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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1 - 세계 최초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탄생!
: 먼저 이 아브라함 시리즈 글을 읽는 분들에게 양해를 구하자면, 옛날의 여러 사건에서 가급적이면
종교적 색채는 빼고 역사적 사실로만 사건들을 재구성해 보고 싶으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2002년에 16일간 이스라엘 전국일주 여행을 했고 2010년에는 이집트 전국일주를 거쳐 시나이
반도로 건너가 요르단을 북상해 암만에서 육로로 예루살렘을 다녀왔으며 2016년에 25일간
터키 전국일주 여행을 하면서 옛날 시리아땅인 하타이(안티오키아) 를 보고 산르우르파에서
남쪽 45km 인 하란은 못갔지만... 언젠가는 중동의 역사를 정리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하란에서 아브라함의 자취를 찾아보겠다는 계획은 실행하지 못했지만, 창세기 성경에는
아브라함(쿠란에서 이브라힘)은 여러 민족들의 조상으로 나오는데.... 그는 기원전
1760년경에 살았을 것으로 추측되니 히브리인과 아랍인 그리고 에돔인의
공통 조상으로 간주되며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인물 입니다.
'많은 민족의 아버지' 라는 뜻의 아브라함은 99세 때 하느님으로 부터 새로 받은 이름이며 본명은
'존귀한 아버지' 란 뜻의 아브람이니 175살까지 살았다고 전해지는데... 제임스 어셔 아마
대주교가 계산한 창세기의 계보에 따른 연대표에는 아브람이 58세에 노아가 사망했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살았던 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두 강의 사이인 이라크 남부 “우르”로 추측되니 세계 최초
의 문명인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문명의 중심 도시인데, 이 지역은 기원전 4000년 부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으니 할라프문화 이래 이라크 남부 지방에서 수메르인들이 만든 문명인 우바이드문화가 일어납니다.
기원전 40세기에 메소포타미아(이라크)의 수메르는 20여개의 독립된 도시국가로 나뉘어져
있었으니 도시는 엔시(ensi)와 루갈(lugal)이 통치하였는데, 각각 성직자와 왕에 해당
하며 주요 도시들을 북쪽에서부터 남쪽 방향으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은데 ( ) 안은
현재의 지명이고 이름이 'Tell~'로 시작하는 것은 잔해가 묻혀서 생긴 언덕을 가리킵니다.
키시(Tell Uheimir): 수메르 내에서 상징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도시 중 하나로, '키시의 왕(Lugal)' 은 가장
강한 지도자가 자칭하는 호칭인데 칭호 중 엔이나 엔시는 한 도시의 지배자, 루갈은 그보다 높으니
수메르를 통일한건 아니지만 서열이 높고 영향력이 강한 지도자의 호칭이었는데 전승상 첫번째 루갈을
배출한 도시가 키시니 수메르어: 𒆧𒆠(Kiš), 아카드어: 𒆧𒆠(kiššatu), 영어: Kish, 아랍어: كيش 입니다.
니푸르(Nuffar) : 엔릴의 도시이며 수메르 내에서 종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상징적인 도시
로 많은 루갈들이 '니푸르에서 엔릴에게 선택받은' 이라는 수식어를 차용했습니다.
이신(Ishan al-Bahriyat) : 우르 제3왕조가 멸망한 이후 망명자들에 의해 이신
왕조가 설립되었고 라르사를 지배권에 두며 짧은 시간 동안 패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라가시(Al-Hiba) : 이신과 기르수를 정복하고 영역국가의 첫 발을 내딛은 도시인데 이후
세 도시는 수로로 연결되었으며 움마(Umma)와의 긴 전쟁은 역사상 최초로 기록된
전쟁 중 하나이며 라가시의 엔시 중 하나인 구데아는 우연히 그의 기록이 많이
살아남은 덕분에 유명하니 라가시의 주 신전 에-닌누는 닌기르수에게 봉헌되었습니다.
우루크(Warka) :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대표적인 메트로폴리스이자 수메르의 중심 도시로
길가메시 서사시의 주인공 “길가메시가 바로 우루크의 왕” 이며 해독 초기에 이름이
URUK(우루크)로 정착되었지만 현재 도시의 수메르어 이름을 UNUG(우누그) 로 불립니다.
