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앎이 먼저인가 믿음이 먼저인가?]
영역을 불문하고 그대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믿음이 중요한가 지식이 중요한가? 무엇이 주가 되고 무엇이 부가 되는가? 무엇이 주어가 되고 무엇이 술어가 되는가?
만일 그대가 기독교인이라면 하느님의 뜻(의지)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인가 하느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하는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이기도 하며, 종종 확신편향을 보이거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함이다.
만일 그대가 정치인이거나 정부 관료라면 대통령의 의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하는가 대통령의 지시를 따르는 게 우선하는가?
대통령의 심기만을 살핀다거나 대통령 팔이로 자신의 입지를 세우려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기에 말이다.
만일 그대가 법조인이라면 헌법 정신을 우선해서 보는가 법률 조항들을 우선해서 보는가? 법률 조각 맞추기로 헌법 정신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왔기에.
만일 그대가 회사원이라면 회장님의 뜻이 우선하는가 회사가 정한 매뉴얼을 우선으로 보는가? 회장님의 지시를 지상명령으로 여기고 무조건 예스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K팝의 경우를 보면, 시스템으로 성장했으나 지금은 개인기만 남고 시스템은 망가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시스템이 중요한가 개인기가 중요한가? 이수만 박진영 양현석 방시혁 등이 이룬 것은 시스템이었다고 본다. 개인기들의 합이 하나의 시스템을 형성했겠기에.
믿음이 먼저인가 앎이 먼저인가, 즉, 의지가 중요한가 아는 것이 중요한가는 중세 스콜라철학의 주요 과제로 논쟁점이 되었었다. 과거로 돌아가 중세 크리스트교의 논쟁을 한 번 살펴보자.
scola는 '학교'(교회와 수도원에 부속된)를 뜻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안셀무스,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같은 거장들의 신학 연구소였다. 여기서 성향이 갈리는데, 주지주의 주의주의 신비주의로.
스콜라 철학의 선구자는 에리우게나(J.S. Eriugena, 810?-880?). “진정한 종교는 진정한 철학이요, 진정한 철학은 진정한 종교이다.”라며 ‘神學’ = ‘철학’이라는 스콜라 철학 성격을 단적으로 표현. 믿음이 곧 앎이라는.
스콜라 철학의 아버지는 칸타베리의 대주교 안셀무스(Anselmus, 1033-1109). 안셀무스에서 시작되는 12세기의 前期스콜라 철학. 중심 문제는 知識과 信仰의 문제. 안셀무스는 신앙이 지식보다 앞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식이 가해진 신앙은 지식없는 맹목적 신앙보다는 좋은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나는 알기 위하여 믿는다 credo ut intelligam”고 말한다.
스콜라 철학 선구자들은 모두 플라톤이즘을 거점으로 삼았다. 12세기는 유럽 봉건적 질서의 안정기. 이 시기에 여러 대학이 성립, 특히 빠리 대학은 유럽의 학문적 중심지였다.
그러나 십자군 운동을 계기로 12세기의 유럽에 아라비아의 철학과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다시 등장하여 13세기는 스콜라 철학의 전성기, 토마스 아퀴나스(T.Aquinas, 1225-1274)와 둔스 스코투스(J.D. Scotus)가 그 대표자.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입각해 스콜라 철학을 대성. 철학은 경험에서 출발해서 이성적 보편적인 것으로 나아가는 학문.
理性은 ‘自然의 빛 lumen naturale’으로서 自然을 비칠 수는 있지만, 三位一體, 최후의 심판 같은 진리를 비칠 수는 없고, 오직 信仰에 의한 神의 ‘恩寵의 빛 lumen gratiae’에 의해서만 파악되는 진리.
여기에 非合理的인 것을 파악하는 神學이 성립, 철학은 신학에 접근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고, 철학을 ‘神學의 侍女ancilla theologiae’라고 보았다.
초기 스콜라 철학은 “普遍은 實在性을 가지며 個體에 앞서 존재한다.”는 實在論(realism ; 안셀무스, 아퀴나스)과, “普遍은 단순한 추상적 槪念에 불과, 다만 個體만이 實在한다.”는 唯名論(nominalism)이 서로 대립.
14세기에는 唯名論이 다시 부흥, 스콜라 철학의 붕괴가 진행. 14세기 유명론 부흥의 주장은 윌리암 오캄(William Occam, 1280-1349).
그는 보편은 다만 개체에 대한 名辭 nomina에 지나지 않으며, 참으로 실재하는 것은 개체라고 주장.
'보편으로서의 교회'가 차츰 그 힘이 쇠퇴, 교회적 지배로부터 독립한 개개인이 적극적으로 자기 주장을 하게 된 당시의 사상적 표현이었다.
