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림스키 코르사코프 음악영재학교 및 국립음악원 재학생, 졸업생으로 구성된 'Rim-Ko 앙상블' 연주단과 함께 5일간 음악여행을 함께 하였습니다. 서울에서 단원들과 만나 첫 연주 장소이자 숙소인 안동 군자마을로 향했습니다. 매년 산소 가면서 야산 중턱에 있는 고택마을이 궁금하기는 했었지만 일정 때문에 지나쳤었지요. 작년에 초등학생 고택체험을 위한 사전답사 차 한 번 들러서 고색창연한 고택과 주변의 풍취에 빠져든 적이 있었지만 숙식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답사 목적은 아니었지만 나름 답사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어 좋았습니다. 비가 오고 늦게 도착하였고 이틀이나 숙박하면서도 시간에 쫓겨 충분히, 찬찬히 둘러보지는 못하였지만 발걸음을 재촉하며 특징적인 부분들은 볼 수 있었습니다.
안동 시내에서 북쪽으로 도산서원을 향하는 35번 국도를 따라 약 20㎞쯤 가다 보면 길가 오른쪽에 군자마을이 있습니다.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에 위치한 '오천 군자마을'은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 광산 김씨 예안파 김효로가 정착하면서 형성된 마을 ‘외내’가 1974년 안동댐 건설로 물에 잠기게 되자 후손들이 주도하여 문화재와 고가옥 등 일부를 약 2㎞ 떨어진 이곳 오천리 군자마을로 집단으로 옮겨 원형대로 보존하게 되었습니다.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에는 광산 김씨 고택 20여 채가 들어서 있는데 현재 7가구 15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 앞 골짜기에 호수가 보이고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풍광이 아름답습니다.
이 마을의 입향조는 농수 김효로이며 장남인 운암 김연과 탁청정 김유 형제로 갈렸는데 후조당 김부필은 김연의 맏아들입니다. 이 마을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들을 '오천 칠군자'라고 불렀는데 후조당 김부필, 읍청정 김부의, 산남 김부인, 양정당 김부신, 설월당 김부륜, 일휴당 금응협, 면진재 금응훈을 말한답니다. 이들은 모두 김효로의 친손과 외손들로, 퇴계 이황의 제자였으며 조선 중기 문신인 한강 정구가 안동부사로 재임하면서 오천마을을 방문했을 때 "오천 한 마을에 군자 아닌 사람이 없다"고 감탄했다고 해 그 이후로부터 오천을 '군자리'라고 부르게 됐답니다.
후조당은 김효로의 옛집으로, 지은 지 오래되어 그 손자 김부필이 새롭게 고치고 당을 '후조'라고 이름 지었다고 전해지며 후조당 현판은 그의 스승인 퇴계 이황이 친필로 적은 것인데, 그만큼 아낀 제자였음을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천 군자리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며 수많은 문화재와 보물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후조당과 탁청정은 국가지정 문화재이며, 탁청정 종가와 광산 김씨 재사 및 사당, 침락정은 경상북도문화재로 지정돼 있습니다. 또 유물전시관인 숭원각에는 '오천 칠군자'를 비롯해 이 가문 출신의 인물들이 남긴 고서, 문집류, 교지, 호적, 토지/노비/ 분재문서, 각종 서간문 등이 전시돼 있는데, 이 중 고문서 7종 429점과 전적 13종 61점은 보물로 지정돼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요리책으로 양반가의 음식문화를 적은 '수운잡방'과 고려시대 호구단자, 임란 때 의병장의 진중일기인 '항병일기', 전투지휘관의 복무지침서인 '행군수지', 병자호란 때의 창의록인 '매월일기', 충절을 지킨 선비의 평생기록인 '계암일기' 등은 군자리의 자랑거리입니다. 이곳에 보관된 문헌과 유물은 한 가문이 600여 년 동안 한곳에 살아오면서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을 겪으면서도 이를 온전히 보존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높이 평가됩니다.
군자마을에는 후조당, 후조당(종택) 사랑채, 설월당, 탁청정종가, 양정당, 사당, 재사, 탁청정, 낙운정, 지애정, 계암정, 침락정 등의 오래된 건축물들이 있는데 전당합각재헌루정(展堂闔閣齋軒樓亭)은 건물의 격에 따라 현판에 붙는 이름의 끝글자들의 서열입니다.
▷후조당(중요민속자료 제227호)
광산 김씨 예안파 종택에 딸린 별당으로 선조 때 후조당 김부필이 처음 건립했는데 정면 4칸, 측면 2칸의 'ㄱ'자형 건물로 왼쪽에 6칸 대청을 두었고 대청 동쪽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튀어나온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이 더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이 지방에서는 흔치 않은 형식이며 고려말 조선초의 양식으로 건축사의 소중한 자료가 되고 있답니다. 잡석기둥 위에 각주를 세워 만든 겹처마 팔작지붕집인데 500년이 넘은 긴 역사를 증명하듯 기둥 등 목재 부재의 검은색과 결이 고색창연합니다. 지금은 불천위 향사를 지낼 때 사용하고 있으며 대청마루에 있는 ‘후조당’ 현판은 퇴계 이황의 친필이라고 합니다. 4방에 툇마루를 돌린 흔치 않은 구조와 4면에 방과 창이 있는 튀어나온 온돌방 1칸이 특이합니다. 후조당 별당과 사랑채는 군자마을로 옮겼지만 안채는 안동시내 태화동으로 옮겼다고 하는데 직접 가보지는 못하였습니다.
