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마을에서 결혼식이 열리면 찢어지게 가난한 마을 아이들에게도 잔칫날이 된다. 잔치 준비에 품앗이 간 어머니 주변을 맴돌다 보면 자식들에게 눈치껏 찌짐이나 돼지고기 수육 몇 점을 집어주면 그것을 한 입에 우격다짐으로 집어넣은 아이들에게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세상에 부러울 게 없을 정도였으니...
이윽고 신랑, 신부가 입장하면 주례를 보는 마을 어른은 언제나 '검은 머리 파 뿌리 되도록 백년해로(百年偕老)하라'고 덕담을 건넨다. 흑모총근(黑毛蔥根)이라(물론 사전에는 없는, 순전히 내가 만들어낸 말임을 전제하느니)...어릴 적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그 이야기가 각박한 오늘날에 와서는 왜 멀고도 먼 피안(彼岸)의 희귀한 사례가 되어가고 있는지...
부부는 돌아누우면 남남이라더만, 요즘에 와서는 헤어지면 남남은 커녕 아예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로 여기는 사례들이 흔히 일어나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근래 신문기사를 보니 현직 mbc 방송국 아나운서 직을 가지고 있다는 여자가 남편의 부정을 고발하면서, 남편의 휴대전화까지 훔쳐서 대화내용을 포렌식하려고 전문가에게 맡겼다고까지 하던데...그러고도 한때는 한 이불을 덮고 사랑을 나누며 자식까지 뒀다가, 무슨 연유에선지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살 수 없는 불구대천(不俱戴天)의 관계에까지 이르렀다니 세상이 어느 나락의 수준까지 떨어져 내려갈른지...
일견 당연하다고 여겨져 왔던 부부간의 사랑이 오늘날 이토록 비참한 지경까지 이르게 된 데는 물질만능주의 사고가 가장 큰 원인이라들 하더만, 나의 생각으로는 무엇보다 피도 살도 섞이지 않은 두 사람을 이어주는 오직 하나의 관계망인 신뢰가 무너진 데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겨지는데...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말하고 뜨거운 신체 접촉을 통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데서 사랑은 계약(contract)이나 거래(deal)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실정이라고 할 것이다. 남녀간 또는 부부간 오늘날의 그런 이기적 양상과는 사뭇 다른 장면을 문득 떠올려 본다. 1998년 개봉된 영화「타이타닉」에서 호화 여객선이 침몰하는 가운데 구명정이 내려지고 어린아이들과 여자들이 먼저 탔다. 그러자 구명정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 물 속으로 가라앉는데, 한 노인이 허우적거리다 가라앉을 찰나 앞서 배에 탄 그의 부인이 남편을 애타게 부르다 마침내는 구명정에서 내려 손을 휘저으며 그의 곁으로 걸어가는 장면이 있었다. 아름다운 부부의 관계란 그런 게 아닐까 생각되는 영화의 그 장면은 2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음에도 아직도 그 이미지가 생생하게 남아있다. 그렇다고 나 역시 우리 주인님과 그런 지고지순한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선 부부간의 삶의 목적 가운데 하나로 백년해로(百年偕老)를 꼽고 있지만, 서양에서도 이와 비슷한 의미로 '함께 늙어가기(Growing old together)'란 말이 많이 운위되고 있는 듯한데...이 문구로 구글을 검색했을 때 관련된 음악이나 이미지가 무수히 쏟아져 나오는 걸 보면 이 말은 맞을 터. 사실 부부간에 백년을 함께 늙어가면서 언제나처럼 따뜻하게 정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보다 더한 행복이 또 어디 있을까. 해서리 힘겨운 삶을 함께 살아오고 앞으로도 그날까지 나와 정답게 지낼 수 있기를 기원하면서 나의 주인님에게 노래 몇 곡을 들려드리려 한다.
1. Love me when I'm old(Catronia Donovan)
2. Believe me, if all those endearing your charms(Joni James)
3. A thousand days(Christina Perri)
4. Time after time(Cindi Lauper)
5. I will always love you(Whitney Houston)
6. Silberfäden(Max Greger)
7. Silver threads among the gold(Louise Morriss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