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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상구ㆍ김범우… 그들을 만나러 간다 |
코스모스 꽃길 중도방죽 철다리-벌교역-돌담교회 태백산맥 무대 한자리에 산과 들ㆍ길ㆍ건물 그대로 |
입력시간 : 2012. 08.31. 00:00 |
벌교천을 가로지르는 철다리(鐵橋)다. 1930년 경전선 철도가 깔리면서 놓였다. 1970년대까지 횡갯다리(홍교), 소화다리(부용교)와 함께 벌교포구의 양쪽 기슭을 연결시켜 주었다.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적으로 부각시켜 주었던 그 다리다.
소설에서 염상구는 깡패 왕초인 땅벌의 제의를 받아들여 희한한 결투를 벌인다. 장터거리 주먹패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둘은 이 철다리의 가운데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를 겨룬다. 이 담력 시합에서 지는 자가 영원히 벌교바닥을 뜨기로 한 것이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은 우리 민족의 애환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분단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배경이 벌교포구였다. 때는 여순사건이 일어났던 1948년부터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까지다.
이 소설에서 염상구는 약한 것 같으면서도 선하다. 잔인한 듯 하지만 인정 많은 인물로 묘사됐다. 미워할 수 없는 인간적인 인물이었다.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 가운데 독자들의 인기도 가장 많이 받았다.
<태백산맥>이 영화로 만들어질 때도 서로 염상구 역을 맡으려고 했다는 말도 전해진다.
소설에는 철다리 외에도 많은 배경이 나왔다. 현부자네집은 소설을 전개해가는 중심무대였다. 소화다리와 횡갯다리, 김범우의집, 중도방죽, 남도여관, 진트재, 소화의집, 회정리교회, 금융조합도 등장한다. 율어해방구도 만들어진다.
소설 속의 무대가 벌교에 다 있다. 소설의 주요 공간이 벌교였기 때문이다. 벌교의 역사가 소설을 낳은 셈이다. 이 소설 속의 생생한 무대와 현장이 지금은 훌륭한 문화관광자원이 됐다.
<태백산맥>의 무대 보성 벌교로 간다. 소설의 배경무대를 더듬어 보기 위해서다. 중도방죽에 먼저 섰다. 이번에는 일반적인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을 거슬러간다.
중도방죽은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가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쌓았다. 하판석 영감도 등골이 휠 정도로 지게에 돌을 져 날랐다. 방죽 명칭에 일본인 지주의 이름(中島ㆍ나카시마)이 붙어있는 건 이런 연유다.
지금은 산책로가 잘 정비돼 있다. 길섶으로 황화코스모스도 예쁘게 피었다. 명품 꽃길이다. 방죽은 꽃길와 갈대 가득한 갯골을 따라 철다리로 이어진다. 염상구가 담력을 과시했던 그 철교다. 발걸음을 철길로 옮겨 염상구 흉내를 내본다. 벌교역을 출발한 기차가 저만치서 오는 모습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철다리에서 도로를 따라 벌교역으로 간다. 벌교오일장 앞으로 좌판이 즐비하다. 여자만에서 건져올린 갯것에서부터 상추, 깻잎 등 남새까지 다 모여 있다. 벌교특산 꼬막도 빠지지 않았다.벌교역은 염상구의 형 염상진의 목이 내걸렸던 곳이다. 염상구가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라고 절규하며 여기서 형의 시신을 거뒀다. 길은 읍내 중심가로 접어든다. 벌교초등학교 정문 옆으로 남도여관이 자리하고 있다. 판자벽에 함석지붕이 전형적인 일본식이다. 당시 보성여관으로, 토벌대의 숙소로 쓰였다. 최근 말끔히 단장하고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앞으로는 숙박공간으로도 쓸 예정이다. 다른 용도로 바뀌지 않고 옛 모습 그대로여서 더 반갑다.
염상진과 염상구, 김범우 등 소설 속 인물들의 인명판도 곳곳에 서 있다. 길거리도 부러 꾸며놓은 드라마 세트장 같다.
