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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졸업 시즌이 끝났다. 사각모를 쓴 졸업생들은 저마다 부푼 꿈을 안고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한다. 수많은 졸업생들 가운데 특히 우뚝 솟은 수석 졸업자들. 만점에 가까운 경이로운 학점을 받으며 4년을 보낸 이들은 분명 남들과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을 것이다. 주간조선 취재에 응한 올해 주요 대학 수석 졸업자 18명이 말하는 삶과 꿈은 어떤 것일까.
<< 조사대상 18명의 공통점>>
-건강관리: 주 3회 이상 운동(16명) -흡연 여부: 금연(17명) -성격: 낙천적·긍정적(15명) -출신고: 과학고(4명) -부모 직업: 교육계 종사자(8명) -부모: 모두 살아 계심(17명) -존경하는 사람: 아버지나 어머니(9명) -종교: 기독교(11명)
◈ 신상·라이프 스타일“주 3회 이상 운동… 담배 안피워” 90%
이들의 건강이 나쁠 리 없다. 응답자 중 건강이 “매우 좋다”고 답한 사람이 10명, “좋다”가 5명, “보통”이 3명, “나쁘다”고 답한 사람은 없었다. 흡연자는 딱 한 명뿐이고 술도 “거의 못 마신다”가 대부분이다. 포항공대 산업공학과 김배호씨는 “기숙사 생활을 하다보니 동료들과 관계 때문에 가끔 마실 뿐”이라고 말했다.
●낙천적 성격, 화목한 가정
수석 졸업자들의 출신지와 고등학교 항목에서는 18명 중 4명이 과학고등학교 출신인 점이 눈에 띄었다. 가정 환경은 어떠했을까. 부모의 직업으로는 아버지나 어머니가 교수나 교사 혹은 연구원으로 교육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8명, 이 밖에 회사원이나 자영업이 3명, 약사 2명, 어머니가 주부인 사람은 모두 11명이었다. 또 일찍 아버지를 여읜 한 사람을 빼고는 모두 부모가 살아 계셨다. 고려대 경영학과 서창우(경영대 수석)씨는 “부모님과 누나들의 사랑이 있어서 공부하는 데에 많은 힘이 됐다”고 말했다.
종교는 기독교가 11명으로 가장 많았다. 천주교 3명, 불교 1명, “종교가 없다”고 답한 사람은 3명이다.
수석 졸업자들은 다양한 취미를 갖고 있었다. 스키, 볼링, 댄스 등 운동뿐 아니라 음악, 영화, 낚시, 뜨개질, 중국 기사 스크랩, 참선, 피아노, 컴퓨터 게임까지 보통 두세 개씩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동국대 산림자원학과 정은영씨는 “편지나 광고 엽서, 우표, 영화 리플렛, 동전 등을 닥치는 대로 수집하는 것이 취미”라고 말했다.
스트레스가 쌓이는 경우는 “하고 싶은 것이 마음대로 안 될 때”이고 “이런 설문에 응답해야 할 때^^”라고 재치있게 답한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다수가 “스트레스를 그다지 많이 받는 편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스트레스는 주로 운동으로 푼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거나 혼자 걷는 사람도 있었다.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김경민씨는 “드라이브로 바닷가에 간다”고 말했다.
이들의 성격은 어떨까. 응답자 15명이 “낙관적ㆍ긍정적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고 답했다. 구체적으로는 “에너지가 넘친다” “다혈질” “리더형” “사람 만나기를 좋아한다”였다. 나머지 3명의 답변은 “꼼꼼하고 철저하다”다.
수석 졸업자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는 ‘부모님’을 꼽았다. 18명 중 9명이 부모님 혹은 어머니나 아버지를 가장 존경한다고 답했다. 한양대 응용화학공학부 강성석씨는 “어린 자식의 의견이라도 일단 존중해주고 더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식을 기르신 아버지가 가장 존경스럽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유전공학과 김혜진씨도 마찬가지다. 지도 교수를 가장 존경한다는 충북대 환경공학과 김민정씨도 있었다. 나머지는 슈바이처, 정약용, 마더 테레사, 피터드러커 등의 저명인사를 꼽았다. 자신의 지식을 사회를 위해 썼다는 점을 가장 큰 존경 이유로 들었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묻는 질문에 “너무 많아서 열거하기 힘들다” “닥치는 대로 읽는다” 등으로 ‘책벌레’임을 과시한 사람은 3명이었다. 구체적인 답변으로는 ‘안네의 일기’ ‘어린왕자’ ‘무소유’ 등 인간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준 책이 많았다. 또 김경민씨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과학소설 ‘뇌’, 충남대 원예학과 이지영씨는 나관중의 ‘삼국지’,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홍성근씨는 사마천의 ‘사기’를 꼽았다. 전공 관련한 서적도 있었다. 정우식씨는 제임스 콜린스의 ‘좋은 기업을 뛰어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박범수씨는 로버트 액셀로드의 ‘협력의 발전(The evolution of cooperation)’을 꼽았다. 18명 중 어느 한 명도 구체적으로 책을 언급하지 못한 사람이 없었다.
