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구절(句節)을 읽는데 어디서 이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집사는 두 무릎을 꿇고 기도(祈禱)를 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성물(聖物)을
제가 할 수 있도록 허락(許諾)하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성경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 소리를 담임(擔任) 목사(牧師)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집사에게 다가가 그의 믿음을 칭찬(稱讚)을 했습니다.
“걱정 말게 자네의 기도(祈禱)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應答) 하실 것을 나는 믿네!
이 젊은 집사(執事)는 기도(祈禱)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交通事故)를 당했습니다.
순식간(瞬息間)에 일어난 일이라 어찌 할 줄 몰랐습니다.
그 집사는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응급(應急)치료(治療)를 받았는데 다리가 불어지고
중상(重傷)이 되었습니다.
이 젊은 집사는 일 년을 병원(病院)에서
치료(治療)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루는 보험회사(保險會社)에서 보상(報償) 관계(關係)로
찾아 왔습니다.
보험회사(保險會社)에서 오(五)천만(千萬)원의
보험료(保險料)가 나오고 피해(被害) 운전자(運轉者가
어느 회사(會社)의 사장(社長) 운전자(運轉者)라고 해서
위로(慰勞)금으로
삼천만(三千萬)원을 보내 왔습니다.
당시의 금액은 대단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글 조 처음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눅11:10)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惡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子息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律法)이요
선지자(先知者)니라(마 7:7-12)
우리는 매일(每日) 같이 교회(敎會)에 출석(出席)해서
기도(祈禱)를 합니다.
기도(祈禱)의 제목(題目)을 놓고 기도(祈禱) 할 때도 있고
무엇을 응답(應答)을 받기 위해 교회(敎會)에서
무슨 목표(目標)를 정해 놓고 전체(全體)성도(聖徒)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작정(作定)을 해서
기도(祈禱)를 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려고 기도(祈禱) 하는 것은
모두가 우리의 욕심(慾心)을 채우기 위하여 하는 기도(祈禱)가
주종(主從)을 이루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의 뜻과 마음은 모두 동일(同一)합니다.
내 주위(周圍)의 모든 것과
내 가정(家庭)의 안위(安慰)를 위하는 것과
나와 상관(相觀)되는 모든 것을 구하기 위하여
기도(祈禱)를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하나를 따지고 보면 모두가
이 세상에서 편하고 아무 탈이 없이
나만이 잘 살기위하여 구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나도 그랬습니다.
아프며 어느 권사(勸士)님께 내가 아프니
위하여 주님께 증보(增補)기도(祈禱)를 해 달라고
하는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敎會)건축(建築)을 하기 위하여
교회(敎會)재정(財政)이 모자라서
모두 새벽에 교회에 나와서 합심(合心)을 해서
기도(祈禱)를 합니다.
물론 교회(敎會)재정(財政)이 모자라니까?
교회재정(敎會財政)을 채워 달라고 하는
기도(祈禱) 일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生角) 할 때에는 주님의 일이니까
주님께서 알아서 기도의 응답(應答)을 주실 줄 알았는데
세월(歲月)이 가도 그 기도(祈禱)에 대한 응답(應答)은
전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모르고 그냥 모른 체하고 지나치는 것이 아니라
기도(祈禱) 하는 그들이 수중(手中)에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주의 사업(事業)을 위하여
인색(吝嗇)하게 내 놓지 않으려고 하니
응답(應答)을 안 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난하다고 늘 말하는데 실제(實際)의 상황(狀況)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돈을 헌금(獻金)을 해도 될 터인데
자기(自己)수중(手中)의 돈은 한 푼도 내 놓지 않고
어디서 공돈이 들어오지 않는가 하면서
그 일들을 기도로 보충(補充)을 하려고 하면
그 기도(祈禱)는 절대로 응답(應答)을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도는 간구이고 응답(應答)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祝福)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世上)을 살면서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구할 것이 있고
터무니없이 구하면 우리의 신앙(信仰)도 쇠퇴(衰退)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복도 차버릴 수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는 무조건하고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성경에는 구하라고 했는데 왜? 구하면 안 되느냐? 고 하겠지만
그렇게 구하는 자체(自體)가 욕심(慾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고도 믿음을 굳게 세우고
모든 일들을 주님께 맡기면 주께서 알아서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을 해결(解決)해 주실 것을 믿고
감사와 함께 주의 영광(榮光)만 들어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을 자못 키우면 신앙(信仰)에 기복(忌服)이 생기고
미신(迷信)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안 되는 것입니다.
