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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간의 남아메리카 여행 1
- 만남, 여행의 시작/ 리마 -
남미 여행의 시작 / 리마국제공항(Aeropuerto Jorge Chavez) 2015. 3.23
리마에서였다.
서먹한 모습으로 얼굴을 대하고 형, 언니, 오빠하기로 한 곳이,,,,
그리고 어색한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새벽까지 마셨다.
어차피 시차때문에 잠도 오지 않는데 얼굴도 익히고 시차도 적응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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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배낭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밤하늘의 별을 따는 일도 아니고 남들 안 하는 유별난 것도 아니지만 낯선 땅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이다. 앞선 여행자들이 경험한 멋지고 값진 것들을 나도 얻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다. 여행은 단지 여행이면 되었다. 이번 여행이 어떤 여행이 될 것인지는 평소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과 살아온 내 삶의 흔적들이 결정할 일, 다른 사람의 여행이 아닌 나의 여행을 하기 위해 가만히 다녀오기로 했다.
인천에서 디트로이트까지 열두 시간 반을 날았다. 그곳에서 세 시간 반을 기다린 후 다시 아틀란타까지 두 시간, 리마까지 일곱 시간 가까이 비행했다. 2015년 3월 22일 꼭두새벽에 집을 나서 23일 자정이 넘어서야 리마의 숙소에 도착했으니 이동에만 꼬박 마흔 시간 이상이 걸린 것이다. 리마 공항은 생각했던 것 보다 크고 남미 최고의 관광도시 공항답게 수많은 여행객들과 마중 나온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자정이 다된 시각 낯선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많은 정보들이 알려준 "위험한 곳이니 긴장하라"는 경고를 가슴에 담고 바짝 웅크렸다. 접근하는 모든 것들은 사람이든 물건이든 일단 부정적인 것으로 여겼다. 그때까지 리마는 우리에게 낯설고 어둡고 제한적인 곳인데다 우리 모두의 마음조차도 굳게 닫혀있었다.
숙소인 호스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나서야 긴장이 풀리며 리마에 도착한 실감이 났다. 지금까지 호스텔을 한번도 이용해 본 적이 없어서 도미토리가 아닌 더불룸이기는 해도 조금은 낯설었지만 어차피 이번 여행은 배낭여행이다. 먹고 자는 일은 흐름에 맡기기로 했다. 그것보다는 여행 첫 날을 아무런 추억없이 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시차때문에 잠도 오지 않는 밤이었으니,,, 일행들과 맥주 캔을 나누는 것으로 여행의 첫날을 기록했다.
저마다 무엇인가를 위해 먼 길을 떠나온 여행이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좋았다. 묻지도 물을 필요도 없는 그 무엇인가를 가슴에 담고 남미 여행의 관문 리마에서 38일간의 여행을 시작했다. 불연듯 다가올 예기치 않은 우연을 기다리면서,,,
리마로 가는 아틀란타 공항에는 비가 내렸다. 공항에 내리는 비는 여행자의 유달리 감성을 자극한다. 여행의 또다른 맛이다.
숙소가 있는 미라플로레스(신시가지)
새벽 4시까지 일행들과 얼굴을 익히다 잠시 잠자리에 들었지만 시차때문에 실상 잠을 잤다는 느낌은 없었다. 도시가 움직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으로 들어오는 파란 하늘을 맞으며 숙소 주변 산책을 나섰다. '남미는 위험하다'는 경고가 떠오르기는 했어도 신시가지인 이곳 숙소 주변에 그런 기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른 아침 도시의 골목들은 참 깨끗했다. 밤새 수고한 사람들 덕분에 대도시에서 흔히 마주치는 골목 안의 불쾌한 모습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깔끔하게 포장된 도로 위의 키 큰 야자나무 가로수와 잎푸른 식물들도 밝아오는 아침 햇살에 싱그럽게 빛났다. 주변에 시청이 있고 은행과 쇼핑센터들이 모여있는 중심지구여서 특별히 관리가 잘 된 것을 감안해도 여러 책들이 말하고 있는 리마에 대한 나쁜 이미지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기꺼운 마음으로 주변을 한바퀴 돌고나자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정류장에 멈췄다 떠나는 차량들의 속도도 바빠졌다. 러시아워가 시작되고 있었다. 덩달아 앞으로의 여행 준비를 위한 우리의 발걸음도 바빠졌다. 페루에서 머무는 동안 필요한 준비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는 해안가 산책을 하기로 했다.
