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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두레문학」 원문보기 글쓴이: 하루/임실근
“여보세요. 지금 애기 봐줄 사람 있어요. 2시간만 봐주면 3만원 드릴게요.”
젠장, 용역업 5년 동안 별별 의뢰가 다 들어오긴 하지만, 그래도 길가는 놈 한방 때려 주면 50만원 주겠다는 전화보다는 났다. 시계가 벌써 오후 2신데, 아침부터 일하는 습관이 몸에 벤 사람들을 일일이 전화하여 연결시켜 주는것이 무리라는 생각과 무엇보다 106호 법정이라는 아주머니의 다급한 음성에,,,,.
“남자도 가능합니까?”
“그래요. 아저씨가 좋겠네요. 빨리 오세요.”
“그렇긴 한데, 애가 몇 살인교.”
“4살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106호 법정 앞에요.”
“106호라면 울산법원을 말하는 겁니까?"
"예에"
"예에,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가겠습니다.”
법원 주차장을 건너서니, 106호라는 파란색 글씨가 출입문 오른쪽 위에 붙어 있는 것이 내 국민학교 교실 문패를 연상 시킨다. 출입문 앞에 갓난 애기를 업고 황망히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노라니, 영락없는 의뢰인 이었다.
“이 아인가 보죠.”
“ 아! 예 아저씨 빨리 오셨네요. 이 앤 동생이고, 저기 저 아이 입니다.”
전화 속에서 말한 4살배기 아이는 106호 맞은편, 간이 구두수선집 앞에서 슬리퍼를 발로 지근지근 밟고 있다. 한눈에 별난 아이 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법정 문지기 아저씨는 애기 봐줄 사람이 나인줄 어떻게 알았는지, 아주머니를 법정 안으로 재촉한다. 다급한 아주머니는 업고 있던 갓난아기와 멜빵을 한꺼번에 맡기고, 슬리퍼 밟는 큰아이를 책임지라는 말도 없이 다급히 법정 안으로 들어간다. 아무리 따스한 겨울이다 할지라도 어머니 등품과 내 품의 체온이 다른지, 품에 안기기를, 30초가 지났을까? 눈을 두 번 껌뻑껌뻑하고 자는가 싶었는데, 지어미가 아닌 듯, 직감으로 다시 한 번 깜박 거리고 나서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아이쿠! 이거 큰일 났다." 두 시간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찰나, 빵빵 차 소리와 함께, 법원 주차 관리요원의 호루라기 소리가 들린다. 유별나게 보이는 4살배기 아이는 법원 광장, 주차도로로 뛰고 있다. 아니 가고 있다. 나는 갓난아기를 안은 채, 큰 아이 곁으로 뛰는 듯한, 발걸음으로 다가가 아이 손을 잡았다.
“애야 이리 온, 아저씨 하고 놀자.”
큰아이는 이제까지 엄마가 자기 곁에 있는 줄 알고 뛰었을 것이다. 내손이 엄마 손이 아닌 줄 알고부터, 찌푸둥한 인상이다. 곧 먹구름 속에서 비가 내릴 것 만 같았다. 폭풍우를 동반한 소나기가 아이의 감정을 엄습하더니, 이내 “으아앙" 하고 울기 시작한다. 오른손으로 아이를 안고 왼손으론 큰 아이 손을 잡고 “어! 그래, 까까 까가,싸 주꾸마” 무늬만 총각인 경험으로 볼 때 애들은 흑백보다 칼라를 좋아한다. 자판기 색깔이 파란색이다. “어 저기 봐라, 저기 맛있는 까까 나온다. 하늘만큼 땅만큼 나온다. 쪼매만 있까라, 응” 큰 애가 선 울음을 그치기 시작한다. 덩달아 작은 애도 그치는 시늉을 한다. 갓난아기를 자판기 옆 벤치에 내려놓고 보니, 찝질한 습기가 내 조끼에 묻어난다. 기저귀를 만져 보니 습했다. 지갑속 지폐 하나를 음료수 자판기에 넣고, 또 하나를 애한테 주면서 ‘오야 그래 착하지’ ‘엄마 화장실 갔다. 곧 올 거다.’ ‘어 그래 울지 마라 기저귀 갈아줄게,’ ‘아이구 요놈의 새끼들 그래 귀엽다.’ ‘착하다.' 하면서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토다닥' 자판기 음료수 떨어지는 소리에 아이의 눈길이 멈춘다. 떨어진 동전을 다시 옆 커피 자판기로 옮기면서 ‘우와 인자 안 우네. 우리 착한 보배들, 너희들은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기 때문에 울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하면서 음료수 캔을 개봉 후, 큰 아이에게 주었다.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인지, 주는 캔이 빨간색이라 그런지 아이의 정서는 서서히 평상심을 찾고 있다. 그런데 한 모금 꼴깍 하더니, 또 멍멍한 기운이다. "토드득" 동전 떨어지는 소리에 눈길을 멈춘 아이는 커피를 원하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안 죽으면 보약이다.' 라는 생각에 '울지만 말아 다오'를 염원하며 자판기 에서 나온 커피를 식혀 주기 위해 호호 불었다. 그리고 나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살피니, 힐끔 곁눈질로 우리를 쳐다보면서 누군가 지나간다. 아니 나를 쳐다보며 지나간다. 지나가면서 ‘쯔쯔 마누라 도망갔나, 아니면 이혼 재판 하러 왔나,' 별별 소리가 내 귀에 들리는 듯하다.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갓난아기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앞으로 고꾸라진다. 재 빨리 한손으로 아이의 가슴을 잡았다. 잡기가 무섭게 커피를 의자에 두고 아이를 안으면서, ‘어 그래 착하다.너가 좋아하는 꿀설탕 줄게, 큰아이 너는 꿀설탕 섞인 커피 주꾸마' 꿀설탕이 뭔지도 모르는 아이가 커피를 한모금 하더니, "으아앙" 하고 울기 시작한다. 허리케인을 동반한 울음이다. 속에서 천불이 난다.