(유나니 주간조선 기자)
◈ 대학생활“좋아하는 전공 택해 맘껏 즐겼다”
대학 수석 졸업자들은 한 명 예외없이 전공 과목과 학교에 대해 만족하고 있었다. 오승연씨는 “전공인 국제관계, 정치외교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고 말했다. 전공은 다양했지만 자신의 전공을 좋아했다는 점에선 예외가 없다. 보통이라든가 불만족이란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좋아하지 않고는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박범수씨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너무 즐겁다”고 했다. 처음부터 원한 것은 아니었더라도 결국은 자신의 전공을 좋아한다. 김민정씨는 현재 전공을 택한 이유를 수능점수에 맞춘 것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그러나 지금은 전공에 만족하고 있다.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공부하는 방식이나 장소는 제각각이다. 공부 시간도 마찬가지. 홍성근씨는 “시간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루를 노는 시간과 공부 시간으로 나눠 생각해 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항상 선생님, 친구들과 이야기할 때 알고 싶은 것에 대해 묻고, 이야기를 듣고 토론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공부에 취미를 붙이고 의식, 심지어 무의식중에 얼마나 공부에 대해 고민하는가라고 생각합니다.”
김혜진씨는 홍씨와는 정반대다. 그녀는 다른 일과 공부를 병행하지 못한다. 한번 자리에 앉으면 의자와 떨어지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화장실도 목표한 곳 다 본 다음에 가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에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정은영씨는 “필기를 2번씩 했다”고 한다. 수업시간에 연습장에 필기를 하고 나중에 다시 그것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대부분 ‘춤’ 좋아하는 공통점 지녀
강성석씨도 머리보단 노력이라고 말했다. “많이 오래 하는 사람이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공부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어떻게 오래 꾸준히 할 수 있을까가 문제인 것 같아요.” 그는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란 오래 버티고 앉을 수 있는 방법과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공부는 주로 도서관과 실험실에서 한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서혜영씨는 주로 공부한 장소가 지하철이다. “집안 형편상 아르바이트로 과외를 많이 했고 오가는 길에 책을 봤다”는 것이다.
집에서 공부했다는 사람도 상당수 있었다. 오승연씨는 집에서 공부했다. 그는 공부할 때 강의하듯 한다. 수강생은 바로 자기 자신. 마치 교수가 강의하며 교실을 오가듯이 방안을 돌아다니며 자신에게 설명을 했다. 이지영씨도 집, 내 방에서 공부하는 스타일.
요즘 젊은이들은 이성관계에 적극적이다. 수석 졸업생들이라고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부보단 연애라는 사람도 있다. 한 수석 졸업자는 “연애 때문에 공부에 지장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오히려 “공부가 연애에 방해가 됐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랑엔 그야말로 국경도 없다. 다른 한 명은 “해외 연수 길에 만난 외국인과 1년째 사귀고 있다”고 말했다.
의외로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라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공부는 사람에 대해 배우는 것이란 이야기다. 김배호씨는 기숙사에선 절대 공부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다. 기숙사는 동료들과 어울리고 개인 시간을 갖는 곳이란 것이다.
김경민씨는 “대학 생활에서 공부는 기본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교우관계”라고 말했다. 김민정씨도 “인간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며 “대학 때 선후배 친구 교수 등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제대로 익혀야 한다”고 말했다. 정우식씨나 홍성근씨도 마찬가지다.
김혜진씨는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좀 더 현실적으로 설명한다. 그는 아예 공부를 잘하는 비결은 인간관계라고 생각한다. 교수들의 출제 스타일, 일명 족보를 숙지하지 않으면 좋은 성적을 받기 힘들다. “절대 혼자 죽어라 공부하는 사람이 학점 잘 받는 일은 없어요.” 선배 동기들과 사이가 좋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친구들마다 잘 알고 있는 부분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질문을 주고받다보면 어설프게 알던 것도 진짜 내 것으로 변한다”는 것이다.
춤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의외의 공통점. 오승은씨는 아예 대학 4년 동안 힙합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서혜영씨는 라틴댄스 특히 살사를 즐긴다. 작년 9월부터는 동아리 공연팀에 합류해 공연을 할 예정이었지만 어학 연수 관계로 참여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화여대 건축학과 차지은씨는 앞으로 스포츠댄스를 배우고 싶어한다.
(백강녕 주간조선 기자)
◈ 이들의 꿈은?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요. 계속해서 공부하고 싶어요.”
대학 수석 졸업자들의 꿈은 예상대로 교수(5명)가 가장 많았다. 학자(1명), 연구원(2명), 과학자(1명)와 일단 학업계속(2명)까지 합치면 설문 응답자(18명)의 과반수가 넘었다. 공부하는 게 가장 즐겁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막연하게 생각하지만은 않는다.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단순히 상아탑에 머무르는 교수나 학자가 아니라 현실에 뛰어드는 실천하는 지성인이 되려 한다.
오승연씨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해서 학자가 되고 싶어한다. 3학년 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 1년 간 교환학생을 다녀오면서 학자의 꿈을 굳혔다. 재학 중 한국 유네스코가 주최한 세계 청년 국제야영에 참가해 위안부 할머니들과 10일 정도 함께 보내면서 모의유엔, 안보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했던 그는 한국고등교육 재단 제28기 해외유학 장학생으로 선발돼 미국으로 유학을 갈 예정이다. 차지은씨 역시 교수 겸 건축가의 꿈을 일찍부터 굳혔고 ‘21세기 지도자 장학금’을 받아 5년 간 유학생활을 지원받게 된다.
중앙대 광고홍보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김경민씨는 “실전을 익힌 후 참교육을 실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민정씨, 한림대 유전공학과 이혜연씨 역시 교수를 꿈꿨으며 전북대 응용생물학과 임미연씨는 해외에서 생화학을 연구하면서 선교활동을 병행하고 싶다고 밝혔다. 또 이지영씨는 벤처기업 연구원 생활 후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다. 역시 연구원을 꿈꾸는 홍성근씨는 “훌륭한 업적은 남기지 못하더라도 남이 남긴 훌륭한 업적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었으면 좋겠다”면서 “몇몇 안되는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정을 소중히 하면서 교수와 연구직을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박범수씨는 “나를 믿고 의지할 가족들에게 먼저 믿음직스러운 존재가 된 후 한국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의 발전에 기여를 하고 싶다”면서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되새기고 싶다”고 말했다.
