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이상적에게 선물로 그려준 세한도
글씨와 그림 '서화일치' 경지 보여줘
말년에 과천서 후학양성하며 여생
보내
추사 김정희 영정 |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 조선후기 금석학의 대가이자 서예가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가 8년여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유적지가 있다(사적 제487호).
역대 왕조에서 제주도에서 유배생활을 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 추사 김정희인데,
현무암으로 쌓은 대정읍성 동문 터 안쪽에 있는 추사 유배지는 왼편에 지상 1층, 지하 2층의 추사 자료전시관이 있고, 직진하면 추사가 살았던
초가집이 있다.
추사는 이곳 강도순의 집에서 55세 되던 1840년부터 63세 되던 1848년 12월 6일까지 8년3개월 동안 유배생활을
했는데, 대정현에서는 강도순의 땅을 밟지 않고는 지나다닐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의 집은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것이다. 전통적인 제주도 농가의 대문인 정낭을 넘어 마당에 들어서면 추사 유배지임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고, 그 뒤로 초가집 3채가 디귿자 모양으로 있는데, 맨 안쪽 4칸 집은 주인 강도순이 살던 집이고, 입구 쪽의 4칸 집은 추사가 제자들을 가르치던 서당, 중간에 가로놓인 3칸 집이 추사가 기거하던 집이다.
그밖에 당시의 제주생활을 짐작하게 하는 맷돌, 어구 등이 전시되어 있으나, 추사의 유배생활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이곳에서 추사는 기약 없는 유배생활을 하면서 강도순을 비롯한 제자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수많은 저술을 했다.
충남 예산에서 병조판서를 지낸 김노경(金魯敬)과 기계 유씨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난 추사는 큰아버지 김노영이 귀양 가고, 둘째 큰아버지
김노성, 할머니, 할아버지 등이 잇달아 죽자, 가문을 이어야 한다는 집안의 뜻에 따라서 큰아버지 김노영의 양자가 되어 한양에서 살았는데, 추사의
집안은 서인 김홍욱의 후손으로 대대로 노론에 속했다. 고조부 김흥경은 영조 때 재상이었고, 증조부 김한신(金漢藎)은 영조의 화순옹주의 부마가
되어 월성위가 되었다.
15세 때 한산이씨와 혼인한 추사는 16세 때 북학파의 대가이자 3차례나 청을 오가며 학문의 폭을 넓힌
박제가로부터 고증학과 실학을 배운 뒤 고증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세 되던 해(1805년) 부인이 죽고, 또 스승 박제가도 유배에서
풀려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 등 큰 혼란을 겪다가 24세 때인 1809년(순조 9) 생원시에 장원급제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으나, 그해에
동지사겸 사은사 부사(副使)로 청나라로 가는 생부 김노경을 수행하여 큰 문화충격을 받았다. 북경에서 머문 6개월 동안 청의 학자
옹방강(翁方綱)과 완원(阮元)에게서 고증학을 배운 것이다.
옹방강은 사고전서(四庫全書) 편찬에 관여했으며, 경학에 정통하고
문장·금석·서화·시에 능한 학계의 원로로서 당시 청의 학풍은 한대의 학문을 숭상하고 송·명의 성리학을 관념적이라며 배척했으나, 옹방강은
한·송(漢宋) 학설의 절충을 주장했다. 또, 경학의 대가였던 완원은 실사구시를 비롯한 고증학의 정립에 큰 영향을 주었다. 추사는 박지원의
북학사상과 고증학 영향으로 성리학만이 진리라는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학문체계를 수립한 것이다.
1839년 병조참판이 되고 이듬해인 1840년(헌종 6년) 그 자신이 동지부사가 되어 30년 만에 청에 간다는 부푼 꿈에 젖어있던 추사는
안동 김씨가 제기한 윤상도(尹尙度; 1768~1840) 옥사 혐의로 6차례에 걸쳐 혹독한 고문과 곤장 30대를 맞은 뒤 제주도로
위리안치(圍離安置)되었는데, 위리안치란 죄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탱자나무 울타리 집에 가두는 조치였다.
윤상도 옥사란 부사과(副司果)였던
윤상도가 1830년 10월 호조판서 박종훈(朴鍾薰), 어영대장 유상량, 유수를 역임한 신위 등을 탐관오리라며 탄핵한 상소가 군신간을 이간질했다는
것으로서 추사의 생부 김노경은 상소의 배후조종 혐의로 강진 고금도로 귀양을 갔다가 순조가 죽던 1834년(순조 34년) 특사로 풀려났다.
그러나 순조가 죽고 헌종이 즉위하면서 풍양 조씨가 정권을 잡자 1840년(헌종 6) 윤상도는 의금부에 압송되어 능지처참 되고, 추사는 상소의 초안을 작성한 혐의로 고문을 당하고, 처형의 문턱까지 갔다가 오랜 벗 조인영(趙寅永; 1782~1850)의 상소로 간신히 죽음을 면하고 제주도로 유배된 것이다.
