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전에 일어난 사건,,, 잊혀질 뻔한 사건이 왜 갑자기 수면위에 올라왔나? - 당연히 이미 올라 왔어야 할 사건이 은폐를 하다가
이제서야 시차를 두고 계속해서 국민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그러면서 차기 대권주자로 띄우기 하려는 무성이를 대서특필해 준다.
사회면의 사건사고와 정치이면의 작동원리를 모르는 국민들은 기사를 따라가며 공분하고 정부 여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진정한 피해자는 그 누구도 아닌 자신들, 그리고 자기 자식들이 아닐까?
미개한 국민들의 수준이니 가능한 일이다.
정몽준 아들의 말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자신들이 주인인 주제에 주인됨을 잊고 개가되기를 마다 하지 않는 국민,,
군대폭력에 공분을 살 때,,, 김해 여고생 살인사건에 공분을 살 때,,, 새누리당 국회의장은 슬그머니 공식적으로 세월호 유가족에
단식을 풀라고 권고하고 있다?
왜? 체면때문에? 아예 세월호 은근슬적 덮고 가자고 하고 있다.
박정권은 계속 그렇게 갈 것이고 결국 2~3년내 대형 참사가 터지고서야 바뀔 것이다. 아니 그래도 안 바뀔지 모른다.
그 대형 참사란 대한민국의 근본적인 삶의 틀을 바꿀 것이다.
18대 대선부정을 계속해서 속여줄 사건 사고가 필요할테니까...차라리 MB를 조져라. 부정선거 사범으로
그리고 깨끗하게 물러나라. 그러면 최소한 역사는 당신을 의로운 사람으로 기억해 줄 것이다.
------------------------------------------------------------이 하 기사 ( 펌 ) ------------------------------------------
아직도 군사정권 시절 군대 폭력이 존재하나….’
한 육군 병사의 구타사망 사건이 국민들에게 깊은 충격을 주고 있다.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 윤 아무개 일병(24)은 음식물을 먹다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해 기도폐쇄에 따른 뇌 손상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그런데 단순 상해치사로 정리될 줄 알았던 이 사건에 충격적인 사실이 숨겨져 있음이 드러났다.
윤 일병의 사망 배경에는 상습적인 폭행이 있었으며 성추행, 물고문 등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가혹행위들이 자행됐다.
70~80년대에 군 생활을 했던 사람들마저 ‘우리 때에도 이렇게까지 야만스럽게는 하지 않았다’며 윤 일병에게 가해진 폭력행위에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28사단 의무병 구타사망사건의 이면을 따라가 봤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윤 아무개 일병의 시신 사진은 한마디로 참혹했다.
지난 1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사진 속 윤 일병의 모습은 가슴과 배 부분이 대부분이 피멍으로 얼룩져 있었다.
공개된 모습은 윤 일병을 사망에 이르게 한 마지막 구타 사건 때 입은 부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아무리 구타를 심하게 했다고 하지만 사진 속의 피멍은 ‘살인’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이처럼 가혹한 폭행이 이뤄진 배경에는 아직까지 끊어지지 않고 있는 ‘구타 세습’이 자리 잡고 있다.
이번 사건을 폭로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 부대에 구타 행위가 세습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이 소장은 “이 사건은 이 아무개 병장이 주범이고 지 아무개 상병이나 종범들이 끊임없이 구타를 했다”며 “그 피해자(윤 일병)가
전입 오기 전에 지 아무개 상병은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라는 표현들이 진술에서 나왔다”라고 밝혀 구타행위가 세습됐음을
폭로했다.
폭행 세습에 대한 논란은 윤 일병에 앞서 3개월 전 전입한 직속 선임인 이 아무개 일병도 가혹행위를 당하다 윤 일병 전입 후
가해자로 바뀌었다는 의혹으로도 퍼지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군은 “자세한 내용을 지금 파악 중에 있다. 검찰에서 그 내용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8사단 포병연대 의무대 윤 아무개 일병이 선임병에게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 윤 일병의 전신이 폭행으로 인해 멍든 모습. 사진제공=군인권센터
이렇게 구타 세습이 가능했던 것은 윤 일병의 의무대가 독립된 섬처럼 존재하며 간부들의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었다. 윤 일병의 의무중대는 대대본부와 떨어져 있어 상대적으로 간부들의 관리가 소홀했다.
