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생에 지은 선악의 행위에 따라 금생에 몸을 받을 때 아홉 가지의 형태로 태어나게 되는 중생의 모습이며
구류생九類生 또는 구류지생九類地生이라고도 하며, 《금강경》에 나오는 말이다.
①태로 태어난 태생胎生. (예: 인간, 포유류)
②알로 태어난 난생卵生.
(예: 조류, 파충류, 어류)
③습한 곳에서 태어난 습생濕生.
(예: 벌레, 미생물 등)
④변화하거나 스스로 업력에 의하여
갑자기 변화하여 태어난 생명체 (갑작스럽게 변화하여 생김)인
화생化生. (예: 천상이나 지옥의 중생)
⑤빛이 있어 태어난(형태가 있는 존재)
유색有色.
⑥빛이 없이 태어난(형태가 없는 존재)
무색無色.
⑦생각이 있어 태어난 유상有想.
⑧생각이 없이 태어난 무상無想.
⑨생각이 있지도 없지도 않게 태어난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을 말한다.
이 세상의 모든 중생을 아홉 가지로 분류한 것. 구류중생 중 앞의 네 가지를 사중생四衆生(=사생四生)이며 태ㆍ란ㆍ습ㆍ화胎卵濕化의 사생은 색신 육신의 본능에 사로잡혀 사는 삶이다.
후반의 다섯 가지를 오생五生이라 한다.
오생五生은 유색중생ㆍ무색중생ㆍ유상중생ㆍ무상중생ㆍ 비유상비무상중생이며,
이 다섯 중생은 우리의 사유세계를 중심으로 분류한 중생. 곧 삶에 대한 철학과 신조와 신념체계를 바탕으로 분류한 것이다.
① 유색중생 세계:
색을 가진 중생들의 세계 또는 형상이 있는 모든 존재의 세계를 의미한다.
현실에 집착한 삶, 현실 속에서 시시비비와 이해득실에 집착하는 세계이다. 현실 속에서 시시비비나 이해득실에는 신경을 곤두세우는데 실상 자기마음의 이치나 무상의 이치 등 이치의 세계가 존재하는 줄도 모르고 설사 안다 할지라도 거기에는 관심이 없이 현실 문제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을 유색중생이라 한다.
유색중생의 세계가 만연해지면 현실이 항상 시비이해로 시끄러워지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옳다 네가 옳다하여 극단적으로 나아가다 보면 갈등이 생겨나고, 갈등이 이어지다가 보면 결국 싸움이 되는 세계가 유색중생 세계이다.
② 무색중생 세계:
형상이 없는 중생들의 세계 또는 비물질적인 존재들의 세계를 의미한다
현실문제에 초연하고 그 이상적 마음에만 집착하는 세계이다. 현실 속에서는 그 누구를 공경한다거나 불공을 한다든지 등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가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을 말한다.
현실 속에서 복을 짓거나 지혜를 닦으려고 하지 않고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니 마음 문제만 해결하면 현실문제는 모른 체 해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색이 없는 마음 세계만 붙들고 현실문제는 나 몰라라 하다보면 현실 세계가 어렵게 된다. 자기가 사는 현실이 어렵게 되고, 자기가 처한 사회 집단도 어렵게 되어 결국 현실적 발전은 기대 할 수가 없게 된다.
③유상중생세계
불교에서 "생각(상, 想)이 있는 중생"을 의미한다.
유상중생은 감각과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뜻한다. 인간, 동물, 천상의 신들처럼 인식하고 판단하는 존재들이 이에 속한다.
항상 생각 궁글리는 것을 능사로 삼아 문자나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만 집착하는 세계이다. 입으로는 부처님 행을 말하고 글로 쓰고 사고思考로는 많이 한다. 그래서 법문에 의지하여 수행을 통해서 그 자리에 합일해야 하고 법문대로 살아야 한다고 하면서,
예를 들어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자, 그렇게 하려면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고 분석하고 말은 무성하게 하지만 실질적으로 마음 가운데 원망생활을 감사생활로 돌리는 이것이 안 되는 세계이다.
