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을 법정공휴일로 정하라
---인천국제공항 명칭도 재고해야---
희목 이양순(李良純)
“여러분, 내일부터는 우리말을 못 쓰고 독일어로 수업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프로시아(독일)군에게 나라를 빼았겨 국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어떤 국민이 감옥(지옥)에 떨어져도 국어만 놓지 않으면, 이는 마치 죄수가 열쇠를 쥐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프랑스 만세”
이것은 ‘알퐁스 도테’(1840~1897)의 ‘마지막 수업’의 절정 장면이다. 이 장면을 함흥 영생고등여학교 정태진(丁泰鎭) 선생님이 1942년 6월, 국어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우리도 내일부터는 우리말을 못하고 일본어로 수업을 해야만 합니다” 라고 비장하게 강의했다. 선생님의 눈가에는 눈물이 핑 돌았고 그것을 듣는 예민한 여학생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이 작품을 통해 국어와 국가는 운명을 같이 한다는 사실을 실증으로 보여 주었고, 이 강의 내용을 통학 열차 안에서 두 학생이 의미 있게 수군거리는 것을 함흥결찰서 고등계 형사(물론 한국인 형사)가 연행 심문해 조선어 학회 사건 발단의 동기가 되었다. 이 때는 조선어 말살정책의 2차 연도의 시기였다.
금년 한글 기념일을 맞아 조선어 학회 사건을 엄숙히 상기하면서 이 장면을 서두(書頭)로 제언(提言)한다.
금년은 큰 글, 한글창제기념 566주년을 맞는 해다. 566년전 세종 25년(1443)에 입과 귀만 있던 우리가 비로서 눈을 뜬 것이다. 우리는 기념일을 통해 우리의 정체성을 새롭게 다짐하면서 문화민족의 자긍심을 가져야 하며, 한 편으로는 자성의 죄책감을 가지고 기념일을 경건하게 마지해야 한다.
훈민정음은 국보 70호로 지정되었으며 2007년에 세계 기록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글’이란 이름은, 주시경 선생님이 ‘훈민정음(正音)’은 글의 원리나 뜻이 ‘크고 위대하다’해서 순수우리말로 풀이한 말이다. 이제 우리의 할 일은 우리 큰글, 한글이 세계 공용어가 될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최선을 다 하는 일이다. 그것은 우리의 의무며 권리며 또한 자존이다. 또한 인류문화를 위한 우리의 역할이다.
나는 한글 기념일을 맞으며 두 가지를 강력히 제언한다.
첫째는, 한글날을 법정 공휴일로 정해야 하는 당위성과
둘째는, 인천국제공항을 세종국제공항으로 정정 명명할 것을 제언한다.
같은 기념일이라도 공휴일이냐 비공휴일이냐에 따라 경건함의 차이는 엄청나다.
세종대왕은 우리 5천년 역사상 가장 존경 받을 분이심을 부인할 자는 아무도 없다. 한글날을 마땅히 공휴일로 해서 세종대왕에 대한 숭모(崇慕)와 우리 민족의 위상을 높여야 할 것이거늘 비공휴일로 해서 한글의 위상과 존엄성이 평범화 된다는 것은 모순이며 나아가 어불성설이다.
나는 그 어불성설의 모순점을 바로 잡는데 촛점을 맞춰 제한된 지면에 내 논지를 제시하고자 한다.
세종대왕 재위 32년 간 치적 중에 가장 괄목할만한 업적은 훈민정음 창제며, 5천년 역사상 세계사에 자랑거리가 있다면 한글이다. 대한민국 하면 세종대왕이요, 세종대왕 하면 한글이 아니던가. 그런 날을 비공휴일로 낮춘 근시안적 정책에 우리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다.
적어도 한국민이라면 마땅히 한글의 우수성을 알아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첫째, 세종 대왕의 주체사상, 애민사상, 실용사상등이 국시(國是)로 나타났다.
둘째, 독창적이며 기원이 확실하다.
셋째, 발생 원리가 우주의 원리, 즉 모음은 천,지,인(天,地,人,), 자음은 아,설,순,치,후음(牙舌脣齒喉)음의 발성기관을 상형화한 철학적 글자이다.
넷째, 표현의 무한성이다. 24개 음운(단음)(창제 당시는 28개)을 합자(合字)해 표현 못할 말은 지구상에 없다.
즉 문자의 3대 기능인 실용성 기능성 과학성을 다 갖춘 문자이다.
