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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선교사 부부를 만났습니다. 점심 식사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속으로부터 울컥 올라왔습니다. 자리를 이동하고 차를 마시기 위해서 그가 진실한 바람을 담아서 간절하게 기도해 주는데 울컥 올라왔습니다. 국내에 머무르는 동안 선교비 마련을 위해서 쉬지 않고 온갖 궂은일들을 마다하지 않는 그가 주일헌금을 미리 준비해 왔다면서 내놓는 순간 울컥 올라왔습니다. 하나님 자녀로 거듭난 이후 자신의 인생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는데 그게 훨씬 더 나았다고 고백하는 순간, 울컥 올라왔습니다.
저 역시 정말 그렇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뜻이 인정사정없이 꺾인 자리에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어지던 대화를 이제는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순간, 너무 아쉬운 마음에 울컥 올라왔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사는 동안 최대한 많이 만났으면 좋겠다며 서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 보자고 말하는 순간 울컥 올라왔습니다. 헤어지기 직전, 서로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며 끌어안은 순간 얼굴을 보는 순간부터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사역과 관련된 여러 가지 대화들이 더 있었지만, 선교사와 선교지의 안전을 위해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선교사 부부와의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순간순간 울컥할 때가 많았습니다. 선교사 부부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이 훨씬 더 낫다는 고백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다.”(시18:30a)라고 고백했습니다. 직역하면 “하나님, 그의 길은 완전하다.”입니다. “하나님의 도 곧 하나님의 뜻, 방법, 섭리, 계획, 통치 등은 흠이 없고 온전하며 완전하다.”라고 의역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모든 판단과 행동 역시 신실합니다. 완전합니다. 부족함이 전혀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의 구원을 위해서 상상할 수 없는 모진 고난과 십자가에 못 박히는 치가 떨리는 고통을 목전에 두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 만일 아버지의 뜻이라면 제게서 이 잔을 없애 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눅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당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는 마흔다섯이라는 나이에 갑작스럽게 잘 다니고 있던 직장을 잃었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실직이었습니다. 자기의 뜻과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습니다. 그때, 그는 낙심하고 주저앉아 있지 않았습니다. 천 원, 이천 원짜리 저렴한 물건들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차가웠습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잘해보라며 격려해 주기는커녕 실패자로 낙인찍었습니다. “마흔다섯 살이나 먹고 겨우 저렇게 가치 없는 싸구려 물건들이나 팔고 다니고 있다니 그런 푼돈을 벌어 언제 그럴듯한 사업을 시작하겠느냐?”라며 조롱했습니다. 무시했습니다. 손가락질했습니다.
그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천 원이라는 작은 가격 속에 진심을 담았습니다. 고객에게 절대 싸구려가 아닌 최고의 가치를 담은 제품들을 공급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발에 땀이 나도록 뛰어다녔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대한민국 전역에 150개 이상의 매장을 가진, 거기다 온 국민의 뜨거운 사랑까지 받는 거대한 기업DAISO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יוֹסֵף(요세프)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더해 주시기를, 하나님께서 더하신다.” 등입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번성과 풍성한 은혜 등을 가리킵니다. 그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름입니다.
현실은 너무나 다르게 흘러갔습니다. 하루아침에 아버지 사랑을 독차지하는 것을 가리켰던 채색옷이 벗겨졌습니다. 물도 없는 구덩이에 던져진 채 방치되었습니다. 이방인의 손에 쓰임이 다하면 언제든지 아무렇게나 버릴 수 있는 도구들 가운데 하나처럼 여겨지던 종으로 팔렸습니다. 한때 주인의 살림을 책임지는 자리에 올랐지만 가장 가증스럽고 더러운 누명을 뒤집어썼습니다. 옥에 갇혔습니다. 도움을 베풀어주었던 사람들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졌습니다.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갔습니다. 그가 꿈꾸고 있었던 인생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게 더 나았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고 세상에 혼자 남은 것 같은 지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만큼은 놓지 않았습니다. 더욱 굳게 붙들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집안에 누구도 없으니 함께 동침하자며 자신을 유혹하는 여주인의 말에 자신을 믿고 집안 살림 전체를 맡긴 주인을 어떻게 배신할 수 있겠느냐고 외쳤습니다. 동시에 모든 상황을 하나도 빠짐없이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하나님께 어떻게 범죄 할 수 있겠느냐는 외침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여주인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치고 밖으로 뛰쳐나온 결과는 칭찬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도, 격려도 아니었습니다. 감옥이었습니다. 모든 일이 틀어버린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누구보다 잘살아보려고 몸부림쳤는데 훨씬 더 절망적인 상황 속으로 던져지고 말았습니다. 왕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섬기다가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전락한 술과 떡 맡았던 관리들이 간밤에 꾼 꿈 때문에 번민하고 있을 때는 해석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알려 주었습니다. 또 하나님을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어떤 꿈을 꾸었는지 말해 보라고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것 같은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다른 어느 때보다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그와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으셨습니다. 그가 맞닥뜨렸던 모든 상황 속에 친히 동행해 주셨습니다.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창39: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창39:23)라는 증거대로, 가는 곳마다 형통하게 해 주셨습니다. 마침내 이집트 총리의 자리에 앉혀주셨습니다.