김배호씨, 강성석씨는 아직 미래에 대해 확실한 결정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학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해서 교수, 학자, 연구원으로 자연스럽게 접근해가고 있었다. 특히 세 사람은 자신이 가진 것을 베풀고 싶다고 공통적인 대답을 해서 더욱 구체적인 꿈을 읽을 수 있었다.
전공은 살리되 학교 테두리를 벗어나 더욱 현실적인 직업을 가지고 싶어하는 부류가 교수의 뒤를 이었다. 서창우씨는 공인회계사를 꿈꿨다. 현재 시험 준비 중이고 유학을 가서 보다 넓은 세계에서 국제적인 감각을 키우고 싶어했다. 서혜영씨는 동시통역사를 꿈꿨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배우고 싶다는 서씨는 일단 스페인 어학 연수를 다녀온 뒤 진학한 후 취업을 하려고 한다. 숙명여대 중어중문학과 김봉자씨는 중국무역 전문가가 되고 싶어했다. 그는 “앞으로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게 될 한·중 무역 활성화를 위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우식씨는 일단 직업이 정해진 상태. SK텔레콤 본사에 근무하게 됐다. 정씨는 “경영학 공부를 하면서 ‘필드’에서 뛰고 싶었다”면서 “경력을 쌓은 뒤 MBA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사법고시를 준비하고 있는 전남대 법학과 김자회씨는 일단 시험 결과를 보고 미래를 결정하기로 했다.
●꿈과 현실의 차이로 고민도
수석 합격자라고 해서 모두 ‘포장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있는 것만은 아니었다. 꿈과 현실의 커다란 괴리로 고민하는 부류도 있었다. 김혜진씨는 유전공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의대 편입에는 실패했다. 일단 대학원을 진학해서 석사를 마치고 의학대학원에 도전할지 아니면 다시 내년에 편입시험에 도전해야 할지 못 정했지만, 의학 생물학 분야를 계속 공부할 계획이라고 한다. 그녀는 “인체의 신비와 질병에 대한 고통을 감해줄 수 있는 연구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정은영씨 역시 환경보호와 자연 연구를 소홀히 하는 현상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서울 월드컵 공원에서 생태프로그램 운영자로 일하고 있는 정씨는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같은 잡지의 생태 해설가나 환경 운동가가 되고 싶어한다. 그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남산야외식물원 자원봉사를 시작해서 지금은 쓰레기산 난지도가 공원이 되고 자연의 부분으로 돌아가는 과정, 생태, 식물을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다. 정씨는 “생태 해설가의 경우 한국에서는 아직 미개척 분야라 의미는 있으나 앞길이 너무 막막하다”면서 “기회가 되면 선진국에서 체험과 공부를 더한 뒤 한국으로 돌아와 선구적인 생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고 말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 ‘사회 이슈’ 토론
주요 대학 수석 졸업자들은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갖고 있을까.
먼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과제로 무엇을 생각하느냐는 물음에서는 제시된 다섯가지 항목(선진국 진입, 통일, 분배, 지역감정 해소, 부패추방) 중 선진국 진입(5명)을 가장 많이 지목했다. ‘요즘 젊은 학생들은 경제 성장과 선진국 창출이란 목표는 과거 개발 시대를 풍미하던 구호로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수석졸업자들의 다수는 선진국 진입을 우리 사회가 우선적으로 지향해 나아갈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어 4명은 부패추방을 지목했다. 서창우씨는 “부패가 만연한 사회에선 새로운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 3명은 지역감정 해소를 지목했다. 강성석씨는 “선진국이 되어도, 통일이 되어도, 경제적 분배가 고르게 되어도 국민간에 신뢰와 믿음이 없으면 안된다”면서 “우선 이웃끼리 나아가 지역끼리 사랑하는 국가로 발전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젊은층들이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통일과 분배 문제에 대해서는 각각 2명이 답변했다. 최근 정권 교체기를 맞아 통일과 분배 문제가 주요 과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른 태도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통일과 관련해 한 졸업생은 “분단상황이 지속되는 한 군복무는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전제하면서도 “젊은이들이 2~3년 간 군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너무 비생산적”이라고 토로했다. 외국의 젊은이들이 같은 기간동안 학위를 하나 더 취득할 수 있는 것과 비교하면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안타깝다는 것이다.
●“분단 지속되면 군복무는 당연”
이밖에 ▲교육 문제 해결 ▲정치와 경제, 언론의 투명한 독립관계 ▲사람들의 정서 순화가 우리 사회의 시급한 과제라고 지목한 이들도 각각 1명씩이었다. 교육 문제를 지목한 한 졸업자는 “모교의 정치외교학과의 경우 1997학번은 정치외교학, 98ㆍ99학번은 사회과학계열, 2000년 학번은 사회계열로 입학했다”면서 “한국 사회는 교육자들조차 헷갈려할 정도로 교육정책을 자주 바꾼다”고 장기적인 교육 계획을 호소했다.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묻는 질문엔 대다수인 11명이 5가지 항목(매우 진보적, 진보적인 편, 중도, 보수적인 편, 매우 보수적) 중에서 중도라고 답변했다. 학업에 우선적으로 매진한 학생들이어서인지 대체로 정치적으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지지 않은 성향을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진보적인 편이라고 답변한 사람은 5명이며, 보수적인 편이라고 답변한 이는 1명이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달군 반미(反美)시위, 북핵(北核), 미국의 이라크 전쟁 등 핫이슈에 대해서 급진적 견해는 드물다.
