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 문화에는 소리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 하는 고민이 배어 있어요. 옛사람들은 뒤란에 대나무를 심곤 했는데, 장독대에 갈 때마다 그 소리를 들었겠죠. 제가 어릴 때 살았던 한옥 마당에는 사철 푸른 활엽수가 있었는데 그 위에 눈 내리던 소리가 기억납니다."
한옥의 열린 구조는 동네 소리를 끌어안는 그릇이기도 했다. 바람과 새 소리뿐 아니라 행인의 발소리, 이웃의 말소리도 문을 넘어 들어왔다. 서울 통의동 한옥촌에서 갤러리 류가헌을 운영하는 박미경 관장에겐 옆집 할머니의 발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이 일과 중 하나다.
"주로 슬리퍼를 신고 다니셔서 잘 구별할 수 있어요. 몸 상태가 괜찮으실 땐 발소리가 톡, 톡, 끊어지는데 발소리가 치익, 치익 끌릴 때는 걱정이 되죠. 혼자 사시거든요."
어떤 집은 사람들이 소리로 주변을 헤아릴 수 있게 만든다. 들을 수 있는 아량을 넓힌다.
유걸 건축가는 여름철 창문을 활짝 열어 집 앞에서 노는 아이들 소리를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 소리가 우리 삶에 얼마나 활력소가 되는데요. 일상에 꼭 필요한 풍요로운 소리죠."
할머니의 슬리퍼 소리,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담긴 집에 사는 사람이 자신의 삶을 오로지 자신만의 것이라고 생각할까. 자신도 언젠가 저렇게 나이 들 것이고, 저렇게 사랑스러웠음을 늘 상기하게 된다면 이기심도 욕심도 조금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주변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일은 자연의 소리를 듣는 일만큼이나 자신을 세상 속에 풀어내는 행위다.
도시에서 태어난 소리, 내몰리는 소리
재정비를 앞둔 도시의 오래된 주거 지역들이 아쉬운 까닭 중 하나도 소리다. 다닥다닥 붙은 다가구주택 사이에 얼마나 많은 소리들이 살고 있는지 머물러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막 미운 다섯 살에 접어든 옆집 아이 떼쓰는 소리가 들리면 사는 게 누구에게나 고통이겠거니 싶다. 앞집 할아버지 기침 소리가 조용한 날엔 방에 불이 켜졌는지 살피게 된다.
달그락달그락 할머니의 손수레 소리에 비로소 폐지와 고물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삶에 대해 기억하고, 건넌방 가수 지망생 청년의 기타 소리에 잠을 청할 수도 있다. 창가에서 중국집 배달원의 오토바이 소리를 기다리고, 친구를 부르는 아이들 목소리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단연 재미있는 소리는 행상 소리다. '고수'들의 소리는 독특한 리듬과 음색, 멜로디가 있어서 따라 흥얼거리게 된다. 함성호 건축가는 '초짜'와 '고수'의 소리를 이렇게 구분한다.
"초짜는 발음이 정확해요. 계란이면 계란, 고등어면 고등어, 파는 물건의 이름을 또박또박 읊죠. 하지만 고수들의 소리는 거의 판소리에요. 발음은 불분명하고, 문자가 아닌 음향으로 들립니다. 물건이 아니라 자신이 왔다는 걸 알리는 거겠죠."
그 기준으로 행상 소리를 수집해 봤다. 우선 초짜의 소리. "서두르세요. 맛있는 영광 굴비 한 두름, 스무 마리를 만 원, 만 원에 파격 세일합니다.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이 맛을 경험하실 수 있겠습니까." 책 읽는 톤으로 반복하는데 서둘 마음이 안 생긴다. 굴비가 과연 영광산일지도 의심스럽다.
반면 고수의 소리. "허언옷, 허언옷, 가방, 커텐, (웅얼웅얼), 가아전제품 삽니다. 냉장고, 세탁기, 컴퓨우터 삽니다." 단어마다 일정한 흐름과 강약이 있다. '헌옷'을 두 번 길게 끌어준 후 '가방'은 경쾌하게 스타카토로 끊어준다. 안 들리는 단어가 있어서 오히려 귀를 더 쫑긋 세우게 만든다.