▷후조당 대청에는 바둑판과 방석이 놓여있는데, 시간에 쫓기는 일정이었지만 바둑 잘 두는 친구가 있었다면 대국을 한 번 하고 싶을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습니다. 예전에 바둑대회가 이곳에서 열리기도 했답니다.
▷탁청정(중요민속자료 제226호) 및 종택(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6호)
김효로의 둘째 아들 김유의 종가 건물로, 종택은 김유가 1541년에 건립했고 탁청정은 1544년에 세운 것으로 종택에 딸린 정자입니다.
정침은 민도리 홑처마의 'ㅁ'자형 기와집으로 정면 6칸, 측면 4칸으로 총 22칸이며 정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으로 정자의 이름은 김유의 호에서 유래했고 현판은 조선 최고의 명필가 한석봉의 필적이랍니다. 탁청정은 그 규모가 웅장하고 모양이 화려해 개인정자로는 가장 아름답다는 평을 듣고 있답니다.
▷광산 김씨 재사 및 사당(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7호)
재사는 사당에 모신 조상을 위한 제사를 모실 때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정면 4칸, 측면 1칸의 'ㅡ'자형 건물로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앞뒤로 구성돼 있는데 동쪽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창고가 있어서 전체적으로는 'ㄷ'자형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지붕은 맞배지붕입니다. 현재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데 해거름녘에 불 때는 연기 올라가는 모습이 운치있고 좋습니다.
▷침락정(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40호)
이 건물은 1672년에 세운 건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2칸은 마루이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만들었는데 출입문이 동서 양쪽으로 마주 세워져 있으며 동쪽으로 난 문은 윗부분이 반원형으로 되어 있어 작고 아담한 문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계암정 옆의 굽은 소나무 다섯 그루가 운치있습니다.
▷낮은 곳에 위치한 설월당 한참 위로 낮은 담장이 세월을 느끼게 해주고 있으며 설월당 뒤쪽을 내려다보면 목조건축 시 못을 쓰지 않고 부재에 구멍을 파는 등 요철을 이용해 고정시켰음을 알 수 있는 건축부재를 쌓아놓은 것도 볼 수 있습니다.
▷3곳의 연못이 있는데 낙운정 아래 연못에 이름 모를 노란 꽃이 예쁘게 피었습니다. 아침에 피었다가 밤에 지고 다시 아침에 피더군요.
▷군자마을에서 자체 행사로 작은음악회를 열 때 군자고와 숙소 뒤편, 주방 및 식당과 연결되어 'ㄷ‘자로 안온하게 모이는 곳에 의자를 두고 청중들이 음악을 감상한다고 합니다. 이번 연주회 때는 비가 와서 군강당에서 할 수 밖에 없었지만.... 군자고와는 2007년에 완공한 강당 및 숙소, 주방 및 식당이 잇는 건물로 대들보 등 큰 소나무 부재는 러시아에서 수입하였다고 합니다.
▷후조당 사랑채에서 동남쪽으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그늘을 제공해주고 있어 더운 날 쉼터로 좋을 것 같습니다.
▷군자고와 내부에 전시한 항공사진이 멋졌는데 파일을 입수를 하지 못하였고 주차장 쪽에서 원경으로 군자마을을 잡았습니다.
20여채의 가옥 및 부속건물이 600년 가까운 세월을 느끼게 해주는 멋진 고택마을이었습니다. 다른 민속마을이나 이전한 고택과는 달리 관 주도가 아닌 후손이 중심이 된 이건이었기에 더욱 의미가 있다 생각이 됩니다. 정자는 물론이고 대부분의 건물에 대청, 툇마루가 있고 계자난간이 있으며 검은색에 가까운 나무부재들의 색깔과 살아있는 나뭇결이 연륜을 느끼게 하는 멋진 고택마을이었습니다.
더욱이 우리가 숙박하였던 기간은 비가 와서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가 정겨웠습니다. 이 곳에서 3끼를 먹었는데 처음 먹으면서 외국서 오래 생활한 젊은 연주자들 입맛에 맞을까 생각되었지만 정갈한 반찬과 조미료, 직접 담은 된장으로 끓인 된장찌개와 마늘 등을 쓰지 않은 담백하고 깊은 맛에 모두들 평소의 식사량을 넘겼습니다. (된장찌개와 북어국 등 몇가지 반찬나오면서 허겁지겁 먹느라 모든 찬품이 차려진 사진은 찍지를 못하였네요)
군자마을의 관장인 김방식 님은 사진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는데 5년 넘게 이곳을 관리하며 사계절, 낮밤, 날씨 불문하고 수시로 셔터를 눌렀지만 아직도 담아내지 못한 풍경들이 많이 있다고 이곳의 다양하고 변화무쌍한 풍치를 은근히 자랑하였습니다. 저도 전적으로 공감하였습니다. 2박을 하였지만 새벽, 저녁에만 둘러볼 수 있었고 속속들이 보지도 못하였는데 이 정도의 멋진 장면을 보고 머리 속에 각인시킬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고택에서의 하룻밤과 새벽의 운무, 창호지를 통해 들어오는 아침햇살을 느끼고 담백한 먹거리를 즐기겠다고 아내에게 약속을 하였습니다.
끝으로 군자고와 강당에서 연주회 마치고 촬영한 기념사진을 올립니다. 액자와 병풍, 들어올린 문, 강당 일부를 보면 지은지 6년 밖에 안되었지만 이곳도 얼마나 운치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