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기맥 1구간(분기점-탐진강 발원지)

[강동수]

★ 프롤로그

땅끝기맥은 영산강의 울타리인 영산기맥과 달리 혈혈단신 바다로 직행한다. 끝까지 그런 것은 아니고 흑석지맥이 갈리는 곳까지는 영산강, 서기산까지는 탐진강의 울타리 역할을 일부나마 거들고 있다. 영암의 진산 월출산을 품고 있고 바다로 갈수록 흐지부지되는 다른 산줄기와 달리 두륜산, 달마산과 같은 명산이 줄줄이 버티고 있어 역동감이 있다.

십여 년 전에 한 구간을 마쳤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한다. 영산기맥과 마찬가지로 대중교통과 택시를 이용해서 당일산행으로 한 구간씩 다녀올 예정이다. 약 140km가 되는 거리지만 여름날이고 산세가 거칠기 때문에 7회에 나눠 진행코자 한다. 또한 시기가 장마철이다. 날을 잘 골라야 한다. 수요일까지 내리던 비가 그치며 7월 4일 목요일엔 화창한 날씨를 예고했다.

★ 산행개요

 - 산행코스 : 분기점-조리봉-각수바위-소반바위산-수락재-덕룡재-기동재-계천산-탐진강발원지

 - 산행일행 : 단독산행

 - 산행거리 : 실제거리 18.6km, 접속거리 2km / 하산 7km

 - 산행일시 : 2024년 7월 4일(목) 10:40~19:00(8시간 20분) 

★ 기록들

시외버스가 5분만 일찍 장흥터미널에 도착했어도 곰치재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부득불 1시간을 기다려 8시 50분 장평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 후 택시로 갈아탔다. 농로 같은 좁은 길을 따라 운곡마을 들꽃향기 펜션에 도착하자 스틱을 펴고 호남정맥 깃대봉으로 향했다(09:40). 처음부터 거칠어서 잘못 방향을 잡은 것을 알았지만 되돌릴 수는 없었다. 거친 풀숲을 헤치며 국사봉과 깃대봉 중간지점에 올라섰다.

깃대봉을 넘어서자 들꽃향기 펜션 이정표가 보였다. 이 길을 따라 올라왔으면 훨씬 편하게 올 수 있었을 것이다. 영산기맥 시작할 때는 등산화가 말썽이더니 땅끝기맥 시작하자 이번엔 스틱이 말썽이다. 더 이상 조여지질 않는 것을 보니 나사가 무뎌져서 그런 모양이다. 수명이 다 되었다는 의미다. 스틱 하나로 버텨야 하지만 급한 내리막이나 암릉구간에서는 1개의 스틱이 더 유용할 때가 있다.

10시 40분 땅끝기맥 분기점인 바람봉(노적봉)에서 본격적인 땅끝기맥 답사를 시작한다. 장흥 유치면 대천리와 화순 청풍면 이만리를 지나는 바람재를 넘어서 464.4봉에는 돌아가신 한현우 형님이 2012년에 걸어둔 시그널이 눈에 띈다. 보통 산 이름에 사용되는 한자가 그다지 어렵지는 않지만 이 글자는 읽어낼 수가 없다. 집에 와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조리봉"이다. "조리"는 쌀을 이는데 쓰는 도구를 의미한다고 한다. 한현우 형님과는 25년 전 백두대간 종주를 함께 했고, 그 후 "삼천산 오르기"라는 필명으로 국립지리정보원의 세밀한 지도를 기반으로 5~6000개의 산봉우리에 이름표를 달아놨다. 딸이 서울대 의대를 나온 의사임에도 혈액암에 걸린 형님을 살려낼 수가 없었다. 살아 계셨으면 산속 어디서는 2리터의 소주 댓 병에 온갖 버섯이 가득 들어있는 배낭을 짊어지고 터벅터벅 걷고 있는 형님을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조리봉(464.4m)

내리막에서 화학산으로 달리는 남도오백리길과 겹치며 길은 무척 편해진다. 남도오백리 역사숲길은 구례-곡성-화순-영암-강진-해남의 6개 군을 지나며 총 338.8km의 숲길로 조성되었다. 땅끝에서 마무리될 때까지 계속하여 만남과 이별을 반복할 것이다. 각수바위는 마루금에서 200미터 벗어나 있다. 배낭을 부려놓고 각수바위에 올라보니 화학산 산줄기에는 풍력발전기가 여럿 설치되어 있고 그 밑에 우치저수지와 어우러져 그림을 만들고 있다. 학이 날개를 펼쳐놓은 듯하여 화학산이라 붙여졌지만 산세가 험하여 예전에 동학군이 주둔했었고 6.25 전쟁 때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잇기도 하다.

점심식사를 하려고 적당한 바위를 찾다가 본의 아닌 리찌산행을 하게 되었다. 비 온 다음 날이라 여전히 바위에는 물이 흐르거나 물기를 많이 함유하고 있어 내려서기 쉽지 않았다. 의지 할 수 있는 나무를 찾다가 결국 능선이 아닌 거의 맨바닥까지 내려서면서 땅바닥에 터치다운 할 수 있었다. 주변을 살펴보자 우회길이 뚜렷하게 나 있었다. 바보 같은 선택을 할 때가 있다. 무리하게 밀어붙일게 아니라 되돌아가는 게 현명하지만 지금까지 진행한 게 아까워서 막연하게 진행하다가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바람 드는 바위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했다. 새로 산 도시락이 영 신통치 않는지 김치국물이 새어 배낭은 김치냄새가 잔뜩 배어있다.