우르(al Muqayyar): 우르 제3왕조로 유명한 도시로 우르는 후대의 아카드어 발음이고
수메르어로는 URIM(우림)으로 불렸는데 수메르인에 의한 정치적 통제권을 찾았고,
3대째 아마르- 신은 왕의 신격화를 추구했으며 수메르어 문서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기록된 것으로 아브라함도 이곳 우르 태생이며 지구라트가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에리두(Abu Shahrain): 수메르 최초의 도시이자 엔키의 도시니 엔키는 바다의 신 남무와
출산의 신 닌마를 시켜 진흙을 가지고 검은머리의 사람들(Sag-giga; 수메르인) 을
만들었으며 대홍수와 방주등이 기록된 점토판이 발굴되었는데 당시는 항구였습니다.
움마(Tell Jokha): 라가슈와 전쟁을 벌인 도시로 기원전 24세기에 움마의 왕 루갈자게시
가 정복 전쟁으로 수메르를 통합하는데....... 여덟 도시 외에도 16개 도시가 더 있었습니다.
수메르인들은 봄에 대지에 씨를 뿌린후 두무지 부활제를 올렸으니 성장의 신으로 대지의
여신이 탐하는 남성적인 힘의 상징으로서 숭배했는데 풍년제 기간에 아내는 좋아하는
다른 남자와도 잘 수 있는 권리를 남편에게서 인정받고는 자유롭게 사랑의 상대를
선택할수 있었지만 연인의 것은 밖으로 흐르게 하여 임신하지 않도록 주의했다고 합니다.
수메르어는 '𒅴𒄀(Eme-ĝi)' 라고 불렸으며 고립어에 해당하는데 수메르어 해독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아카드어는 셈어라 수메르어의 친척 언어는 모르는데..... 연구 성과가
존재하는 아카드어와 달리 수메르어는 아직도 학자들의 학설이 대립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수메르어는 교착어니 굴절어인 아카드어와 달리 명사 및 동사 활용에서 형태소 사이의 경계
가 확실하며 동사 활용의 경우 문법 표기가 순서대로 어간에 부착되고 의미한정사는
선행 또는 후행하는 단어의 독음과 의미를 한정하니 평소 𒀭/diĝir(신) 또는 an
이라고 읽는 쐐기 문자를 신의 이름 앞에 적으면 𒀭/diĝir 뒤의 단어가 신의 이름입니다.
수메르 도시국가들은 기원전 29세기 초기왕조 시대부터 역사적 기록이 발견되기 시작해 기원전 26세기
라가시 시대에 많은 자료들이 발견되는데, 기원전 24세기에 아카드 제국이 들어서고 구티족 지배후
기원전 22세기 우르 제3왕조에서 부흥기를 맞았다가 엘람의 칩임으로 멸망하고 기원전 20세기경에
아모리인이 침입해 이신왕조는 기원전 1730년 바빌로니아가 메소포타미아를 평정할 때까지 유지됩니다.
우바이드기(기원전 5200년경~기원전 4500년경) 에 특정 도기들이 메소포타미아와 페르시아만
영역에 분포되고 수메르인의 종교적 중심지는 에리두였으나.... 우루크가 점진적으로 성장
하여 에리두를 추월하니 채색 도기는 빠른 물레에서 양산하여 만든 비채색 토기로 바뀌게 됩니다.
우루크기(기원전 4500년~ 3100년) 에 이르러 대량의 물품이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운하와
수로를 통해서 거래되면서 거대한 신전 중심 도시들이 많이 세워졌고 집권화된 관료층이
전문화된 일꾼들을 고용하였고 노예 제도가 시작되었으며 공예품과 우루크의 식민지
들이 터키 타우루스산맥과 지중해 서안, 이란 중부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다수 발견됩니다.