미라플로레스의 숙소. 세계의 숱한 여행자들이 머물다 간 곳이다.
리마에만 4개의 체인점이 있다는 "프라잉 도그 호스텔" . 그 아래층의 샌드위치 전문점도 그만큼이나 유명하다.
미라플로레스 해안가 절벽 위의 작은 테마 파크인 "사랑의 공원 Parque De Amor"에 있는 조각상.
케네디 공원 Parque Kennedy 인근에서 점심을 먹고 약 10여분을 걸어 미라플로레스 해안 절벽에 조성된 '사랑의 공원'에 도착했다. 작은 테마 파크인 이 공원은 파란 잔디 위에 예쁜 꽃들과 키 큰 야자나무들, 멋진 정원수들로 가꾸어져 있고 바닷가쪽에는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의 그것처럼 깬 타일 문양의 장식이 설치되어 있다. 공원 한 가운데에는 왜 이 공원이 사랑의 공원으로 불리는 지를 알게 하는 에로틱한 조각상이 있다.
공원 앞의 탁트인 태평양 너머로 끝없는 수평선이 지나고 한낮의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해안에서는 서핑 매니아들이 하얗게 밀려오는 파도를 힘차게 가르며 그들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쉼없이 어딘가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해안도로 자동차들의 리듬을 타고서,,, 공원을 나와 인근에 있는 복합쇼핑센터인 "라르꼬 마르 Larco Mar)로 향했다.
'사랑의 공원'에서 절벽 위 도로를 타고 대형 쇼핑센터인 '라르꼬 마르'로 가는 길에서 본 해안 절벽. 저 해안 도로를 타고 공항에서 숙소로 이동했다.
해안에서 바다쪽으로 길게 난 방파제 위의 고급 레스토랑 La Rosa Nautica. 그 옆 바다에는 한낮의 셔핑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라르꼬 마르' 광장에서 내려다 본 미라플로레스의 해안은 왕복 4차선 아스팔트 도로와 해변, 태평양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자아낸다.
미라플로레스 해안지역의 대형 쇼핑센터 '라르꼬 마르 Larco Mar'.
라르꼬 마르는 미라플로레스 해안 절벽 위에 있는 3층 규모의 복합쇼핑센터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멋진 풍광의 수준 높은 레스토랑과 카페, 전통 민예품점, 유명 상표 전문점들이 들어서 있다. 쇼핑센터 위에는 멋진 공원이 조성되어 있고 그 주변은 현대식 초고층 건물의 금융센터와 특급호텔, 각종 오피스 빌딩들이 늘어서 있어 과연 이곳이 리마인가 할 정도로 번화하고 산뜻했다.
한낮의 더위에 지쳐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찾은 카페는 수많은 사람들로 인해 앉을 자리가 없다. 미련을 두고 밖으로 나와 아이스크림으로 갈증을 달래며 잠시 머물다 저녁에 야경을 감상하러 다시 오기로 하고 자리를 일어섰다.
리마의 대중교통 수단인 미니 버스. 숙소가 있는 케네디 공원과 시청 인근의 아침 저녁 출퇴근 모습은 오래 전 우리의 그것을 보는 듯했다. 대형버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우리의 마을 버스 규모의 중형 버스가 버스 정류장에 들어설 때면 내리고 타는 사람들로 인해 주변은 아수라가 된다. 정류소를 통제하는 이는 어서 떠나라 재촉하는데 운전자는 한사람이라도 더 태우려고 짐짓 못들은 체 딴청을 부렸다.
밤에 본 '라르꼬 마르'의 야경. 뒤편에 특급호텔인 메리어트 호텔이 보인다.
