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이 내린다. 새도록 쌓인 눈에 인적은 끊겼고 차량마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아람장 여관방이다. 옆에는 기천이 잠들어 있다. 가는 해가 아쉬워 지난 밤 옛 친구들이 모여 송년회를 한게다. 서울에서 용택과 득춘이 내려오고 태식, 기천 성일과 처 그리고 바람이 어우러져 한바탕 노래와 술로 새벽까지 노닐다 이 곳에 둥지를 튼게다. 쓰린 속을 달래려 나운동 소재 ‘머슴 감자탕집’에서 시원한 국물에 쐬주 한잔 곁들이며 밖을 내다보니 수백년은 먹음직한 노송이 백설이 만건곤한채 우뚝 버티고 서있다. 족히 4,000만원은 될거라며 조경에 조예가 깊은 태식이 말하니 모두 고개를 끄덕인다. 용택이의 걸쭉한 입담에 죄중은 화기애애하고 부딪히는 술잔이 정겹기만하다. 모두 강건하고 내년에도 운수대통하라고 건배하며 특히 금년 4월 늦장가를 든 성일내외가 행복하게 잘 살라고 축원해 준다.
잠든 친구들이 깰세라 조용히 문을 나서니 인적은 드물고 택시도 보이지 않는다. 부득이 눈길을 헤치며 터벅 터벅 군산역으로 향한다. 약속된 시간이 30분정도 여유가 있다. 오늘이 정해년 12월 30일, 내일이면 군산역이 역사의 무대 뒤편으로 사라진다. 아내의 기발한 제안으로 기차여행을 떠나기로 한 날이다. 겨울 방학이라 치형이도 있는터라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다. 역 주변 구시장의 해장국 집에서 얼큰한 콩나물을 시키니, 이른 아침임에도 손님이 북쩍인인다. 특히 여객을 나르는 마지막 장면을 취재하기 위해 kbs사진 기자와 취재진이 7-8명 자리를 잡고 있다. 옆자리엔 같은 연배쯤 보이는 중년인이 쐬주 한잔 시켜놓고 20년 열차 단골이라며 안타가운 소회를 토로한다. 구수하고 넉살좋은 해장국집 아주머니는 인심이 후해 보여 좋다. 모락 모락 김이 솟는 해장국에 쓰린 속을 달래며 역사쪽으로 들어서는데 치형이 ‘아빠’를 부른다. 예기치 않게 장인, 장모까지 찬조 출연해 오늘의 여행객은 5명이다. 목적지는 남원 광한루다. 장인 장모는 치형을 유별나게 아끼고 사랑한 터라 이틀 후에 출국하는 외손자와 좀더 시간을 갖고 싶은 속내일 터이다. 때는 엄동설한이라 조금 염려가 됐지만 우리 모두 기차에 올라 자리를 잡는다. 생각보다 손님이 많다. 우리처럼 가는 해와 마지막 열차임이 아쉬워 동승한 사람도 적지 않은 듯 싶다, 7시30경 플랫 홈에서 기적을 울리며 서서히 움직인다. 관련 기사를 스크랩해본다. 군산역은 일제 강점기인 1912년 3월에 지어졌다. 한국전쟁 때는 폭격을 맞아 역사가 소실되기도 했으며, 1960년에 현재의 건물을 신축하고 여러 차례 개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군산역에는 군산-익산-전주 구간을 하루 8회 정도 오가는 통근 열차가 운행 중에 있는데, 이 열차도 역사의 폐지와 함께 곧 운행이 중단될 예정이다. 군산역은 이미 ‘군산화물역’이라는 간판을 갈아 단 채 승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군산역의 김태호 역장은 “역사 이전 문제로 워낙 처리할 문제들이 많아서, 간판은 미리 바꿔 걸어두었지요” 하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어 그는 “역사 이전은 사실 지난 1997년부터 논의되었던 사항입니다. 지금까지는 열차로 서울에서 군산까지 오려면 장항역이나 익산역에서 갈아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죠. 