수메르 상인과 이민자들에 의해서 우루크기의 문명은 주변 세력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수메르 도시들은 먼 나라를 무력으로 제압할 군사력은 갖추지 못했는데, 우루크기의
끝은 기원전 3200년~ 2900년 무렵 기후변화 시기와 일치하니 이 시기에 홀로세
최적기후라고 불리는 따뜻하고 습도가 높은 기후가 끝나고 건조한 기후가 지속됩니다.
수메르인은 메소포타미아 남부에 한정되어 있었으나 루갈 안네 문두(Lugal-Anne-Mundu)
와 같은 왕은 지중해와 타우루스, 자그로스까지 영역을 넓혔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보다 조금 전에 에리두 문화가 우루크 문화로 넘어가는 역사적 과정의
신화와 관련되어 있는 엔메카르와 길가메시와 같은 왕들도 넓은 지역을 통치하였습니다.
가장 이전 시기의 왕은 키시 제1 왕조의 13대 왕인 에타나(Etana) 이고 고고학적으로 발굴된
첫번째 왕은 키시의 엔메바라게시(Enmebaragesi) 로 22대 왕이자 끝에서 두번째
왕이며, 길가메시 서사시에서도 이름이 언급되는데 당시 패권이 키시에서 우루크로
넘어갔던 것으로 미루어 길가메시가 우루크의 전설적인 왕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습니다.
라가시의 왕 에안나툼은 우루크의 지배를 물리치고 키시, 우루크, 우르, 라르사 등 모든
수메르 도시를 실질적으로 지배하였고 경쟁 도시였던 움마로부터는 조공을 받았으니
영토는 페르시아 만을 따라 엘람 일부까지 미쳤는데 그는 공포정치를 했던 것으로
보이니 발굴된 독수리 석비에서 적을 무자비하게 대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움마의 제사장이자 왕인 “루갈자게시”(Lugal-Zage-Si)는 라가시 왕조를 전복시키고 우루크까지 정복
하여 새로운 수도로 삼고 수메르를 통합하여 페르시아 만에서 지중해에 이르는 제국을 세웠는
데........ 그는 셈족 계통의 아카드의 군주 사르곤이 등장하기 이전의 마지막 수메르인 왕이었습니다.
움마의 왕인 루갈자게시가 라가시와 우루크등을 쳐부수고 수메르를 통합한후, 수메르 북쪽에 위치한 아카드
지역에서 세력을 키운 사르곤왕은 기원전 24세기에 이르러 수메르의 도시들을 공략해서는 차례대로 함락
시키고 우루크도 정복해 수메르를 모두 복속시카고 통일을 달성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제국” 을 세웁니다!
아카드 제국이 기원전 2154년 구티족의 침략으로 무너진후 라가시의 구데아(Gudea)가 부흥해
예술이 발달하고 신권정치를 표방했으나 기원전 2119년 우루크의 왕 우투헤갈이 구티족
을 메소포타미아에서 몰아내고 기원전 2112년에 정권을 잡은 우르- 남무 왕이 우르
제3왕조를 건설해 북부 메소포타미아 까지 영향력을 미치면서 수메르의 부흥기를 맞습니다.
현재 발견된 성문법 중 가장 오래된 우르- 남무 법전이 이때 제정되었으니 수메르어 기록이
가장 많이 남은 시기이며 중앙 집권이 강해졌는데 초대 왕인 우르- 남무와 아들 슐기,
손자 아마르- 신의 비문을 비교하면 왕에게 붙는 수식어가 점점 화려해지다가 아마르-
신은 자기 이름 앞에다가 신의 이름 앞에 사용되는 결정문자 DINGIR 를 붙이기에 이릅니다.
수메르 지역은 오랫동안 셈족이 유입되면서 셈어파가 아닌 수메르어와 셈어파에 속하는 아카드어
가 공존했는데, 기원전 2000년경 부터 서쪽에서 진출한 아모리인은 후에 바빌로니아 제국을
건설했고 이들은 같은 셈어파에 속하는 아카드어를 사용했으니 중세에 라틴어가 계속
사용되었듯 설형문자가 쓰이는 동안에 수메르어도 학교에서 종교적 언어로 가르쳤습니다.
