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오승민입니다. 명색이 부회장이라는 자가 너무 오랫동안 자기 글은 안올리고 남의 글만 읽고 가서 죄송한 마음에 몇 자 그적거려 보려고 합니다.
일천한 BCL경력이지만 청취자의 입장에서 좋아하고 즐겨듣는 방송 프로들이 있기에 저도 한 번 소개해 보려고 합니다.
저는 라디오를 통해 외국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몇 십, 몇 백만원 짜리 위성방송 장비를 설치하지 않아도 케이블 TV를 통해 NHK BS 1, 2는 물론 채널[V]는 물론 봉황TV까지도 볼 수 있는 시대이고, 인터넷을 통해 MP3, 리얼오디오파일로 CD음질의 음악파일을 공짜로 받을 수 있는 시대에 왠 잡음 섞인 단파방송을 통해 듣느냐고 묻는 분들도 많으리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국 청취자들을 염두에 둔 해설에 간략한 가사 해석을 곁들여 듣는 재미도 나름대로 쏠쏠합니다.
그 방면으로는 가장 공을 들이는 곳이 RTI겠죠. 토요일의 주말 음악방송에서는 중화권의 최신곡들을 자세하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80년대 중반, 홍콩영화의 전성기를 등에 업고 절정에 달했던 중화권 가요 붐을 생각해 보면 지금은 거의 시들해 졌다고도 볼 수 있겠고, 지금은 오히려 중화권에서의 <한류>열풍이 이슈가 되는 시대이지만, 인터넷을 뒤져보면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있고 중국어에도 능통한 - 대륙과 타이완에서의 용법차이와 발음상의 차이를 논할 수 있고, 광동어는 물론 민남어도 대충 알아듣는다는 정도의 놀라운 실력을 가진 - 매니아들의 홈페이지가 올라와 있고 명동 화교상가의 중국음악 관련 상점들이 여전히 장사가 되는 것을 보면 거품은 사라졌어도 뿌리는 깊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한국음악에도 관심이 많으신 백조미 팀장님이 가끔 타이완에서 유행하는 한국노래를 들려주실 때도 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오랫동안 들어왔고 가장 애착이 가는 것은 NHK의 <음악의 선물>입니다. 방송시간이 30분으로 단축되기 전, 그러니까 하루 3차례 한 시간씩 방송되던 시절에는 <금요 스튜디오 614>시간에는 NHK의 가요 순위 프로의 TOP10곡들중 1위곡과 새로 순위에 들어온 곡들을 중심으로 들려주었었고, 일요일의 <음악의 선물>시간에는 오래 전에 NHK를 떠난 최문정 아나운서가 주제별, 혹은 가수별로 일본의 전통 가요로 우리의 트로트와 비슷한 <엔카(戀歌)>를 소개해 주었었는데, 최근에는 <음악의 선물>만이 토요일에 방송되고 있는데, 이 시간에는 일본의 최신 가요들을 중심으로 젊은 사람들 취향의 노래가 방송되고, 엔카는 다른 요일 방송 엔딩곡 비슷하게 한두 곡 방송되고 있습니다. 한동안은 정주 아나운서가 담당하다가 그분 역시 NHK를 떠나면서 최근에는 임주희 아나운서가 담당하고 있는데, 우연치 않게 최문정 아나운서와 정주 아나운서의 고별방송을 모두 녹음해서 보관하고 있습니다.
음악이라고 하면 또 러시아를 빼놓을 수 없겠지요. 모스크바 방송이라면 북한방송 듣는 것 다음으로 중대범죄가 되던 시절에도, 국내에서는 금지된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을 듣기 위해 몰래 이불 뒤집어쓰고 단파라디오 듣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예술대국 러시아의 음악도 <감상>할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클래식 곡들은 물론이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구 소련시대의 서정가요인 <로만스>장르의 음악들을 좋아합니다. 단조의 슬픈 음색의 서정가요들은 우리의 정서에도 잘 와 닿는 느낌인데, 90년대 초에 국내에서도 유행했던 <상뜨 뻬째르부르크>나, 드라마 <모래시계>의 삽입곡으로 유명한 <백학>이라는 곡들이 바로 이 장르의 음악들입니다. 이에 비하면 요즘 러시아에서 유행하는 댄스뮤직풍의 음악들은 너무나도 천편일률 적이어서 오히려 짜증이 나는군요.
보도와 교양 프로들도 물론 즐겨듣습니다만, 그 중에서 가장 이채롭다고 할까, 가장 그 나라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꼽으라면 저는 매주 목요일에 방송되는 CRI의 <민족 대 가정>시간을 들고 싶습니다. 중국에 살고있는 50여개의 소수민족들의 생활 풍속을 소개해 주는 이 시간은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특색을 잘 보여주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서부지역의 일부 소수민족들의 분리주의적 움직임에 대한 중국 정부의 단호한(?) 정책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볼 필요도 있긴 하겠지만, 전문가들조차도 <소수민족 정책의 교과서>라고 칭찬하는 - 200만 조선족에 대한 중국정부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는 -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다원주의적 관용성은, 최근 전통적인 화교이외에도 외국인 노동자와 한국계 외국인의 유입, 심지어 이제는 흥미 거리도 안될 만큼 드물지 않은 일이 되어가는 한국으로의 귀화자의 증가 등으로 부분적으로 다민족, 다국적 사회의 모습을 띄어가는 우리의 사회상을 생각해 볼 때 참고가 될 부분이 없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가끔 <조선말>을 외국어가 아닌 <소수민족 언어>의 범주에 넣어서 이야기 할 때는 - 물론 대부분 조선족 출신인 방송원들로서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울 지도 모르지만 - 혹시 한반도의 7천만 한민족도 넓은 의미의 중국 소수민족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찜찜한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요...
다채로운 외국의 한국어 방송에 비해, 사회교육방송보다도 무미건조하다는 느낌이 드는 라디오 코리아의 우리말 방송중에서도 제 취향에 맞아서 그런지 재미있게 듣는 방송이 있으니, 매주 일요일에 방송되는 <역사실록>과 <움직이는 세계>시간입니다. 특히 <움직이는 세계>시간에는 외신전문가인 사회자 서정식 선생 이외에도 삼성경제연구소, 세종연구소, 국방대학 등의 학자들과 연합통신이나 중앙일간지의 외신전문기자 등 국제문제 전문가들을 게스트로 불러서 그 주일의 이슈가 되고 있는 정치, 군사, 경제, 문화 등의 다양한 이슈들을 두 가지씩 선정하여 그 배경이 되는 사항들까지 파고들어 심층 분석을 해 주는데, 2500원 주고 시사주간지 사서 읽는 것 못지 않은 영양가가 있습니다.
여기다가 여러 가지 외국어 강좌들도 활용하면서 여기서 쌓은 실력으로 원어방송도 들어본다면 단파방송은 단순한 취미활동이 아닌 저렴한 학습매체가 될 수도 있겠군요.
부드럽게 시작해서 딱딱하게 흘러온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두서 없이 길기만 한 글 짜증 참아가면서 끝까지 읽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