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홍콩은 소금과 진주재배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던 조그마한 어촌이었다. 그런데 ‘향나무를 사 들어와 생산하여 전역에 분포되면서 Hong Kong이 香港(홍콩)이라고 불리워졌다’고 한다. 지역적으로 살펴보면 홍콩 섬과 구룡, 신계지역과 현재 첵랍콕 국제공항과 디즈니랜드가 있는 란타오 섬(홍콩섬보다 더큼)을 비롯하여 180여개의 섬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아편전쟁이후 영국이 욕심을 내어 이곳을 아름다운 국제항구로 발전시켜 애착을 가졌지만 1997년 7월 1일을 기하여 정치권을 중국으로 이양 하고 말았다.
중국인에게 7월 1일은 분명 '평범하지 않은 날(不平凡的日子)'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중국 공산당이 창당된 날이고 또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치욕의 상징이었던 홍콩에 대한 주권을 평화적으로 회복한 날이기도 하다.
1997년 7월 1일 0시를 기해 156년 동안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았던 홍콩의 주권이 중국에 반환되었다. 이로써 홍콩은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이자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실험무대로서 새 출발 하며 홍콩을 중화인민공화국홍콩특별행정구(中華人民共和國香港特別行政區/ S.A.R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라 명명하며 기본법을 세워 향후 50년 간 이전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의 제도와 생활 방식을 바꾸지 않는다는 약속을 했다.
그러나 1995년에 미국의 「포춘」잡지는 2년 후 홍콩의 중국 복귀를 앞에 두고 「중국 복귀는 홍콩의 죽음을 의미한다」라는 기사를 게재했고 그 당시 불안과 초조의 전환점에 갈팡질팡했던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이를 믿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미국, 캐나다, 호주를 비롯한 여러 나라로 이민을 떠났다. 특히 그중 기독교 지도계층의 사람들이 많이 떠나 지도자들의 부족으로 한목사가 서너 교회의 예배를 인도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오는 7월 1일은 홍콩이 영국으로부터 반환된 지 10년이 되는 날이다. 홍콩공영 방송 RTHK의 한 프로그램에서 홍콩시민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56%가 중국 특별행정구의 체제가 좋다고 평가하게 되었다. 미국의 「타임」잡지는12년 전 불길한 예언을 했던 포춘지의 예언이 적중했는지를 검토하며 25페이지에 걸쳐 상세하게 게재하면서'홍콩은 지금 영국 식민지 시대보다 왕성한 활력을 보이고 있다'고 기재하고 있다.
홍콩이 반환되기 직전인 1996년 상영된 영화 '첨밀밀'은 돈벌이를 위해 대륙에서 홍콩으로 건너온 장만옥과 여명의 사랑이야기를 방영한 것이다. 영화 속 대륙인은 가난했고 광동화(廣東話·홍콩과 광동지역 방언)와 영어를 알아듣지 못해 무시당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홍콩 사정은 많이 달라져 있다. 홍콩인은 푸퉁화(普通話·표준 중국어) 배우기에 열심이고, 대륙인 관광객은 통 큰 씀씀이로 홍콩 상인의 환대를 받고 있다. 중국의 경제 고성장과 거대 시장은 홍콩 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평균 7~8%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동양의 진주' 홍콩은 자유롭고 효율적인 시스템과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의 양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콩은 정치권 반환이후 지난 10년간, 순풍만 불어왔던 것은 아니다. 반환이후 사회적인 불안과 함께 시작되었던 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시작으로, 조류인플루엔자, SARS 등 많은 위기에 휩쓸려 왔지만 홍콩은 이를 모두 극복해 내었다.