미라플로레스 해변의 아침 풍경. 이른 아침 산책을 나선 안개낀 해변에는 부지런한 서핑 애호가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숙소에서 이곳까지 가려면 길을 잘 찾아 들어야 한다. 현재 사랑의 공원 옆에 있는 다리 아래에서 해변으로 내려가는 공사를 하고 있다.
리마에서 하루를 보낸 그날 밤, 젊은 부부 한쌍이 팀에 합류했다.
아직 아기가 없는 결혼 4년차인 이 부부는 인천에서 우리와 같은 비행기로 출발은 했지만 비행스케줄 때문에 아틀란타 공항에서 꼬박 24시간을 머문 뒤 하루 늦게 팀에 합류한 것이다. TV에서 우연히 마주친 우유니가 눈에 아른거려 신랑이 먼저 회사에 사표를 냈고, 신부는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냈더니 '휴직 처리해주겠으니 여행 다녀오라'며 사표를 돌려주었다는, 남미 여행을 위해 과감히 벗어던진 용감무쌍한 부부였다.
게다가 신부는 평소 심한 결벽증 때문에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는 화장실조차도 못 가는 성격이어서 여행하는 동안 사용하려고 변기 커버를 100개나 준비했는데 공항에서 하루 체류하는 동안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며 이제부터 모든 것 체념하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겠노라는 각오를 다졌다.
이 부부의 최대 목표는 이번 여행 기간 중에 아기를 갖는 것! 가족들에게도 그걸 약속하고 여행을 허락 받았다는데 과연 그 숙원은 이루어졌을까? 결과는 이 여행기 마지막에 알아보기로 하고, 나중의 일이지만 그토록 결벽증에 시달리던 신부는 우유니, 라파즈의 그 험한 화장실도 거뜬하게 사용했을 정도로 완전히 결벽증에서 벗어났다.
센트로 역사지구(구시가지)
페루 독립운동의 영웅 "산 마르틴"장군을 기리는 기마동상이 서 있는 '산 마르틴 광장 Plaza San Martin'.
리마에서의 둘째날은 센트로 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미라플로레스 지역에 비해 센트로 지역은 대통령궁을 비롯하여 대성당과 산토 도밍고 수도원, 산 프란시스코 교회 등 스페인 식민시대의 역사적 건축물들이 남아 있고, 리마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중앙시장 Mercado de Central도 있기에 이른 아침 택시를 타고 "산 마르틴 광장Plaza San Martin'에 도착했다. 대부분의 택시들이 미터기가 없고 많은 차량이 자가용 택시이기 때문에 요금은 반드시 타기 전에 결정을 하고 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릴 때 자칫 승강이가 벌어질 수 있으니 유의할 일이다.
'산 마르틴 광장'은 페루 독립운동의 영웅 '호세 데 산 마르틴'의 기마 동상이 있는 광장으로 대통령궁과 대성당 등이 있는 마요르 광장과는 라 우니온 거리로 연결되어 있다. 이 광장의 주인공인 '산 마르틴'은 본래 아르헨티나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스페인에서 자라면서 교육을 받았고 스페인 군대의 장교로 나폴레옹과의 전쟁이나 아프리카 전투에 참여한 인물이지만 페루에 주둔하고 있던 스페인 군대를 물리치고 1821년 페루의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훗날 페루가 독립을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페루의 보호자라 불리며 페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러나 권력에 욕심이 없었던 그는 콜롬비아, 페루, 파나마, 에콰도르, 베네수엘라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시킨 '시몬 볼리바르'에게 모든 것을 넘기고 일체의 정치활동에서 손을 떼고 조용히 말년을 보냈다.
센트로의 라 우니온 거리. 산 마르틴 광장과 마요르 광장을 직선으로 연결하고 있다.
