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장이 추천하는 두 번째 책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조선 후기 문인 ‘이옥’과 ‘김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역사소설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대부분의 중학생이 ‘누구?’라고 할, 혹은 ‘이름이 좀 힙하다?’라고 할 수도 있을 이옥은 조선 후기 정조 때 문신이다. 문체반정(문체를 바르게 돌린 다는 뜻)에 연루되면서 잘못된 글을 짓는다는 이유로 왕의 노여움을 사 빼어난 재능에도 불구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못했다. 반항기 가득했던 이옥을 아끼고 그의 글을 정리해 후대에 남긴 인물, 김려. 두 벗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다 보면 조선 후기 역사까지 덤으로 알아가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취재·사진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지은이 설흔 펴낸곳 창비
봄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왠지 이옥이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 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사방을 보았지만 이옥의 모습은 보이 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자, 한 번 들어보게나. 나는 이옥이 남긴 멋진 글, 내 평생 잊어본 적 없는 그 순간의 기록인 그 멋진 글을 소리 내어 읊어본다.
“바람이 메말라 까실까실하고 이슬이 깨끗하여 투명한 것이 음력 팔월의 멋진 절기다. 물은 힘차게 운동하고 산은 고요히 머물러 있는 것이 북한산의 멋진 경치다. 개결하고 운치 있으며 순수하고 아름다운 두세 사람이 모두 멋진 선비다. 이런 사람들과 여기에서 노니니 그 노니는 것이 멋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략)
그윽해서 멋진 것도 있고, 상쾌하여 멋진 것도 있고, 활달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아슬아슬하여 멋진 것도 있고, 담박하여 멋진 것도 있고, 알록달록하여 멋진 것도 있다. 시끌시끌하여 멋진 것도 있고, 적막하여 멋진 것도 있다. 어디를 가든 멋지 지 않은 것이 없고, 어디를 함께하여도 멋지지 않은 것이 없다. 멋진 것이 이렇게도 많아라! 이 선생은 말한다. “멋지기 때문에 놀러 왔지. 이렇게 멋진 것이 없었다면 이렇게 와보지도 않았을 게야.”
- <멋지기 때문에 놀러왔지> 197~199쪽 일부 발췌
유순덕 관장
서울 대치도서관장이자 인문학 프로그램 기획자. ‘도서관은 삶터이자 꿈터’라는 모토하 에 도서관 내에서 ‘청소년 한중사’ ‘청소년 고전 읽기’ ‘세계문학 읽고 논술’ ‘청소년 창작 소설 쓰기’ 등을 운영하며 청소년 독서 문화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하브루타 창의력 수업>을 지은 교육 저술가이기도 하다.
정조도 꺾지 못한 붓, 조선의 천재 문인 이옥을 만나다
“혹시 제가 ‘정조는 말이죠, 성군(聖君)이라기보다는 까칠한 왕이었어요’ 라고 한다면 놀랄 친구들이 많을 거예요. 벌써 말도 안 된다는 아우성이 귓가에 들리네요. ‘수업 시간에 그렇게 안 배웠거든요! 탕평책을 실시해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실학을 장려했다고 배웠어요. 인재를 키울 규장각도 설치했고요. 맞다! 수원화성, 정조가 지어 유네스코 등재도 됐잖아요. 조선의 르네상스를 이끈, 세종대왕 다음 가는 성군인데요!’ 네네, 다 압니다. 틀린 말이 아니에요. 하지만 이번 책의 주인공 이옥을 만나보면 왜 제가 그 렇게 말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질 거예요. 정조는 신하들에게 새로운 문체를 금지하고 옛 성현들의 글로 돌아가라고 명했어요. 마치 이런 거죠. ‘지구 끝까지 쫓아가 맴매하 겠어!’는 ‘널 혼내주겠다’로 쓰라는 식? 이걸 문체반정이라고 해요. 이옥은 이 명령을 듣지 않았어요. 왕이 매일 반성문을 쓰게 해도 창작 혼을 죽일 수는 없었죠. 결국 평생 과거에 응시하지 못하고, 출세길이 막혀 비루한 삶을 살게 돼요. 왕이 하지 말라고 하 면 그만 좀 하지 무슨 배짱이냐고요? 이옥에게 글은 자유의 상징이자 살아 숨 쉬는 이 유였거든요. 이익을 최고로 치는 요즘, 이옥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아요. 글 하나 왕 입 맛에 맞춰 쓰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유배를 가고 평생을 고생하며 살았는지. 그럼에 도 이옥을 보고 있노라면 삶의 가장 중요한 ‘그 무엇’이 느껴져 감동을 받게 되죠. 기나 긴 인생 여정에서 힘들고 고단해도 견뎌낼 수 있는 힘이 될 바로 그것을 여러분도 찾길 바라는 마음에 이 책을 추천합니다.”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
지은이 박지원 펴낸곳 북드라망
'알쓸신잡’ 조선 후기 정조 시대 판
연암 박지원이 청나라 열하에 다녀온 여정을 기록한 기행문이에요. 강행군 속에서도 연암은 청나라의 발전된 문 화를 보고 사유하며, 자신의 유머까지 녹여 가감 없이 기록해요. 아득히 펼쳐진 요동 벌판에 서서 ‘아! 좋 은 울음터로구나! 크게 한 번 울어볼 만하구나!’ 라고 표현하는 그 의 해학에 빠져 읽다 보면 청과 조선, 두 나라의 과거를 오간 듯한 생생한 느낌이 절로 전해진답니다.
<책만 보는 바보>
지은이 안소영 펴낸곳 보림
이덕무와 그의 벗들 이야기 (feat. 정조)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가 쓴 짧은 자서전 <간서치전>을 바탕으로 책벌레 이덕무와 그의 벗들을 생동감 넘치게 표현한 책이에요. ‘실학’과 ‘이덕무’는 청소년에겐 생소한 소재인 데, 작가의 상상이 더해진 1인칭 서술로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생각이 커가는 과정과 당시 사회의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줘 읽기 편해요. 고전이나 역사서와 친하지 않은 청소년들도 전혀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마치 한 편의 성장소설 같은 책이라 추천합니다.
내일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