그 뒤에는 14억의 대륙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람들이 홍콩에 있었다. SARS가 온 홍콩을 암흑의 도시로 덮을 때에도 다른 나라로 피신을 떠났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기도와 희생이 온 홍콩을 일어서게 했다. 이때 한국교회들도 연합하여 기도회에 동참했던 일들이 기억된다. 그 결과 폭풍의 위기 상황에서도 기독교인들은 늘어났으며 홍콩은 하늘이 품은 도시로서 서서히 회복되어지고 경제도 영국으로부터 주권이 반환되던 97년 보다 크게 상승, 지속적인 활황세를 보이고 있으며 물가수준도 안정되어 졌다. 뒤돌아보면 역사의 소용돌이와 많은 변화 가운데 하나님께서 홍콩을 사랑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지금의 홍콩은 백만이 넘는 많은 대륙의 중국인들이 홍콩으로 넘어와 신 이민으로 자리 잡았으며 다른 나라로 이민을 떠났던 자들이 다시 귀향을 하게 되었다. 이는 중국이 홍콩을 중국의 특별행정구로서 한나라 두 체제에서 홍콩인들에게 신뢰를 주었으며 자국민으로서 홍콩인들을 특별한 법(기본법)으로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이러한 일들은 홍콩이 중국선교를 하는데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자면 홍콩은 중국의 사역지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서 중국선교에 특별하고 유리한 조건을 많이 가지게 된 것이다.
이 사역지 안으로 들어온 홍콩을 바라보며 홍콩특별행정구 기본법을 설명한 100문(1997년 7월1일 이후 향후 50년간 적용)에 나타난 종교관계 내용을 봄으로서 홍콩의 기독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문제89: 홍콩특별행정구 정부는 주민들의 종교 신앙의 자유를 어떻게 보호합니까?
답: 홍콩특별행정구 정부는 기본법에 반하지 않은 종교 활동을 제한하지 않으며 종교조직 내부의 사무에 간섭하지 않으며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
종교 조직은 법에 의하여 재산취득, 사용, 처리, 계승을 할 수 있으며 재정원조를 받을 수 있는 권리와 재산을 상속할 수 있다. 그리고 재산 방면의 원래 가지고 있는 권익은 계속 보존, 보호받는다. 또한 종교 조직은 종전처럼 신학교, 일반학교, 병원 그리고 사회복지기관 등을 운영할 수 있고 또한 다른 사회봉사를 제공할 수 있다. 홍콩 특별 행정구의 종교조직 및 교인들은 타지방 종교단체 및 교인들과의 관계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다.
문제92: 홍콩 특별 행정구 민간단체, 종교조직, 그에 상응하는 내륙의 단체 및 종교 조직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원칙이 있습니까?
답: 홍콩특별행정구의 교육, 과학, 기술, 문화, 예술, 전문연구, 의료행위, 노동, 사회복지, 사회활동 방면의 민간단체 및 종교단체조직은 그에 상응하는 내륙의 단체 및 조직과의 관계가 상호불예속, 상호불간섭, 상호존중의 원칙에 입각해야 한다.
문제93: 홍콩특별행정구의 민간단체와 종교 활동은 세계 각국의 관련 단체와 관계를 발전 시킬 수 있는가?
답: 홍콩특별행정구의 교육, 과학, 기술, 문화, 예술, 체육, 전문연구, 의료행위, 노동, 사회복리, 사회활동 방면의 민간단체와 종교 조직은 세계 각국, 각지 그리고 국제적 관련단체 및 조직과 관계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으며 각 해당 단체 및 조직은 필요한 경우 “중국홍콩”이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관련 활동에 참여한다.
위에서 살펴 본바와 같이 홍콩은 중국과 한 나라로 두개의 체제를 유지하며 생활하고 있다. 이제 홍콩을 중국과 따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일국 이체제가 순조롭게 진행되어 가고 있으며 홍콩은 중국의 영토이지만 내륙에 비하면 집회의 자유, 종교 자유, 문화 출판 표현의 자유가 과거 영국시절과 큰 차이 없이 지켜지고 있다. 일단 기본법상으로 홍콩은 마음대로 종교 활동을 할 수 있다. 현재 내륙선교가 용의치 않은 점을 고려해 볼 때 홍콩을 알면 홍콩이 중국선교에 얼마나 중요하고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며 더욱 쉽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홍콩을 한번 살펴보자. 종교는 가장 많은 것이 불교와 도교이다. 이는 문화 혁명이후 공산주의 무신론사상에서 추방된 대륙의 종교들이 홍콩으로 밀려나 자리 잡으면서 노년층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기독교는 8-90년대 들어와서 많은 성장을 보였으며 특히 젊은층들이 복음에 대한 반응을 많이 보이고 있다.