산 마르틴 광장에서 라 우니온 거리를 직진하면 마요르 광장에 이르게 된다. 리마의 명동이라고 알려진 우니온 거리는 평일 오전이어서 대부분의 상가들은 아직 문을 닫은 채였고 오가는 이들도 적어 무척이나 한산했다. 라 우니온 거리를 벗어나 리마의 중앙시장 Mercador Central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앙시장은 라 우니온 거리 중간쯤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반까이 대로를 타고 잠시 걸으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아반까이 대로와 중앙시장 주변은 조금 전의 라 우니온 거리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물건을 사고 파는 사람들, 짐을 나르는 사람들, 구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수많은 차량과 오토바이들로 가득 넘쳐났다. 걸음을 제대로 걸을 수 없으리만큼 그야말로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역동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시장 안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우리네 시장이나 동남아시아의 관광지에서 흔히 겪게 되는 시끄럽고 불편한 호객행위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물건을 사달라고 떼를 쓰거나 구걸하는 행위도 없었고 아이들과 아낙들이 가벼운 상품을 들고와 사달라고 할 때도 수줍고 조용했다. 불과 이틀이 지났을 뿐이지만 더 이상 이들에 대한 두려움과 의심으로 마음을 닫아두기 싫었다. 착한 눈망울, 부끄럼 많고 순진하고 염치와 자존심 강한 모습에서 예전 모로코 골목에서 돈 달라며 달려드는 아이들을 사정없이 야단치던 젊은 청년의 자존심이 느껴졌다. 남미를 여행하는 동안 내내 느낀 이런 삶의 모습은 책에서 얻지 못한 신선하고 상쾌한 모습이었다.
리마 정부청사 앞 아반까이 대로 번화가에서 교통 정리 중인 여성 경찰. 제복이 주는 권위와 자신의 역할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의 리마 여성 경찰들은 멋졌다.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절도있게 공무를 집행하는 그 품위있는 권위 앞에 엄숙한 경외감마져도 느껴진다. 하지만 매연으로 가득한 거리에서 뜨거운 태양열로 달아오른 한낮의 열기를 견디기에는 너무나 환경이 열악했다.
매연 가득한, 뜨거운 거리를 오래 거니는 것은 여행의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고역이기도 했다. 원하는 물건을 사기 위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묻고 또 묻고, 들렀다 다시 돌아 나오기를 반복하면서 몸은 지치고 갈증은 심해졌다. 그럴 때쯤 만난 길거리 오렌지 쥬스 판매대. 값싸고 시원하고 달콤한 오렌지 쥬스 한 잔은 뜨거운 햇살과 매연에 지친 피로를 말끔히 씻어주었다.
페루의 전통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민예품들. 직조기술이 뛰어난 페루 현지인들이 손으로 직법 만든 것들은 비록 우리의 그것처럼 매끈하고 번드르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하지만 남미 이 먼 곳에도 메이드 인 차이나는 피할 수 없으니 잘 보고 현명하게 선택하자.
중앙시장의 상인들과 함께
어렵게 찾아 들어간 중앙시장은 그야말로 없는 것 없는 큰 시장이다. 신발, 옷, 가방 그리고 온갖 잡화를 파는 곳까지 이루 다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넓고 크다. 이런 곳이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면 어디가 사람 사는 곳이겠는가? 가벼운 옷 한두 가지 사려고 한 옷가게에 들렀는데 주인집 젊은 아기엄마는 아예 부끄러워 얼굴조차 못 든다. 덩달아 수줍어서 깎아 달라는 말 한마디 못하고 이것저것 필요한 것들을 사들고 돌아서는데 이웃한 가게의 상인들이 달려와 같이 사진을 같이 찍자며 아우성이다. 그 옆의 친구도 찍고, 그의 아내도 찍고, 귀여운 그의 아기도 찍었다. 눈 길게 찢어진 우리들이 이들에게는 신기했던 모양이다. 이쯤에서 대통령궁이 있는 마요르 광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마요르 광장으로 가는 길의 중앙준비은행 박물관(사진 오른쪽 건물). 이 박물관은 나스까 등 페루 고대문명의 다양한 토기들과 화려한 금 유물들, 남미의 회화들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마요르 광장의 대통령궁에서 진행되는 근위병 교대식 시간을 맞추기 위해 지나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을 다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마요르 광장Plaza Mayor. 예전 명칭인 아르마스 광장 Plaza De Armas으로 더 알려져 있다.