유명론의 입장에선, 경험으로 파악될 수 없는 신의 존재나 성질에 관해서는 학문이 성립될 수 없고 다만 믿음으로써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지식과 신앙, 철학과 종교는 완전히 분리되었고, 오캄의 唯名論은 근세 영국의 경험론의 선구가 되었다. 또한 그는 국가는 개인이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 이루는 집단이라고 주장하여 사회계약설의 선구자가 되기도.
아퀴나스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철학과 신학의 종합. 이러한 종합을 해체하려는 시도가 있던 13세기에 존 둔스 스코투스, 윌리암 오캄, 요한네스 에크하르트 등이 있었다.
둔스 스코투스는 이성의 우위에 반대, 神의 意志가 至高하다는主意主義(voluntarism)
오캄은 보편자가 존재를 소유한다는데 반대, 보편자는 단지 단어들에 불과하다는 名目論(nominalism) 혹은 唯名論.
에크하르트는 신학에서 이성적 정교한 구성에 반대, 영적 수련에 의해 신의 실재를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는 神秘主義(mysticism).
이들 세 사상이 신학과 철학을 분리시키는 데 큰 역할.
오캄은 "人間"과 같은 보편 개념이 제임스나 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것은 제임스와 존이 分有 혹은 關與하는 실재적 인간성의 실체가 존재해서가 아니라, 단지 제임스와 존의 본질과 같기 때문이라고.
"人間"과 같은 보편 개념들은 단지 개체들이 이성이 가진 개념들을 나타내기 위한 記號이거나 名辭에 불과. 따라서 인간의 이성은 개체의 세계에 국한된다.
오캄의 입장은 순수하게 경험적. 정신은 보편 개념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인식하는 것은 개체나 그것의 성질 뿐이다. 그런 용어들은 개체의 집합을 나타내는 용어이거나 명사에 불과.
보편 개념은 구체적인 개체들의 세계를 넘어선 실재의 영역을 논하지 않는다. (→경험론의 선구)
아퀴나스는 보편자는 개체들이 존재하기 이전에(ante rem) 신의 정신 속에 내재하는 이데아로서 존재하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보편자에게 형이상학적 위치를 부여.
그러나 오캄은 스코투스와 마찬가지로 신의 이데아를 거부했으며, 신에게 내재하는 의지가 최고라고 주장.
인간이 신의 정신 안에 이데아로서 존재하는 영원한 원형을 반영하기 때문이 아니라, 신이 그런 식으로 인간을 만들고자 의지했기 때문에 인간은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보편자는 人間의 精神 외부에 존재하는 그 무엇도 아니다.”라고 오캄은 말한다.
오캄의 입장에선 신학과 종교적 진리는 철학이나 과학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따라서 그에겐 이중적인 진리가 존재. 하나는 과학이나 철학을 통해, 다른 하나는 계시를 통해 획득. 전자는 이성의 산물, 후자는 신앙의 문제. 그 진리들 상호간에는 서로 영향을 미칠 수 없다.
오캄의 면도날(Ockham's razor)로 알려진 그 유명한 명제는 그의 주도적인 원리들 가운데 하나. 그것은 다음과 같다.
“적은 수의 원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불필요하게 많은 원리에 의해 설명되고 있다.”
그는 보편 개념들은 유사한 개체들이 인간의 정신 안에서 일으키는 개념들에 대한 단순한 명사에 불과한 것으로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 그 용어들은 사물들을 넘어선 실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오캄의 유명론과 스코투스의 주의주의가 결합됨으로써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은 분리되고 중세의 종합은 와해.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神秘主義는, 이성에서 감정으로 강조점을 이동.
그는 알베르투스나 아퀴나스가 해 놓은 것을 극단으로 몰고 갔다. 그는 자신의 경건함을 신학적인 언어로 나타내면서
“신은 존재 위에 있다.”
“神과 독립적으로 無가 존재한다.”
라는 말을 대담하게 하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存在와 知識을 하나로 보고 있다.
인간과 신의 합일은 이성을 초월한 경험이며, 에크하르트는 신비적 합일을 표현하기 위해 대담하게 無量이나 暗黑과 같은 용어를 사용.
그러나 신과의 합일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 이루어질 수 없다. 단지 신의 은총과 계시를 통해서만 도달되며, 영혼이 닿을 수 있는 최고의 심연 속에서만 신을 완전히 파악할 수 있다.
왜냐하면 “성찬식에서 빵은 곧 예수의 육신인 것과 같이 우리는 신으로 변환되고, 신으로 화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어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신비주의가 강조하고 있는 感情의 요소나 오캄의 경험론이 요구하는 과학적인 분위기는 새로운 주목을 받게 되었다.
kjm _ 2026.5.17
K / 2026.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