조선시대 대명률은 형벌을 태·장·도·유·사(笞, 杖, 徒, 流, 死)로 나눴는데, 태형은 참나무로 만든 길이 약 3자정도의 회초리로서
양형에 따라서 10, 20, 30, 40, 50대씩 죄인의 볼기를 쳤고, 장형은 회초리보다는 넓고 굵은 버드나무 껍질로 만든 이른바
곤장(棍杖)으로 곤장 크기에 따라서 소곤·중곤·대곤·중곤(重棍)·치도곤(治盜棍) 등 5종류로 나눴다. 장형은 1905년에 폐지되었으나, 태형은
한일합방 이후인 1912년까지 유지되었다.
또, 도형은 죄인을 일정한 곳에 가두어 두고 노역을 부과하는 지금의 징역형과 같은 벌이고,
유형은 관직을 박탈하고 산간벽지나 섬 같은 오지로 추방하여 연금시키는 형벌로서 유3천리(流三千里)·유이천오백리·유이천리 등 3등급으로 나누고,
그 기간은 무기형이 보통이었다. 그러나 당률에서 정해진 유배형이 조선과 같이 좁은 국토에서는 그대로 적용할 수 없어서 한양에서 멀고 가까운
상·중·하의 기준으로 삼아 제주도, 흑산도 등 외딴 섬이 가장 중죄였다.
또, 사형은 목을 졸라 죽이는 교살이 원칙이고, 칼로 목을 치는
참살(斬殺), 대역죄인이나 강상의 죄를 범한 죄인의 신체를 머리 양팔·양다리·몸체 등 6조각으로 잘라서 죽이는 능지처참(凌遲處斬), 그밖에 고위
양반관리계층에게 독약을 마시도록 하는 사약 등이 있었지만, 신체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 하여 머리카락하나 소홀히 하지 않던 조선사회에서는
교살보다 참살, 참살보다 능지처참이 더 무거운 형벌로 간주하였다.
추사 유배지 입구 |
유배길 길목 |
추사가 제주도 유배 길에 전라도 남원·구례 화엄사 보제루(普濟樓)의 편액 화장(華藏)·쌍계사의 편액 육조정상탑 등 많은 글씨를 남겼으며, 특히 해남 대흥사의 초의선사와 교류한 사연이 있지만, 추사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추사가 59세 때(1844) 제자인 역관 이상적(李尙迪; 1804~1865)에게 그려준 세한도(歲寒圖; 국보 제180호)이다.
추사는 이상적이 중국 연경에서 경세문편(經世文編)을 구해서 권세 있는
사람에게 주지 않고 자기에게 준 고마움으로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겨울철에 제일 늦게 낙엽 지는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에 비유하고, 그림 끝에
세한도를 그린 경위를 담은 추사 자신의 발문으로 ‘날이 차가워진 다음에야 소나무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는 논어의 한 구절을 적었다.
혹자는 기댄 노송은 추사이고, 싱싱한 잣나무는 이상적을 의미한다고도 해석한다.
세로 23cm, 가로 61.2cm의 세한도는 오른쪽에
'세한도'라는 제목과 '우선시상'(藕船是賞 : 우선 이상적에게 줌)· '완당'이라는 관서(款書)를 쓰고, '정희'와 '완당'이라는 낙관을
찍었는데, 훗날 추사의 문하생 김석준(金奭準)의 찬문과 오세창·이시영의 배관기 등이 함께 붙어 긴 두루마리를 이루는데, 그림 자체는 단색조의
수묵과 마른 붓질의 필획만으로 이루어지고 소재와 구도도 지극히 간략하지만, 이와 같이 극도로 절제된 화면은 직업화가들의 인위적인 기술과 허식적인
기교주의와는 구별되는 문인화의 특징이다.
유배지 입구 왼편의 추사관은 추사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지만 대부분 복제품이고, 철제 조립식 건물 자체가 유배지 건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그뿐만 아니라 복원한 초가집에서 한복을 입은 추사가 방문객과 만나는 모습, 제자들을 가르치는 마네킹도 어색하기만 하다.
유배지에서 돌아온 추사는 헌종의 묘를 이전하는 예송논쟁에서 패하여 철종 2년(1851) 오랜 친구 영의정 권돈인(權敦仁)과 함께 다시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68세 되던 1852년 겨울 유배에서 풀려났다. 전후 12년간의 유배생활에 지친 추사는 부친의 묘소가 있는 과천에
과지초당(瓜地草堂)이라는 집을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여생을 보내다가 71세 되던 해 10월 죽었다.
추사가 59세 때(1844) 제자인 역관 이상적(1804~1865)에게 그려준 세한도, 국보 제 180호. |
추사 유배지 전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