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요백당(千了百當)
천요백당(千了百當)
말 한마디에 깨달아서 문득 천 가지를 통달하고 백가지를 감당 한다.
위없는 「보리」를 얻고자 하면 「시비」를 상관하지 말라.
불교공부, 마음공부는, 오래하고 일찍 하고,
늦게 하고 많이 하고 적게 하고 가 문제 되지 않는다.
한 찰나 한순간에 깨달으면 억겁의 무명에서 벗어나게 된다.
불자라면 불가에 입문하면 「불명」이나 「법명」을 받아야 한다.
불자는 바른 믿음과 바른 뜻을 세우고 살기위해
불명을 받아서 자신의 좌우명을 삼기도 하는 것이다.
불명을 받는 것은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고,
대보살이 되는 기본적인 바탕이라 할 수있다.
우리들은 누구나 팔만사천 번뇌로 가득하지만,
그 「본성」은 깨끗하여. 설사 삶에 찌들어 오염되어있더라도,
그 본성은 아주 위대한 존재이기 때문에 부처님이나, 조사나,
선지식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아무리 험한 직업,
매일매일 생명을 죽이는 살생을 하는 백정같은 사람이라도
찰나에 「개오」하여 부처를 이룬다는 것이다.
「불성인 인간의 지고한 본성은
세간과 출세간의 법이 본성을 떠나지 않아서
털끝만큼도 다르지 않다고 배웠다」.
세간사 출세간사가 「일체유심조」 다.
겨울나무처럼 잎이 다 떨어진 나무. 잡다한 겉모습이 다 살아진 것.
그것이 진짜 나무의 「본성」이란 것이다.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시고,
탑전에서 자리를 양보하시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 한 물건 본성의 자리를 들어서 보이시고.
나누시는 것이 천지를 깨닫게 하고, 백가지를 감당하게 하는 도리다.
「작용」이- 꽃을 들어 보이는 모습 그것이고.
「자리」를 나누어 준는 것이 -또한 작용이다.
마음 밖으로 듣거나 알아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심중무일사(心中無一事)
마음 가운데 아무 일 없는 것. 그것이 진짜 작용이다.
세상이 긍금하여 TV와 신문을 본다.
세상의 정보에, 내가 유리할 것인지 ,불리할 것인지,
두려워하는 인생사 다.
신문을 보지 않으면 괜히 뒤떨어진 사람이 되고,
불리한 처우를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불교공부는 마음의 「여백」을 가져보자는 용기다.
교리공부는 외우고 짜서 맞추어 보고 확인하는 공부지만.
참선공부, 마음 닦는 공부는 그런 허다하고 잡다한 것을
다 버리는 공부다.
철저히 잘 비우는 사람이 공부 잘 하는 사람으로 처 준다.
어떠한 티끌도 남기지 않은 철저한 공부가 마음공부다.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고
보고 듣지 않아도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을 철저히 비우는
성성적적(惺惺寂寂)의 여백이다.
고요하고 고요한 가운데서 혼침에 빠지지 말고
항상 또렷하게 깨어있는 자리.
「체용(體用)이 비록 다르나 쓰는 것은 하나란 말이다.」
향나무로 물고기를 조각했다 해서, 비린내가 나는 것이 아니라.
향내가 난다는 말이다.
이 세상에 부도덕 하지 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헌법재판 소장, 국무총리 선정을 두고 돌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것이
우리들이 가지는 「작금의 체용」이다.
그들의 허물을 통해서, 배우자.
모든 위정자들이 자기성찰을 통한 반성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인도의 간디. 남아공의 만델라처럼
우리들의 정치사에도 그런 보살행을 실천하는 인물이 나오길
간절히 축원해 보는 아침이다.
부처님이 위대하신 것은, 왕의 자리 권위도 버리시고
바루 때 한 벌, 가사 두벌만 가지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부처님의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백이다.
출처 : 무불스님 향불회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