생태학적으로 수메르 땅의 염분의 증가로 농업 생산력이 감소하였으니 농업 용수의 증발량이 많아 지면서
토양에 녹아있는 염분이 증가한 것이 농업을 어렵게 만들었는데 기원전 2000년 무렵부터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여 규모가 작은 도시 부터 서서히 수메르 문화가 와해되어 갑니다.
엘람인 침략과 기원전 2004년에 이비- 신 지배하 약탈후 수메르는 아모리인의 지배 하에 들어갔으니 이때
청동기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기원전 20세기~ 18세기의 아모리족 도시국가는 수메르의 왕명 목록에
'이신 왕조' 로 기록되었고 이후 “함무라비 왕(기원전 1792년~1750년 재위)의 바빌로니아” 로 넘어갑니다.
토양의 염분 증가로 북부 지방으로의 인구 이동 시기와 일치하는데 토지에 배수가 잘 되지
않고 건조한 기후로 수분 증발은 토양 속에 소금 결정을 축적시키고 수확량을 결정적
으로 줄어들게 하였으니 아카드 왕조와 우르 제3 왕조 동안 밀보다 염분에 강한 보리를
경작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해 기원전 2100년~ 1700년 사이 인구는 60% 로 줄어듭니다.
드라비다어족은 수메르, 엘람과 언어적 유사성이 발견되었으니 수메르어는 셈어파 계열
보다는 드라비다어족에 가까웠을 것으로 보며 쿠르드족은 자신들이 수메르의 직계
후손이라 주장하는데 수메르어 'guti' 라든가 쿠르드족 혹은 그 조상들이 뿌리
내렸다는 기록이 발견된데다가 일부 어휘들이 쿠르드어와 수메르어가 겹치기 때문입니다.
기록된 최초의 문명이라는 점 때문에 환빠 등 전 세계 유사 역사학자들이 수메르문명에
달려들었고 흑인 우월주의자들은 수메르를 흑인이 건설했다고 하는데, 수메르 인들이
검은 색깔의 머리를 가지고 피부가 어두웠다고는 했으나 그런 외모는 중동계
사람들에게 흔한 외모이며 금발 이미지가 강한 서유럽에서도 흑발은 드물지 않습니다.
페로트 Parrot 등 서양학자들은 수메르문명을 앞선 문명이 전혀 없이 아주 갑작스럽게, ‘독자적
으로 발생한 불꽃' 이라고 했으며 캠벨 J.Campbell 은 수메르의 좁은 진흙땅에서
정말로 갑자기 세계의 모든 고등 문명을 구성하는 단초들이 일시에 시작되었다고 말합니다!
수메르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꽃피웠던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사이의 초승달 모양의 땅에
먼저 존재했던 문명이니 수메르 문명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뻗어 나왔으며... 메소포티미아 문명은
그리스~로마 문명의 근원이 되었으므로 수메르 문명 덕분에 오늘의 서양 문명이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1853년 롤린슨은 아카드어 보다 앞서는 알려지지 않은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기록들을 보면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부터 단어를 차용해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으며 과학과 종교에 관련된 기록에서 두드러졌으니 1869년에
오레프트는 그런 언어의 존재와 사용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아카드인들이 자신들의 선조들을 수메르인이라고 불렀으며 수메르라는 땅에 대해 말했다는
증거도 제시했으니 구약에서 말하는 시날의 땅으로 그곳은 이집트인들이 그곳으로부터 신들이
이집트로 건너왔다고 말하는 타네테르 Ta Neter(주시자의 땅)였는데 학자들은 고대 이집트의
문화가 발견된 후에야 그리스와 로마에서 서구 문명이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전 즉 기원전 4000년을 지나자마자 메소포타미아에서 문명에 필요한
필수 요소들이 갑자기 발전했으니 현재 우리 문화와 문명의 요소들 중에서 수메르에
뿌리를 두지 않은 것은 거의 찾기 어려운데 수메르에는 도시, 고층 건물, 길, 시장, 곡물
창고, 부두, 학교, 신전, 야금술, 의학, 외과 수술, 고급 식료품, 농업, 관개 시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마를 발명했고 벽돌을 사용했으며 역사상 최초의 바퀴와 수레를 만들었고 배와 항해술,
국제 무역, 법률, 법정, 배심원, 작문, 음악, 악기, 춤, 가축, 동물원, 전쟁, 기술공, 창녀도