홍콩교회는 학생층의 비율이 가장 높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전체 홍콩 학생수에 비하면 기독학생들은 2.8%에 불과하다. 기독교 국가인 영국이 156년을 통치했고 10년이 지났는데도 개신교 신자는 인구의 3.6퍼센트 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통계를 보면 홍콩의 토양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된 지 어느 듯 10년, 13억의 중국을 바라보며 대륙선교의 모판으로서 홍콩교회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고자 한다.
홍콩은 대륙에서 제일 상권이 발달된 광동성 남단에 위치하고 있다. 홍콩인들은 반환 전 대륙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오히려 광동화(廣東話)를 사용하는 홍콩인들은 푸통화(普通話)를 사용하는 본토사람들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어 푸통화(普通話) 사용을 원치 않았다. 대륙을 왕래하는 것도 그리 용의 하지가 않았다. 그러나 홍콩반환 이후 특별행정구로서 한나라 두 체제를 채택하여 신뢰를 쌓아 10년이 지나면서 서서히 홍콩인들도 자국인으로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한나라 두 체제 속의 중국에 좋은 반응을 보이고 많은 남, 녀들이 대륙의 신랑, 신부들과 결혼하게 되면서 자연히 중국화 되어가며 한나라 두체제의 실제를 더욱 경험하게 되었다.
정치권 이양 전에는 대륙과의 통행절차가 까다로웠던 출입국 관리소의 통행이 이제는 ‘통행증’만 발급 받으면 여권 없이도 대륙의 어느 곳이든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중국 돈을 홍콩 돈으로 환전하지 않아도 바로 홍콩에서 큰 상점들에서 용이하게 사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홍콩에 살고 있는 외국인들의 경우에도 영구영주권을 받으면 직접 중국비자(3년짜리)를 발급받을 수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현지인과 똑같은 통행증을 발급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이 영구 영주권을 받은 사람들은 홍콩이 150개 국가와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해 해외활동이 훨씬 간편해 졌다. 반환이후 많이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교육계에서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기존에 있던 영어학교가 많이 없어지고 모든 학교에서 북경어(만다린)를 의무적으로 실시하도록 제도화시켰다. 대학에서는 만다린(북경어)과정을 이수하지 않으면 졸업에 지장을 가져오기까지 되었다. 이젠 만다린(북경어)이 중국대륙에서만 통용어가 아니라 홍콩에서도 통용어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또한 홍콩은 대륙의 우수한 학생들을 유치하여 교육을 시키고 있다. 사실 대륙의 우수한 학생들이 시설이 잘되어 있는 홍콩의 학교에서 공부하기를 원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작년 중국 최고의 명문인 청화대학 전체 수석합격자가 청화대학을 가지 않고 홍콩대학에 입학했으며 광동성의 수석합격자도 홍콩의 중문대학으로 북경대학의 이과 수석인 '양후이신'과 문과 수석인 '허쉬안베이'도 나란히 홍콩 과기대로 입학을 하였다.
필자의 남편이 근무하고 있는 학교(홍콩대학/홍콩교육대학)에서도 대륙의 많은 학생들이 공부 하고 있다. 남편이 맡고 있는 반에만 해도 내몽골의 우수한 학생이 1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홍콩의 신학교에는 대륙의 학생들을 지도자로 양성하여 돌려보내기도 한다. 또한 홍콩인들도 내지 학교에 입학을 할 경우 예전에는 차별을 두어 학비를 많이 받았지만 올해부터는 본토인과 똑같이 저렴한 학비를 내고 공부하는 혜택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중국에서도 홍콩을 바라보는 시각이 예전과 같지가 않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가 자국인으로서 공존해 가고 있는 것이다.