이제 장항선과 익산역을 연결해 용산-장항-익산-서대전으로 이어지는 노선을 만들게 됨에 따라, 새로운 군산역에서는 직접 서울과 충청권으로 여행을 할 수 있게 됩니다”라고 역사 이전에 대한 설명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여객 업무가 중단되면, 사실상 역이 사라지는 거니까요. 95년의 역사가 이렇게 끝을 맺는다고 생각하니 섭섭한 마음이 큽니다”라며 서운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군산역은 어르신들께 하나의 경로당 같은 구실을 해오던 곳이었거든요. 이제 화물 업무만 하게 되면서, 지금의 역사는 사실상 폐지되는 거니까… 많이 안타깝네요.” 군산역은 ‘역전 종합시장’과 맞닿아 있으며, 이에 따라 역 주변 유동인구의 대부분은 중장년층과 노년층이 차지하고 있다. 군산역은 그러한 어르신들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해 왔다. 하루 평균 1,500명에 달하는 군산역 이용객의 상당수를 차지하는 사람도 바로 어르신들이다. 따라서 군산역을 근간으로 하여 생활해 왔던 어르신들이 군산역 폐지에 대해 느끼는 아쉬움은 누구보다 클 수밖에 없다. 역 내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던 최덕기 할아버지(군산시 경암동, 67)는 “그동안 우리 같이 나이 든 사람들은 싼 가격으로 열차도 타고 그랬거든. 그런데 이제 역이 옮겨가면서 경로권도 3배 정도 오른다고 하니 부담도 되고…. 매일 같이 들르던 역이 없어진다니까 허전하기도 하고 그래” 라는 말로 안타까운 소회를 밝혔다. 한편 플랫폼에 들어온 CDC(Commuter Diesel Car, 통근형 디젤 동차)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던 김금자 씨(군산시 대야면, 49) 역시 열차 폐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역 앞에 서는 새벽시장에 가기 위해, 평소에 자주 새벽 통근열차를 이용했는데 많이 아쉬워요. 새벽시장에서 야채를 파는 할머니들이나 통학하는 학생들은 더 그럴 거 같구요. 정겨운 모습들이 참 많았는데, 더 이상 볼 수가 없게 됐네요.” 참으로 안타깝지만 영고성쇠의 철칙엔 예외가 없음이다. 바람의고향인 내흥동 신역에서 이제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터이다. 100년 가까이 애환이 서린 군산역이 사라져가는 데 안타까워하는 사람이 많음은 인지상정일 터이다. 치형은 디카를 들고 눈오는 풍경이며, 객실 곳곳을 부지런히 찍어댄다. 개정역을 향해 달리는 차창밖에는 산과 들이 온통 은세계로 물들어 한폭의 동양화를 그린다. 진부하게만 느껴지던 일상이 새로운 일탈을 꿈꾸며 눈부시게 변신하고 있음이다. 끝없는 설원너머 금강 하구엔 기러기 한 떼가 어디론지 사라져간다. 문득 한시 한 자락이 떠오르는 풍광임이다. 江雪 눈 내리는 겨울 강 유종원 柳宗元 千山鳥飛絶 산에는 새 한 마리 날지 아니하고 萬逕人종滅 들에는 사람 자취 전혀 없네. 孤舟사笠翁 도롱이에 삿갓차림 늙은이, 한 척 배 띄워놓고 獨釣寒江雪 눈 내리는 겨울 강에 홀로 낚시를 하고 있네. 어느새 열차는 개정역에 들어선다. 초등학교 6년 무렵 덕진에서 열리는 전국박람회를 보기 위하여 면사무소쪽 호 동네를 거쳐 송호릿길로 걸어 최초로 기차를 타본 곳이라 감회가 새롭다. 지금도 술 한잔 하면 그 때 여비가 없어 가지 못하고 친구들 가는 모습을 먼 발치로 보며 안타까웠다는 친구의 사연이 가슴을 뭉클케한다. 일찌기 상경해 자수성가하고, 지금은 용인 컨트리 클럽이 내려다 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만인의 부러움을 받고 사는 친구인지라 금석지감이 새로울 터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잔다 칙폭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아기아기 잘도잔다 기찻길 옆 옥수수밭 옥수수는 잘도큰다 칙폭 칙칙폭폭 칙칙폭폭칙칙폭폭 기차소리 요란해도 옥수수는 잘도큰다
