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절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는 새 언약의 중보이십니다. 그 전에는 대제사장 외에는 아무도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아빠 아버지를’
부르며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한 식구 된 것은 정말 기쁘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그 때부터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생깁니다.
어이가 없는 그 사랑을 받고 측량할 수 없는 그 영광을 보고 나면
이 분이 참으로 대단한 분이구나. 친하긴 친한 분이지만 이 분이 만만히
볼 분이 아니구나 하고 이분을 나의 평생 주로 섬겨야 되겠구나 영원한
구주로 섬겨야 되겠구나 이 분이 시키는 대로 해야겠다는 결의가 섭니다.
이건 성도가 주님께 복종할 수 있는 사랑의 법으로 나타나는 겁니다.
율법으로 ‘너 내게 안 오면 죽어’ 하면 벌벌 떨기는 할 겁니다. 그러다가
삶에 지쳐 약아 오르면 그만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내 뱉고 맙니다.
그래서 인간은 기분이 나쁘면 천당도 안 간다고 말을 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 분의 사랑에 걸리면 ‘주님 저는 망해도 좋습니다. 주님이 나를
버리지 않으시는 이 하나만으로 저는 만족합니다’ 하게 됩니다. 다윗을 보세요.
사울 왕으로 피해 블레셋 가드의 아기스 왕에게 피난 가 있다가 정체가
탄로가 나니 그의 앞에 미친 척하고 침을 질질 흘리고 살아나서는
‘내가 하나님을 찬양하오니’ 하고 나옵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신뢰가 확고한 믿음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육체 밖에 흔들지 못합니다.
서부 활극을 보면 악당이 0.3초에 총을 빼든지 0.2초에 빼든지
그 악당의 무리가 30명이든지 40명이든지 주인공은 끝까지 안 죽습니다.
끝까지 안 죽고 살아남아 다 처리하고 모자 툭툭 털고 말 타고 휘잉하고
유유히 어디론가 달려갑니다. 세상에 악당이 아무리 강해도 최후 승리는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와 같은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음을 믿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죄를 속하느냐면 첫 언약 곧 율법에 대해 범한
죄와 양심을 깨끗하게 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도록 합니다. 그 다음에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하십니다. 그래서 지금도
중보가 되시는 겁니다. 중보의 첫째 목적은 양심을 깨끗하게 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고, 두 번째는 영원한 기업의 상속자가 되게 하기 위해서
지금도 중보를 서고 계십니다(히7:25) 이 사실이 믿어져야만 합니다.
16-17절 “유언은 유언한 자가 죽어야 되나니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유효한즉 유언한 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효력이 없느니라”
유언은 당연히 유언한 자가 죽어야 효력이 발생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후에 비로소 새 언약이
발효가 됩니다. 이를 그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께서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며 다락방강화인 요14-16장의 말씀을 항상
깊이 생각하고 지켜야합니다. 예수님의 증거이며 유언이며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사시고 승천하신 다음 보내신 진리의 성령이기 때문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18절 "이러므로 첫 언약도 피 없이 세운 것이 아니니"
첫 언약도 피가 필요합니다. 피는 속죄의 의미가 있고 서약의 의미도 있고
생명의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아브라함은 짐승을 쪼개 놓고 피로서
맹세했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잠을 재우시고 하나님께서 혼자 지나 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잔을 받으라’ 하시고 이 잔은 죄 사함의 피라고 하지
않으시고 언약의 잔이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너하고 나하고 한 생명이
된다는 약속의 잔이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잔, 생명의 잔이라고 합니다.
피는 죄 사함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 사함도 있지만 그 피와 하나가 됨으로
주님과 내가 하나가 됐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영과 우리의 영이 섞여버렸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 없다 하십니다.
아무도 나눌 자가 없느니라 하십니다. 이것이 무서운 약속이십니다.
그래서 ‘남자가 부모를 떠나 여자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룰지니 하나님이
짝지어준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찌니라’(마19:5) 이건 부부관계만 말하는 게 아닙니다.
주님과 우리의 관계도 말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아무도 끊을 수 없습니다(롬8:39)
19-20절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송아지와 염소의
피와 및 물과 붉은 양털과 우슬초를 취하여 그 두루마리와 온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고”
송아지 염소 물 붉은 양털 우슬초 이런 것을 쪼갠다고 우리에게 생명의
역사가 있는 것 아닙니다. 성경은 중심사상이 있고 주변사상이 있습니다.
중심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그 생명이 우리 속에 점점 차올라야
사랑이 되고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어 가는 겁니다. 주변사상만 붙들고
‘이렇게 섬겨야 된다’는 식으로 가르치면 우리의 구원이 완성이 안 됩니다.
그것은 나무를 잡아주기 위한 삼각대 역할밖에 못합니다. 교묘하게 말을 많이
한다고 해서 우리의 구원이 진보가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송아지 피가 뭐냐 염소 피가 뭐냐 물이 뭐냐 이건 무시합시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은 끝이 납니다. 성경을 간단하게 봐야지
한 줄 읽어 놓고 설교를 한 시간 한들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무 소용없습니다.
사람들 호기심만 높여주고 아무 필요 없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살아계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내게 있다는 겁니다. 그게 중요한 펙트입니다.
21-22절 “또한 이와 같이 피를 장막과 섬기는 일에 쓰는 모든 그릇에
뿌렸느니라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이 말은 피 흘림이 없이는 성취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죽은 행실을 깨끗하게 하는 효력이든 양심상 깨끗하게 하는 효력이든 피가 없으면
안 되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므로 구원이 완성이
되는데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 접근을 못하기 때문에 죄 사함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 흘림으로 대속을
입어서(벧전1:19) 진리를 순종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단계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강력한 표백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피가 맘속에 큰 증거 됩니다.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하고 찬송합니다. 그 피가 증거가 되기 때문에
내 양심을 그 강력한 세척제로 표백하십니다. 그러므로 ‘내 기도 소리 들으사
다 허락하소서‘ 하고 요구할 수 있다는 겁니다. ’내가 주께로 지금 가오니
예수님의 보혈로 날 씻어주소서’ 주님께 나아갈 때마다 그 피는 효력을 발휘합니다.
그리스도의 피로서 이미 다 씻어놨습니다. 따라서 진리를 따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반드시 아버지께서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주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