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참 이상스런 방식으로 우리를 살라고 명하신다. 납득하기 쉽지 않은 방식이다.
우리가 헷갈릴까봐 예수님은 비교적 명확하게 우리의 갈 길을 보여주시고 계시는데 참 간단하기는 하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 바라는 것, 원하는 것, 기도하는 것, 열렬하게 달려가는 것들의 정반대 방향으로 화살표를 떡, 하니 꽂아놓으신 것이다. 즉, 네가 가고 싶은 길이 있느냐? 뒤로 돌아서라. 그리고는 그 반대 방향으로 가거라, 이런 말도 안되는 말씀으로 우리를 엿멕이시는 예수님.
성공하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은 내가 실패하기를 원하고(왕이 되지 않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좀 보아라, 하시면서) 그 실패는 실패처럼 보여도 결코 실패가 아니라고 위로하시는 하나님. 사랑하는 사람과 영원히 사랑하기도 힘든데 원쑤(원수가 너무 원수같으면 원쑤가 된다)를 사랑하라고, 세상에나,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리시는가 하면, 지는 것이 바로 이기는 것이며,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는 자보다 훨씬 윗길이며, 당연히 화를 내야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바보처럼 허, 하고 웃으며 넘어가라는 명령은 숫제 우리를 바보로 만드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옳고 그름이 분명히 있는데도 따지지 말거라, 이렇게 타일르시는데는 완전 미칠 지경이다.
성경에서는 윤리의식이나 정의를 사랑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속이 부글부글 끓는 나에게 예수님은 이렇게도 말씀하신다. 너를 정의롭게 판단했으면 너는 진작에 세상에서 사라졌다. 너의 죄를 함무라비 법전처럼, 아니면 구약의 율법처럼 이에는 이로 눈에는 눈으로 판가름했다면 네 목이 열개라도 남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사람이 사랑장이라고 줄줄 외워대는 고린도 전서 13장은, 읽으면 읽을 수록 끔찍하도록 무시무시한 말씀들 뿐이다. 나의 몸을 불사를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꽹과리처럼 시끄럽기만 하고 등등...
우리가 목숨처럼 추종하는 믿음도 그 베이스에 사랑이 깔려있지 않으면 말짱 헛것이라는 그 선언은 종종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성경말씀은 물에 물탄듯 멍청해 보이기도 하고, 줏대도 없는 것 같고, 물컹물컹해 보여서 그럴 듯하게 간지(!)나지도 않는다.
아니, 오래 참으라니 언제까지 말입니까! 그저 참고 견디라니 눈에 보이는 저 불의와 저 만용과 저 고집불통과 저 엉터리들을 어떻게 그냥 지나치란 말입니까! ... 대들고 싶은 말이 하나 둘이 아니지만 성경말씀은 초지일관 나를 박살내는데만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너나 잘하세요.
아아. 친절한 금자씨처럼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는 그 친절이 너무 싫어서 울화가 복받치기도 하고, 나의 손익계산서와 도저히 맞추어지지 않는 절대 양보, 절대 복종의 마이너스 통장에는 대체 언제 기쁨, 즐거움, 환희, 행복 그런 단어들이 꽉 차게 될지 정말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냥 손해보고 말라는 것이다. 왼뺨 오른뺨 그냥 맞으라는 것이다. 재판 그런거 하지 말고 내 돈 떼어먹은 자식에게 용돈 쥐어주라는 것이다. 맨날 나를 헐뜯고 못살게 굴던 년놈들에게 빵긋 웃으며 술 한잔 (아니, 밥 한끼^^;;) 쏘라는 것이다. 매 순간 지치지도 않고 나를 시험에 빠뜨리는 남편 자식에게 사랑한다고 뽀뽀 왕창 해주라는 것이다!!! 아, 내가 대체 왜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했더란 말인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하고 윤시내랑 조용필만 노래한 것이 아니라 속에서 열불이 난 나도 수없이 부르고 불렀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을 누가 대체 아름답다고 했더란 말입니까! 이렇게 왕창 손해보는 것이, 이렇게 나를 미치게 만드는 것이 사랑이라면...사랑이라면 하지 말 것을...(이 노래는 또 누구 노래더라.......? 아, 배호의 노래였다...)
그런데...하나님은 그런 말도 안되는 사랑을 원하시는 것이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그렇게 크게 말하면 못알아들을지 모르니까 자세히 언급하겠다. 내가 존재하는 모든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라는 것이다....