어린 날 즐겨 불렀던 동요이다. 일제의 압제에 굴하지 않는 민족정기가 가사안에 숨어 있다 한다. 이러한 역사의 애환을 아는지 모른는지 치형과 아내 그리고 장인 장모님은 시종 즐겁기만하다. 준비해온 떡과 과일을 나누며 모처럼의 가족 여행이 즐거운가 보다. 부지런히 달리며 대야, 임피, 술산, 오산등 정겨운 이름이 스쳐간다. 열차를 타고 다시 지날 수 없다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 삶도 마지막 날인 듯 산다면 큰 회한은 없으련만, 부질없는 욕심 탓에 갈등이 끊이지 않는 것 아닌가? 어느새 익산역이다. 1978년 이리역 폭파사고로 신청사가 지어졌다. 큰 아픔을 딛고 오늘의 웅장한 역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숱한 사연과 사연이 만나는 곳이기에 영화 속에도 자주 등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 여전히 눈발이 흩날린다. 바람은 차지만 오가는 사람들은 들떠있다. 모처럼의 가족 나들이에 하늘도 일조하고 있음인가? 잠시 기다리니 남원행 무궁화호 열차가 도착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설경을 치형은 지치지 않고 찍어댄다. 점차 여객은 많아지고 오가는 길손의 사연도 깊어간다 눈덮힌 설원이며 백화난만한 나뭇가지 사이로 바람이 부니 설화가 흩날려도 벌,나비는 간데 없다. 깜빡 졸았나 싶은 데 어느새 전주 신역을 지나 임실 오수 를 거쳐 목적지인 남원역에 도착한다. 택시를 타니 광한루며 춘향테마파크 그리고 유명한 음식점등을 자상하게 설명해준다. 차는 어느새 광한루에 도착한다 설경을 구경나온 관광객이 적지 않다. 모두 들떠 있고 여기 저기 셧터를 눌러댄다 정겨운 연인과 가족 나들이를 보노라니 덩달아 흥이 돋는다. 우린 안내 표지판에 선다. 전라북도 남원시(南原市) 천거동(川渠洞)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정(樓亭). 《춘향전》에 의해 널리 알려졌다. 조선 초기의 명신 황희(黃喜)가 지은 광통루(廣通樓)를 1434년(세종 16)에 부사(府使) 민여공(閔汝恭)이 헐고 새로 단아하게 지었으며, 전라도관찰사로 부임한 정인지(鄭麟趾)가 광한루로 이름을 고쳤다. 정유재란(丁酉再亂) 때 왜병의 공격으로 남원성이 점령되면서 광한루도 불탔다. 그 후 1626년(인조 4)에 부사(府使) 신감(申鑑)의 주관하에 옛모습대로 재현되었다. 광한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인 20칸 규모의 다락집으로, 난간을 4면에 두른 마루 밑으로 큼직큼직한 돌기둥을 다듬어 세웠다. 북쪽의 뒤편으로는 나무기둥을 세우고 주초석(柱礎石)을 받쳤으며 어간(御間;中央間)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이 계단은 지붕과 이어져 삼단(三段)의 층교(層橋)를 이루는 드문 구조이다. 공포(拱包)구성은 출목(出木) 돌을 설치한 것인데, 주심포(柱心包)라고 하기보다는 익공계(翼工系)의 법식을 과장한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부채모양인 서까래를 구성하였으며, 가구(架構)는 7량집으로 하여 공간이 넓다. 천장은 서까래가 훤히 드러나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다락집 동편에 같은 높이로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별당이 부설되었는데, 내부에는 구들을 설비하였다. 보물 제281호. 광한루원은 호남제일루라는 광한루 앞으로 동서 100m, 남북 59m에 이르는 정방형의 호수와 삼신산을 상징하는 영주와 방장 봉래로 일컬어지는 3개의 인공섬이 호수속에 꾸며져 있다. 