우선 반미시위와 관련, 이들은 대체로 평화적 시위를 찬성하고 우리 국민이 사과를 받을 권리가 있다면서도 이번 사태가 국익에 반하는 주장으로 연결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김배호씨는 “우리나라를 둘러싼 세계의 현실을 무시하고 우리 국민의 감성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것은 우려된다”면서 “자칫 명분에만 집착하면 미군 철수 등으로 인한 경제적 기회비용, 안보위험성 증가 등 실리면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북한의 핵 보유 여부에 대한 의견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대화로 풀어나가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변을 많이 내놓았다.
북한의 핵 보유여부와 관련해서는 반대하는 주장에서 북한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견해까지 스펙트럼이 다양했다. 한 졸업자는 “북한이 핵을 가지면 우리 민족이 핵을 가지는 것이 아니냐는 일부 주장이 있는데 찬성할 수 없고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북한의 입장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이해한다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 추진과 관련해서는 전쟁 반대론이 우세했다.
(이거산 주간조선 차장대우)
“매일 1시간씩 헬스장에서 운동합니다.” 수석 졸업자들은 대부분 건강관리를 따로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응답자 18명 중 매일 혹은 주 3회 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달리기나 걷기,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한다는 사람이 16명이었다. 이들은 농구, 축구, 에어로빅, 수영 등 각종 운동을 대부분 겸하고 있었다. 체질적으로 운동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서혜영씨는 “라틴댄스를 좋아해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합기도도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오승연씨는 에어로빅 강사 자격증을 땄고 재즈댄스와 승마를 배운다. 대학생활 중 가장 무너지기 쉬운 식사 시간을 지키는 경우도 있다. 부산대 경영학과 정우식씨는 “아침은 6시, 점심은 12시, 저녁은 5시에 먹는 것이 건강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좋아하는 것이라면 잘할 수밖에 없다.”
“현실 참여하는 지식인 되고 싶어요”
“사회 최대과제는 선진국 진입”
◇참석자 (가나다순)
▲강성석(한양대 응용화학공학부 4.5 만점에 4.43) ▲서혜영(고려대 서어서문학과 4.5 만점에 4.35) ▲오승연(연세대 정치외교학과 4.3 만점에 4.22) ▲정은영(동국대 산림자원학과 4.5 만점에 4.31) ▲홍성근(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4.3 만점에 4.24)
-- 공부 잘한다고 특별하게 대접받거나 반대로 ‘왕따’ 당해서 스트레스 받은 적이 있나?
△오승연(이하 ‘오’로 표기) = 도서관에만 있는 스타일도 아니고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친구들과 잘 지냈다. 그런데 동생을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방에서 역사책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고 있으니까 “언니, 공부 너무 열심히 하면 미친대” 하면서 울었다.(웃음)
△홍성근(이하 ‘홍’으로 표기) = 친한 사람들은 공부하는 것을 나의 특성 중 하나로 생각했기 때문에 굳이 구분하지 않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괜히 빈정거리기도 했다. 스트레스가 될 만큼 심하진 않았다. 나는 친구나 선후배들과 이야기하면서 함께 공부하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오히려 사람들과 친했다.
●“공부 너무 하면 미친대” 동생이 울기도
△정은영(이하 ‘정’으로 표기) = 사실 나는 소외감 때문에 공부를 했다. 1학년 때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친구들과 짝지어 다니는 것을 못해서 2학년 때는 친해지려고 해도 잘 안됐다. 다행히 노트 필기를 잘 해서 시험 기간에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어느 날 한 친구가 내 노트를 복사해 공부하고는 시험 끝나자마자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을 보고 더이상 노트를 빌려주려 하지 않았다. 그랬더니 ‘공부 좀 한다고 안 빌려준다’고 해서 속이 많이 상했다.
△강성석(이하 ‘강’으로 표기) = 내가 게임과 술을 좋아한다고 말했더니 놀라는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주변에 친한 형들이 많아서 특별히 ‘왕따’ 당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다.
△서혜영(이하 ‘서’로 표기) = 나는 집안 형편상 1학년 마치고 2년 동안 휴학한 뒤 재작년에 복학해서 다시 2년 동안 학교 다녀 결국 조기 졸업했기 때문에 바쁘게 공부했다. 동급 학생들과 나이 차가 좀 났지만 소외된다는 느낌은 안들었다.
-- 나만의 공부 비결이 있다면?
△강 =수업에 충실한 것이 우선이다. 수업에 빠지게 되면 녹음을 했다. 교양 과목의 암기 사항은 손바닥만한 수첩에 적어 들고다니며 봤다. 여러번 반복해 보다보면 자주 보는 사람 얼굴 생각나듯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정 =필기를 두 번 했다. 강의 시간에는 연습장에 마구 옮겨적고 도서관에서 다시 그날의 강의 내용을 정리해 노트에 깨끗이 옮겨 적었다. 잠이 적은 편이어서 아침 특강도 많이 들었다.
△오 =나는 소리 내면서 자유분방하게 공부하는 스타일이어서 집에서 했고 수업 시간에는 무조건 충실했다. ‘놀아도 강의실에서 놀고 잠을 자도 강의실에서 자자’가 신조였다.