1535년 쿠스코에서 리마로 수도를 옮긴 피사로는 이 마요르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세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광장 주변에 남아있는 당시의 건물로는 대통령궁과 대성당, 산또 도밍고 교회, 산 프란시스코 교회 등이 있다. 사진 중앙에 있는 대통령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리마 시청사와 페루 노총회관(두 개의 노란색 건물)이 있고, 오른쪽에는 대성당이 있다.
마요르 광장의 대통령궁.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고 있어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었다.
현재 대통령궁으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피사로가 1541년 암살 당하기 전 마지막 몇 년을 살았던 곳으로 여러 차례 개축을 거쳐 1938년에 이르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대통령궁에서는 매일 11시 45분부터 근위병 교대식이 열리는데 이 시간대에는 광장 외곽에서부터 모든 도로가 통제된다. 그런 사실을 모르고 갔다가 경찰들이 도로를 철망으로 막아놓고 있기에 잠시 당황했지만 통행은 허용됐다. 근위병 교대식은 멀리서 보아 자세히 알 수는 없었지만 웅장하고 장엄한 군악대의 연주에서 비장한 느낌이 전혀졌다.
리마의 대성당 La Catedral de Lima
피사로가 직접 초석을 놓았다는 대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다. 1555년 지어졌다가 18세기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다시 원형으로 복원하였는데 안에는 피사로의 유해가 안치된 관이 놓여있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리마의 대성당을 들어가 보았어야 했다. 예전 유럽 여행을 하면서 너무나 많은 성당에서 너무나 많은 설명을 들었던 기억 때문에 도무지 들어갈 마음이 나지 않았던 데다 잠시 후 산 프란시스코 성당에 들를 예정이어서 서둘러 발길을 돌리고 말았던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마요르 광장에서의 플래시 몹(?). 마요르 광장을 나서면서 대성당 코너에 모여 어제 '사랑의 공원'에 이어 두번 째 영상을 남겼다. 동영상 카메라를 향해 모두들 '아르마스, 아르마스'를 외치며 저마다의 모습으로 여행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이 행위예술은 나스카, 마추픽추, 우유니 사막, 달의 계곡, 이과수 폭포 등에서 여행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었다. 자유롭고 자신감 넘치는 젊음은 언제봐도 즐겁다. 오늘 점심은 리마의 차이나 타운에서 하기로 했다.
산 프란시스코 교회
차이나 타운에서 벅찬 성찬을 즐긴 후 아반카이 대로를 한 블럭쯤 내려와 산 프란시스코 교회를 찾았다. 1567년부터 시작하여 7년간 바로크와 스페인 안달루시아 양식으로 지은 이 교회는 몇차례 개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는데 뜰에는 수많은 비둘기들이 오가는 사람들을 기쁘게 환영해준다. 교회 내부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만 가능했다.
가이드를 따라 교회 안으로 들어가 산 프란시스코의 생을 나타낸 예술품들과 주요 성직자들의 얼굴상 같은 성물들, 오래된 고서들이 보관되어 있는 수도원의 도서관을 관람했다. 예술품들이 진열된 공간의 한쪽 벽면에는 접시에 꾸이가 올려진 현지화한 '최후의 만찬'(이 그림은 쿠스코 대성당에 걸려있는 마르코스 사파타의 것이 유명하다)이 걸려 있는데 가이드가 가까이 안내해 따로 설명을 해준다. 그곳을 나와 붉은색 통로를 지나면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풍의 아치와 흰벽으로 된 공간이 나오는데 그 아래로 지하무덤에 이르는 통로가 이어진다.
이 성당의 지하무덤 까타꼼Catacombs은 일반 시민들의 유해를 안치한 곳으로 이곳에 매장 된 지 일정 기간이 지나면 부위별로 뼈를 모아 영혼을 기렸다고 한다. 현재 보관되어 있는 약 2만 5천여 구의 유골과 수많은 뼈조각들은 누구의 뼈인지 어떻게 해서 이곳에 이들의 유골이 모이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영혼들의 안식을 기원하며 사진은 가슴에다 담았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의 카타콤으로 가는 길. 성당 내부나 카타콤의 사진 촬영은 금지되지만 이곳은 허용된다.
