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C 와 양송이통조림 수입규제협상회고
- 독일의 수입상과 협력, 사전 정보파악, 전략수립으로 효과적 협상
- 소득 2 만불 위해 예상되는 무역마찰, 관민협동으로 적기 대처해야
1974년이니까 30년 전이다. EEC 정부(당시는 EC 가 아닌 EEC) 는 양송이통조림에 대하여 수입규제조취를 취하겠다고 발표, 규제대상국인 한국, 중국 대만 중 EEC의 'Minimum Price 제도' (수입최저가격규제안=最低價規制案)를 수용하면 규제대상에서 제외해 주겠다고 했다.
우리 외무부는 정부에게 최저가규제안을 권고, 주무부서인 농림부에서는 업자들을 불러 그 대책을 논의했는데 내가 농협 A차장과 함께 협상대표로 선발되어 브라셀에 가서 이 문제를 EEC 당국과 협상하게 되었다
당시 주무과장은 후일 농림부장관이 된 K씨, 계장은 후일의 공정거래위원장 L 씨였다 당시 양송이통조림은 단일품목 수출실적이 1억불을 넘는 수출전략품목으로 농가소득증대사업으로 각광받았다.
농협, 농개공이 수출독점권을 가지고 있었고 민간업자 세 곳이 나중에 추가돼 5대수출창구가 있었는데 나는 민간창구의 하나인 S사의 상무로서 이 문제에 깊숙이 관여했다.
우리 협상대표단은 먼저 독일 함부르크로 가서 수입상인 H사의 B사장과 이 문제를 협의, 공동전략을 펴기로 했다. 본 규제조치는 EEC 내의 양송이 주생산국가인 불란서와 벨지움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인데 소비국인 독일 등은 이 규제조치를 반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략상 중요한 통계수치 와 조언을 받을 수가 있었으며 우리가 머무르는 동안 독일의 有力誌인 '슈피겔' 에 양송이 통조림 수입규제는 자유무역정신에 위배되며 소수의 불란서 등 몇 개국의 농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EEC 전체 소비자에게 비싼 가격을 강요하는 것은 부당하며 EEC 국가간의 결속을 저해하는 잘못된 정책이고 이로 인해 독일과 다른 EEC 국가들에게 매우 큰 손해를 입는다 고 관계 數値까지 기사로 실렸다
또 이곳에서 수집한 정보로는 본 문제는 한국이나 대만보다는 최근 급격히 증가한 중국산 때문에 야기된 것인데 정작 중국에서는 아직 아무 반응이 없고 대만에서는 협상사절단이 다녀갔지만 확실한 의사표시를 유보,정세판단에 도움이 됐다. H사는 각국 양송이를 모두 취급 하는 독일에서 가장 큰 수입상으로 각국 정보에 정통하고 독일수입협회의 이사도 겸임하고 있어서 슈피겔誌에 때 맞춘 언론플레이도 가능했던 것이다.
이로서 우리는 독일에서 자신 있는 협상전략을 수립하고 브라셀에 갔다. EEC 한국대표부를 방문하니까 담당 H공사는 EEC의 '최저가규제안' 을 수락, 수입규제조치를 받지 않는 것이 유리한 것으로 판단, 이미 본국정부에 건의했으므로 얼마의 가격을 최저선으로 제시할지 그것만 말하면 EEC 한국대 표부가 EEC 당국과 협상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어두운 얼굴로 호텔에 돌아와 이를 본국에 알리고 간단한 브리핑차트를 밤늦도록 만들어서 다음날 아침 EEC 대표부 회의에 참석했다 당시 EEC 대사는 전직 재무장관 출신 S 대사였는데 직접 회의를 주재했다.
이 전략회의에 서 나는 (1) EEC의 '최저가규제안' 은 비현실적 고가수출 강요이므로 수락불가. (2) 수락시 이중가격거래가 불가피해 무역거래법과 외국환관리법, 세법에 저촉우려 (3) 대안으로 우리 수출조합 스스의 자율규제하는 방법을 제시 (4) 정부대 정부 협상 아닌 한국업계 대 EEC 당국과의 직접협상을 역설하여 S대사의 동의를 얻었다.