△서 =전공 특성상 암기 위주여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책이나 메모를 보고 다녔다. 또 상식을 얻기 위해 신문 기사를 많이 봤다.
△홍 =좋아하고 자신 있는 과목을 선택한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이다. 내가 좋아하는 과목 위주로 시간표를 구성해서 공부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궁금했던 사항이나 그날 배운 내용을 항상 머리 속으로 생각하고 다니다가 친구나 선배들, 교수들을 만나 이야기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다 보면 은연중에 배우는 것이 많다.
● “과외 받아본 적 별로 없다”
-- 대입때 과외는 받았나?
△서 = 해본 적은 많아도 받아본 적은 없다. 과외받고 싶다는 생각도 안했고 그럴 형편도 못됐다.
△정 =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올라갈 때 단과 학원은 다녀봤는데 별로였다.
△홍 = 초등학교 때 피아노ㆍ수영 학원, 중1 때 속셈 학원을 다녔고 고2 때 수능 때문에 단과 학원에 다녔다. 하지만 내가 자신있어서 혼자할 수 있는 수리탐구보다는 자신없는 언어, 사회 영역에서 학원이 많은 도움이 됐다.
△오 = 학원을 많이 다녔는데 특히 피아노, 쿵푸, 에어로빅 등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은 꼭 다녔다. 부모님이 시켜서가 아니라 항상 내가 졸라서 다닌 것이다. 부모님이 억지로 보내는 아이들도 많지만 그건 아무 소용 없다고 생각한다.
△강 = 동감한다. 어릴 때 피아노 학원, 대학 때 영어회화 학원에 다닌 것 외에는 학교 외 수업 경험이 없다. 학원은 하고자 하는 마음의 성적은 올려주지만 억지로 하는 사람에게는 백해무익하다.
-- 커닝 해본 적은 있나?
△홍 = 딱 한 번 해본 적 있다. 친구들끼리 “한번 해보자” 하고 장난으로 했는데 나중에 죄책감에 시달려 ‘커닝하지 맙시다’란 캠페인을 보고도 찔려서 아무 말 못했다.
△강 = 월드컵 때 공부를 안해서 친구들끼리 의논해서 해본 적 있지만 커닝을 해도 평소 실력만큼 성적이 나오는 것 같다.
-- 운동이나 과외활동은? △오 = 어렸을 때 친구 어머니가 에어로빅 하는 것을 보고 엄마를 졸라 에어로빅 학원에 다녔다. 대학교 4학년 때는 에어로빅 강사 자격증을 땄고 4년 내내 힙합 동아리 활동을 했다. 지금은 재즈 댄스를 한다. 운동도 좋아한다. 쿵푸는 2단이고 승마를 배우고 있다.
△서 = 나도 춤을 좋아해서 살사 공연팀을 만들었다. 이번 달에도 공연이 있다. 합기도는 1단. 수지침도 조금 배웠다.
△정 = 나는 운동보다는 자원봉사를 했다. ‘남산사랑회’라는 야외 식물원에서 일하고 꽃동네 봉사 활동, 문화재 연구 동아리 답사활동 등을 했다. 남들과 즐겁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좋다. 월드컵 때 월드컵공원에서 ‘생태학습 프로그램 운영자’를 하기 시작해 지금도 하고 있다.
-- 어린 시절의 꿈과 지금 갖고 있는 꿈은?
△홍 = 대통령, 장군, 과학자, 화가, 만화가, 동물학자, 고고학자 등 꿈이 많았지만 지금은 과학자를 꿈꾸고 있다. 특별히 분야를 정하진 않았다. 일단 병역 문제를 해결하고 나중에 결정할 것이다.
△강 = 어린 시절에는 판사가 제일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지혜로운 사람 되는 것’이 꿈이다. 카이스트 연구원 병역 의무가 끝나고 나면 신앙 공부를 하고 싶다.
△서 = 그림, 운동 등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지금은 우선 6개월 정도 스페인에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동시 통역 공부를 할지 고민 중이다.
△오 = 중학교 때부터 내 꿈은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구멍가게 둘째 딸이 영국 수상이 됐다’는 마거릿 대처의 기사를 읽고 여성 지도자의 모습을 그렸다. 당시에 일본이 만주 철도 부설권과 바꿨다는 간도에 대해서 배웠는데 나는 ‘왜 사람들이 독도에는 분개하면서 간도에는 분개하지 않을까’하며 ‘내가 간도를 찾아야지’하고 생각했다. 앞으로 정치외교학 분야에서 훌륭한 학자가 돼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외무고시를 권유하던 부모님도, 대학교 3학년 때 교환학생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채플린대에 다녀오고 난 뒤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으로 뽑혀 학문의 길로 가려는 내 신념이 더욱 확실해지자 이제는 적극 지원하신다.
△정 = 어린 시절에는 선생님, 과학자가 꿈이었다. 지금은 삼림에 관심이 많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자연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시스템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시민환경연합 등의 시민단체도 많지만 수준도 미약하고 상황이 열악하다. 물론 생계 걱정도 되고 집에서도 걱정하지만 차차 실무쪽에서 경험을 쌓고 이론도 무장해서 우리나라 자연 연구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기성세대’에 관해서는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나?
△오 = 인간은 ‘초심’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실천하는 이상주의자’란 말을 참 좋아한다. 체 게바라 평전 첫 머리에도 “리얼리스트가 돼라,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심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기성세대들은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다. 교통부 장관이라면 책상머리에 앉아있지 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문제점이 무엇인지 알아내야 한다.
