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1호선 율하역에서 만나
초례봉 초입 베이스 캠프에 도착 했습니다.
코스와 장소를 선정해준 도병기 동문은 안타깝게도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쾌유를 빕니다.
많은 전설과 역사를 품은 팔공산 자락 환성산 초례봉 낙타봉
오늘은
추운 날씨로 인해 초례봉-낙타봉을 경유 하산하기로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언제나 그러하듯
출발은 보무당당 합니다.
송림사이를 휘몰아치는 산바람과
살을 애는 추운 날씨에 몸과 맘은 얼어 붙었지만
情
북풍한설도 友情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아직도
계곡에는 잔설이 쌓여 있고
혹한 동장군의 위세를 곳곳에 남겨 놓았지만
봄은 멀지 않겠지요?
진달래는 긴 겨울을 극복하고 봄의 향연을 맞이할 준비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주종두 방한모에 고드름이 맺혀 있습니다.
세월이 하 어수선하여 고드름을 제거하던 소방관이 목숨을 잃은 사태가 벌어졌지만
우리에게는
고향집을 떠올리게 하는 동요가 머리속에 남아 있습니다.
고드름...윤국영
“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고드름 따다가 발을 엮어서/ 각시방 영창에 달아 놓아요.”
“각시님 각시님 안녕하세요/ 낮에는 해님이 문안 오시고/ 밤에는 달님이 놀러 오시네"
"고드름 고드름 녹지 말아요/ 각시님 방 안에 바람 들면/ 손 시려 발 시려 감기 드실라.”
갈수록 길은 가파르지만
멀리 낙타봉과 환성산이 갈채를 보내고 있는 듯 합니다.
어서 오라며....
멀리 고속도로와 우리집 근처에서 보면 뚜렷한 낙타봉
하지만
지근에서 보면 또다른 형상으로 다가 옵니다.
우리들의 인생사도
그러하겠지요?
이정표가 이렇게 반가운 적도 없었습니다
초례봉
1.서기 927년 팔공산 기슭의 공산전투에서 패한 왕건이 후백제군의 포위망을 뚫고 목숨을 부지한 것에 대해 "왕으로서의 위엄을 갖추고 천지신명에게 제(祭)를 올린 곳."라해서 붙여진 이름.
2. 선녀와 나무꾼이 초례를 올렸고, 이곳에서 혼례를 올리면 아들을 낳는다는 전설도 있다
3.산에 묘를 쓰면 거부(巨富)가 된다는 속설이 있어 누구든지 이 산에 묘를 쓰기 원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러나 이 산에 새로운 묘를 쓰게 되면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가뭄이 들면 인근 주민들이 이 산꼭대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초례봉을 눈에 담고서 능선길을 따라 낙타봉으로 향하는 길
따뜻한 양지뜸에서 정상주를 즐긴다.
하오수주. 야관문.구기자. 오미자. 막걸리
배낭에서 화수분처럼 밀려나오는 먹거리
우리 친구들 시집.장가는 잘 갔는 듯
맞제 칭구야!!!
임종구표 계란
국가기밀 사항
ㅎㅎ
주종두표 족발
무자게 먹어도 배 않부르고
쉼없이 마셔도 취하지 않는 정상주
분위기 때문이겠지요?
무사한 산행과 건강.행복을 위하여!!!!!!
남여 혼성 은행털이범???
두 번이나 나뒹군 옥희
뭇사내의 동정심을 유발하기 위한 작전이었다는 후문도 있답니다.
ㅋㅋㅋ
그래도 씩씩합네다!!
멀리 팔공산 정상을 뒤로한 환성산. 환성산 이름은 정상 동쪽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신라 흥덕왕 10년에 창건된 환성사(環城寺)의 절이름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그래서인지 이곳 토박이 주민들은 이 산을 ‘고리성산’으로 부르기도 한다. 또는 정상을 이루는 바위가 마치 감투처럼 생겨서 일명 ‘감투봉’으로도 불린다.
환성사에 관하여 예전에 대구매일에 연재하였던 졸필을 가져온다.
<자녀와 떠나는 답사여행> 경산 하양 환성사(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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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성사는 동화사를 창건한 심지왕사가 신라 흥덕왕 10년(835) 창건했다고 알려진 사찰이다. 무학산 자락 중앙에 위치해 마치 절을 둘러싼 형국이 반지와 닮았다해서 환성사로 불린다.
◆지붕 없는 일주문 돌기둥 동화사에 비해 크게 알려지지 않은 절이지만 사람들에게 답사 메카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장대하고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는 지붕이 사라진 일주문 돌기둥 때문이었을 것이다.
녹음 짙은 여름날, 눈 내리는 겨울날에도 지루한 느낌이 들지 않은 길을 쉬엄쉬엄 올라가면 두 팔 벌려 탐승객을 포옹해주던,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던 돌기둥이었는데 이제는 복원되어 그런 감흥은 추억으로 남았다.
