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4일.
[송파노인종합복지관] "옛터선생님들의 2013 답사"는,
청풍명월[淸風明月]의 고장, 충청도 제천의 <의림지>와 <청풍문화재단지>입니다.
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그래도 옛터인 <석촌동고분>과 <방이동고분>, <삼전도비>의 역사를 들려주기 위해 애썼던 옛터
선생님들의 답사는, 수고 많이 하셨다는 복지관의 도타운 배려와 위로라는 생각이 들어 모두들 고마워하며 모였습니다.
첫 답사지인 의림지(義林池)는 김제의 벽골제,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오랜 역사를 지닌 대표적인 수리시설입니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11호. 둘레 약 2 Km, 면적 15만 ㎡, 저수량 661만㎥, 수심 8∼13m.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개울물을 막아 처음 둑을 쌓았고, 그로부터 700년 뒤 이곳에 온 현감 박의림(朴義林)이 좀더 견고하게 새로 쌓았다고 하며, 조선 세조 때 정인지(鄭麟趾)가 체찰사로 이곳에 왔다가 3도의 병력 1,500명을 동원하여 대대적으로 공사를 시행했다는 기록 등이 잇달아 보이니 백성들의 생업인 농사를 돕기 위해 팔 걷어부치고 나서던 선인들의 애민사상이 저수지에 가득 찬 푸른 물에 어른대는 것 같았습니다.
바람 잔잔하고 물 맑으니 글자 그대로 명경지수(明鏡止水), 거울같은 물 위에 물 가에 서 있는 버드나무 소나무 그림자 비치니 멋진 풍경 한 폭의 수채화 우리들 눈에 황홀하게 비칩니다.
옆에서 누군가가, " 아, 님과 둘이 와야 하는데 님은 없고 노인네들 뿐이구나 !" 큰 소리가 나와 모두들 웃고 있는데,
나만 혼자 마음 속으로 훗날 사랑하는 님과 둘이 와야지, 삐딱한 다짐 새겨봤 습니다. ^^^
- 부자집 찾아와 목탁 두드리는 탁발승, 못된 부자 거름 한 삽 떠다주고, 미안한 며느리 쌀 한바가지 내밀며 사죄하는데,
스님의 당부 말씀 " 비바람 들이치면 산으로 피신하되 뒤돌아보면 안 된다". 드디어 천둥 번개 번쩍 우르릉 쾅 비바람
몰아치니 산으로 내달리던 며느리 아이들 생각에 뒤돌아보자 그만 몸은 돌로 변하고, 땅 속으로 꺼진 집자리에 빗물
이 몰려들어 큰 웅덩이가 생겼으니 바로 의림지.
전설 그대로 의림지는 사방 천지가 물이지만, 우리를 맞이한 여성 해설사는 물보다 의림지의 풍광과 전설을 이야기하는 데 더 무게를 두는 것같아 속으로 웃었습니다. 오랜 시간 버스를 타고 온 우리들을 배려하여 무거운 역사 쪽보다는 가벼운 스토리텔링 쪽으로 해설하지 않았나 ,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점심은 충청도 양반 동네답게 옛맛 나는 한정식, 자기 그릇에 맛깔나게 담아 내오니 눈과 입과 배가 즐거웠습니다.^^^
버스에 오르니 빗발이 오락가락, 9월의 끝자락이 가을을 재촉합니다.
빗 속 여행길은 추억에 젖는 길, 흘러간 옛 노래를 귓가로 날리며 도착한 곳은 청풍호 위에 있는 < 청풍문화재단지 >.
남한강 상류인 이 일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고구려와 신라의 다툼이 빈번했으며,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크게 발달한 곳입니다.
충주다목적 댐의 건설로 제천시의 청풍면을 중심으로 5개면 61개 부락과 충주시 일부가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1982년 망월산 산기슭 1만 6천평 대지 위에 [청풍문화재단지]를 시공, 선사시대의 고인돌· 선돌 같은 거석문화재와, 민가· 향교· 관아 등을 나누어 복원· 배치했으며, 생활유품 1,600여 점을 옛 풍속대로 전시, 1985년 10월에 조성을 끝마쳤습니다.
청풍문화재단지의 성문은 팔영루, 성문 앞에 서 있는 2명의 수직(守直) 군사는 우리의 인사도 받지 않고 요지부동,
심심한데 시비나 걸어볼까 다가가니 산 사람처럼 차려 입은 마네킹이라, 눈 어두운 내가 오히려 무안합니다. ^^^
성문을 통과, 나지막한 경사를 오르니 네 채의 고가(古家)가 줄지어 나타납니다.
용인민속촌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이 집들은 조선 말기 중부내륙권의 가옥 구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유적들입니다.
울타리와 담장, 대문을 지나 마당에 들어서면 대청과 마루, 부엌에는 부뚜막과 아궁이와 무쇠솥, 부뚜막 위가 따뜻하니짚으로 둥글게 말아 만든 강아지집이 인정 많은 주인을 떠올리게 하고,
방 안에는 이불과 벼개, 옷 걸어드는 활대도 보이고, 마님 행차할 때 타는 가마도 알록달록 멋스럽기 그지 없지만 돌쇠와 마님은 지금 없습니다.^^^
둥구미와 맷방석, 도롱이와 주루막에서부터 오줌장군과 길마, 멍에와 가마니틀까지 없는 게 없습니다.