△서 = 우리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은 기성세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기성세대가 아닌 사람이 기성세대를 비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아직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홍 = 중요한 것은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간에 대화를 많이 하고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우선 가장 가까운 기성세대인 부모님과 대화해 보면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정 = 10년 전 사람들도 ‘요즘 애들은…’ 했다고 한다. 세대간의 갈등은 어느 곳에나 있다. 나 역시 역지사지(易地思之)할 수 있을 때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운동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 학교 다닐 때 소위 학생운동은 해본 적이 있나?
△홍 = 안해봤다. 필요하다는 생각은 드는데 확실히 몰라서 섣불리 나서기가 두려웠다. 잘 모르고 휩쓸려서 하는 것은 좋아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이 나이 어린 사람들의 특권일 수도 있다. 그러나 특권을 남용하면 안된다.
△정 = 1학년 때 학생회 활동으로 거리 행진도 해봤고 전경이랑 맞서 싸우기도 했다. 하지만 학내 문제 즉 복지·등록금 문제에 대해 싸울 때만큼 절실하게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질 필요는 있지만 과격한 시위에는 반대한다. 요즘 인터넷 추모나 촛불 시위 등 얼마든지 의견을 표출할 수 있는 루트가 많아졌다. 투쟁을 위한 투쟁에는 반대한다.
△홍 = 나는 네티즌도 조심스러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익명성에 휩쓸리기 쉽기 때문이다. 네티즌들이 군중심리를 조장해서 마치 거기에 따르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동조하는 것도 일종의 ‘강요’다.
△오 = 표출하는 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서로 친했던 친구가 정치의식이 맞지 않아 서로 비방하는 대자보를 써놓은 것을 봤다. 정치판과 똑같다. 미국의 학생회는 정말 학생의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다. 학교 재정 투명성을 위해 싸우고 도서관에 뭐가 부족한지 해결했다.
-- 이성 친구는 없었나? 공부와 이성 친구는 서로 어떤 영향을 미쳤나?
△정 = 서로 학교 생활이나 공부에 대해 고민이 생기면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각자 의견도 이야기해서 좋았다.
△오 = 나도 오히려 공부에 도움이 됐다. 더 떳떳해 보이고 싶어서 열심히 했다.
△홍 = 공부와 이성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잠시 만난 친구가 있었지만 공부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서 = 현재 남자 친구와는 서로 존중하는 편이다. 서로 의지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독립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만나는 게 원칙이다.
△강 = 미팅, 소개팅을 많이 해봤지만 오래오래 보던 사람한테 정이 든다. 사람간에는 서로 잘 알고 신뢰가 쌓였을 때 관계가 형성되는 듯하다. 서로 신뢰하는 이성 친구는 공부에 방해될 리가 없다.
●네티즌, 군중심리 강요하는 것도 ‘강요’
-- 대학생활 중 힘든 점은?
△정 = 진로 고민이 가장 컸다. 자연을 연구한다는 길이 험하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고 부모님 반대에도 부딪쳤지만 지금 선택에 후회는 없다.
△강 = 나는 무언가에 잘 빠져든다. 영화, 책, 게임, 공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을 사귈 때가 가장 아팠던 것 같다. 물론 힘든 상황을 겪고 나면 그게 좀더 인생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도움이 된다는 말도 맞는 것 같다.
△서 =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남들처럼 어학연수나 풍족한 교육 환경을 제공받지 못한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그때마다 좋아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잡아야 했다.
△오 = 아직 힘든 적이 없었다. 학교 교문만 봐도 가슴 설렐 정도로 학교 생활이 좋았다. 하고 싶은 공부를 일찍 찾은 게 축복인 것 같다.
-- 후배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홍 = 후배들한테는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말하고 싶다. 좋아하지 않으면 잘 되지도 않는다.
△정 = 동감이다. 좋아하는 일을 해야 자신감도 생긴다.
△강 = 대학 4년 동안 해보고 싶은 것 다 해봤으면 좋겠다.
△서 = ‘세상을 다 가질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내가 뭔가를 해놓고 준비를 끝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나는 아직도 앞이 깜깜하다. 그래도 나는 뭔가에 부딪칠 자신이 있다.
△오 =‘의욕은 능력을 능가한다’는 말이 있다.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한계에 가두지 않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아이큐, 수능 점수에 자신을 가두는데, 나도 한때는 공부를 그렇게 잘하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재주가 덕을 이겨서는 안된다”는 말도 부모님이 늘 하시는 말씀이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유나니 주간조선 기자)
각 대학 수석 졸업자 다섯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수석 졸업자들은 과연 어떻게 대학생활을 했는지, 미래 설계는 어떻게 하고 어떤 가치관을 갖고 살아왔는지 들어보았다. 이날 방담자리에서 서울대 홍성근씨와 연세대 오승연씨는 초등학교 동창생이란 사실을 알고는 깜짝 놀라며 ‘족보’를 확인한 뒤 반가워하는 이색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 왼쪽부터 오승연 정은영 서혜영 홍성근 강성석씨. 오승연시와 홍성근씨는 초등학교 동기동창이었던 사실에 놀라워했다.
●성균관대 인문학부 정재환씨
“교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물론 시험은 제게도 심한 스트레스를 주죠. 시험 기간 중에는 하루 15시간 이상 공부한 적도 있습니다. 시험만 없으면 대학은 천국인데요. 하하.”