두 번씩이나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꿈을 꾸었으면서도 담겨 있는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그를 위해서 창세 전부터 작정하셨던 당신 뜻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 외에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린 상황이 오히려 훨씬 더 나을 수 있도록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고해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 저와 여러분 역시 모든 일의 궁극적인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이유로 한없이 낮아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런 문제도 없이 잘 다니고 있었던 평생직장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당할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조롱과 무시와 손가락질을 받는 처지로 전락할 수도 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너무나 아픈 “네가 믿는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런 너의 처지를 보고도 가만히 있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있기는 한 것이냐? 그렇게 밖에 못 살 바에야 차라리 내 마음 가는 대로 사는 편이 백번 낫겠다!”라는 조롱과 비웃음이 섞인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상황을 보고 판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중심과 진심을 보고 판단하십니다. 보잘것없는 천 원짜리 같은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기만 하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가장 귀하고 빛나는 거룩한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호흡이 끊어지는 날 사라지는 인생들은 몰라주어도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하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알아주십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선하십니다. 지극히 지혜로우십니다. 지극히 완전하십니다. 당연히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으십니다. 아니 절대로 용납하지 못하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저와 여러분은 과연 어떻습니까? 인생은 절대로 저와 여러분이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는 뜻대로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다면 그편이 훨씬 더 낫다고 고백할 수 있겠습니까?
지혜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라고 외쳤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생각합니다. 계산합니다. 판단합니다. 계획합니다. 결정합니다. 인도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사실 저와 여러분은 눈앞의 현실밖에는 볼 수가 없습니다. 가려져 있는 내일은 절대로 볼 수 없습니다. 치열한 생각 끝에 도출해 낸 지금의 결정이 언제나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100퍼센트 장담할 수도 없습니다. 당장은 좋다고 생각되는 것이 실제로는 나쁠 수도 있고,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는 좋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하고 계산하고 판단하고 계획하고 결정하되 인도는 하나님이 해주시는 편이 백번 낫습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5:3-4)라는 증거대로, 절대로 바라지 않는 환난은 저와 여러분을 힘들게 합니다. 동시에 저와 여러분을 성장, 성숙할 수 있도록 만들어줍니다. 한층 더 높고, 깊고, 넓고, 크게 만들어줍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각과 계산과 판단과 계획과 결정을 그야말로 산산조각 내는 환난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버리신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창세 전에 작정하셨던 당신 뜻의 계획대로 빚으시는 시간입니다.
인생은 고해입니다.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일이 항상 좋을 수는 없습니다. 아픈 일도 있고, 눈물 나는 일도 있고, 아무리 양보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도 있고,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놀랍게도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8)라고 약속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사용하셔서 지극히 선한 결과를 만들어주신다고 약속합니다.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벼랑 끝에 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있던 모든 일을 멈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황당했습니다.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똑같은 말씀을 반복하셨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공동체에 선포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진행되고 있던 모든 일이 멈췄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셨습니다. 내 생각과 계산과 판단과 계획과 결정대로 되지 않고 하나님이 해주시는 편이 백번 낫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지만 그게 훨씬 더 낫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제 뜻대로 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르겠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이 열리면 성공이고, 문이 닫히면 실패라는 저와 여러분의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합니다. 성공 같은데 실패가 될 수도 있고, 실패 같은데 성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면 문이 열려도 성공, 닫혀도 성공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일해 주시는 것이 백번 낫습니다. 인생을 사는 동안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모든 일들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한 창세 전 작정을 이루어 주시는 위대한 역사를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일해 주시는 것이 백번 낫다고 고백할 수 있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