사찰 입구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일주문은 기둥이 한 개라는 의미가 아니라 '기둥이 일렬로 섰다.'라는 뜻으로 불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사람이 가람에 들어가기 전에 세속의 번뇌로 부산히 흩어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한다는 의미다.
기둥이 네개인 것은 일주삼칸 즉 '법화경에서 천명한 회삼귀일사상. 중생의 바탕과 능력에 따라 성문, 연각, 보살로 나뉘어진 불교의 여러 교법을 오직 성불을 지향하는 일불승의 기로 향하게끔 한다는 사상적 의미'이다. (건축 용어 '칸'은 기둥과 기둥 사이를 말하며 1칸은 기둥이 둘, 3칸이면 기둥이 네 개다.)
◆색다른 일주문을 보고싶다면 색다른 일주문으로는 지리산 자락 구례 천은사 일주문과 부산 범어사 일주문을 꼽을 수 있다.
천은사 일주문은 중국서예와 차별성을 확보하고 민족 고유의 정서와 감정을 담아 만든 '동국진체'의 완성자 원교 이광사의 글씨인데, 물 흘러내리듯 세로로 흘려 불에 약한 천은사에 물의 기운을 돋우고 있다. 일주문 옆 낮은 헛담(담장) 역시 물의 기운이 쉽게 누설되지 않도록 허약한 지세를 북돋아 주는 이중의 비보책으로 답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주목받는 일주문이다.
범어사 일주문은 고건축의 불가사의로 여겨질 만큼 특이한 구조로 배흘림의 석조기둥 위에 어떠한 고정장치도 없이 짧은 목조기둥을 올려놓았지만 조선 숙종 이래 숱한 태풍 비바람에도 한치의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양쪽 기둥은 네모, 버팀돌 기둥은 팔각 환성사 일주문은 처마 끝 서까래 위에 짧은 서까래를 잇대어 달아낸 '겹처마', 비로부터 벽면을 보호하기 위해 방풍판을 단 사람 인(人)자 모양의 간결한 맞배지붕, 다포식 공포로 복원한 일주문은 가공하지 않은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놓인 돌기둥이 길고 양쪽 기둥이 네모기둥인데 비해 안쪽 두개 버팀돌 기둥은 팔각으로 즉 방형석주+팔각석주+팔각석주+방형석주의 특이하고 유례가 없는 조형물인 것이다.
국보, 보물이라는 거창한 이름표는 고사하고 사적, 문화재 자료로도 등록되지 않았지만 늘 그 자리를 지키고 말없이 서있는 일주문 기둥에 걸렸었을 주련(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 붙이는 글씨. 기둥(柱)마다 시구를 연달아 걸었다는 뜻)을 상상해 본다.
入此門內莫存知解(입차문내막존지해) : 이 문안에 들어서면서부터 세상의 알음알이를 두지마라!
<자녀와 떠나는 답사여행> 경산 하양 환성사(하) |
일주문과 더불어 환성사의 매력적인 문화유산이 수월관(水月觀)이다.
이곳 도오(道悟)스님은 보름달이 무학산을 넘어 연못에 드리울 때 누에서 바라보는 정경이 아름다워 '수월관' 현판을 걸었다고 하신다. "혹 달을 희롱하며 절을 유흥공간으로 삼았던 유생들의 객기가 아니었겠냐"고 넌지시 여쭈었더니 스님은 미소만 짓는다.
수월관은 덤벙주초(막돌초석)에 목재 기둥 밑면을 다듬어 원형 두리기둥을 세운 건물이다. 정면 5칸, 팔작지붕, 서까래가 드러난 '연등' 천장이 독특하며 마루는 우물 정자(井)를 닮았다.
◇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은 까닭은
환성사에는 사찰 흥망성쇠와 관련 있는 재미있는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젊어서는 덕을 베풀어 여러 사람의 존경을 받았으나 나이 들자 손님들을 번거롭고 귀찮게 여기게 된 스님이 계셨다. '우리 절에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것은 틀림없이 절 입구 자라바위 때문일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한 그는 사람들을 시켜 자라바위 목을 자르게 했다. 지시대로 바위의 목을 정으로 깨뜨리니 갑자기 연못이 붉게 변했고 이런 일로 절을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그러던 중 한 객승이 "이 절에 사람이 많은 것은 저 연못 때문이니 저것을 메우시오."라며 방문객 수를 줄게하는 비방을 일러주며 절을 떠났다. 이 말을 듣고 주지가 동네사람들을 불러다 못을 메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삽을 퍼 넣자 갑자기 못 속에서 금송아지 한 마리가 날아오르더니 슬피 울고 산 너머 동화사 쪽으로 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이 모습을 본 동네 사람들을 일을 멈추자 주지는 절의 스님들을 동원하여 못을 메우게 했다. 꼬박 100일이 걸려 못을 메우고 마지막 흙 한 삽을 퍼붓자 별안간 온 절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그 웅장하던 집채들을 모조리 태우고 말았다. 겨우 대웅전과 수월관은 남았으나 이후로 사람들의 발길은 끊어지고 말았다.