'가전제품'을 언급한 후에는 품목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센스를 발휘한다. 팔 물건이 없어도 언젠가부터 그 소리의 방문을 기다리게 됐다.
그런데 특별할 것 없는 이 소리들, 생활에서 우러나온 이 소리들이 아파트로만 가면 왜 천덕꾸러기가 되는 것일까. 그것은 공간의 문제일까, 사람의 문제일까.
유걸 건축가는 "일상적 소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가 사라진 것 같다"고 말한다. 소리를 소음으로 인식하고 무조건 배제하는 주거 공간과 문화가 만들어져 왔다는 것이다.
일례로 아파트에서 층간 소음은 악이다. 아파트의 닫힌 구조는 외부의 소리가 물 흐르듯 지나가거나 연기처럼 흩어질 수 없게 만든다. 윗집, 옆집의 소리는 들렀다 가는 손님이 아닌 침입자로 느껴진다. 오정희의 단편소설 '소음공해'는 이런 갈등을 잘 묘사한다.
"머리 올이 곤두설 정도로 드르럭거리는 윗층 소리"에 질린 주인공은 아이들이 자전거나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줄 알고 항의를 하러 간다. 하지만 문을 연 여자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소리가 고통이 되는 도시 특유의 주거 공간이 또 있다. 고시원이다. 불안한 시대에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깃들여 지내는, 혹은 내몰리는 공간. 가난한 사람은 마음껏 한숨을 내려놓을 자리도 없다는 것을 고시원은 적나라하게 가르쳐준다.
박민규의 단편소설 '갑을고시원 체류기'에 그 생활이 그려져 있다. "나와 옆방 남자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정말이지, 동거가 아닐 수 없다고 나는 생각했다. 내 쪽에서도 책상을 구르는 볼펜의 소리라든지, 또 훌쩍 코를 들이켜는 소리 같은 것을 너무나도 생생히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중략) 결국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게 생활화되었고, 코를 푸는 게 아니라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겼으며, 가스를 배출할 땐 옆으로 돌아누운 다음-손으로 둔부의 한쪽을 힘껏 잡아당겨,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소리와의 행복한 동거를 꿈꾸며
도시에서 사노라면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우리는 소리와의 행복한 동거를 꿈꾼다. 좋은 소리 속에서 눈뜨고, 밥 짓고, 웃고, 생각하고, 사랑하고 싶다. 그 마음, 집 짓는 이들이 가장 잘 알 것 같아 건축가들에게 물었다. "어떤 소리와 더불어 살고 싶으세요?"
유걸 건축가는 한동안 친구와 나란히 집을 지어 살았다. 부엌이 붙어 있고 배기구가 이어진 구조라 옆집 소리가 속닥속닥 들렸다. "부부싸움이라도 하나 싶으면 금세 친구 아내가 우리 집에 와서 하소연하곤 했죠.(웃음)"
함성호 건축가는 동네 소리가 계단을 통해 흘러 들어오도록 집을 짓는다고 했다. "집안 소리도 잘 공명하도록 설계해요. 이를테면 '밥 먹어라' 하는 소리가 구석구석 퍼뜨려지도록.(웃음)" 다락방에 숨었던 아이라도 밥 때를 놓치는 일은 없겠다.
김기환 건축가는 "가족들의 소리가 집안 곳곳에서 두런두런 입체적으로 들리는 집"이라고 대답했다. "한옥의 창호지문에서 힌트를 얻고 있어요. 그 문은 가족의 공존과 구성원 각자의 프라이버시 사이에 있지요. 모든 사람을 스스로 삶의 방식을 제어할 수 있는 존재로 존중한 증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오늘날의 꼭꼭 닫아 놓는 두꺼운 방문이 싫어서, 방문을 열어 놓는 순간에 더 집중해 집을 설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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