유치면 개바위등

각수바위 삼거리

화순 화학산 산줄기의 풍력발전기와 우치저수지

가야할 마루금

본의 아닌 리찌산행을 하게 한 암릉구간

13시 정각, 817번 지방도가 지하(가마태재터널)로 통과하는 유치재(바람재)를 지났다. 13시 40분 소반바위산(492.6m)을 넘어섰다. 고창에도 소반바위가 있지만 이 산에도 정상 바로 아래 150m 지점에 소반바위가 위치해 있다. 수풀 우거진 능선에 있어서 그 모양을 확인할 길은 없지만, 어리석게도 산패도 없는 줄 알았다. 준희선생님 산패가 매달려 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489.4봉에 이어 문암재에 이르렀다. 14시 16분에는 수락재에 도착했다. 수락재는 장흥 유치면 운월리와 화순 도암면 봉하리를 연결하고 있다. 수락재 서북쪽 방향으로는 선왕산이 위치해있다. 임금이 이곳을 지나다 경치가 좋고 공기가 맑아 쉬어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한자로 "왕"자는 임금왕이 아닌 성할 "왕(旺)"으로 표기하고 있다. 임금왕이 아닌 성할 왕으로 표기한 경우에는 일제의 잔재가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로 보게 된다.

445.1m봉을 내려서자 큰재에 이르렀고, 15시 30분에는 굴레봉(409m)을 넘어섰다. 임도를 만난 마루금은 남도오백리길과 이별하며 거친 숲길로 안내했다. 햇볕이 드는 마루금은 여지없이 가시덤불이 창궐하여 몸뚱이가 빠져나오기 난감했다. 기온은 33도에 육박하고 온몸이 후끈거리며 열사병 증상이 나타났다. 냉동실에 보관했던 맥주를 꺼내어 위장에 들이부어 체온을 낮췄다. 다행스럽게도 열사병 증상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16시 5분 덕룡재(행장재)를 넘었다. 능선을 따라 서북쪽 방향에는 덕룡산(376.4m)이 위치해있다.

남도 5백리길 이정표

유치재, 바람재, 가마태재

남도오백리길과 헤어지고 숲길로 진행해야 함

820번 지방도 내려설 때도 잘못된 선택을 했다. 생태통로 상단은 온갖 가시덤불과 잡목이 가득하여 이동이 만만치 않았는데 밀어붙이면서 혹독한 곤욕을 치러야 했다. 생태통로가 끝나는 지점에는 무슨 용도인지 확인 불가한 물통이 여럿 방치되어 있었고 빈 물통에는 물이 가득했다. 땀과 온갖 풀먼지로 뒤범벅이 된 머리부터 감았다. 비닐하우스인지 가건물인지 모를 건물이 보이길래 혹시 식수를 구할 수 있을까 싶어 가봤지만 칡넝쿨로 뒤덮여 있어서 문조차 열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마루금으로 연결하려니 또 한 번 시련이었지만 이번에는 금세 널따란 길을 만나며 안도할 수 있었다.

17시 38본 445.7봉을 지나 372.3봉을 가다가 완전하게 가시덤불 속에 갇혀 버렸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온갖 욕지지거리가 나도 모르게 술술 나왔다. 시그널이 안내하는 곳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마도 시그널은 통과가 가능한 겨울이나 초봄에 달았겠지. 18시 08분에 372.3봉을 넘어서자 바로 이어서 기동재다. 왼쪽으로는 아크로C.C가 위치해 있었다. 기맥이 골프장을 두 팔로 안은 모양새라 생각 같아서는 골프장으로 내려서서 오두재까지 편하게 진행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다.

820번 지방도 생태통로(시멘트 포장도로 윗쪽)

820번 지방도로

18시 40분 산성의 흔적을 만난다. 불과 200m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은 궁성산 산성 흔적의 일부다. 내리막길에서는 다시 한번 빽빽한 조릿대숲을 통과해야 했다. 19시 정각 탐진강 발원지 안내판이 있는 지점에 이르러서는 큰 한숨을 몰아쉬었다. 옷을 털면서 오늘 산행은 여기서 접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밀려왔다.

임도가 잘 연결되어 있어 3km 가면 시내버스든 택시든 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마을에 도착하고 버스정류장에서 택시를 불렀지만 응답이 없다. 나주와 영암 경계에 위치한 나주 버스 종점이 인근에 있어,  그곳까지 걸어가자 버스가 들어오고 있었다. 버스에 올라탄 후 나주역 가는 차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일단 버스를 탔으니 안도할 수 있었다. 운행종료하는 상황이라 나주역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영산포 인근에서 하차한 후 환승하여 나주역까지 편하게 갈 수 있었다.

집에 와서 다음에 연결할 루트를 확인해 보니 교통편도 그렇고 접근하기가 만만치 않다. 고민이 커진다.

궁성산성의 흔적

빽빽한 조릿대 숲길

탐진강 발원지 안내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