수월관을 누대 밑으로 들어가 뜰을 지나면 대웅전, 심검당, 요사, 수월관이 산지사찰 배치인 입 구(口)자이다. 야간 행사시 불을 밝혔을 두 기의 '노주석', 복련이 고운 팔각원당형 석등 하대석과 더불어 1층 탑신에 방형 받침으로 고려시대 탑으로 추측될 뿐 비슷한 유형이 없는 층수가 모호한 파격적인 이형석탑이 좁은 중정에 자리잡고 있다.
◇ 착시현상 방지기법 돋보여
강당으로 사용되었다는 심검당은 최근에 복원하였으며 정`측면 3칸* 3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금당쪽에는 겹처마이고 명부전쪽은 홑처마 구조의 독특한 양식으로 순조 24년(1824년)에 쓴 현판이 걸렸다.
명부전 시왕은 100년 전에 경주 남산 옥돌로 조성하였다고 쪽마루에 마주 앉아 말씀하시던 도오스님께서 수월관으로 안내하시며 수월관과 일주문 불사 잘못을 지적했다. 최근 복원한 일주문에 틈새가 보이지만 그보다도 일주문을 통과하여 환성사 경내로 진입하도록 동선을 유도하지 않고 일주문 옆으로 우회하도록 길을 낸 처사가 한심하다는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건축기법처럼 환성사 대웅전에도 고건축에서 착시현상을 방지하고 아름다운 외형을 동시에 표현하는 기법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 같은 굵기 기둥이 상부가 가늘게 보이는 착시 교정의 '배흘림', 문벽선 상부가 좁게 보이는 현상을 예방하는 '쌍사문'이 눈에 들어온다.
또한 모서리 기둥을 약간 높여 중간 기둥보다 낮게 느껴지는 착시 현상 방지의 '귀솟음', 모서리 기둥을 안쪽으로 약간 기울게 세우는 것으로 바깥기둥이 삐쳐나가는 듯한 착시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안쏠림'은 우리 건축의 특색이다.
◇ 다양한 문양의 수미단 볼거리
불단은 후벽 앞에 높은 기둥을 세워 후불단을 만들고 법당 안에 부처님을 높이 모시기 위해 만든 수미단을 조성 석가여래와 문수, 보현보살을 협시로 모셨으며, 후불탱의 복주머니가 이채롭다. 불단위에는 극락세계를 상징하는 운궁형 보개가 소박하며, 우물천장에는 천상의 음을 노래하고 찬탄하는 상서로운 새와 용이 구름 위를 유영하고 있다.
환성사 대웅전의 또 다른 볼거리는 수미단이다. 민화에서 다산, 삼려도, 과거 급제를 상징하는 물고기, 연꽃 불교 설화를 바탕으로 한 원숭이 공양상, 신의 화현으로 인식되는 동자 등 다양한 상징성의 문양이 투각되어 있다. 산문을 내려오는 뒤로 "가족들과 함께 오시라"는 도오 스님 말씀이 귓전에 맴돌건만 걱정이 앞서는 까닭은 무엇일까.
임병기. 2006.08월 02일 | |
아득히 하양벌이 손에 잡히고
멀리서 보면 뫼산(山)자 처럼 보이는 낙타봉의 주봉
모두들 우회 통과했지만
이재길.유장호 동문은 정상에 올랐다.
우리의 산하는 늘 이렇게 아름답다.
화려하지도 않고 빼어난 절경도 아니지만 다시 또 오게 만드는 매력은 뭔지?
사진...임종구
분주히 살아가는 산아랫마을 일상도 돌아보면 한순간인 것을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잊고 살며, 잃어 가고 있지 않은지.
낙타봉에서
이사진을 마지막으로 카메라 고장.
얼어 붙은 듯 작동 스톱
ㅎㅎ
사진...임종구
내려오는 길
영원히 정상에 머물 줄 알고 쉼없이 달려온 우리들
이제 가끔은
은퇴후의 일상도 그려나가자.
사진...임종구
조만간 꽃소식도 들려오겠지?
사진...임종구
허심탄회하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련한 옛날을 반추하고
먼 훗날 추억거리로 기억될
그런 우리들의 삶의 이야기......
멀리 대구시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함께한 칭구들. 욕봤다
그라고 디기 즐거벘다!!
동기 여러분
2월 산행은 유기박물관- 북지장사-갓바위-미대동 미나리와 삽겹살 코스 입니다.
시산제도 모실 예정이오니 동참하시지 않으실래요?
2011.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