이 의무중대를 지휘하는 간부는 하사 한 명이었는데 이 하사마저도 사실상 주범인 이 아무개 병장보다 어려 이 병장을 “형님, 형님”이라면서 따르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앞서의 임태훈 소장은 이에 대해 “조직폭력배들이 힘겨루기 마냥 아랫사람을 힘으로 제압하는 식의 범죄 집단 비슷한 구성이 돼
있었다”라며 “일반적으로 다른 부대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상황들이 이곳에서는 벌어졌다”고 전했다.
윤 일병에 대한 본격적인 폭행이 시작된 것은 ‘대답이 느리고 인상을 쓴다’는 이유에서였다고 한다.
2주간의 대기기간이 끝난 직후인 3월 3일부터 이 아무개 상병은 윤 일병의 가슴부위를 때리는 등 지속적인 폭행을 자행했다.
주범인 이 아무개 병장은 ‘대답을 제대로 못한다’며 마대자루가 부러지도록 윤 일병의 허벅지를 폭행하는가 하면
이 상병도 부러진 마대자루로 윤 일병의 종아리를 마구 때렸다.
신병의 경우 심한 압박감 속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정상인도 처음 몇 달 간은 어눌해지고 정신이 없는 게 보통이다.
‘대답이 느리다’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폭행을 하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폭행의 이유도 다양해졌다. 3월 8일에는 ‘어눌하게 대답한다’는 이유로 지 아무개 상병까지 동참해 3명이 번갈아
돌아가며 윤 일병의 복부와 가슴, 턱을 폭행했다.
견디다 못한 윤 일병의 입에서는 “살려 달라”는 절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가해자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2~3시간씩
기마자세까지 강요했다.
이 병장이 휴가를 떠났던 3월 17일 전후로 폭행은 극에 달했다. 그는 윤 일병이 걸을 수 없도록 다리를 폭행한 뒤 휴가를 나갔는데
이 때문에 윤 일병은 허벅지 통증으로 전투화를 일어서서 닦아야만 했다.
그런데 이 모습을 본 이 상병은 편의를 봐주기는커녕 윤 일병을 넘어뜨리고 옆에 있던 지 상병 역시 아파하는 윤 일병의 반응이
웃기다며 허벅지를 계속 찔러댔다.
3월 19일에는 윤 일병의 무릎이 형체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퉁퉁 부어올랐는데 지 상병은 “무릎이 사라졌네. 존나 신기하다”며
무릎까지 찔렀다.
폭행의 강도가 심각해져갔지만 간부들도 이를 알면서도 묵인했다. 3월 29일 하 아무개 병장은 “목소리가 작고 행동이 느리다”며
윤 일병의 가슴과 복부를 폭행한 뒤 욕설을 퍼부었다
. 알고 보니 “네가 분대장이니 때려서라도 군기를 잡으라”는 유 아무개 하사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이렇게 간부급까지 폭행을 부추기거나 가혹행위에 대해 모른 척 한 정황을 볼 때 구타와 폭행이 이 부대의 관행은 아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부주의에 의한 상해치사를 적용할 것이 아니라 살인죄와 성추행 죄 등 보다 엄격한 법 적용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이처럼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부터 밤까지 수십 대를 맞아온 윤 일병은 결국 건강이 악화됐다.
이를 본 가해자들은 윤 일병에게 링거 수액을 투약했는데 문제는 치료 후 약간 기력을 회복하자 또 다시 폭행을 가했다는 점이다.
가해자 4명은 링거를 맞은 다음날인 3월 30일 밤새도록 경례, 제식동작, 도수체조 등을 시켰으며 윤 일병이 잠을 자지 못하게
돌아가면서 감시까지 섰다.
또한 가해자들은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나지 않게 철저히 윤 일병을 빼돌렸다
가족 초청 운동회가 있는 날에도 “점수가 부족해 윤 일병은 가족들을 초청할 자격이 없다”며 면회를 방해했으며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 것을 알고도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했을 정도다.