대구 어느 교회에서 건축을 했습니다.
지하실을 넣었는데 건축비(建築費)가 모자라
교회(敎會)의 건축(建築)이 중단(中斷)이 되었습니다.
그 교회의 담임(擔任)목사(牧師)와
전 제직(諸職)을 비릇하여
전 교회(敎會)의 성도(聖徒)들이 총동원(總動員)하여
어느 성도(聖徒)는 몸으로 일을 해서
主의 殿을 짓기 위하여 獻身을 했고
어느 집사(執事)와 장로(長老)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집을 팔아 교회(敎會)를 건축(建築)하는
건축비(建築費)로 헌금(獻金)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가난한 집사님 한분은
정말 가난하고 돈이 없어서 헌금(獻金)을 한 푼도 못했습니다.
젊은 집사님은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목사님 보기가 민망스럽고 제직회의 때도
아무 말도 못하고 뒷전에 앉아서 회의(會議) 하는 광경(光景)만
구경만 하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이래저래 완공이 되었는데
성물(聖物)을 작만(作滿) 할 돈이 없었습니다.
이 젊은 집사는 기도를 하면서 마태복음 7장을 읽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이 구절(句節)을 읽는데 어디서 이 말씀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 집사는 두 무릎을 꿇고 기도(祈禱)를 했습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이 성물(聖物)을
제가 할 수 있도록 허락(許諾)하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성경 구절을 읽었습니다.
그 소리를 담임(擔任) 목사(牧師)가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젊은 집사에게 다가가 그의 믿음을 칭찬(稱讚)을 했습니다.
“걱정 말게 자네의 기도(祈禱)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應答) 하실 것을 나는 믿네!
이 젊은 집사(執事)는 기도(祈禱)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交通事故)를 당했습니다.
순식간(瞬息間)에 일어난 일이라 어찌 할 줄 몰랐습니다.
그 집사는 구급차에 실려서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응급(應急)치료(治療)를 받았는데 다리가 불어지고
중상(重傷)이 되었습니다.
이 젊은 집사는 일 년을 병원(病院)에서
치료(治療)를 받아야 했습니다.
하루는 보험회사(保險會社)에서 보상(報償) 관계(關係)로
찾아 왔습니다.
보험회사(保險會社)에서 오(五)천만(千萬)원의
보험료(保險料)가 나오고 피해(被害) 운전자(運轉者가
어느 회사(會社)의 사장(社長) 운전자(運轉者)라고 해서
위로(慰勞)금으로
삼천만(三千萬)원을 보내 왔습니다.
당시의 금액은 대단했습니다.
金額이 모두 합쳐져서 팔천만원이 되었습니다.
이 점은 집사는 이 팔천만원을
모두 교회건축헌금(敎會建築獻金)울했습니다.
그리고 그 집사(執事)를 치어 사고(事故)를 낸 그 회사(會社)에서
그의 굳센 믿음과 깊은 신앙(信仰)을 알고
그 집사(執事)를 특채(特採)를 했습니다.
교회(敎會)는 그 팔천만원을 들여 피아노를 비롯하여
성물(聖物) 일체(一體)를 장만을 했습니다.
주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마음의 중심(中心)을 보시고 계십니다.
진심(眞心)으로 구 하십시오 반드시 응답(應答)이 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