성균관대 인문학부 수석 졸업자인 개그맨 겸 MC 정재환(丁在奐ㆍ42)씨. 그는 사학을 전공해서 4.5점 만점에 4.32점을 얻었고 3년 만에 조기 졸업했다. 나이는 42세. 학업성적 우수자 겸 만학도로 ‘대통령상’도 받았다.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9시부터 10시30분까지 CBS FM ‘정재환의 행복을 찾습니다’를 진행하고, SBS TV ‘도전 1000곡’ MC를 맡고 있으며 한글문화연대 부대표로 활동 중이다. 3년 내내 받은 장학금은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돌려주기 위해 학기마다 전액 반납했다. 3년 간 결석은 딱 두 번뿐.
“지방 출장과 리포트 제출 마감이 겹치면 PC방에서 리포트를 전송하기도 했죠. 1년에 한 번씩 B+를 받았는데 1학년 때는 정말 억울해서 잠이 안 오더라고요.”
출석률과 수업태도가 좋다보니 시험 때마다 그의 노트는 ‘모범답안’으로 불리며 학생들 사이에서 복사됐다. 주로 집에서 공부하지만 어쩌다가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면 음료수와 함께 ‘열심히 하세요’라는 메모가 놓여있기도 했단다.
정씨가 대학생활을 하면서 아쉬웠던 것은 동료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 것이다. 자신이 산파역을 맡은 성균관대 한글문화연대 ‘모꼬지(MT)’는 세 번 간 적이 있지만 항상 시간에 쫓겨 학생들과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교수가 꿈이기에 더욱 아쉽다고 한다.
대학원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전공하게 된 정씨의 학부 논문 제목은 ‘조선어학회 사건 발생의 필연성에 관한 고찰’. “대학원에서 식민지 때 일제의 국어말살 정책과 그에 맞섰던 민족지사들의 국어수호 운동을 연구할 계획입니다.”
서울공고 2학년 중퇴 후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한국외국어대 마인(馬印)어과에 합격했다가 군대와 방송출연 문제로 자퇴한 정재환씨는 대학생활과 교수의 꿈을 버리지 않고 2000년 성균관대 사학과에 입학했었다.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 한림대 이혜연씨
유전공학 전공 빠지며 우등생으로 변신
한림대를 전체수석으로 졸업한 이혜연 (22·李慧)씨는 여고시절 때만 해도 공부는 잘 하지 못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성적이 그저 중간급을 약간 상회할 정도였고 책상 앞에 앉는 시간보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과자봉지를 옆에 끼고는 헤드폰을 쓰고 음악감상하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녀는 “고3 때 벼락공부로 어느 정도 성적을 끌어올리기는 했지만 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던 ○○대학 의대를 가기에는 성적이 모자랐다”고 했다. 그랬던 학생이 대학 4년 평균 평점 4.33을 기록했다. 어떻게 이런 변신에 성공한 걸까?
그녀는 2학년에 진학하면서 유전공학과를 선택한 후 학업에 푹 빠져든 전형적인 ‘늦공부파’. “연구실에서 실험하는 게 그렇게 흥미로울 수가 없었어요. 수업이 끝나고 나면 남은 시간 거의 대부분을 실험실에서 보냈죠.”
그녀는 “지난 3년 간의 취미는 실험이었다”고 했다.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면 학과 선택이 대학생활을 얼마만큼 좌지우지하는 건지를 절감하게 된다.
“평소 평범하게 보아왔던 생명체의 신비를 알게 됐고 DNA를 조작하면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가를 시간을 두고 살피는 게 추리소설을 읽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어요.”
때마침 복제양 탄생으로 이 분야에 대한 관심이 전세계적으로 증폭될 때여서 호기심을 해결하느라 분주했었다는 그녀는 173㎝의 큰 키로 건강상태에 대해서도 자신만만했다.
(춘천=김창우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 이화여대 차지은씨
5년 유학비 받은 4년 장학생
이화여대 수석 졸업자 차지은(車知恩ㆍ23)씨는 다른 학교 수석 졸업자들보다 여유있게 미래를 설계하고 있다.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99년 건축학과에 입학한 차씨는 이대에서 파격적으로 마련한 ‘21세기 지도자 장학금’ 수혜자 6명 중 1명.
‘21세기 지도자 장학금’은 학업성적이 뛰어나고 장차 지도자로서 성장할 자질이 엿보이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입학(대학원 석·박사 포함)시 기숙사 제공과 면학장학금을 지급하고 4년 간 등록금 및 수업료를 전액 면제해준다. 그리고 해외 유학을 5년 간 지원해준다. 일단 이대 건축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차씨는 해외 유학을 준비하고 있다. 그녀의 꿈은 교수 겸 건축가.
“1, 2학년 때 유럽 배낭여행 중에 전통있고 개성있는 건물들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특히 스페인에서 제가 좋아하는 가우디의 건축물들을 보고 반했습니다. 한국의 시멘트 건물들과는 전혀 다른 것들이었죠. 앞으로 한국 건축 발전에 일익을 담당하는 학자, 건축가가 되고 싶어요.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학교에도 감사하고요.”
(서일호 주간조선 기자)
●한국과학기술원 박범수씨
“벤처기업에서 이론 검증 후 유학”
“일선 현장에서 이론을 검증하는 시간을 갖고 싶었습니다.”
과학영재의 요람 한국과학기술원(KAIST)을 수석 졸업한 박범수씨는 올 1월 초부터 분당에 있는 ‘위다스’라는 벤처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위다스는 이동통신 중계기를 만드는 회사로 1996년 설립돼 8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건실한 업체다.
박씨는 “일단 회사에서 3~4년 현장경험을 쌓은 뒤 유학을 가 ‘재미있는 공부’에 전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관련 분야에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미국 MIT나 스탠퍼드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연구원이나 대학교수로 일한다는 생각이다.