홍콩은 지형적인 면에도 중국 대륙과 붙어있어 필자가 사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출입국 관리국을 지나는 데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출입국 관리소가 있는 작은 강만 넘어가면 광동성의 경제특구인 심천이다. 반환 전에는 중국으로 넘어가는 국경통로가 하나였는데 지금은 3개가 되었다. 심천은 경제특구로 중국의 여러 지역의 사람들이 모여 이룬 계획도시 중의 하나이다. 인구는 벌써 천만을 넘어섰으며 우리교민들도 약 5만명이 넘게 거주를 하고 있다. 주택료 생활비가 저렴하여 본인도 쇼핑이나 생필품을 사러 홍콩시내로 가는 것 보다 심천으로 가는 경우가 훨씬 많아졌다. 이제 홍콩과 광동성은 일일 생활권이 되었다. 회사원도 학생들도 물건을 사는 사람들도 홍콩에서 심천으로 심천에서 홍콩으로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었다. 또한 아예 심천으로 이주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도 사무실을 홍콩섬 쪽에서 국경 부근으로 옮겨오는 경우가 늘고 있고 아예 심천으로 옮기는 경우도 있다. 반환이후 10년이 지나면서 중국과 한나라를 이루며 선교적인 측면에서도 홍콩 교회들은 본토로 선교사를 보내며 대륙선교의 모판 역활을 톡톡히 감당해 나가려는 움직임이 뚜렷이 보이고 있다.
중국은 경제적인 면에서 개방을 하였지만 종교적인 면에서는 자국민 위주로 활동을 하며 외국인이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하고 있다. 이런 대륙을 바라볼 때 홍콩은 스스로 찾아들어오는 수많은 내륙의 신 이민과 스스로 찾아오는 우수한 학생들을 마음껏 교육시킬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홍콩의 중국인들은 언어와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 직장의 출장일들과 친지방문 일들로 자주 내륙을 드나들며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얼마 전 필자가 섬기는 교회의 청년이 해남(중국)아가씨와 결혼식이 있어 피로연에 참석하게 되었다. 신부의 집안이 신앙생활을 해온 사람들이라 많은 대륙의 기독교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어떻게 교회를 개척해 가는가? 그들의 간증을 들으며 그들의 입장에서 서서히 다가가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홍콩에 있으면 자연스레 여러 기회를 통회 자국민 사역자들도 만날 수 있다.
홍콩은 이들에게 기도와 물질과 훈련들을 통하여 복음의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이들을 통해 훨씬 자유롭게 복음이 확장되어가는 대륙의 복음의 징검다리이다.
홍콩은 반환 10년 후, 중국의 뚫린 물고를 타고 자유롭게 왕래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었고 그들 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되었다. 내륙의 복음 전도자의 훌륭한 인적 자원을 발굴하고 훈련하여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이 확장된 셈이다. 외국인에게는 선교사 비자를 허락하지 않고 복음을 전 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제한시켜 버려 사역의 한계를 가져오는 중국에서의 많은 외국 선교사들을 바라볼 때 이제는 중국 안에 있는 홍콩을 바라보며 홍콩에서 자국민을 훈련시키며 보내는 사역에 박차를 가해야 할 때인 것이다.
필자의 가정도 이런 홍콩 역사적 전환기의 인도하심을 틈타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학교사역(홍콩대학/홍콩교육대학)으로 복음의 통로를 이용해 현지인 교회를 설립하였다.
이들을 위하여 예배(普通話)를 개설했으며 세례를 주고 양육하여 제자훈련을 시켜 대륙으로 직간접으로 내어보내며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이들 중에는 복음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신 이민으로 자리 잡은 중국인들과 홍콩으로 유학온 학생들과 홍콩에 살면서도 전혀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훈련되어지면 자연스레 대륙으로 복음을 들고 갈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섬기는 교회의 한 자매는 헌신하여 대륙선교를 위해 선교훈련을 받고 있고 또 한자매는 그들을 돕기 위하여 선교단체를 만들어 정부에 등록을 준비 중에 있다.