있었는데 무엇보다 하늘과 '하늘로 부터 지구로 온' 신들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아카드인이나 수메르인은 하늘에서 지구로 온 그 방문자들을 결코
신이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신성한 존재나 신이라는 개념은 이후 다른 종교
를 통해 우리들의 언어와 사고 속으로 들어온 것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우리가 지금 일반적으로 그렇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근대 서구 문명의 뿌리가 기원전 1000년대의 그리스와 유대나, 기원전 2000년경대의 아시리아
와 바빌로니아, 혹은 기원전 3000년대의 이집트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기원전 4000년
대의 수메르에 있다는 것은 충격적인 사실이었으니 수메르인들이 '오래전의 날들'
이라고 불렀던 시대, 곧 '대홍수 이전의' 수수께끼 같은 시대로 소급되어야 할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창세기가 시작되었다는 B.C. 3700년경에 일어나 B.C. 3100년경 까지 이어진 우루크
문화 시대에 인류 최초의 문명이라 불리는 우루크와 우르등 도시국가들이 출현하니 B.C.
2900년경 우루크 1왕조가 시작된 이래 B.C. 2355년 움마의 왕 루갈자게시는 우루크를
비롯해 수메르 통일왕국을 세우나 B.C. 2330년 아카드의 침공에 패해 엘릴의 문으로 끌려갑니다.
세계 불가사의 건축물의 하나인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하늘과 땅 사이에 만들어진 정원이며, BC 3500년경
우루크 문화(수메르 문명)에서 하늘의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던 지구라트도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만든 건축물인데 기독교의 구약성서 창세기에 나오는 바벨탑이 지구라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보여집니다.
BC 2330년 세계 최초의 제국이라고 알려진 아카드 제국의 사르곤왕이 남진해 수메르를 정복
하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해 황제가 되었으나 그후 아카드를 멸망시키고 구티 왕조가
들어섰다가 BC 2150년경 수메르인들이 구티족을 몰아내고 우르 제3왕조를 건설
하여 수메르를 부흥시켰으며 이후 함무라비왕의 바빌로니아가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합니다.
함무라비대왕 𒄩𒄠𒈬𒊏𒁉 Hammurabi 은 바빌로니아 제1왕조인 아무르 왕조의 6대 왕으로 기원전
1792년에서 기원전 1750년까지 바빌로니아 왕으로 메소포타미아에서 바빌로니아의 영향력을 확대
하고 강력한 중앙집권 왕국으로 키웠으니 인류사상 가장 오래된 성문법전 함무라비 법전으로 유명합니다.
도둑이 소나 양, 당나귀, 돼지, 염소를 훔치면 열배로 보상해야 하며 돈이 없다면 사형당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했다면 그 자신의 눈알을 뺄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이빨을 부러뜨렸다면 그의 이도 부러뜨릴 것이다. 그가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렸다면 그의
뼈도 부러뜨릴 것이다. 의사가 환자를 수술하다가 환자가 죽게 되었다면 의사의 손은 잘릴 것이다.
“집이 무너져 주인이 죽으면 건축가는 사형에 처한다. 집주인의 일가족이 죽었으면 목수
의 가족중 해당되는 이가 죽는다. 강도가 집에 구멍을 뚫고 물건을 훔쳤다면
구멍 앞에서 죽어야 한다. 어떤 사람을 사형에 처할만 하다고 고소하고도 입증할 수
없다면 고소한 자를 사형에 처한다. 노예를 성문 밖으로 도주시킨 자는 사형에 처한다.”
함무라비의 아버지 신 무발리트는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많은 군주 중에 하나였으리라고
추정되는데 바빌로니아 문화는 문자에 힘입어 다른 문화보다 발전된 위치에 있었으니
함무라비 이전의 왕들은 이런 문화의 이점으로 중앙 메소포타미아에서 세력을 공고히
하는 중에 있었고 함무라비 치세에 주변의 도시국가들을 정복하며 세력을 더욱 키웁니다.
