부르셨던 예수님처럼
우리또한 가슴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기도의 사람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따름은 숙제가 아니라
가장 큰 행복이 됨을 믿습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서울]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2016년 다해 9월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루카 5,1-11
오늘은 9월1일입니다. 한국교회는 9월 달을 ‘순교자 성월’로 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은
순교자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임을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순교자
성월인 9월 달을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뜻이 먼저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강하면 산도 옮길 수 있습니다!’ 사목을 하면서 몇
번의 체험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이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저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치유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어렵다고 한
자매님이었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에게는
첫 영성체를 앞둔 늦둥이 딸이 있었습니다. 저는 기도 중에, 자매님께서
딸의 첫 영성체를 볼 수 있게 해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가족들과 손을
잡고 기도하는데 뜨거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자매님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건강을 회복하셨습니다.
선교의 체험이 있었습니다. 시골 성당에서 사목할 때입니다. 가정
방문을 하면서 태권도 사범을 하던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매님께 본당에서 태권도를 가르칠 수 있도록 부탁을 했습니다.
처음에 7명이 시작했던 태권도는 제가 떠날 무렵에는 100명이
넘었습니다. 태권도를 배우는 아이들이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았고,
세례를 받는 아이들 때문에 부모님들도 성당에 오셨습니다. 도복에는
성당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도복을 입고 학교에도 가고,
장터에도 가고, 강가에도 갔습니다.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성당으로
왔습니다.
산을 깎아 평지를 만드는 체험이 있었습니다. 태풍 곤파스 때문에
성당과 마주한 아파트의 옹벽이 밀려났습니다. 서울시장이 성당을
방문했습니다. 성당 앞마당의 산을 깎으면 앞으로 태풍이 불어도
안전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매달 구청 교우들을 위한
미사를 다녔습니다. 구청의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하였고, 성당
앞마당의 산을 9미터 정도 깎았습니다. 덕분에 성당 앞마당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부였던 제자들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입니다.’ 어부였던
제자들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박해와 고통을 이겨내는 강한 신앙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담대함이 있었습니다. 가진
것을 나누며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것이 신앙의 신비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기쁨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가야할 신앙의 길을 제시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인간을 두고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바오로도 아폴로도 케파도,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서 그물을 쳤고,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우리의 재능은 늘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더 많은 축복과
은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가족,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분들이 바로 내가 외로울 때, 내가 어려울
때, 나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근심, 걱정은
주님께 맡겨드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내가 가야할 깊은 곳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9월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 루카 5,1-11
내가 가야할 깊은 곳
안주하고 있던 곳에서 어디로 떠난다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희망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향한다는 것은 새로운 것에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더 좋은 것을 기대하면 희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길을 떠났던 아브라함,
주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길 바랐던 성모님의 모습에서 “절망
속에서도 희망”(로마4,18) 해야 한다는 믿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많은 수고와 땀을 통해 일구어 자리를 잡은 삶의 터전을 떠난다는
것은 많은 미련과 아쉬움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늘의 명을
받았으면 후회가 없어야 합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도 떠남에 대해서 예민함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사이동시기가 되면 이런저런 소문이 떠돕니다.
'누가 어디로 간다더라' 하는 구체적인 얘기도 나옵니다. 그래서 기대를
했다가 실망하는 이도 있고 그 반대도 있습니다. 어떤이는 더 있고
싶은데 떠나라는 명을 받고, 빨리 떠났으면 좋겠는데 더 있으라는
명을 받기도 합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그러면서도 내일 당장 떠날
것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본분이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당사자가 되면
쉽지 않은 가슴앓이를 하기도 합니다. 때가 되면 자기가 움켜잡고
있던 모든 것을 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떠났으면 미련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안주하면 더 이상 성장할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을 때
떠나야 합니다. 영광까지 누리려한다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시몬 베드로는 고기 잡는 어부였습니다. 어부가 고기를 잡는 이유는
생계를 유지하고 더 나은 윤택함을 누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밤새 고기를 잡으려 애썼지만 잡지 못했습니다. 실망 속에 그물을
정리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하셨습니다. 그리고 시몬은 말씀대로 그물을 내렸고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매우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했더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밤새 한 마리도 잡지 못했는데
말씀대로 했더니 차고 넘쳤습니다. 순명이 기적을 낳았습니다. 믿음은
순명을 낳고 순명은 기적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기쁨보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어부가 많은
고기를 보고 두려워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지만 현실입니다.