“얌마! 조용히 안하나 오늘 확 때리 지기뿌기마” 라는 말이 목구멍에서 유유히 타 올랐다가 너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이 아니라 공짜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아이 장래, 정서상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서 이 아이 나이로 내가 빨려 들어간다.
그날이 장날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어머니는 느지막하게 쌀 한말을 이고 신작로로 나간다. 나는 어머니가 장에 갈 때 마다 보상심리로 10원을 받았다. 그날도 ‘꽈자 사무꾸’로 10원만 달라고 했다. 어머니는 싸리삽짝을 나서면서 없다고 하였다. 어머니는 시냇물을 지나고 있었다. 나도 시냇물 다리를 건너면서 10원만을 외쳤다. 어머니가 대숲을 지나간다. 나도 대숲을 지나면서 10원을 외쳤다. 어머니가 길가에 널브러진 대나무 가지를 잡고, 나를 바라보는 속마음 속에는, 제발 집에 들어가라는 애원의 눈길이 가득했다. 난 몇 걸음 뒤로 도망치는 시늉만 한다. 또 다시 신작로 버드나무 가로수에 숨어 '10원만'을 외쳤다. 어머니는 정류장 점빵 앞에, 우두커니 차를 기다리고 있다. 강 건너 마을에 사시는 아저씨 한분도 빨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다가가도 어머니는 나를 심하게 꾸중하지 않는다. 남의 눈을 의식한 어머니는, 그냥 오늘은 돈 없으니 집에 가서 놀아라는 말 뿐이다. 그럴수록 나는 더더욱 10원이 갖고 싶었다. 치맛자락을 잡고 끝까지 10원만,10원만,10원만을 외쳤다. 강 건너 아저씨는 어머니와 내 사이를 어느새 비집고 들어와서, “옛다, 50원 그래 착하지, 꽈자 실컷 사먹어라” 나는 멍했다.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머니 얼굴을 한번 쳐다보았다. 무안한 기색이 감돈다. 50원을 손에 꼭지고 집 쪽으로 한없이 뛰었다. 한참 뒤 빨간 버스는 어머니를 태우고 별나라 여행을 떠나는 것만 같았다. 기차가 어둠을 헤치고 은하수를 건너서 우주 정거장에 햇빛이 쏟아지는, 그런 미지의 세계, 희망의 나라로 은하철도 999를 타고 달리는 것만 같았다.
20분도 채 안되어 아이 어머니가 법정에서 나왔다. 나오면서 “아이고 이놈의 재판” 하면서“수고 하셨지 예” 그러면서 아이 기저귀 갈 곳을 찾았다. 법원 밖 지하 다방에 들어서니, 훈훈한 난로가 시뻘겋게 타고 있다. 손님이라곤 구석진 곳 20대쯤 보이는 아가씨가 수심을 가득안은채 우리를 쳐다본다. 왁자지껄 큰아이는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을 신은 채, 쇼파 위를 껑충껑충 뛴다. 뛰다가 재미가 없는지 아가씨 자리에 가더니, 물 잔을 꺼집어 당긴다.
“아이구, 이놈아 오늘따라 왜이리 분잡니, 미안합니다. 내가 결혼하고 6년 만에 이 애를 낳아서 그런지 버릇이 없어요.”
“신랑은 젊어 보이네요.” 라고 다방 아주머니가 대신 말을 받아건낸다.
“우리 신랑 아이라예”
커피 두 잔과 토마토 쥬스 한잔을 시킨 후, 이것만 받으라며, 나에게 2만원을 건넨다. 나는 웃으면서 받았다. 그 웃음의 의미는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다는 표현도 될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차기름값, 주차비, 광고료, 그리고 내가 태화강 고수부지 산책하며 얻을 수 있는 무형의 소득 즉,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면, 3만원이 마땅한데, 아저씨가 3번째라면서, 가사원 아주머니를 두 사람 불렀는데, 두 사람 다 손사래를 치며, 가 버리더라는 것, 그래서 온사람 교통비 각각 만원씩,기타 등등 10만원이 들어갔다는 소리에, 우와! 애 키우기가 이렇게 어렵다 말인가? 이 애들이 과연 커서 부모심정을 알까?