리막 강변에서 본 산 크리스토발 언덕. 높은 곳을 향해 자꾸만 오르고 오를 수밖에 없는 색색의 집들에서 진한 삶의 고달품이 느껴진다.
산 프란시스코 성당을 나와 리막 강변에 이르렀다. 그 강 너머 초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회색의 산봉우리 위로 커다란 십자가가 눈에 들어왔다. 산 크리스토발 언덕이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는 언덕 기슭에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만 같은 형형색색의 건물들이 산 꼭대기를 향해 오르고 있었다. 아마도 6, 70년대 우리의 산동네의 모습이 저러했을 것이다. 시인 박노해는 이곳을 "자기네 땅에서 뿌리 뽑혀 나온 원주민들은 거친 비탈에서 서로 어깨를 기대며 산다. 채색한 집들의 화려함 속에 슬픔을 감추고서,,,,"라고 했다. 지극히 위험한 곳이므로 절대 걸어서는 가지말라고 신신당부하던 어느 여행자의 글이 떠올랐다. 하지만 여행자가 그곳에 가지 않으면 누가 가겠는가? 어쩔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만 했지만 페루와 볼리비아 등 남미의 몇몇 곳은 나의 다음 여행지 목록으로 다시 들어 앉았다.
리마에서 이틀을 보내고 나서 다시 생각했다.
잠깐 스쳐가는 여행자가, 이 땅에 뿌리 내리고 살아본 적도 없는 이방인들이 수천 수백 년 역사를 쌓고 살아온 사람들을 얼마나 안다고 범죄니 무뢰니 하는 어두운 굴레를 지우는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존중되어야 할 소중한 사람들이다. 염치와 부끄럼, 도덕과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다.
인식은 행동을 지배한다. 경계할수록 마음은 더욱 더 닫혀지고 여행지의 문은 점점 좁아질 뿐이다. 닫힌 마음으로는 이들의 세계를 볼 수가 없으니 말 한마디 제대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이미지를 지우고 무조건 활짝 열기로 했다. 비록 알지 못하는 무엇이 있다고 해도,,,,,
내일은 사막 오아시스 마을인 와카치나로 이동한다.
※ 이 남미여행기는 2015년 3월 22일부터 5월 1일까지 40여일간 아내와 함께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5개국 18개 도시를 여행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기록한 것으로 배낭여행을 위해 모인 14명과 함께 한 여정이었습니다. 배낭여행이기는 했지만 완전히 독립된 자유배낭여행이 아니라 패키지 여행의 안전성과 편리함, 개별배낭여행의 자유로움과 저비용의 장점이 조화를 이룬, 리더가 있었으나 관여하지 않는 팀여행이었습니다.
첫댓글 14명이 40일간을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서로 많은 배려가 있어야되겠지요......^^
자세한 여행기 보며 오래전에 우리의 출발지였던 리마를 돌이켜 봤어요.
우리의 첫 숙박지도 미라 플로레스 였구요.
무울님 다녀오신 곳을 제가 뒤를 밟았습니다~^^
대부분이 젊은 분들이어서 편하게 형님, 동생 하며 여행을 했는데 40일이 그리 짧은 줄 몰랐습니다.
참 재미있고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드뎌 여행기가 시작되는군요.. 기대가지고 열심히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기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는 사진을 올려야 재미도 있고 볼 게 있을 텐데, 일행들 사진을 함부로 올릴 수도 없어서 ~ ^^ 여력이 되는 데까지 올리겠습니다. ^^
저는10월1일 출발하려고 합니다 여자셋이서...11월16일까지...많은 도움 될거 같아요
와우~~ 멋진 여행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지금쯤 준비가 한창이시겠군요. 잘 준비하셔서 즐겁게 다녀오시기 발겠습니다. ^^*
@무명시대 10/12-11/30일 변경되었네요..좀 더 긴 시간이 필요한 곳인데 짧은거 같아 아쉽..
좋은 글 감사히 열심히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