메소포타미아 북쪽의 왕국들이 분열하면서 바빌로니아의 힘이 더욱 강해졌으니 함무라비는
방어용으로 성벽을 높이고 신전을 신축했으며 기원전 1787년 이신 정벌, 기원전 1776년
에서 1768년에 라르사와 싸워 이겼고 기원전 1766년 엘람왕국이 메소포타미아
평원을 침범해 에슌나 제국을 멸망시키자 함무라비는 라르사와 동맹해 엘람을 격파합니다.
함무라비는 동맹 당시 군사상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것을 구실로 기원전 1763년 라르사를 공격해 점령
함으로써 남쪽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게 되었으며 기수를 북쪽으로 돌려 예전의 동맹국이던
마리를 비롯해 잇달아 많은 왕국을 복속시키고 메소포타미아를 통일하는 대제국을 건설하게 됩니다.
그후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를 거쳐서 BCE 539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키루스대왕이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해 거대한 제국을 세웠으나, 페르시아는 알렉산드로스 3세에게 정복
되었고 사후에 알렉산드로스의 후계자들이 싸운 디아도코이 전쟁을 거쳐서 안티오키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지배하다가 이란 지방에서 일어난 파르티아 왕국의 지배 아래 들어갑니다.
파르티아가 사산 왕조 페르시아에 멸망하자 바빌론등 메소포타미아 지방은 사산 왕조 페르시아와
로마 제국의 각축장이 되니...... 사산 왕조 페르시아는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와 중부의 대부분을
그리고 로마 제국은 메소포타미아 북부를 점령하는데 로마 황제가 전쟁터에서 죽는 일도 발생합니다.
당시 세계에서 2번째로 문명이 발생한 이집트는 북쪽으로는 지중해, 그외 지역은 사막으로 둘러싸여
있고 다른 지역으로 통하는 지역이래봤자 동쪽의 시나이 반도와 골란 고원뿐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폐쇄적인 지형이었으니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비해 정치적으로 상당히 안정된 지역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메소포타미아는 동쪽으로는 이란 고원, 서쪽으로는 소아시아, 남쪽으로는 광활
한 사막지역, 북쪽으로는 카프카스 지역과 연결된 개방적인 지형이니 외적의 침입
이 잦았고..... 이러한 지리적 영향으로 인해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사람들은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는 사회에서 잘 살아야 된다' 라는 현세적인 면이 더 강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이집트 사람들은 '지금은 비록 힘들지라도 파라오를 믿으면 죽어서는 편안하게 안식을 취할 수있을
거야' 라는 내세적인 면이 많았다고 하는데.... 일례로 점성술의 발상지가 메소포타미아이니 본래
점이라는 것이 내세의 평안보다는 현세 지향적이라고 볼수 있는 부와 권력, 명예를 예측하는 학문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 바빌로니아 왕국을 세운 함무라비 왕은 BCE 18세기경 세계 최초의 성문법전
으로 알려진 함무라비 법전을 만들었고 그림문자와 설형문자, 60진법 등을 사용하였으며,
학교, 도서관, 재판소, 병원 등 매우 다양한 공공 및 각종 사회 기반시설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수메르(Sumer) 초기 왕조시대는 청동기 시대로 왕위를 세습하는 왕가가 시작되었으며 문자가
더 보편화되고 토판등의 많은 고고학 유물들이 발굴되는데 왕이 신격화되고 수메르
문명이 꽃을 피운 시기이니..... 바그다드 남쪽에 니푸르(Nippur) 라는 도시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으니 이곳에는 당시 수메르인들이 주신으로 섬긴 엔릴(Enlil) 신전이 있습니다.
1900년 힐르레이트는 니푸르 유적지에서 토판을 발견했는데 그후 18개의 토판이 더 발견
되었으니 거기에 수메르 초기 왕들의 기록이 있는데..... 역사적인 대홍수 이전의
통치자들은 에리두, 알루림, 알랄라가르 등인데 그들의 통치기간은 엄청 길다고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