그리고 서편에 4개의 홍예로 구성된 오작교는 광한루를 가장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는 중심축이다. 또 21동의 고 건축물이 있는데 주요 건물은 영주각과 방장정,완월정,청허부,춘향관등이 있다.이같은 누각과 연못, 정원이 결합된 하나의 공원이다 안으로 들어서니 아름드리 느티나무와 소나무, 전나무, 대나무등이 화사한 백의를 차려입고 길손을 반긴다. 선인들의 체취와 풍류 그리고 낭만이 진하게 느껴진다. 유교적 이상국가와 유불선을 절묘하게 조화해 조성한 조선인의 무릉도원임이다. 치형은 누각 하나 하나를 세심히 살피며 카메라에 열심히 담아둔다. 광한루에 올라 보니 전체가 한눈에 들어온다. 천체우주를 상징하여 조성햇다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루원인 광한루원에는 1자가 넘는 잉어들이 무리지어 헤엄치며 길손들을 유혹한다. 조선인의 정교한 건축기술이며 심미적 감수성은 가히 천하제일이 아닌가 싶다. 발길 닿는 누각 하나 하나가 기능성과 심미성 그리고 주변 경관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보길도의 고산유적지와는 또 다른 흥취를 자아낸다. 춘향전을 모태로 조성한 월매집이 눈에 들어온다. 월매가 장독대에 정한수를 떠놓고 사위인 이도령의 장원급제를 비는 모습을 밀랍인형으로 조성해 놓았다. 조선판 신데렐라의 꿈이 서려있는 곳이다. 발길은 다시 춘향 기념관에서 멎는다, 소설속의에 주요 테마기 이곳에서 부활을 꿈꾼다 춘향전이 전하는 역사적 의의에 대해 치형과 대화를 나눈다. 사랑이야말로 인류 생존의 근간이고 영원한 화두일터이다. 조선 중기 이후 양반의 권위 추락은 곧바로 신분 해방과 여권신장으로 이어진다 열녀와 효자를 지향하는 사회는 이미 그 가치가 무너져 가고 있음을 반증한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물을 찾지 않음과 같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광한루를 나서는데 까치 몇 마리가 날개짓하자 다시 찾으마고 손을 흔든다. 이도령의 어사시 金樽美酒天人血(금준미주천인혈) 玉盤佳肴萬姓膏(옥반가효만성고) 燭淚落時民淚落(촉루락시민루락) 歌聲高處怨聲高(가성고처원성고) 금동이의 향기로운 술은 만백성의 피요 옥소반의 맛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촛불의 눈물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 떨어지고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구나 춘향의 옥중시 去歲何時君別妾(거세하시군별첩) 昨已冬節又動秋(작이동절우동추) 狂風半夜雨如雪(광풍반야우여설) 何爲南原獄中囚(하위남원옥중수) 지난 해 어느때에 임을 이별 하였던가 엊그제 겨울이더니 이제 또 가을이 깊었네 거친 바람 깊은 밤에 찬비는 내리는데 어찌하여 남원 옥중에 죄수가 되었는고 춘향이가 변사또의 수청을 거부한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 옥중에서 불렀다는 옥중시(獄中詩)에는 님을 그리워하는 애절함이 절절하게 드러나 있다. 남수란 - 오작교 (烏鵲橋) 은하수 무심한 강 사이에 두고 흘러도 무지개로 징검다리 길을 놓아 오시려나 날개옷 품 속에 님을 안은 새가 되어 구천 세계 벗어나 훨훨 날아 오려무나 칠월 칠석 눈물자리 견우직녀 길이먼데 오작교 부여 잡고 님이 울고 내가 운다. 광한루에 온통 빠져 시간가는 줄 모르더니 문득 시장기가 돈다. 벌써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다. 우린 남원 추어탕의 대명사인 새집을 찾아간다. 