국내파인 박씨는 해외 유학을 위해 영어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회화 공부를 한 것은 대학 3학년 초. 인터넷을 이용해 영어 뉴스를 꾸준히 들었다. 또 평소 실내에서 영어로 생각하고 밖에 나가선 눈앞에 보이는 것으로 가상 상황을 설정해 혼자 영어로 표현하는 연습을 했다. 덕분에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대전=임도혁 사회부 차장대우)
작년 연말에 우리 회사 영화사업부에서 투자 배급하여 좋은 흥행 성적을 낸 영화의 남자배우, 제작자 등과 술을 한잔 할 기회가 있었다. 극중에서 그 남자배우는 서울대 법대를 나온 벤처사업가 역을 하는데 내 경력에서 힌트를 얻어 남자배우 역을 정하였다고 제작자가 말하곤 했다.
술이 한 순배 돌아가자 남자배우는 “사장님이 법대를 졸업하였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조폭 같습니다”라고 멘트하여 폭소가 터졌다. 옆에 있던 제작자는 “야, 사장님이 그냥 법대만 나오신 것이 아니고 들어갈 때 나올 때 다 수석이야”라고 부연설명하자 남자배우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유를 묻지는 않았지만 내 생긴 것이나 행동이 공부를 그렇게까지 잘 하지는 않았겠지라든가, 그런 사람이 법조계에 계속 있지 왜 여기 있느냐라든가 여러가지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지금은 이래도 20년 전 학교 다닐 때는 얼굴도 굉장히 샤프했었지”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둘러댔고 덕분에 서로 친해졌다.
서울대 수석이라는 것, 나는 정말 잊어버리고 살려고 해도 남들이 수시로 일깨워주는 경우가 많다. 이번 기고도 내 경력 때문일 것이고, 가끔씩 나와 관련된 기사가 나올 때 또는 나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 나를 소개할 때 수석이라는 말로 소개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이 말이 따라와야 내가 제대로 소개되는구나 하는 기분에 씁쓸하기도 하지만, 군 제대 후 13년 간 변호사 생활만 하던 내가 갑자기 영화, 음반, 게임 등 엔터테인먼트업에 뛰어들어 일을 시작한 후에 수석이라는 것은 사업 동료나 파트너가 될 사람들에게 쉽게 믿음과 신뢰를 주는 경력이기도 했다. 그러나 수석이라는 것만이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충분조건은 아닌 것 같다.
사법시험 합격 후 판ㆍ검사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변호사한다고 설치고, 변호사 하면서도 해보지도 않았던 M&A를 한다고 설치고, 이제는 남들이 얘기하는 ‘딴따라’ 사업을 한다고 그 중심부에 들어와 있다. 길지는 않지만 그래도 여러가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면서 사는 동안 힘든 인생을 살아가기 위하여는 여러가지 인성(人性)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논리적 사고에 기초한 분석력과 판단력, 신의와 신뢰감, 남들과 잘 어울리는 친화력, 그리고 위로 올라가 조직을 이끄는 장(長)이 될수록 이에 추가하여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도덕심과 희생정신, 이를 기초로 한 리더십, 미래를 보는 통찰력, 사적인 감정을 배제한 단호한 결단력 등이다. 이런 많은 것들이 합쳐져야 리더로서의 충분조건이 되는 것 같다.
공부를 잘하였다는 것, 더 나아가 수석을 하였다는 것은 분석력과 판단력의 일부에 대하여는 상당한 보증이 될 수 있을지언정 나머지 인성에 관한 보증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내 짧은 경험이지만 학생 때 공부에 많은 투자를 하여 분석력 등을 길렀듯이 나머지 인성도 상당한 투자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키워나가야 한다. 내가 여러가지 경험을 해 보려고 하는 것도 이와 같은 다양한 인성을 개발하기 위한 노력이었고, 항상 과거의 것은 잊고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공부 잘하는 전문가’ 인식 달라져
지난 몇년 간 사회의 기존 권위가 무너지고 대통령 선거, 새 정부의 인선 등을 보면서 반성도 하지만 또한 심한 자괴감이 들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전문가로서 소양을 쌓아 왔던 많은 사람들이 개혁 성향이 부족하다는 등 여러가지 이유로 배척되고 비전문가들로 사회가 구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 슬프기도 하지만 자라나는 우리 자식들에게 그래도 최소한의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권장하는 것이 오히려 두렵기도 하다. 물론 옛날부터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그래도 그런 계층이 있어야 하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사회는 변하고 있으니 변화하는 사회에 맞는 새로운 인성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는 것은 자명하지 않을까.
나는 요즘 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주 고객층인 젊은 세대의 생각을 느껴보고 공감하려고 많은 노력을 한다. 가끔 내 의견이 10·20대와 호흡을 맞추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때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기쁨 중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부족한 것을 다시 배워나가는 좋은 계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병무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 사장/서울대 수석 입학·법대 수석 졸업)
△ 1961생 △ 1980년 서울대 전체 수석 입학 △ 1984년 서울대 법대 수석 졸업 △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 합격(최연소) △ 1988년 연세대 경영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 1989년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석사 △ 1993년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LL.M), 뉴욕주 변호사 △ 1985년 사법연수원 15기 수료 △ 1986~1988년 해군법무관 △ 1989~2000년 김&장법률사무소 변호사 △ 2000~2002년 로커스홀딩스 대표이사 사장 (2002년 4월 로커스홀딩스가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로 개칭) △ 2002년~ 플래너스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 사장(현재)
주경야독으로 3년 만에 조기 수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