다시 말해 유상중생 세계라는 것은 언어와 문자, 배우고 가르치는 것에만 집착해 있으면서 마음으로 행동으로는 옮기려 하지 않는 그런 중생세계를 유상중생 세계라 한다.
④ 무상중생無想衆生 세계: 무상중생無想衆生은 일시적으로 생각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는 중생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무상천無想天의 중생들은 번뇌를 피하려고 일정 기간 동안 사고 기능을 멈춘 상태로 존재한다. 그러나 결국은 다시 윤회에 들어가게 된다
이 개념은 불교에서 중생이 경험하는 다양한 존재 상태를 설명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모든 생각은 쓸데없는 것이다. 모든 생각은 전부 다 번뇌 망상이고 배우고 가르치는 이것 또한 다 쓸데없다는 것에 집착하는 세계이다. 그래서 언어와 문자, 배우고 가르치는 모든 것을 떠나서 무념무상에만 집착하는 세계이다.
⑤ 비유상비무상非有想非無想
(=비상비비상非想非非想)-세계:
불교에서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에 태어난 중생을 의미한다.
"비유상非有想": 명확한 생각(상想)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무상非無想": 그렇다고 완전히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즉,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애매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중생을 가리킨다.
무색계無色界에서 가장 높은 천天으로, 사무색정四無色定중 최고 경지에 해당한다.
이곳에 태어난 중생들은 미세한 의식 상태에 있으며, 일반적인 감각적 사고 활동이 거의 없다.
번뇌가 적고, 물질적 세계를 초월했지만, 완전한 열반涅槃에 도달한 것은 아니다
아주 길고 오랜 시간을 이곳에서 머물 수 있지만, 결국 윤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태어난다.
유상무상이 다 옳은 것이 아니다 하여 비유상비무상으로, 유상에도 걸리지 않고 무상에도 걸리지 않으려는 생각에 집착되어 사는 세계이다.
여기에서 차원을 높여 구류중생심을 다 무여열반 이멸도지無餘涅槃而滅度之해야 한다.
《금강경》 ‘대승정종분大乘正宗分’에 보면 일체중생계인 태생과 난생과 습생과 화생과 유색과 무색과 유상과 무상과 비유상비무상은 다 무여열반에 넣어서 전부 다 멸하여 제도하리라 했다. 이 무여열반이라 하는 것은 그 경지에 도달되기 전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세계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냥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것으로만 생각할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으면 무엇인가 하는 의심에 걸리기도 하는데 무여열반은 마치 용광로와도 같은 것이다. 용광로라 하는 것은 사람들이 주워오는 온갖 잡철을 가져다 넣으면 그 모습은 모두 소멸이 되어버린다.
그러므로 무여열반의 자리에 우리의 구류중생심을 모두 다 넣게 되면 계교사량과 집착의 중생심이 모두 소멸되어버린다. 소멸된 그 자리에는 오직 보리심만 남게 되는데 마치 용광로에서 순수한 쇠만 남는 것같이 이것을 멸하여 제도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보리심이 생산되면 그 보리는 생사대해를 건너갈 수도 있고, 일체 중생에 유익을 줄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의 영생 문제도 해결되고, 영광된 앞길이 보장되는 것이다.
비유상비무상 자리는 백척간두이다.
백척간두 百尺竿頭는
백 자나 되는 높은 장대 위에 올라섰다는 뜻으로, 몹시 어렵고 위태로운 지경을 이르는 말이다
이 자리는 저 아래 태란습화 자리로부터 올라오고 또 올라와서 비유상비무상의 꼭대기까지 온 것이다. 이 백척간두에서 진일보해야 한다. 일보를 전진하면 그 자리가 무등등한 자리요
만법으로 더불어 짝할 수 없는 자리요, 천상천하에 독존의 자리이니
이 자리에 도달되어야 무상성위無上聖位에 오른 것이라는 의미이다.
<참고 원불교대사전>
일향전념一向專念 일심불란一心不亂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 극락정토 아미타불~
-묘봉사 현각대일 합장-
#설법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