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Ⅲ-73]톤백(t백)을 아시나요?
5년째 알량하게 벼농사를 지었지만, 엊그제 친구가 ‘톤백’이라고 하길래 그게 무어냐고 물었다. 톤백은 갓 수확한 나락이 1000kg가 들어가는 큰 백을 말한다. 쉬운 말을 몰랐다. 나락 1t이라면 ‘지게차’가 아니면 움직일 수 없는 어마무시한 무게. 우리 동네는 1다랭이(3마지기, 600평)를 1필지라 하는데, 150평이나 300평을 1마지기로 하고 1200평을 1필지라 하는 지역도 있다. 1필지 나락을 건조하니 1.4톤백(작년엔 1.8톤백). 어제 정미소로 옮겨 방아를 찧었다. 지난해는 20kg 포대가 37개 나왔는데, 올해는 몇 개 나올지 궁금했다. 벼멸구 폭격을 받은 ‘안평벼’에 비해 병충해 피해가 적은 ‘신동진 벼’였으나 아무래도 수확량이 적을 것같았다. 그런데, 웬걸, 40포대(도정료 3포대 포함)가 나왔다. 그러니 병충해 피해가 없었다면 45포대는 나왔을 터. 풍년인 셈이다. 지난 일요일 황금물결로 출렁이는 논산 강경평야를 조금 드라이브를 했을 때, 그곳은 병충해 하나 없는 ‘풍년바다’였다. 우리 동네 처참한 들판이 떠올라 은근히 샘이 나기까지 했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아무튼, 한로寒露인 어제 도정搗精까지 했으니 가을 갈무리는 일단 한 셈이다. 툇마루에 30여포대를 쌓아놓고 보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마음부자 되는 것도 일순간이다. 이제 밭작물(작두콩, 들깨, 서리태, 고구마 등) 수확이 남아 있지만, 손바닥만한 면적 시나브로 하면 될 일. 막 찧은 햅쌀을 서둘러 형제자매들과 사돈댁에게 택배를 보냈다. 20kg 5만원, 박스값 포함 택배비 7000원. 차마 후불로 할 수는 없어 지출이 조금 나가지만, 돌아오는 길 마음은 한없이 뿌듯하다. 이것이 농촌 고향에서 사는 맛이 아니고 무엇이랴. 간간이 농산물(심지어 알밤까지)을 간간히 이곳저곳에 택배로 부치는 것은 순전히 조건없는 우애가 아니고 무엇이랴. 나로선 쌀농사 지어 수익을 남길 생각이 눈곱만큼 없지만, 생업生業인 농민들을 생각하면 함부로 쉽게 말할 일은 아니다. 그동안 나라는 존재를 아껴주고 은혜까지 베풀어준 친구들과 지인 몇몇에게 보내고, 몇 포대라도 남은 게 있으면 팔 수도 있다. 식당을 하는 막역한 친구가 10포대를 보내달라 한다. 1포대는 보너스로 줄 생각이다. 흐흐.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게 아니고 아예 춥다. ‘반소매 추석’을 지낸 게 엊그제인데, 점퍼를 찾아 입었다. 이제 곧 서리도 내리리라. 주먹만큼 굵직한 대봉시가 노랗게 익어가고 있다. 아무래도 가을이 앞으로는 갈수록 짧아질 것같고, 겨울은 여름이 더운 만큼 더 추워질 것같은 불길한 조짐이 감돈다. 동해안에 열대성 어류들이 판을 친다는 뉴스다. 사계절이 뚜렷한 금수강산 삼천리 우리나라도 옛말이 되어 갈 것이다. 문제다. 지구촌이 모두 그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지만,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은 게 아닌가 걱정된다. 우리야 친구들끼리 ‘지금 죽어도 호상好喪’이라는 농담을 하지만, 우리 슬하 총생叢生들과 그이후 세대들의 삶은 어떠할지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조물주造物主를 생각하며, 심란한 이런 ‘우주적 마음’을 의지할 종교宗敎가 필요하고, 무종교자인 나도 특정종교를 가져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도 자주 든다. 지금도 대처大處에서 살고 있다면 이런 생각이 별로 들지 않을 것같은데, 자연自然을 날마다 대하고 사는 농촌생활을 하니 그런 것같다.
그나저나 오늘은 578돌 한글날. 우리 초중고 학생들의 문해력文解力이 형편없다는 우울한 뉴스가 어제부터 방송을 타고 있다. 이 날을 즈음해 해마다 나오는 ‘우리말을 너무 모른다’‘우리말을 아끼고 애용하자’는 식의 ‘반짝뉴스’같은 것이지만, 입맛이 매우 쓰다. 한국교총이 교원 5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학생 문해력 실태 교원 인식 조사' 결과에 의하면, 92%가 문해력이 크게 저하돼 국가 차원의 진단과 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족보族譜를 족발보쌈세트로, 두발頭髮을 두 다리로, 금일今日을 금요일로 이해하거나, 선생님이 시발점始發點이라 하자 ‘왜 욕을 하냐’고 따지는 학생, 왕복往復과 수도首都의 뜻을 모르는 중3, 풍력風力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고3학생. 이것은 이상기후 만큼이나 큰 문제다. 모두의 책임이다.
기초한자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당국과 책읽기를 질색팔색하고 온통 핸드폰에만 매달리는 학생들. 대학 교직원으로 일할 때,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따 귀국한 경제학과 교수가 ‘경제經濟’를 한자로 쓰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믿어지는가. 심지어 ‘유학의 본산’ 성균관대조차 신입생 중 70%가 부모 이름을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조사도 있었다. 자기 이름도 괴발새발 외국어가 따로 없을 정도로 삐뚤빼뚤 쓰는 학생이 태반이다. 긴 티셔츠에 새긴 ‘용 용龍’자가 무슨 글자인 줄 모르고 디자인 캐릭터라고 말하는 대학생을 직접 본 적도 있다. 설마, 나의 두 아들도 제 부모 이름 한자를 쓰지 못하지는 않겠지. 갈수록 낮아지기만 할 문해력을 어떻게 할 것인가. 지하의 세종대왕의 통곡은 그치지 않을 것같다. 하루빨리 기초한자 300자든 500자든 검인정교과서에 모두 병기倂記하라. 이것은 ‘너무나 시급하고도 아주 중요한 과업’(very very very urgent & important task)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