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군인은 누구인가
[부제]군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백지수표를 쓰는 사람이다 / 한신섭
올해는 한국전쟁 발발한지 70년 되는 해로 필자는 <우리 가족이 겪은 전쟁 이야기 10편>을 쓰고 마무리하며 전쟁을 일으킨 당사자들을 용서하고 상생하자고 제안 했습니다. 그러나 작금의 남북상태는 좀 심각하지만 잘 해결 되리라 필자는 판단 합니다. 이번장엔 우리나라 군인 중 한국전쟁에 참전한 군인 중 진정한 군인상을 보여준 세 분의 장군(한신 · 채명신 · 황규만)을 소개 합니다.
1-3장 까지는 채기중 순국독립의사의 연대기를 작성했고 4편에선 채명신장군 연대기를 작성하기 위해 오늘까지 객관적 기록물을 수집 중 황규만 육군 준장의 이야기까지 접하게 됩니다. 누구는 아직까지도 재산이 29만원 뿐이라고 버티는 군인(?)과 그 一黨(일당)들이 있는가 하면 여기 소개하는 진정한 군인상도 있습니다.
올곧은 사가 · 문인들은 그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그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무슨죄를 지었는지 밝혀 낼 겁니다. 王政(왕정)시대인 조선이나 고려조 였다면 3족도 모자라 9족까지 滅門之禍(멸문지화)를 면치 못 했을겁니다.
지금이라도 당시 사실을 사실대로 밝혀 국민앞에 나와 정중하게 사과하고 저어기 금고에 꼭꼭 숨겨논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 그렇치 못하면 대대손손 後孫(후손)들은 대한민국에서 편하게 살지 못할 것이다.
필자는 2003년 부터 백두대간과 백대명산을 탐방 종주하며 우리 산하에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도 오롯이 숨겨져 있던 民草(민초)들의 이야기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되어 2016년 발간한 책자에 소개를 했으며 앞으로 출간하는 책에도 계속 수록하여 後孫(후손)들에게 알리고자 합니다.
또한 매년 호국보훈의 달에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을 위로하기 위해 글을 썼으며 이번장엔 한국 전쟁 당시 이야기를 씁니다. 소천 하신 순서대로 작성 합니다.
★첫번째: 한신 장군(1922~1996)
장군은 필자 항렬보다 한단계 아래라 문중으로 보면 조카 뻘 됩니다. 그러나 객관적 사실 자료에 의거 기술 합니다. 장군은 솔직 담백한 성품을 지닌 청렴결백한 군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군의 교육·훈련과 부하복지(部下福祉)에 많은 신경을 썼고 군대의 제반 여건이 좋지 않던 시절에 강조했던 “부하들을 잘 먹여라(食). 잘 입혀라(衣). 잘 재워라(住). 교육훈련을 철저히 하라. 근심걱정을 해결해 주라.”는 그의 지휘방침은 유명하다. 네이버 백과사전에 나온 자료로 소개를 대신 하지만 전쟁기념관에서 5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한 인물이라 관련 기사를 붙임 합니다.
★두번째 : 채명신 장군(1926~2013)
1926년 황해도 곡산에서 항일운동가의 아들로 태어 났으며 1947년 월남해 조선경비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5기로 입학했다. 1949년 육사를 졸업한 뒤 이듬해 6ㆍ25 전쟁에는 소위로 참전해 육군 5사단장, 육군본부 작전참모부장을 거쳤다. 1965년 8월~1969년 4월까지 초대 주월한국군 사령관과 맹호부대장을 맡아 4년 동안 베트남전쟁에 참가했다. 그는 베트남전 당시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고 지시하는 등 덕장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1961년 5ㆍ16에 주도적으로 가담하는 등 박정희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유신헌법 선포에 반대하면서 1972년 중장으로 예편했다. 전역 후에는 스웨덴, 그리스, 브라질 대사 등 외교관으로 활동했으며 대한해외참전전우회 명예회장, 베트남참전 유공전우회 회장, 대한민국월남전참전자회 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한편 고인은 「나를 파월 장병 곁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국립현충원 장군 묘역이 아닌 일반 병사 묘역에 안장됐는데, 국군 장성이 사병 묘역에 묻힌 것은 채 장군이 처음이다. 이하 붙임한 기록으로 대신하고 진정한 군인상 두번째로 수록 합니다.
★세번째 : 황규만 장군(1931~2020)
오늘 기사를 보고 놀란 또 한명의 진정한 군인상을 소개 합니다. 그만 어제 소천 하셨다는 기사가 뜨는군요. 조선일보 기사와 지난 5월 황장군의 美談(미담)이 알려진 글을 붙임하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비오며 소개 합니다.
황규만(89) 전 육군정보처장(예비역 육군 준장)이 21일 별세했다. 고인은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 제2묘역에 있는 '군 소위 김의 묘(묘비 번호 1659)' 옆에 안장될 것으로 보인다. 1950년 8월 27일 북한군과 싸우다 전사한 고(故) 김수영 소위의 묘 옆이다.
장군 출신인 황 전 처장이 위관급 장교 옆에 묻히게 된 사연은 이렇다. 고인은 1949년 육군사관학교에 생도 1기(나중에 육사 10기가 됨)로 입교했다. 재학 중 6·25 전쟁이 발발했고, 1950년 8월 27일 수도사단 6연대 소속으로 경북 안강지구 도음산 384고지에서 북한군에 맞서 싸웠다. 이때 '김 소위'를 처음 만났다. 1연대 소속으로 고인에게 "도우러 왔다"고 밝힌 김 소위는 적의 총탄에 전사했다. 작전 때문에 현장을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고인은 김 소위 유해를 임시로 땅에 묻고서 전투가 끝나면 안장하기로 마음먹었다.
고인은 그로부터 14년 뒤 다시 고지를 찾아 김 소위 유해를 발굴했다. 김 소위는 그해 5월 29일 국립묘지에 안장됐지만, 그의 이름을 알 길이 없어 '육군 소위 김의 묘'라고 쓸 수밖에 없었다. 1975년 전역한 고인은 1985년에는 도음산에 김 소위를 기리는 전적비를 세웠다. 1990년에는 김 소위의 '육군보병학교 1기' 동기를 수소문한 끝에 그의 신원(1922년생 김수영)을 파악했다.
고인의 장남 황성돈씨는 본지 통화에서 "국립현충원과 '전우의 묘'에 공동으로 안장하는 방안 등을 긍정적으로 얘기하고 있어 아버님이 소원을 이루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장군자씨, 아들 황성돈씨, 딸 황혜성·황혜원씨, 사위 양승원·신희호씨 등이 있다. 빈소는 분당서울대병원, 발인은 23일 오전 7시. (031) 787-1506. [김은중 기자 emailme@ chosun. 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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