전북 남원시 남원 광한루 '새집'이라는 추어탕 전문집. 40여년 된 정통을 자랑하는 별미 집으로 78세의 서삼례 할머니가 첫 맛을 내었는데 이젠 조카딸이 가업을 이어받아 맛의 비법을 이어가고 있다. 맛의 비법은 우선 주재료인 미꾸라지 를 토종 미꾸리를 써서 추어탕을 만든다.또한 새집의 자랑은 매년 새롭게 담은 간장, 된장, 고추장과 각종 야채로 22년간 할머니로부터 전수 받은 고유의 비법을 가미하여 그 맛을 완성하였다 한다. 별미집 메뉴는 물론 추어탕과 추어숙회이다. 추어숙회는 넓적한 불판위에 얇게 썬 감자를 깔고 그위에 온갖 야채와 미꾸라지를 얼큰하게 양념한 것을 올려서 찜 하듯이 익힌다. 다 익은 것을 상추위에 미꾸라지를 초고추장에 찍어 동동주를 겯들여 먹는다. 다 먹은 다음 마지막으로 맨 밑에 있는 감자를 뜯어먹는 맛도 괜찮다 추어숙회는 흙내도 비린내도 나지 않는 것이 별미. 자연산 미꾸라지에 들깨, 토란대 등 직접 재배한 재료를 사용해 뒷맛이 개운하다 참으로 명불허전이다. 독특한 향이며 개운한 감칠 맛은 말로다 형언할 수 없다. 모처럼 여행지에서 가족끼리 오붓하게 식사를 즐기니 모두 행복해 보여 좋다. 이제 연로하고 몸이 불편해 함께 나들이 못하는 부모님이 못내 걸린다. 몇해전 유람선타고 선유도에 다녀올 때는 그래도 정정했었는데 무심한 세원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음이다. 하고자 하는 일은 훗날로 미루지 말 일이다. 천하명승 광한루에 천하별미 새집 추어탕을 곁들이니 왕후장상에 비할 바 아니다. 오후 두시반 남원천을 지나는데 청둥오리 무리가 짝을지어 유영하고 하늘엔 함박눈이 하염없이 나린다. 지리산 자락의 산과 계곡 그리고 춘향전의 무대인 아름다운 전원 도시 남원을 그냥 떠나기 아쉬워 영화 ‘춘향뎐’의 셋트장을 공원화한 테마파크로 발길이 닿는다. 남원시 어현동 남원관광지내에 소재한 곳(3만 5천평 규모)으로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의 촬영장소를 포함하여 사랑의 테마가 있는 관광지로 조성한 곳이다. “춘향뎐”의 지고지순한 사랑을 오늘을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 담아내 과거의 사랑과 이제 사랑을 시작하는 이들이 사랑의 추억을 만들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고 만남의 장, 맹약의 장, 춘향뎐 영화세트장,축제의 장등 사랑의 5개 마당으로 춘향테마의 일대기를 재현하고 있다. 또한 철저한 고증을 거쳐 완성된 동헌, 관아, 내아, 월매집, 부용당, 옥사정을 비롯해 조선 중기 서민들의 삶이 깃든 고건물들이 들어서 있어 조선 중기 서민문화와 춘향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조성되어 있다. 대나무, 소나무 숲과 주변 야산을 절묘한 심미적 감성으로 되살려내 흡사 타임머신을 타고 이조시대로 자연스레 이끈다. 기찻길 따라 저물어가는 정해년 가족 나들이를 마치고 오던 길로 돌아온다. 역사 무대 저편으로 사라지는 군산역을 바라보며 애잔한 향수에 젖는다. 내흥동 신역 시대를 맞아 새로운 역사적 전기가 되길 기대해본다. |
첫댓글 한 해를 멋지게 마무리하셨군요. 군산역이 뒤안길로 사라지는 역사 현장에 계셨다니 나름 기억에 많이 나시겠어요.
남원 추어탕도 한 번 먹어보고 싶네요.^^
하루 하루가 쌓여 역사가 되는거지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군산역의 배웅길에 눈덮힌 설야를 가족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렸지요. 새집 추어탕 맛 일품이에요. 늘 능동적으로 다이나믹한 삶을 엮어가고 싶지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한계에 봉착할때가 많지요. 끝까지 읽어주어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