그 결과 민간인인 내가 정대표가 되고 농협과 EEC 대표부의 상무관은 옵서버 격으로 하여 EEC 당국과 협상이 이루어 졌는데 우리의 안대로 수락을 받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안대로 되는가 한국산 수출동향을 지켜보겠다는 말을 받아냈다
우리의 안이란 최근 5년간 한국산수출실적에서 금액기준 연평균성장률 이내에서 조합책임 하에 수출자율규제를 실시하겠으니 수입규제대상국가에서 제외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리만 되면 우리는 최근 3년간 급성장한 성장률도 인정받게 되므로 실질적으로는 규제를 안 받는 것이나 다름이 없게 된다.
EEC 대사께서는 오늘의 결과는 관민협동의 좋은 모범이라며 다음 이문제로 다시 협상할 때는 이번에 온 사람들을 다시 보내 달라고 정부에 요청하 겠다' 고 만족해 하셨다
이것은 독일의 거래선들로부터 정확한 정보와 통계수치, 전략적 조언, 언론플레이의 효과를 단단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며 특히 규제의 주 대상이 중공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형태의 것이든 스스로 규제한다는 가시적인 대안이 제시되면 구태여 자유무역정신에 역행하는 일방적인 규제조치는 취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적중했던 것이다
이제 1인당 국민소득 2 만 불을 지향하고 나가는 우리에게는 보다 많은 나라와의 무역마찰이 예상된다 그간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자세를 보면 잘하기도 했지만 표심과 관련이 있을 때는 이를 국민에게 정확하게 알리지 않아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때도 있었다
양송이의 경우처럼 해당업계의 전문적인 의견과 정부정책과의 긴밀한 조화와 협력이 어느 때보다도 요청된다고 생각한다
이호영
베네모어통상대표/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물류신문】 2004년 2월 2 일자 『이호영의 千字칼럼』(123) 에 게재
첫댓글 아빠칼럼과는 별로 상관없지만 오늘 아침에 농수산물 시장에서 구입한 양송이 2킬로들이 한 박스는 정말 품질이 좋아요. 가격도 7500원밖에 안됐었는데.... 맛있는 양송이를 많이많이 먹고 모두들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국제적인 협상이 있고난 후에 흘러나오는 후일담들을 들어보면 대개의 경우 관련 공직자들의 무사안일이 두드러지고 민간대사의 적극적인 활동에 의거 성패가 갈러지는 것을 보았네(몇개의사례를 보면 성공사례로 88오림픽 개최권 획득.월드컵개최권 획득,실패사례로 평창 동계오림픽 개최권 획득 실패)
70년대 초반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의 수출 불모지에서 양송이 수출은 당시에는 국가 최대 관심사중의 하나이었었다고 생각 되며 그와같은 중대사의 주역에 호영이가 있었다니 정말로 자랑스럽네 이는 회고담이 아니고 대서 특필 깜인데 아깝군(?)당시에 조역들이 장관이,공정거래위원장이 된 사실을 보아도 알수 있지 않은감
무역에 관한 이야기라 문외한인 내가 정확한 코멘트는 할 수 없지만 무역전쟁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효과적인 전략이란 생각이 들어 이 글이 무역협상 테블에 앉을 사람들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
대단했었네 그때만해도 특히 무역협상에 대한 대처기능이 거의 없던 시절로 기억되는데, 호영이가 있었으니 놀랍다.그리고 아깝다 아까워...사람 볼줄 모르는 세대로세.
강태용 윤길수 오수영 모두들 고맙네 언제나 읽어주고 격려해주니 더욱 알차게 쓰려 노력하는 힘이 되네 후일담이네만 자율규제한도내에서 유럽향수출을 늘려나갔지만 EEC에서는 수입규제를 하지 않아 예측대로 성공적인 협상이 되었네. 배우며 세계가 좁다고 겁도 없이 뛰었던 그 때를 생각나게 해주어 고맙네
칠 팔십년대,젊고 핸썸한 이호영,겁도 없이 세계를 주름잡던 국제신사. 생각하니 추억은 아름다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