전에는 고기만 봤는데 이제는 능력의 예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뜨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드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하고 고백합니다. 그는 주님을
가까이 모시기에는 너무도 부족한 자신의 모습을 또한 보았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하시며 죄 많은 자의 고백을 기쁘게 받아들이셨습니다. 마침내
주님의 능력과 자비를 체험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자기의
어부로서의 지식과 경험, 상식, 그야말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부가 배를 놓고, 고기를 놓고 떠난다는 것은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두려움을 없애주시고 사람을 낚을 사명을 주시니
절망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고기 잡는 어부가 아니었습니다. 인생의 목적과 의미가 바뀌는
제자로서의 길을 걸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사도로 살게 된 것입니다.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떠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내가 잡고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말합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양식, 지식이나 경험, 업적, 애착….인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상기하며 내가 가야할 '깊은 곳'을 보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주님을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는 하나를 버리는
가운데 새롭게 태어나길 희망합니다. 거듭나고 싶은 만큼 버려야
하겠습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 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의 지혜
2016년 다해 9월1일 연중 제22주간 목요일
"모든 것이 다 여러분의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입니다."
독서: 코린토 1서 3,18-23
영국에서 이런 살인사건도 있었습니다. 남편을 사별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설움 받으며 살던 어떤 영국 어머니는 독자 티모스
베이커를 무시 받지 않는 아이로 키우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이든
1등을 하라고 교육하였습니다. 고등학교를 수석 졸업하였고 영국
옥스퍼드는 물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도 합격 통지서를 보내왔습니다.
그 합격 통지서를 받던 날 저녁 어머니와 여자 친구 때문에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어머니는 공부를 마친 후 더 좋은 환경의 여자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 당장 헤어지라고 했고 화가 난 아들은 어머니를
야구방망이로 때려 숨지게 하였습니다.
기자회견 때 티모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난 어머니로부터 무조건 1등을 하도록 강요받고 살았다. 그리고 나의
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쟁취해야 한다고
배웠다. 나는 반드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했다. 나의 꿈을 막는 자는
누구도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런데 어머니가 나의 꿈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그 장애물이 어머니일 지라도
내 앞에서 치워버려야 했다. 그래서 내 꿈을 막는 어머니를 죽여버릴
수밖에 없었다. 내 어머니의 가르침에 따라...”
[고 김성수 목사의 창세기 설교 중 발췌]
무섭고 어쩌면 읽기도 겁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우리
집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그리고 전 세계에서 각기 다른 양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세상의 지혜란 것이 얼마나
허망합니까? 세상은 경쟁을 부추기고 경쟁에서 승리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결국 그 경쟁주의가 괴물을 만들어내어 그렇게 부추긴 사람까지
잡아먹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인도에 물소 달리기 대회가 유명합니다. 각 동네마다 전통적으로 물소
달리기를 하며 축제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마을에서 1등 하는
이에게 우리나라 돈 35,000원 정도의 상급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축제는 지옥이 되고 말았습니다. 즐기지 못하고 걱정 근심
속에 경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급기야 그것 때문에 살인사건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정말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아이들 때부터
경쟁을 시키는 것입니다. 약한 아이의 손을 잡고 달리기를 함께 꼴찌
할 줄 알았던 아이들이 이제 서로를 버리고 짓밟고 승리하는 것을
배워갑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천국에서 빠져나와 지옥에 살게 됩니다.
이런 모든 것이 바로 부모들의 열등감 때문입니다. 아이들을 통해
자신들이 높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키워놓은 아이들에
의해 자신들도 그렇게 밟히게 될 것은 알지 못합니다. 이런 것이 세상의
지혜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거든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경쟁을 찾으면 자신은
경쟁에서 낙오되는 것으로, 세상 사람들이 돈을 좋아하면 자신은 더
가난해지는 것으로 어리석게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팩 쵸프라는
자녀들을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로 키웠습니다. 자신들은 잊고
이웃들에게 어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며 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두 아들은 세상 사람들이 보는 눈에서도
성공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키워준 부모도 존경을 받습니다.
“주님께서는 지혜롭다는 자들의 생각을 아신다. 그것이 허황됨을
아신다.”
결코 세상 것으로 자랑 삼는 사람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주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사람만이 참 자랑거리인 사람들로 만드십시오. 세상과 세상이
만들어내는 어리석은 가치에 휩싸이지 않도록 세상과 맞서서 싸워
이겨낸 그리스도를 닮은 아이들로 키워야합니다. 그래야 부활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지혜에 속해있습니까, 아니면 하느님의 지혜에 속해있습니까?
-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수원 교구 영성관 관장 전삼용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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