사랑에 내가 미쳐, 미쳐...(이 노래는 비교적 신세대의 노래인데 얼마 전부터 필이 꽂힌 길학미의 '수퍼 쏘울'에서의 한 대목이다^^)
바로 얼마 전, 요 밑에 내가 올렸던 '충고해서 고치는 인간 없다네요'에서의 몇 줄을 다시 인용해야 할 것 같다. 유명하신 목사님 말씀이니 내 말을 신빙성있도록 도와주시기는 할 것이다^^
-어느 교회에나 원수가 꼭 몇 씩은 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원수가 보기 싫어서 이쪽 교회에 가면 또 다른 원수가 생깁니다. 이것은 내 마음에 있는 어떤 부분이 아직 안 깎인 것입니다. 그것을 깎아야 되는 것입니다. 원수가 없을 때까지, 원수를 위하여 축복할 때까지.
또한 교회는 이런 싸움입니다. 누가 먼저 악 소리 치지 않느냐의 싸움입니다.
누가 잘했느냐의 싸움이 아닙니다. 누가 악을 늦게 하느냐입니다. 먼저 악하는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누가 버티느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충고라는 미명으로 말을 해버리는데 충고해서 고치는 인간은 없습니다. 때려서도 고치는 인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 마음을 간섭하지 않는 한 사람은 변하지 않습니다.
충고를 한다는 것은 상대방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못참은 것입니다....
이런 말씀을 들으면 속이 터지고 미칠 지경이지만 하나님은 종종 나를 그렇게 미치게 만드신다.
게다가 오늘 아침 산책에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은 이랬다.
'실패하고 져주는 것이다. 언제까지? 죽을 때까지!'
나는, 오늘 아침,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사랑 타령에 완전 항복해 버렸다.
고백한다면 근 몇 주일째 똑같은 내용의 말씀을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경로로 나에게 전달해주셨다. 내가 어쩔 수 없이라도 '알았어요. 다 알았고요, 그렇게 할 테니까 이제 고만 하세요. 마이 묵었다 아입니꺼!' 하면서 링 바닥에 완전 비참하게 엎어진 내가 흰 수건을 레프리에게 던질 때까지 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마음이 앞으로 변할 리는 없으므로 한 수 아래인 내가 그냥 마음을 접어야지, 어쩌겠나 싶었다. 그래서 오늘 항복 선언을 하기로 했다.
무조건 사랑할께요.
됐어요? 하나님?
저의 항복 선언이 마음에 드세요? 하나님?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꼬리를 내리게 되었는지 당신은 모른다.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시험과 유혹과 고통이 있었는지 당신은 모른다.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라는 묘비명은 버나드 쇼만의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의 묘비명에 그런 유언을 남기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갈팡질팡하는 것은 오늘로써 끝이다, 그 결론에 이르게 된 기막힌 사연들을 당신들은 모른다.
그러므로 오늘도 나는 성 프란체스코의 평화의 기도를 외우면서 슬며시 따라가는, 평화주의자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다. 내 성질머리상 너무도 어렵긴 하겠지만 내가 바라는 나는 바로 피스메이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1, 가정에서
2, 교회에서
3,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사회적 카테고리 안에서!
첫댓글 3개의 글 시리즈로 쫙 읽었는데, 읽는 내내 유다님의 절실한 서원이 느껴지네요^^*
오직 사랑~~~
쉽지 않으실텐데, 참 어려운 서원을 하셨습니다... 응원해 드릴께요^^*
도저히 참기 어려운 순간이 올 때는, 하나님을 향해 걍 엉엉 목놓아 울어버리고 나면,
다시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으니,, 별로 어렵지 않을수도^^*
으악! 서원이 아니라 선언입니당...서원이라니, 클랄 소리 하시네여~~~
ㅋ ㅋ "사랑이라면 하지말 것을..." 이 노래는 배호의 '안개속으로 가버린 사랑'이예요.
문주란도 불렀지요. 키가 매호와 문주란이 비슷해요. 저음으로 쫙 깔리는 거이...
괜히 낑긴네요 ^^
울 남편권사님도 아주 좋아한답니다. 그 사랑은 첫사랑인지 묻고 싶지만 꾹 참고 삽니당 ㅋㅋ
유다님처럼 많은 생각과 자문자답 하시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기 성찰이 필요할까요?
거기까지 가기가 쉽지않다는데 문제가 있지요.
도달하기도 전에 엉뚱한 길로 가고마는...
원래 잘 못지킬 것 같은 것은 여기저기 큰소리쳐야 창피스러워서 조금이라도 지킨다네요, 그래서...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