문화유산은 흐르는 물을 따라 발전하며 그 사조는 세계 속에서 공유한다. 문화적 세계화 즉, 컬쳐로발(culture-global)시대다. 이제 한글은 우리 것만이 아니고, 영문자와 더불어 세계의 공용 공식 문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정상적 사고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2007년 영국에서 열린 세계 언어학회 포럼에서 한글이 유비쿼터스에 가장 적합한 문자로 선정된 이유도 바로 이런 점에서이다. 또한 세계 60여개 국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으며, 2009년 8월에 인도네시아 ‘짜이짜이 소수부족민족’에서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하고, 지명도 ‘한글마을’로 개명하기로 그 나라 중앙정부에서 승인했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하기(下記)에서 제언할 세종공항 명칭 변경의 시대적 당위성을 주무부를 중심으로한 정치권에서 공감할 줄 안다.
이런 세계적 문화유산인 한글의 날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해 위상을 국내뿐 아니라 세계에 전파함은 너무나 당연하며 반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러한 훌륭한 국어와 문자도 강력한 국가를 배경으로 할 때라야 의미
가 있다. 즉 국력과 문화는 정비례다.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주시경 선생님의 제자들을 비롯한 108명이나 되는 선인들, 특히 이윤재 한징 같은 분들은 옥사까지 하시면서 한글을 지키기 위해 4년간의 피나는 옥고를 치르신 사건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글이 곧 나라요 나라가 곧 우리 얼이다’ 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저간(這間)의 현실을 냉철히 자성해 볼 때 과연 선인들의
피로 지켜 온 한글을 얼마나 사랑하고 가꾸어 왔는가? 다만 참괴(慙愧)할 뿐이다. 한글에 대한 경건함과 자랑스러운 한글의 위상을 온 세계에 높이기 위해서라도 우리 큰 글, 한글날은 반드시 법정 공휴일로 지정함이 당연하다고 제언한다.
그러면 한글날을 공휴일에서 비공휴일로 전락시킨 내력과 공휴일로 부활시켜야 할 당위성을 저간(這間)의 사건 전말(顚末)을 통해서 피력해 보기로 하자.
한글은 1926년 조선어 연구회에서 ‘가갸날’로 정했고, 1928년에는 ‘한글기념일’로 명칭을 바꿔 매년 기념행사를 해 오다가 일제 때 중단되었던 것을 1949년에 ‘한글기념일’로 다시 부활해 법정 공휴일로 지정해 거국적으로 행사해 왔다. 그러다가 1991년 노태우정권 때 공휴일 과다로 산업 생산에 차질이 많다는 재계의 경제 논리로 한글날과 국군의 날을 공휴일에서 제외시켰다. 하지만 이 논리는 이율배반적 한글 폄하(貶下)의 결과를 초래했다. 구정을 공휴일로 부활시킨 것이나, 성탄절과의 형평성 논리로 석탄일을 공휴일로 제정한 것이나(이것은 타당하다), 추석을 연휴로 연장시킨 점 등 공휴일은 오히려 늘었다.
하물며 현실은 어떤가 5일 근무제에 툭하면 몇 달씩이나 파업이다 농성이다 하면서, 한글날 하루 공휴일로 다시 부활시킨다 해서 과연 국가의 산업 손실이 그렇게 막대하단 말인가? 그렇다면 문화민족 자존의 정신문화의 손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우리도 이제는 외국에 나가 문화민족의 우월감을 가지고 활보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아 주면 안되겠는가?
한글 경시 풍토에서 오는 지도자들의 근시안적 무지의 소치가 한심스러울 뿐이다..
우리의 국경일은 한글날을 비롯해 개천절 광복절 3.1절 제헌절 등 다섯 번 있다. 나름대로 다 의미가 큰 경사스럽고 엄숙한 날이지만 우리 5천년 역사 중 가장 자랑스럽고 신성한 국경일은 아마도 한글날과 개천절일 것이다. 성격상 의의와 개념의 차가 있는 국경일을 비중의 차를 둔다는 것은 모순인 듯하지만, 그래도 조국(肇國)의 숭고함을 기리는 개천절과, 독창적 문화 창조인 한글날에 의미를 더 부여하는 것이 타당하다면 나의 착각일까. 처연한 시련 뒤의 환호가 있는 광복절이나, 비통 속에 결연함이 있는 3.1절이나, 입헌 국가를 축하하는 제헌절 등보다는 더 의미를 새롭게 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태우 정권 때 근시안적 경제 논리로 공휴일에서 제외시키는 한글 폄하의 우를 초래했다. 더 한심한 것은 근 20년이 되도록 정치권에서는 그 잘못된 관행을 수정은커녕 관심조차 없다. 그러고도 주체사상이니 정체성이니 민족문화니 논할 자격이 있는가. 이것은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현명한 문공부를 비롯한 주무부처가 먼저 대오각성하여 당장 법정 공휴일로 부활시켜야 마땅하다. 그리하여 한글기념 행사가 거국적으로 거행되어 공휴일의 축제가 국민들 가슴 속에 출렁일 때 만년 대계 문화민족의 자존(自尊)이 우뚝 설 것이다. 기념일을 공휴일로 할 때와 비공휴일로 할 때 정신적 비중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법정공휴일로 정하는 일은 크게 잘못되었던 시행착오를 본래의 제 길로 바로잡는 중대한 일이다.