이 땅에 태어나 오래 살아온 옛터선생님들, 저마다 옛날 물건들을 가리키며 명칭과 용도, 재료와 제작기법, 가격과 당신의 추억도 한데 버므려 해설하기에 바빴습니다. 뒤에 서서 지켜보자니 "제 버릇 누구 못 준다"는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옛집들을 돌아보고 길 따라 걸으니 널따란 잔디밭에 고인돌과 비석이 일열횡대로 줄 지어 서 있습니다.
이 지역에 흩어져 있던 고인돌과 문인석, 수령들의 공덕비 선정비 송덕비들과, 제천향교 경내에 보존하던 공적비 등
50점이 넘는 석물을 모아 놓은 '석물군(石物群)'입니다.
금새라도 석물 안에서 웬 사람 쑥 나타나 보는 사람을 놀래키는 듯, 흐린 날 혼자 올 데는 아닌 듯, 좀 섬뜩합니다.
비석들 앞 쪽에 배치한 5기의 고인돌은 벽이 없으니 남방식, 세 번째고인돌 위에 깊게 파여져 있는 성혈(星穴)은 북두칠성과 북극성, 청동기시대 때 새긴 것인지 훗날의 누군가 새긴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선사문화 이래로 면면히 이어져온 중원문화, 비석 뒤쪽에 "청풍명월(淸風明月)" 네 글자가 선명한 큰 돌기둥을 보니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어울려 살아온 충청도 사람들의 어진 성품이 절로 이해가 됩니다.
내 카페의 주인 이름도 "풍월주인(風月主人)"이니 이래저래 충청도는 내 마음의 고향이라고 우길 수 있습니다. ^^^
석물군을 지나니 세 채의 건물이 나타납니다. 한벽루(寒碧樓)와 응청각(凝淸閣)과 금병헌(錦屛軒).
한벽루(보물 528)는 고려 충숙왕 때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
누각의 아래 기둥이 배흘림 기둥인 게 특이하며, 또한 팔작지붕의 높이가 만만찮은데, 누각 오른쪽에 붙인 계단식 방 때문에 머리룰 숙이지 않고 누각에 오를 수 있는 특이한 구조를 자랑합니다.
누각 저 아래 푸른 강물 유유히 흐르고, 기생이 뜯는 가야금 소리 청아하니 술상을 받은 높은 사람들,
술 한 잔에 시 한수 어찌 절창이 아니겠습니까.
조선시대 문신이었던 주열은 아름다운 한벽루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물밑이 맑아 거울 아닌 거울이요
산 기운 자욱하여 연기 아닌 여기로다.
차고 푸름이 서로 엉키어 한 고을이 되었거늘
맑은 바람은 만고에 전할 이 없네.
그 옆 방 두 칸 짜리 응청각(凝淸閣) 은 객사(客舍),
선비들이 와서 유숙하던 곳으로 퇴계 이황도 이웃 단양군수 시절 이 곳에 와서 묵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금병헌(錦屛軒) 앞 마당에는 지금 청풍부사가 형틀 옆에 죄인을 묶어 놓고 여차하면 곤장을 내려칠 기세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죄 없는 춘향이도 곤장 10대를 맞았는데, 하물며 사내인 네가 곤장을 피하겠느냐, 이실직고하렸다 !!!
부사의 추궁 서릿발같아 가까이서 보는 우리들도 속이 움찔, 겁이 납니다.
그러나 여기도 마네킹, 안도의 가슴을 쓸어내린 선생님 세 분, 우산 편 채 기념사진 한 장 찍어 달라고 청 (請)을 냅니다.
금병헌 옆으로 난 산길을 오르면 망월산성,
망월산(336m) 봉우리의 꼭대기를 깎고 둘레에 성벽을 쌓은 전형적인 테뫼식 산성,
삼국시대의 이 산성은 성벽을 새로 복원했는데 둘레는 495m. 성의 규모는 작지만 성으로 오르는 길는 제법 가파릅니다.
그래도 올림픽공원의 망월봉과 이름이 같아 친근감을 느끼는데, 길목에 소나무 두 그루가 붙어 있는 사랑나무 연리지(連理枝)도 똑 같으니 인연은 두 배, 올림픽공원과 자매결연을 맺어야 할 것 같습니다. ^^^
망월루에 올라 청풍호 물길과 호반이 갈라 놓은 푸른 산들을 바라봅니다.
절경 (絕景)입니다 !
햇빛 받아 흰 비단 펼친 듯, 거울에 비친 산과 나무와 집들.
현대식 청풍대교도 나무다리인 양 호수와 산과 어울려 자연으로 녹아 물 위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몇 천년 몇 만년 유유히 흐르는 저 강물, 우리들의 삶은 짧아 한 순간이니 부질 없고.
산을 내려가다 만난 복지관 젊은 선생님, 우리들의 안전 답사를 위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연리지 사진 찍은 게 있으면
문자로 보내 달라고 전화번호 적어줍니다. 영원한 사랑 약속하는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 갖고 싶은가 봅니다.^^^
하늘에서 만나면 비익조(比翼鳥)가 되고/ 이승에서 만나면 연리지(連理枝) 되기 원하네
올림픽공원의 연리지는 팽나무와 모과나무의 결합,
전혀 종이 다른 나무지만 한 몸으로 붙어 있으니 일심동체, 마음도 하나겠지요,
부모와 자식간의 혈연, 같은 곳에 사는 지연, 그리고 옛터를 지키는 인연의 끈도 심상치 않은 것이니 짧은 생이지만,
연리지처럼 청풍호를 함께 내려다보는 옛터선생님들이 오늘 따라 더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 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