이 같은 괴롭힘은 윤 일병이 사망하는 날까지 계속됐다.
4월 5일 점호가 끝난 오후 9시 45분부터 이 병장은 다음날 새벽 2시까지 4시간 동안 미친 듯이 윤 일병을 폭행했다.
다음날 날이 밝아서도 폭행은 이어졌고 이 병장은 윤 일병에게 비타민 수액을 주사한 다음 또 괴롭혔다.
이날엔 고문 수준의 가혹행위도 이뤄졌는데 이 병장이 뱉은 가래침을 핥아 먹게 하고 얼굴과 허벅지의 멍을 없애기 위해 안티푸라민을 바르면서 윤 일병의 성기에도 약을 발라버렸다.
폭풍 같은 오전이 지나가고 오후 3시 30분 결국 사고가 발생했다.
냉동식품을 사와서 다함께 먹는 도중에 폭행을 가한 것. 4명의 가해자들은 정수리 부분과 배 부위를 폭행하고 엎드려뻗쳐를 시킨
상태에서 폭행을 계속했다.
1시간 후 윤 일병이 오줌을 싸며 쓰러졌는데도 맥박과 산소포화도 측정을 한 결과 정상으로 나오자 꾀병을 부린 거라며 폭행해서
넘어뜨렸다.
하지만 그렇게 쓰러져버린 윤 일병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심폐소생술을 실시하며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다음날인 4월 7일 결국
숨지고 말았다.
가혹행위를 주도한 이들은 윤 일병이 잠을 자지 못 하게 돌아가면서 감시까지 섰다.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의 한 장면.
더욱 가증스러운 것은 윤 일병 ‘살해’에 가담한 가해자들이 적극적으로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 병장의 주도아래 가해자들은 윤 일병이 음식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 갑자기 쓰러졌다고 말을 맞췄다.
평소에도 구타나 가혹행위가 전혀 없었으며 평소 화목했다는 뻔뻔한 거짓말도 해댔다.
하 병장은 윤 일병의 관물대를 뒤져 수첩 2권을 찢어버리기까지 했다. 자칫 윤 일병의 억울한 죽음이 묻힐 뻔했지만 수사과정에서
폭행이 있었다는 진술을 입수, 헌병대가 ‘윤 일병이 깨어날 것 같다’고 하자 그제야 가해자들의 자백이 이뤄졌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이번 사건을 낱낱이 고발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가해자들은 1개월 동안 잠도 재우지 않은 채 쉬지
않고 집단 폭행을 했다.
그 정도쯤 되면 사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일반적인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폭행을 멈추지 않았으며 빈도와 강도를 높여갔다.
진술서에서도 이 병장은 사건 이전에 ‘윤 일병이 없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윤 일병이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이 병장과 지 상병은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말까지 했다.
이는 살해의도가 명백하다.
상해치사로 된 공소장을 살인죄로 변경하고 성추행 부분도 추가로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임 소장은 “윤 일병에 대한 가혹행위는 알려진 것 외에도 다른 정황들도 있다. 그것은 앞으로 군 당국이 이 사건에 있어서
공소장 변경이라든지 성추행에 대한 추가 기소를 하지 않으면 추가로 우리가 준비한 것들을 폭로할 예정이다”라고 밝혀
향후 윤 일병 사건에 대한 또 다른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지난 7월 31일 국방부는 내무반에서 상습적으로 구타와 가혹행위를 해 후임병을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로
이 아무개 병장 등 5명을 구속 기소하고 나머지 1명은 폭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또한 군은 윤 일병에 대한 구타와 가혹행위를 확인하고 지휘감독 책임을 물어 연대장과 대대장 등 간부 16명을 징계했다.
하지만 이번 구타사망사건은 22사단 임 아무개 병장의 총기난사 사건이 나고 군이 병영생활을 혁신적으로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로 뒤의 일이라 더욱 충격을 주고 있다. 사건이 터지고 ‘개선해 나가겠다’고 빠져나간 뒤 또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한 ‘제 2의 윤 일병’이 또 다른 부대에서 지금도 신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