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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외모성형'과 '학력성형' |
한때였다.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활약하던 연예인이 과거에 성형 수술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당장 방송에서 퇴출해야 한다’면서 험악한 여론이 들끓었던 때가 있었다. ‘속았다’는 기분에 ‘몹시 불쾌’해진 시청자의 감정이 이유였다. ‘나도 수술 받고 저렇게 몸 다 뜯어고치면 연예인 할 수 있겠네!’ 하는 사람들의 억울한 심정을 달래느라 실제로 몇몇 연예인은 잠시 동안 방송에서 자취를 감추기도 했었다. 먼 옛날 딴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는 동네가 그랬다.
그런데 요즘 분위기는 어떤가. 연예인이 방송의 오락 토크쇼에 나와서 혹은 연예담당 기자에게 “저 요기조기 성형 수술 한 거거든요.”라고 쿨-하게 ‘선빵’ 날려놓고 활동 시작하면 ‘솔직하다’는 찬사를 듣는다. 덕분에 ‘못 생겼다고 자기 탓만 하다가 주눅 들어 살 바에는 차라리’ 또는 ‘예뻐지겠다고 돈까지 써 가며 지 얼굴에 칼 대면서 노력한 건데’ 하면서 ‘거짓말 한 것도 아니고’ 대체 뭐가 문제냐는 시선도 만만치 않게 늘었다. 이제는 이런 ‘선빵 고백’이 연예인들 사이에서 하나의 유행이 되어 있다.
그뿐 아니다. 성형 수술은 ‘외모로 뜨고 지는’ 연예인만의 이슈가 아니다. 그것은 ‘예뻐지고자 하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사회적 욕망이 되었다. 해서 누구나 안다. 외모가 곧 권력이라는 것. 젊은 엄마들이 자기 아이 칭찬해 줄 때 가장 기뻐하는 말이 “어머, 너무 예쁘다!”란다. 신중한 사람은 옆집 아이 보고 솔직히 안 예쁘게 보였을 때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한다. “야, 공부 잘할 것 같이 생겼네.” 괜히 예쁘다고 해 봐야 가뜩이나 엄마도 내 아이를 언제 성형시켜야 하나 고민 중인데 기분만 잡칠 수 있기 때문이다.
신정아 씨의 학력 위조 파문이 ‘충격적인 뉴스’로 보도되었을 때, 이어 신문 방송이 유명 인사들의 ‘학력위조 커밍아웃’을 자세하게 다루었을 때, 나는 연예인들의 성형 수술 ‘선빵 고백’과 이제는 모두가 성형 수술을 적극적으로 욕망하고 희망하게 된 우리 사회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모든 대학교가 ‘학력’을 돈 받고 팔기만 한다면, 그 학력이 너무 필요한 사람이면 언제든 구입해서 ‘학력 성형’을 한 다음 적당한 때에 ‘선빵 고백’을 하면 모두 끄덕끄덕 수용하는 건 안 되는 걸까 싶었기 때문이다.
신정아 씨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내 관심은 ‘그의 큐레이터 실력과 안목이 어느 정도일까?’ 하는 점이었다. 주변의 미술 작가나 기자에게 물어보니 극과 극으로 의견이 반반 갈렸다. ‘아주 형편없다’가 반, ‘있는 편이다’가 반. 만약 신정아 씨의 실력이 정말 형편이 없는데도 학력이라는 간판으로 승승장구한 것이라면, 욕먹어야 할 대상은 신정아 씨 개인보다는 그 미술 동네가 먼저여야 할 것 같다. 반대로 신정아 씨가 실력이 있었던 거라면 나는 그의 ‘학력 성형’과 미술 동네를 덤덤하게 볼 것 같다.
연이어 ‘학력 성형’을 ‘선빵 고백’한 사람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다. 만화가 이현세 씨. 그가 그 ‘학력’이 없었다고 ‘공포의 외인구단’을 탄생시킨 그 이현세 씨가 못 되었을까. 라디오 방송의 영어 프로그램으로 인기가 높았던 이지영 씨. 그가 그 ‘학력’이 없었다고 수많은 영어 강사들에게 “이지영 만큼 하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의 그 이지영 씨가 못 들었을까. 나는 도리어 교육을 통해 이현세 씨와 이지영 씨의 실력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그 ‘학력’의 맹신이 진짜 문제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 ‘학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논문 성형’이 그 ‘학력’을 뛰어넘는 실력을 가진 사람이 ‘학력 성형’을 하는 것보다, 과연 덜 나쁜 것이고 사회에 끼치는 해악도 덜한 것일까. 나는 ‘학력’은 가지고 있으나 실력이 형편없거나 실력 발휘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문제라고 믿는 편이다. 그럼에도 그 ‘학력’ 하나로 더 많은 보수를 받고 명예를 누린다면 나는 ‘속았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나처럼 ‘몹시 불쾌’해진 누군가가 당장 그런 사람을 퇴출시키자고 선동하면 난 따라할 것 같다.
특히 이지영 씨의 ‘학력 성형’에 대한 ‘선빵 고백’은 가뜩이나 영어 광기에 사로잡힌 이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무척 많아 보였다. 그는 영국 어느 대학의 학․석사 학위를 내세웠던 모양인데, 그의 ‘진짜’ 학력은 국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영국에서 랭귀지 학원과 기술전문학교에서 각 1년씩 수학한 것이 전부라고 한다. 내 어릿 짐작으로는 이지영 씨보다 영어 회화와 영어 교육을 훨씬 못하는 ‘영어’ 관련 학력 소지자가 무지 많을 것이다. 누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판단하는 게 옳은 걸까.
이지영 씨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병을 잘 고친다고 해서 의대도 안 나온 사람이 환자를 치료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난 이 말에 자꾸 딴지를 걸고 싶어진다. 의대를 안 나와도 병을 잘 고치는 실력이 있다면 그 사람도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어떤 길을 터주는 것이 사람 저마다 갖고 있는 어떤 ‘실력’을 낭비하지 않는 좋은 사회라고 믿기 때문이다. ‘학력’이 과연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보증하는지 난 믿지 않는다. 물론 ‘거짓말’이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는 분명하다.
내 맘대로 결론을 내리면 이렇다. “신정아 씨, 그 ‘학력 성형’ 그냥 빨리 ‘선빵 고백’ 하시지 그랬어요?” 하는 기분. “이현세 씨, 이지영 씨. 이미 ‘선빵 고백’ 하셨으니 훌훌 털고 그냥 지금처럼 계속 잘 나가세요!” 하는 심정. 이런 ‘학력 성형’에 대해 우리 사회가 보여 주는 반응은 연예인들의 ‘선빵 고백’ 유행과 그것에 박수를 보내고 너도나도 성형을 욕망하는 우리 사회의 또 다른 자화상과 비교했을 때 참 저질이고 후진적이다. 모든 입사 원서에서 ‘학력’이 사라질 때가 곧 올 텐데, 그냥 한때의 해프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