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9:12) 어미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찌어다
19:12 εἰσὶν γὰρ εὐνοῦχοι οἵτινες ἐκ κοιλίας μητρὸς ἐγεννήθησαν οὕτως καὶ εἰσὶν εὐνοῦχοι οἵτινες εὐνουχίσθησαν ὑπὸ τῶν ἀνθρώπων καὶ εἰσὶν εὐνοῦχοι οἵτινες εὐνούχισαν ἑαυτοὺς διὰ τὴν βασιλείαν τῶν οὐρανῶν ὁ δυνάμενος χωρεῖν χωρείτω
19:12 יש סריסים אשר נולדו כן מבטן אמם ויש סריסים המסרסים על ידי אדם ויש סריסים אשר סרסו את עצמם למען מלכות השמים מי שיוכל לקבל יקבל׃
지금까지 고자에 대한 오해가 있어왔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논란이 있을 것입니다. 이 말씀을 육체대로 받느냐(?) 아니면 영으로 받느냐(?)에 따라서 그 길이 갈라지기 때문이지요. 모든 말씀은 이와같이 겉과 속이 존재합니다. 겉을 통해서 속을 유추해볼수는 있지만 정확히 말해주지는 못합니다. 그림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속이 되어지면 그 내용을 겉의 말씀으로 전할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존재적이고 상태적인 됨으로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믿는 사람들의 모습인 겁니다. 말씀을 문자적으로 대하고 육체적으로 대하면 항상 오해가 많고 그것을 행위로 지켜 거룩하게 되려는 자들 때문에 혼란이 많은 겁니다.
예를들어 떡과 포도주에 대한 문제와 잔의 문제도 행위나 종교로 가져가 성만찬이란 유전이 되어버리듯이 말입니다. 말씀을 이렇게 인생으로 읽고 대하며 이해한다면... 그 말씀이 여러분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겉의 말이 될 뿐임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예수께서 전하신 말씀이 연단과 고난을 통하여 내적 완성으로 되어진 상태에서 받은 말씀과... 지식적이고 종교적이고 문자적으로 묵상하고 받는 겉사람의 말씀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겁니다. 겉사람의 말씀이 전혀 틀린것은 아니지만 그런 내용으로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릴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옛사람은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행위로 말씀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스스로 거룩하게 되려는 것인데 그것이 과연 주께서 말씀하신 믿음의 모습일지는 여러분 각자 심각하게 고민해 보아야 할 일입니다. 오늘 묵상하는 본문의 고자에 대한 말씀도 마찬가지 입니다. 이것을 육체의 고자로 받으면 정말 주님의 뜻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러므로 말씀이 뜻하는 바... 그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간직하는 문제가 너무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버지의 마음과는 전혀 다른 믿음의 길에서 헤메일수도 있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잘못받은 천주교의 신부들과 수녀들은 결혼하지 않고 자신의 육체적 순결을 지키지요? 그렇기에 본문의 말씀이 과연 그러한가 반드시 상고해 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먼저 본문에서 고자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유누코이(εὐνοῦχοι)인데 기본형이 유누코스(2135, 고자, 내시, 육체적으로 거세된 사람, 고자로 태어난 사람, 고자가 아니면서 결혼하지 않는 사람 εὐνοῦχος)이며... 유니(침대, 무덤, 동침)와 에코(2192, 잉태되다, 잉태하다, 입다, 얻다, 요구하다, 기다리다, 알다, 차지하다, 소유 ἔχω)의 합성어 입니다.
단어의 뜻을 유연하게 풀어보면 "침대에서 동침하여 무엇(?)이 잉태된 상태"를 나타냄을 알수 있습니다. 무덤의 의미도 있으므로 옛사람이 동침하여 죽고 다시 살게됨으로 아들의 생명을 잉태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음을 단어의 뜻에서 유추할수 있을 겁니다.
즉, 고자란 예수님과 함께 무덤에 장사되어 동침함으로 그 생명의 씨(겨자씨)가 내적 상태로 심기워지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육체적인 고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서신서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이 복음을 풀어 증거한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생명의 완성이 아니라 이 생명을 요구하고 알고 소유하려고 기다리는 상태가 바로 고자라는 믿음의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벧전 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이 말씀이니라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이 "고자"로 싸리씸(סריסים)이란 단어가 쓰였네요? 싸리씸(סריסים)은 복수형의 단어로 기본형은 싸리쓰(5631, 환관, 거세된 자, 관원장, 내시, 고자, 신하 סָרִיס)이며... "거세하다"라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원에서 유래한 단어입니다.
싸리씸(סריסים)을 파자하면... 언약(맹세)를 꽉 붙잡고 이해하고 파악하여 성령의 불로 머리의 의식이 파쇄되고 옛사람의 입,귀,눈이 치유되고 겉사람과 속사람이 분리되어 예수께서 침을 뱉어 사람들의 눈,귀,입을 치유하셨듯이 침을 뱉어 언약(맹세)를 전하여 내면에 마음밭을 네모반듯하게 준비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곧, 죄사함과 용서를 받은 사람이 그 십자가 언약(맹세)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여 마음판이 준비되도록 이끄는 것을 "고자"로 번역된 싸리씸(סריסים)이란 단어가 가르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언약(맹세)에 생명이 결여되어진 상태이기에 고자라고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왜냐하면 그 생명은 사람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생명은 모두 주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기에 사역하는 고자된 사람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마음판과 말씀집을 준비시키는 것 까지만 자신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고자가 된다는 것은 이와같이 주님의 길을 평탄하게 예비하는 사역을 감당하는 주님의 관원장(신하)이 된 사람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전혀 엉뚱한 말씀으로 여러분이 이해하여 스스로 결혼하지 않고 고자됨으로 하나님의 일에 방해받지 않는다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세가지의 고자된 상태는 바로 각각의 내적 상태와 믿음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곧, 애굽, 광야, 가나안에 이르는 믿음의 여정에 이어서 내적으로 완성된 천국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믿음의 완성을 설명한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시는 내용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즉, 아가페(겨자씨 사랑) ---> 필레오(예수님이라는 형제를 사랑하기에 그 내용을 이웃사랑으로 전함...어린양을 먹이라)... 아가페(엔성령 사랑) ---> 필레오(예수님이라는 형제를 사랑하기에 그 내용을 이웃사랑으로 전함... 양을 치라)... 필레오(형제사랑) ---> 필레오(예수님이라는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웃사랑으로 전함... 양을 먹이라)라는 주님의 사랑을 밖으로 전하게 됨을 말씀하시는 내용인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이 말씀을 문자적으로 지식적으로 종교적으로 받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문자적이고 지식적이고 관념적이고 종교적인 말씀에 현혹되어 굳어져 그 비진리가 섞인 것을 진리로 알고 삶으로 행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말씀을 통하여 믿음의 본질을 바로 보고 깨닫고 걷는 분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댓글 네
잘 이해 하였습니다
사랑의 입맞춤을 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글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