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타보
행동의 서약
유대교는 교리가 아닌 행동을 중시합니다.
‘키 타보(כִּי תָבוֹא, Ki Tavo)’ 파라샤의 축복과 저주에 관한 서사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대치를 제시하시며, 이것이 믿음의 언약이 아니라 행위의 언약임을 분명히 하십니다.
현대 유대인 철학자 데이비드 하트만은 축복과 저주가 계명을 준수하거나 준수하지 않는 것에 대한 반응으로 인간에게 문자 그대로 가해지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대신 하트만은 우리의 토라가 이 저주와 축복들을 열거함으로써 거룩하게 행동하고, 이를 통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실현하는 것의 중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합니다. 축복과 저주는 우리의 언약적 의무를 상징적으로 상기시켜 주며, 행동에 뿌리를 둔 언약에 대한 우리의 헌신을 강화해 줍니다.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 랍비 또한, 우리가 선과 악에 대처하기 위해 고군분투할 때, 축복과 저주가 신과의 동반자 관계를 느끼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언급합니다.
단순히 토라에 기록된 율법을 준수하는 것만으로는 우리 삶에 지속적으로 거룩함을 가져오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토라는 특정 행위가 금지된다는 것을 엄격하게 규정할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책임을 받아들이도록 폭넓게 요구합니다.
헤셸은 우리의 행위가 언약적 관계의 표징일 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변화시키는 적극적인 매개체로서의 중요성도 이해합니다. 『인간을 찾는 하나님(God in Search of Man)』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씁니다.
“인간은 행동을 통해 삶이 진정 무엇인지, 해치고 상처를 입히며, 파괴하고 망가뜨릴 수 있는 자신의 힘, 그리고 기쁨을 얻고 타인에게 베풀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깨닫게 된다… 행동은 시험이자 시련이며, 위험이다. 우리가 행하는 일은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여파는 막대하다.”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처방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미쯔보트 벤 아담 레하베로(מצוות בין אדם לחברו)’—즉, 인간 관계를 이끄는 계명들—은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실현해 줍니다. 이 토라 구절에 상세히 기술된 미쯔보트의 대부분은 다른 사람들과의 정의롭고 자비로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사실상 정의로운 공동체를 조성하기 위한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이웃에게 은밀히 해를 끼치거나, 뇌물을 받는 것을 금지하는 규정은 우리가 사회 정의 활동을 통해 수호하고자 하는 보편적 인권을 뒷받침합니다. 토라는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옹호하며, 우리의 문학적 전통은 ‘자선을 베푸는 가장 높은 형태는 누군가가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는 주장을 통해 이를 한층 더 고양시킵니다.
이처럼 자주 인용되는 미쯔바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공동체에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힘을 실어주고 오래 지속되는 지원은, 그 공동체가 스스로를 돌보고 보호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러한 발전은 또한 점점 더 자립해 가는 공동체가 새로 얻은 지혜와 자원을 통해 이웃을 도울 수 있게 함으로써, 종종 파급 효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
행동을 통해 하나님과의 언약을 실현하는 것은 저주에서 벗어나 축복으로 균형을 기울게 합니다. 헤셸이 주장했듯이, “거룩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억눌러 두신 찬송을 되풀이하며… 하나님의 미완성된 노래를 읊조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의지하시며, 우리의 행실을 기다리십니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치유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만들 기회가 있습니다. 토라에 기록된 축복과 저주의 목록은 우리가 매일매일 세상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동반자가 되기로 선택해야 함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이 일을 개인 차원에서 시작하지만, 진정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면 지역사회 차원에서도 이를 실천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단지 우리 개인의 삶의 운명만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운명도 함께 쥐고 있습니다.
거룩한 행동을 통해 우리는 우리 가운데 하느님의 현존을 불러일으키며, 하나님의 정의와 선하심, 자비와 사랑이 세상에 들어와 세상을 변화시키는 거룩한 도구가 됩니다.
Provided by American Jewish World Service
By Rabbi Jessica K. Marshall (ordained as a Reform rabbi from Hebrew Union College in New York City)
"내일 할게요“
”오늘 여호와 너의 하나님께서 너에게 이 법도와 규례를 지키라고 명하신다...“ (신명기 26:16)
사람들은 흔히 “오늘은 인생의 중요한 질문들을 모두 해결할 시간이 없지만, 내일은 있잖아. 내일이면 시간이 많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똑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런 상황이 몇 년이고 계속되어 한평생이 지나가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위험을 경고하며 토라는 “오늘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노니 이 율법들을 행하라.”라고 말합니다. 토라는 우리에게 미루지 말라고, 영적인 의무를 미루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삶 속 하루하루는 저마다의 도전과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오늘 이루어야 할 일은 내일로 미룰 수 없습니다. 내일도 또 다른 도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구절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나이가 많아(Avraham and Sarah were old, well on in years)…”(창세기 18:11.)라고 말합니다. 문자 그대로 이 표현은 “그들은 남은 날들을 가지고 왔다(they came with days)”라는 뜻입니다. 조하르는 아브라함과 사라가 남은 날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삶을 마감했기 때문에 남은 날들을 온전히 누렸다고 설명합니다.
피르케이 아보트의 미쉬나는 "시간이 나면 공부하겠다라고 말하지 말라. 어쩌면 시간이 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토라 공부를 더 나은 때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 그런 날이 영영 오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걱거리와 방해 요소들이 있기 마련이다“라고 전합니다.
코츠커 레베는 이 미쉬나를 약간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공부할 시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지 마라. 어쩌면 당신의 특별한 과제는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공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압박감이 사라지기를 기다린다면, 영원히 기다리게 될지도 모른다!
By Rabbi Eli Scheller (an outreach professional, lecturing and leading Shabbatons)
▶글 전체 목차는 아래 배너를 클릭하시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