다음은 인천국제공항을 세종국제공항으로 공항명을 바꿔야 타당하다는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 인천공항은 연간 여객 3200만명을 실어 나르는 세계 제 3위의 거대 국제공항이다. 인천국제공항으로 명명될 때까지의 과정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고 불가사의하다. 1992년 노태우 정권 때 공항명 공모에서 85%가 세종국제공항명을 지지했고 인천공항 지지는 5%도 안 되었다. 그래서 신문에 세종공항으로 공고까지 났었다. 그러나 인천 지역의 저항과 지역 출신 의원들의 반대로 결정을 미루다가 1993년 김영삼 정권 때 다시 인천과 영종 두 이름 중에서 영종국제공항으로 공고했다. 그러나 또 지역 주민의 삐뚫어진 지역 우월성의 편견과, 인천 지역 시민연대 및 의원들의 선거공약, 게다가 담당 행정가들의 근시안적 무지로 인천국제공항으로 명명되고 말았다. 왜 인천시민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단 말인가. 경상남도의 충무시나 충남의 세종시 지명 등을 보라. 또한 선진국들을 보라 빅토리아, 엘리자베스, 케네다, 와싱턴 등 수 많은 역사 인물들을 지명이나 거리명 공항명으로 정해 그 나라의 위상을 홍보하지 않는가. 우리도 세종공항으로 명명했더라면 연간 3천 2백만명의 출입국 외국인을 통해 세종이란 이름으로 한국의 위상, 나아가 한글의 우수성이 전 세계에 홍보되지 않겠는가. 그들의 머리 속에는 ‘세종과 한글’이란 테마가 저절로 각인될 것이 아닌가. 우리 근시안적 지도층의 퍼즐놀이 역발상 속에서도 선진대열에 끼겠다는 기상(奇想)이 참으로 한심하고 불가사의다. 우리 역사상 과거나 현재나 한글의 정체성을 폄하시킨 것은 바로 일부 지도층이다.
그렇다면 인천공항으로 정한 논리의 타당성을 제시해 보라. 인천시 재정으로 건설했는가. 아니면 영종도가 인천 시민 개인 땅이란 말인가. 그것도 아니면 인천이란 이름이 세종이란 이름보다 위상이 높다는 말인가, 또 그것도 아니면 인천시민만 사용하는 특별공항이란 말인가. 그도 저도 다 아니면 인천은 세종대왕의 후손인 대한민국이 아니고, 인천시장의 후손인 인천민국이란 말인가. 막대한 경비가 소요되겠지만 더 늦기 전에 후손 만년대계와 한국의 세계화를 위해 세종공항으로 명명해야한다. 공항명은 의미성 간결성을 우선해야 한다. 외국의 예를 보면 바뀌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세종공항’이란 논리는 공항명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잘못 갔던 길에서 제길로 돌아오는 것이다 라는 원리로 해결해야 한다. 첨단 아이티 과학 설비상 막대한 경비가 소요된다면 ‘세종인천공항’ 이란 차선책도 고려할 만하겠지만 정치적 지역적 편견을 떨치고 국가적 차원의 논리적 당위성이 있어야 하겠다.
우리 주체문화사상과 실용주의사상에 기반하여 두 제언을 강력히 주장한다. -- 2009년 10월 9일 한글창제 제 566주년 기념일을 맞으며--
(이 글은 憲政잡지( 09년 10월호.국회발행)에 정책건의 부문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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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창제 제566주년,한글반포 제563돌을 마지하여 희목님의 제언에 공감을 표하며 오늘 한글날과 세종대왕 동상재막시에 맞추어 매우 뜻깊은 글입니다.
고맙고 기쁩니다! 소생이 생각만 하고 있던 사안을 이렇게 시원히 목소릴 내어 주셨으니 말씀이외다!!! 오늘은 한글날이라 행사장에 들렸다가 이내 "세 종 대 왕" 동상이며 지하 관람장에 한참 서성이다 안내 자료들을 서너점 주섬주섬 챙겨서 나왔소이다. 참,어느 한날 "의양"과 "지산"과 더불어 광화도에 갈거라면서요? 날짜 정합시다요! 단제기원 4342년 시월 구일 한글날에 석 인이 적었습니다.
깊이 있고 무게 있는 글 잘 읽었습니다. 전적으로 동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