벌교의 본정통에 있는 금융조합과 자애병원을 거쳐 닿은 곳은 횡갯다리.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다. 빨치산이 주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다리 중간에 쌀을 놔두고 심리전의 공간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현존하는 아치형 석교 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워서다.이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뗏목다리를 건넜다. 벌교(筏橋)란 지명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다리 건너 김범우의집도 고택 그대로다. 어른 키보다도 훨씬 더 높은 담장이 위압적이다. 당시 떵떵거리며 살았던 지주의 행태를 보는 것 같다.
갯바닥에 시체가 질펀하게 널렸다는 소화다리와 서민영이 야학을 열었던 회정리 돌담교회에서도 소설 속의 모습이 그려진다.
소설 속에 나왔던 지명과 공간이 그대로여서 흥미진진하다. 소설의 대목을 떠올리며 하나하나 훑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소설 속을 여행하는 것 같다. 소설 속 주인공도 직접 만나는 것 같다.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은 현부자네집에서 마무리된다. 소설의 문을 여는 첫 장면에 등장했던 현부자네집은 소화와 정하섭의 애틋한 사랑의 보금자리다.
한옥 틀에다 일본식을 더한 겉모습이 색다르다. 마루에 올라서니 중도 들녘이 내려다보인다. 이 집의 담장을 끼고 제석산으로 오르는 길도 '조정래등산길'로 이름 붙여 놓았다.
산과 들, 길과 건물에 하나같이 소설 속의 이야기가 스며있다. 분위기도 고스란히 묻어난다. 염상구와 염상진, 김범우, 서민영, 외서댁, 소화, 정하섭의 꿈과 절망, 사랑, 투쟁, 죽음도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태백산맥>을 읽을 때의 감동도 다시 한 번 살아난다. 벌교로 향하는 발길이 늘 설레는 이유다. 여행전문 시민기자ㆍ전남도 대변인실
가는 길
'태백산맥 문학기행길'은 일반적으로 태백산맥문학관에서 시작해 현부자네집, 회정리교회, 소화다리, 김범우의집, 홍교, 자애병원, 부용산공원, 금융조합, 남도여관(옛 보성여관), 벌교역, 철다리, 중도방죽, 진트재로 이어진다. 총길이 8㎞로 걸어서 3∼4시간 걸린다. 소설의 주무대가 된 벌교에 가려면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에서 광주제2순환도로-화순-(29번국도)보성읍을 거쳐 2번국도를 타야 한다. 소설 속 무대는 벌교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태백산맥문학관만 입장료(성인 2000원, 어린이 1000원)를 받는다.
먹을 것
벌교에서 꼬막을 빼놓을 수 없다. 수산물 지리적표시 제1호로 등재돼 있다. 꼬막은 소설 속에도 언급돼 있다. 무당 월녀가 딸 소화의 감칠맛 나는 꼬막무침 솜씨를 보고 "워메, 내 새끼 꼬막 무치는 솜씨 잠 보소"하며 무당의 딸임을 한탄한다. 맛이 간간하고, 졸깃졸깃하고, 알큰하기도 하고, 배릿하기도 해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벌교읍내에서 태백산맥(☎857-8700), 고려회관(☎858-2959), 거시기꼬막식당(☎858-2255), 보성특미관(☎852-4545), 궁정통한정식(☎857-7028)이 소문나 있다.
묵을 곳
벌교엔 모텔급 숙박시설이 많다. 궁전모텔(☎858-5252), 그랜드모텔(☎858-5050)이 깔끔하다. 보성의 골망태펜션(☎852-1966), 보향다원민박(☎852-0626), 회천의 봇재다원펜션(☎853-1117), 꽃뜰펜션(☎852-9633)도 괜찮다. 보성녹차리조트(☎852-2600)와 보성다비치콘도(☎850-1111)도 있다.
가볼 곳
현부자네집 앞에 태백산맥문학관 있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정하섭이 무당 소화를 만나기 위해 길을 가던 그 지점, 제석산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는 작가 조정래의 육필원고, 취재수첩, 만년필 등 소장품과 소설 속 이야기 등 모두 144건, 623점이 전시돼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문학기념관이다. 전시관 밖의 옹석벽화도 볼거리다. 매주 월요일은 쉰다. 보성차밭과 율포해변, 대원사와 티벳박물관, 주암호 그리고 강골마을과 제암산휴양림도 들러볼만 하다. 순천만도 가깝다.
문의 태백산맥문학관(☎858-29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