본 교회 교우 가운데 신 이민으로 자리 잡은 자매들은 매주일 대륙을 방문한다. 이는 대륙인이면서도 홍콩인이다. 그리고 금속설계기사로 홍콩에 본사를 두고 매주 월요일이면 공장이 있는 심천으로 출근을 하는 사람도 있다. 만 명이 넘는 직원들과 함께 일하다가 금요일이면 다시 홍콩으로 돌아온다. 이젠 그들의 일터가 복음의 통로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제는 홍콩교회도 중국선교에 직간접으로 많이 참여하게 되었다. 어떤 신학교에서는 졸업생들의 현장실습이 대륙으로 이어지며 교회학교에서도 초·중·고생들의 여름활동을 중국으로 가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교회와 신학교, 선교단체들은 내지 사역자들을 불러내어 신학교육을 시키며 훈련을 시켜서 다시 그들을 사역지로 보내고 있고 중국선교의 정책회의와 토론도 홍콩에서 모이는 숫자가 빈번하고 많아졌다.
홍콩은 중국의 13억 인구를 주님께서 부르시기 위해 160년 동안 이모양 저모양으로 철저하게 준비시키고 발전시켜왔다. 홍콩은 많은 기독교 학교들이 있고, 200여개의 크고 작은 선교기구와 50여 개가 넘는 출판사들이 중국 사역을 위해 협력 또는 전담하고 있다. 내륙의 교회와도 교류가 활발하여 홍콩에서 만든 성경공부 자료나 교회의 영적 프로그램이 대륙에 많이 소개 되어지고 있다. 얼마 전에 필자의 교회에서도 홍콩에서 인쇄한 1,000여권의 성경책을 홍콩중국인을 통하여 자연스레 대륙 교회로 전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홍콩의 변화 가운데 중국에서도 경제개방을 하며 파출소에 신고만 하면 홍콩 여행이 자유롭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홍콩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본토 사람들도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1997년 7월 이전 정치권이 중국으로 반화되기 이전에는 가사 도우미들도 필리핀,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포함한 외국인들로 30만이 넘었지만 이제는 그들도 중국 본토인으로 대체하는 추세이다.
이제는 홍콩은 더욱 밀접한 또 다른 중국안의 사역지로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교에 헌신한 홍콩중국인들과 홍콩교회들과 협력하면 더욱 쉽게 내륙선교에 접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홍콩은 다소 물가와 주택비가 비싸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인사역을 하지 않는 이상 홍콩 섬을 벗어나 신계지역으로 나오면 오히려 대륙에서 들어 온 신이민(대륙중국인)들과도 쉽게 만날 수 있고 홍콩 섬의 삼분의 일 가격으로 주택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대륙과도 가깝게 연결되어 있어 생필품도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비자를 얻기에는 대륙보다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지만 홍콩의 단체들이 필요로 하고 필요한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내륙선교에 훨씬 유리하게 접근할 수 있다. 마음껏 소리 내어 기도하고, 마음껏 소리 내어 찬양을 하며, 많은 선교단체에서 나오는 정보들을 이곳에서 공유하면서 ,헌신된 지도자들을 훈련시켜 대륙선교의 일익을 담당하는 중국의 특별 선교전략지구로서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다.
21세기를 지나오며 더욱 빨라진 정보화 시대 세계를 한 지붕으로 이루며 우리는 살고 있다. 북한선교가 한민족인 우리의 몫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중국선교도 자국민에 의해서 널리 확장되어 가야함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이에 맞추어 미국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던 화교들이 한 세기를 넘어오며 대륙선교에 불을 붙이기 시작하여 더욱 열기가 뜨겁게 달구어지고 있다. 그리고 역사의 전환점에서 중국선교 사역지 안으로 들어온 홍콩은 이일을 감당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홍콩반환 역사의 전환기 10년을 회고하며 중국이 경제개방을 하며 선교적인 측면에서 한국에 다소 소외되었던 홍콩을 바라보며 많은 변화 속에서 복음의 터전을 넓혀 가시는 주님의 신실한 계획들을 다시금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품고 계시는 도시 홍콩에 다시금 도약의 비젼을 꿈꾼다.
첫댓글 이 원고는 한국의 초교파 선교잡지인 선교한국의 7월 달 ‘선교타임즈’지의 선교광장에 나온 원고입니다.
손숙 선교사님 건강하세요? 반갑고 감사하며, 역시 글이 무척 감동입니다. 늘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하심을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