빨간 버스가 사라진 후, 라면땅을 사먹었는지, 아이스 께기를 사 먹었는지, 기억은 없다. 다만, 해가 뉘엿뉘엿 할 때, 어머니는 별나라 여행에서 돌아왔다. 무표정한 얼굴로 삽짝 문을 꽉 닫는다. 나의 시선을 무시한 채, 부엌으로 간다. 난 멀찍이서 엄마의 행동을 조심스럽게 지켜 보았으나, 평소와 별반 다를게 없는것 같아 땅따먹기에 다시 열중하던찰나, 부지깽이를 든 어머니는 내 손목을 잡고 사정없이 팼다. 나는 사정없이 맞았다. 그 사정이 엉덩이도 좋았고, 허벅지도 좋았고 종아리도 좋았는데, 어깨까지도 좋았고, 머리도 까지도 좋았다. 그 사정 때문에 맞고 또 맞으면서, “야 이놈아 에미 얼굴에 먹칠해도 유분수지, 내가 돈 있으면 왜 안주겠니. 그마이 차비밖에 없다고 말하면 알아 들어야지, 이 망할놈아” 보리타작도 이보다 더 할 순 없었다. 콩타작도 이보다 더 심할 수 없었다. 처음 엉덩이 맞았을때 부터 울음을 터트렸지만, 그 울음은 방어본능의 울음일뿐,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머리도 어깨도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그랬는데, 어머니는 젖먹는 힘까지 동원해서 큰 스윙으로 부지깽이를 휘두르며 내 앞 허벅지를 때리는 순간 정말 아팠다. 그 아픔이 얼마나 아팠는지, 미꾸라지가 소금을 만났을때 처럼 팔딱팔딱 뛰어도 어머니는 내 손목 놓아 주지 않았다. 고저장단, 들쉼과 날쉼이 엇박자 되어 크게 울고 또 숨을 들이쉬고 크게 또 울었다. 내 울음소리가 얼마나 구구절절 했던지, 차마 볼수없던 누나가 울면서 부지갱이 든 어머니 손을 잡으며 말린다. 그 틈을 타 나는 재빨리 싸리 삽짝문 밑으로 도망쳤다. 그날 50원 때문에 과자 억수로 먹고, 부지깽이 한테 억수로 맞고, 눈탱이가 퉁퉁 붓도록 억수로 울었다.
커피를 다 마신 후, 계단을 벗어났다. 마침 택시가 왔다. 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양정동 이라고 하였다.
“집도 머네요.”
“택시 타고 가는데요. 뭘,”
2만원 중, 만원을 주면서 “택시비 하세요.”
“어머 이래도 괜찮아요. 다음주에 한번 더 부를텐데, 그때도 수고좀 해 주실거죠.”
“네에, 늦둥이나 잘 키우세요.”
택시를 마중후,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그 50원 아저씨 모습을 기억할수는 없으나 그 후덕한 마음은 내 죽는날까지 내 뇌리를 스치면서 기억되리라는 것을 느끼며, 터벅터벅 발길을 돌렸다.
일주일후, 또 연락이 왔다. 여느때처럼 애기를 봐 주었다. 지갑을 아니 가져 왔다고 하였다. 아니, 지갑을 가져 왔는데, 잊어버렸다고 하였다. 하는수없이 나는 울산 법원에서 양정동까지 내 차로 바래다 주었다. 이왕지사 인심쓰는거 좋은 인상을 심어주자. 그래야만 이 분도 또 다른사람에게 친절을 베풀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 였는지 모른다.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삶을 살다간 고 정회장님이 헌사하신 해안도로를 달릴때 였다. 왕년에 내가 단란주점을 했다는둥, 그때 내가 손님하고 양주 한병먹기, 돈 50만원 내기 시합 해서 이겼다는둥, 별의별 말이 많았다. 법원엔 무슨일 때문이냐고 물으니, 채무소송에 휘말려 그렇다고 하였다. 아파트 두챈데, 한채는 재개발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둥 어쨌다는둥 말이 많았다. 자동차 문화회관쯤 도착하니 내려달라고 하였다. 내리면서 돈을 송금해 줄테니 계좌번호를 달라고 하였다. 택시비포함 4만원을 붙여 주겠다고 하였다. 나는 그냥 웃어 주었다. 왠지 4만원이 영원히 내 통장으로 입금 안될것 같기 때문에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일주일이 지났다. 입금되지 않았다. 이주일이지났다. 입금되지 않았다. 내가 진작부터 알아채기를, 했기때문에 무덤덤한 기분으로 잊어버렸다.
어느날이었다. 그날은 자동차 문화회관 글쓰기 강좌가 있었다.강좌를 마치고 1층로비에서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런데 눈에 익은 아이가 개구스럽게 뛰어다닌다. 가만히 보니 내가 안아주었던 그 아이였다.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를 잡기위해 나타났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왠지 그분이 민망할것 같아 내가 먼저 눈을 돌려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